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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의 역설, '탄돌이' 17대 국회를 보라

여소야대의 역설, '탄돌이' 17대 국회를 보라

한나라당과 싸우랴, 제3당 설득하랴 개혁 좌초한 17대 국회의 역사… 새누리당은 여전히 강력하다


오는 5월30일 20대 국회가 개원한다. 16년 만의 여소야대 정국이다. 새누리당은 탄핵 국면에서 치러진 2004년 총선 이후 12년 만에 원내 제2당이 됐다. 야당 지지층의 기대는 높아지고 있고, 야당의 정치력이 그대로 드러날 계기가 마련됐다.

지 난 4.13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으로 원내1당을 차지했다.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2당으로 밀려났다. 유승민·윤상현 의원 등이 복당한다 해도 국민의당이 38석, 정의당이 6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소야대 정국은 변화가 없다. 야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개혁을 주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야당 지지층의 기대는 높아지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총선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소야대 되었으니 이제 해야할 일”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시장은 △세월호참사 진상규명및관련자처벌 위한 특별법개정과 특검 △국정교과서금지법 제정 △테러방지법 폐지 △노동개악법 폐지 △4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 등 특검 △한일간 위안부 합의 무효 결의안 채택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이외에도 언론사 지배구조 개선 등이 과제로 꼽힌다.

지금의 상황은 17대 국회 개원을 떠오르게 한다. 탄핵 역풍으로 개혁을 내세우던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이 넘는 152석을 차지했다. 한나라당은 121석으로 추락했다. 민주노동당도 10석을 차지해 원내제3당이라는 돌풍을 일으켰다.

새누리당은 여전히 강력하다

참 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개혁법 등 4대 법안을 반드시 개혁하겠다는 내용의 ‘4대 개혁입법’을 내세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4대 개혁입법은 실패했다. 한나라당은 법사위장과 본회의장을 점거하며 격렬하게 저항했고 4대 개혁입법 중 일부만 누더기가 되어 통과되는 데 그쳤다. ‘개혁’을 이유로 벌어진 싸움에 지친 국민은 각종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줬다.

17대 국회는 새로 시작되는 20대 국회에 몇 가지 교훈을 안겨준다. 첫째, 새누리당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20대 국회에서 122석을 차지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주도하는 법안이 통과되지는 못하지만 야당의 법안을 막기에는 충분한 의석수다.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사학법을 막기 위해 장외투쟁까지 했다. 국가보안법 개정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은 물론 보수언론, 장외 각종 단체들까지 총궐기했다.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무기가 점거 및 장외투쟁이었다면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의 무기는 국회선진화법이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국가비상사태가 아닌 한 직권상정 요건은 제한되고 쟁점 법안 처리 시 재적의원 5분의 3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다수당이던 19대 때 야당이 국회선진화법을 활용해 발목을 잡는다고 비난했지만, 이제 더민주와 국민의당 등 야당이 협조해 법안을 밀어붙일 경우 국회선진화법을 무기로 활용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을 활용해 야당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주는 대가로 자신들의 법안을 끼워 넣는 거래를 시도할 수도 있다. 이런 조짐은 19대 국회 막판부터 등장했다. 19대 국회에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기간을 보장하는 특별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등장하자 새누리당에서 특별법 개정안을 다른 법안(노동법, 경제활성화법)과 엮어서 처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더욱이 야당 입장에서는 새누리당과 발을 맞출 박근혜 대통령의 존재도 부담이다.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박 대통령이 20대 국회에서 야당이 주도해 통과시킨 법안에 거듭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야당의 의견은 언제나 엇갈린다

17 대 국회 때 4대 개혁 입법이 관철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이른바 ‘난닝구’와 ‘빽바지’라 불리는 실용파와 개혁파의 갈등이었다. 열린우리당은 당내 갈등으로 당 의장이 정동영-신기남-이부영-임채정-문희상-정세균 등 평균 6개월 마다 한 번씩 갈렸다. 실용파와 개혁파는 사안을 두고 대립을 이어갔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두고 벌어진 열린우리당 내부의 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개혁파는 국보법 폐지를 주장했고 실용파는 대체입법이나 일부 개정을 주장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도 일부 개정에 합의했으나 열린우리당은 결국 ‘폐지’ 입장을 고수했고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는 유야무야됐다.

17대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유인태 더민주 의원은 27일 한겨레와 인터뷰에 서 “국가보안법의 경우, 우리 진영은 ‘폐지하자’고 하는데 국민 중 상당수는 폐지 반대가 더 많다. 이런 경우 독소조항 빼는 수준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며 “17대 국회 때 당시 이부영 대표와 박근혜 대표가 애를 써서 타협안을 극적으로 만들었는데 우리 쪽이 걷어찼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그 추운 겨울에 밖에서 농성하던 쪽에서 ‘그렇게 타협할거면 그냥 둬라’는 주문이 왔다. 그래서 지금 국가보안법은 그대로 엄존한다”며 “그걸로 인해 그 뒤로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었나”라고 반문했다.

계륵 같은 제3당

17대 국회 운영에는 제3당 민주노동당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열린우리당 입장에서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 입장에서 새누리당과 함께 싸울 파트너였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대립하며 전선이 더욱 복잡해지곤 했다.

열 린우리당은 2004년 10월12일, 13일 국가보안법 폐지 후 대안입법을 공개했다. 그러자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 입장은 사실상 국보법의 존속을 주장하는 것에 다름없다”며 "민주노동당은 내용 없는 공조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언론개혁입법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을 통해 열린우리당의 언론개혁법안에 ‘신문사 소유지분 제한’과 관련된 내용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은 강력 반발했다. 민주노동당은 ‘신문사 소유지분 제한’은 언론개혁 입법의 본질적 요소라는 입장을 취했다.

관련 기사 : 우리당 개혁입법 '사면초가' 자초하나

열 린우리당의 4대 개혁입법은 이처럼 보수진영의 반발과 진보진영의 반발을 동시에 샀다.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과의 ‘야당 공조’를 이야기하며 열린우리당을 압박했다. 민주노동당 입장에서는 제3당으로서 취할 수 있는 전략적인 입장이었다.

20대 국회에도 국민의당이라는 제3당이 있다. 자체적으로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38석의 대형 3당이다. 더민주는 새누리당을 견제하면서도 캐스팅 보트를 쥐기 위해 요리조리 움직일 국민의당과의 협조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20대 국회의 첫 숙제, 박근혜 대통령이 던진 거부권

17 대 국회를 거치면서 열린우리당은 선거에서 참패했다. 개혁을 내세웠지만 민생 이슈보다는 국보법, 과거사진상규명법 같은 이념 이슈가 전면에 등장하고, 사학법 등이 정쟁거리가 되면서 대다수 국민의 개혁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7대 국회의 야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은 20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큰 숙제를 던졌다. 상시 청문회를 가능하게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이다. 정부여당과 야당 간의 정쟁으로 20대 국회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 상호 원내대표는 27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정쟁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입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앞장서서 의회 민주주의 거부하는 문제에 대해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또 이 문제에 너무 매몰돼서 국민 생활상 문제, 주거불안, 청년일자리 등 산적한 민생 문제를 뒤로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은 유효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던진 ‘정쟁의 덫’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