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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청문회’가 ‘행정부 마비’가 아닌 3가지 이유

‘상시 청문회’가 ‘행정부 마비’가 아닌 3가지 이유

청문회 실시요건 변화 없는데도 ‘정쟁’만 외치는 정부여당… “상시적인 정부 감시, 민주정치의 정상화 과정”


상임위 차원의 상시적인 청문회가 가능하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정부여당이 여론전에 돌입했다. 행정부가 마비될 것이라는 것이 반대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국회를 입법부가 아닌 통법부, 거수기 정도로 보는 사고방식에 근거한다.

국회는 지난 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가결시켰다. 상임위원회 재적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중요 현안에 대해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청 와대는 당장 ‘행정부 마비’라는 주장을 꺼내들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20일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서 “국회 상임위 차원에서 마음만 먹으면 아무 안건이나 현안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공무원들을 불러 청문회를 열 수 있게 했다. 공무원이 국회에 수시로 불려다니는 것도 모자라 상시적으로 청문회에 참석해야 한다면 어떤 공무원이 소신껏 일할 수 있겠느냐며 ”입법부 권한을 지나치게 확대하고 행정부 기능을 사실상 마비시킬 수 있는 위험한 법”이라고 밝혔다.

청문회 급증한다? 청문회 실시요건에는 변화 없어

새 누리당에서도 ‘행정부 마비’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정재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23일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모든 현안마다 청문회가 열리면 행정부가 거의 마비될 것”이라면서 “수시로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불려나온다면 정부나 기업이 어떻게 소신을 갖고 일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법 개정안으로 갑자기 청문회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과장된 것이다.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상임위 위원 과반수가 동의한다면 청문회를 열 수 있었다. 국회법 개정안으로 인해 바뀐 것은 ‘중요한 안건의 심사와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필요한 경우’라는 청문회 개최 조건에 ‘현안 조사’가 추가됐다는 것뿐이다.

정 의화 국회의장 측은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개정안 중 청문회 관련 조항은 청문회의 실시 사유와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현안 조사를 위한 청문회’를 법률에 명시하는 것 일뿐이며, 청문회 개최주체 및 청문회 실시 요건에는 변화가 없어 동 개정안으로 인해 청문회가 남발될 소지는 높지 않다”고 반박했다.

정 의장 측은 또한 “기존에도 청문회 실시 주체는 개정안과 동일하게 ‘위원회’ 및 ‘소위원회’였으며, 실시요건도 위원회의 일반의결정족수(재적과반수 출석, 출석과반수 찬성)로 동일하므로, 동 개정안으로 인해 청문회 개최요건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상임위 청문회=정쟁’이라는 잘못된 도식

나 아가 정부여당은 ‘상임위 청문회=정쟁’이라는 잘못된 등식에 기초해 국회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민경욱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23일 ‘KBS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 인터뷰에서 “정치적 의도를 깔고 있을 때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청문회 대상이나 증인 채택, 결과 보고서 채택 등의 과정에서 여‧야간의 정쟁으로 상임위가 파행된다면 원래 상임위가 해야 하는 법안 심사 등 다른 일은 하지도 못하는 상황들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안 조사’를 위해 열리는 상임위 청문회는 대부분 상임위의 정책 관련 청문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2015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에서 열린 700Mhz 주파수 관련 공청회가 대표 사례다.

우 상호 더민주 신임 원내대표는 20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언론이 예측하는 가습기청문회, 어버이연합청문회 등은 하나의 상임위에서  할 수 없는 여러 상임위에 걸쳐진 현안”이라며 “상임위 청문회는 정책 청문회가 될 거고 권력형 비리 등 주요현안은 국회차원에서 특위를 만들어서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여당이 걱정하는 ‘정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청문회’는 어차피 여야 대표가 모여서, 국회 특위 차원에서 처리할 문제라는 것이다.

국회법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진 비박계 조해진 무소속 의원도 24일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정치적, 정쟁적 청문회는 이번에 국회법에 통과된 상임위중심 청문회하고 다르다. 상임위중심 청문회는 각 분야의 대표들이 다 참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무원도 그 중에 필요하면 오고 안 오면 청문회에서 안 부르면 안 올 수도 있는 것”이라며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상시’적인 정부 감시는 국회 정상화

공무원들의 일이 늘어날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동아일보는 24일 기사에서 “상시 청문회의 직격탄을 맞는 곳은 정부부처”라며 “부처들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과 사회현안이 청문회 대상이 되면 공무원들의 업무가 폭증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하 지만 이런 주장은 삼권분립의 기초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가 해야할 일은 행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고, 공무원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를 국회에 보고하고 자료를 만드는 것이 당연한 업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 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원래 민주정치에서는 국회에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토의를 진행해서 정책을 수정하고 감독을 받는 것이 행정부 공무원의 기본 업무다. 일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민주정치가 정상화되어 가는 과정”이라며 “야당도 ‘청문회의 잦은 사용을 자제 하겠다’고 말할 게 아니라 이게 정상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또한 “일상적으로 청문회를 해서 정부를 감독했다면 방산비리, 자원외교 비리가 터졌겠나. 행정부와 국회가 더 밀착하고 감시와 견제가 일어날수록 국민의 세금이 새는 걸 막을 수 있고 정책이 잘못되는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 시적인 청문회를 진행하면 공무원만 일이 늘어나는 게 아니다. 국회도 정기국회, 임시국회가 열리는 기간이나 국정감사 기간 외에도 상시적인 청문회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 보수언론과 정부여당은 ‘국회가 일을 안 한다’고 강조해왔지만 국회의 일이 늘어나는 국회법 개정안에는 반대한다. 이들이 말하는 ‘국회가 해야할 일’이 정부여당의 만든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거수기’ 역할이었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도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언제는 일 안하는 국회라고 비판하더니 ‘일하겠다’, ‘상시(적으로 하겠다’고 했더니 행정부가 마비된다고 얘기하는 게 앞뒤가 맞느냐”며 “국회가 열리면 행정이 마비된다는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 이는 의회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