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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헌법정신 들어 국회법 거부하다

박근혜 정부 헌법정신 들어 국회법 거부하다

대통령 순방간 사이 황교안 총리가 거부권, 19대 국회 자동폐기 노렸나…“몽니를 부리더라도 제대로 설명해야”


박근혜 정부가 또 다시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대 국회 개회를 앞두고 정부와 국회의 갈등과 대립도 각오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정 부는 27일 서울청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 즉 거부권을 의결했다. 국회는 지난 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상임위원회 재적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중요 현안에 대해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야당은 물론 비박계와 새누리당 출신 무소속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져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청와대와 친박 계를 중심으로 상시적인 청문회가 열리면 행정부가 마비되고 공무원들이 일을 못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황 교안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현안 조사를 위한 청문회 제도는 입법부가 행정부 등에 대한 새로운 통제수단을 신설하는 것으로, '권력 분립 및 견제와 균형'이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전자서명 방식으로 이를 재가하면 거부권 행사 절차를 마무리된다.

박근혜 정부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지난해 6월에 이어 두 번째다. 유승민 원내대표 시절 새누리당은 야당과 합의해 시행령이 모법에 위배되는 경우 이를 바로잡도록 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나 박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까지 거론하며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법 개정안은 결국 폐기됐다.

야당은 거부권 행사 강력 반발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27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이는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권 행사”라며 “국회법은 국회운영에 관한 법률로, 이 법은 국회에서 오래 논의해서 일하는 국회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담은 법이다. 평소에 국회가 일 좀 하라고 닦달하시더니 이제 국회가 열심히 일하겠다고 법을 만드니 열심히 일하면 행정부가 귀찮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우 원내대표는 “삼권분립에 위배되고 의회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중대한 권한 침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인 상황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한 것이 꼼수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지난 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박 대통령의 거부권에 대해 19대 국회에서는 재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19대 국회 마지막 날인 5월27일(5월30일 20대 국회 개원) 거부권을 행사해 자동폐기 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다음 주 정기임시회의를 열어 의결하면 20대 국회로 그 재의결권한이 넘어간다고 판단해서 오늘로 (회의를) 당긴 거 아닌가. 나라를 정직하게 운영해야지 정략적 계산에 따라 운영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우 원내대표는 또한 “적어도 국회법을 거부하겠다면 거부의 당사자인 대통령이 직접 왜 이 법안 거부해야하는지에 대해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하는 게 도리다. 본인이 아프리카 순방을 떠나고 국무총리 통해 대리 사회를 보게 하고 대신 설명하게 만드는, 이런 모습을 국민들이 소통하는 대통령이라 생각하겠나”라며 “총선 민의를 거부하는 불통의 대통령 모습이다. 몽니 부리더라도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법 개정안이 폐기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회기 내에 거부권이 행사됐기에 사실상 19대 내에서 재의결을 해야 하고, 그렇지 못한 상황이기에 법안이 자동 폐기됐다는 것이 하나의 해석이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했기에 자동으로 20대 국회에서 재의결 절차를 거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국회사무처는 27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국회사무처는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어떠한 결정도 내린 바 없다. 현재 법률적 검토를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우 상호 원내대표는 “19대 국회에서 재의결할 수 없는 물리적 한계가 있었고, 처리를 하지 못한 귀책 사유가 19대 국회에 있는 게 아니기에 야3당 원내대표는 20대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재의결을 추진하기로 (야3당은)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3당 원내대표는 거부권 행사가 이루어진 27일 오전 전화로 의견을 나누고 20대 국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루기로 합의했다.

재의결이 불가능한 경우 야3당이 다시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해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가능성도 남아있다. 이런 상황이 오면 변수는 새누리당이다. 민경욱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27일 브리핑에서 “(거부권 행사는) 당연하고 고유한 권한 행사다. 국회는 헌법에 따라 행사된 재의요구에 따른 절차를 밟으면 될 것”이라며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과 행정부 업무마비 등 부작용 논란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한다. 새누리당도 정부의 재의요구에 적절한 대응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근혜 대통령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새누리당의 표가 갈리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안을 국회가 재의결해서 통과시키려면 재적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3당의 의석 수는 총 167석으로 300명 전원이 출석했을 경우 3분의2를 채우려면 새누리당 반란표가 33표 이상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