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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해법, 정윤회 때처럼 안 먹히는 이유

우병우 해법, 정윤회 때처럼 안 먹히는 이유

“부패 기득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다” 외치지만… 조선일보를 적으로, 새누리당에도 아군 없어


청와대가 특별감찰관 누설 의혹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하며 우병우 민정수석 지키기에 나섰다. 정윤회 문건 사태 때도 사용했던 ‘물타기’전략이지만, 새누리당과 보수진영 일각에서도 우병우 수석이 사퇴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이 물타기가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19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어떤 경로로, 누구와 접촉했으며 그 배후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해 검찰에 수사의뢰를 한 다음날이었다.

김 수석은 “언론의 보도내용처럼 특별감찰관이 감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감찰 내용을 특정언론에 유출하고 특정언론과 서로 의견을 교환한 것은 특별감찰관의 본분을 저버린 중대 위법행위”라며 “묵과할 수 없는 사안으로 국기를 흔드는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어떤 감찰 내용이 특정언론에 왜 어떻게 유출됐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직접 MBC 보도로 알려진 이석수 감찰관의 ‘감찰 누설 의혹’에 대해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우병우 죽이기의 본질은 임기 후반기 식물 정부를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우 수석에 대한 공세를 정부에 대한 공세로 인식하고, 이를 ‘감찰 누설’ 의혹으로 물타기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수사의뢰를 받은 검찰에게는 ‘우병우 비리 말고 이석수의 감찰 누설을 수사하라’며 가이드라인을 내려줬다고 해석할 수 있다.

‘누설이 문제’라는 청와대의 태도는 ‘정윤회 문건’ 사건에 대응하는 태도와 유사하다. 2014년 11월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던 정윤회씨와 이른바 ‘문고리3인방’이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문건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은 사건의 초점을 국정농단이 아닌 문건 유출에 맞췄다.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비난했다.

검찰은 문건유출의 당사자로 지목된 조응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행정관 등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이번에도 엉뚱하게 검찰이 우병우 수석 관련 의혹이 아니라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수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이유로 야당은 우 수석이 일단 현직에서 물러나야한다고 주장한다.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이 공정하게 수사를 받을 것이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윤회 사건의 당사자였던 조응천 더민주 의원은 22일 CBS ‘김현정의뉴스쇼’ 인터뷰에서 “과거 문건유출 사건, 대통령이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하자 사건의 본질이 과연 국정개입이 있었느냐 여부에서 문건유출로 바뀌었다. 이 건도 본질은 우병우 수석의 비리 여부인데. 국기문란 규정 이후에 특별감찰관의 감찰내용 누설 여부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또한 “두 사건(정윤회 문건, 우병우 비리) 다 출발은 대통령 측근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그 측근이 아니라 측근을 문제삼은 사람들을 겨냥을 했다”며 “그리고 국기문란으로 규정을 했다.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정윤회 문건 사태와 같은 방식의 물타기가 이번에도 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윤회 문건 사태를 포함해 NLL 대화록 공개 논란, 국정원 대선개입 등 정권을 위협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물타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집권여당과 보수언론이 이 ‘물타기’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권력’을 생각해야 하는 새누리당은 똘똘 뭉쳐 우 수석을 방어하지 못하는 처지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사정기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수석이 (검찰 수사를 받을 상황에서) 그 자리에 있어서 되겠느냐.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는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고 말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 수석은 대통령과 정부에 주는 부담감을 고려하여 자연인 상태에서 자시의 결백을 다투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17일 원외당협위원장 회의에서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우 수석의 거취를 시원하게 결정해 달라”고 압박했다. 

새누리당에서도 공개적으로 우 수석을 방어하는 이들은 이장우‧조원진 최고위원 등 ‘강성친박’으로 분류되는 몇몇 의원 뿐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며칠 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말을 아끼고 있다. 22일 3시간에 걸친 새누리당 아침회의에서 우병우 수석의 이름은 나오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국정원 대선개입을 수사할 때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를 보도했던 조선일보는 연일 우병우 수석에 대한 공세를 가하고 있다. 애초에 우 수석 관련 비리 의혹은 조선일보의 단독보도로 시작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우 수석에 대한 첫 의혹 보도가 나온 뒤로 일부 언론 등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우 수석 의혹에 대해 입증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정윤회 문건 사태에서 물타기가 가능했던 또 다른 이유는 정씨가 현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오래 전에 내 곁을 떠난 사람”이라고 반박하고 침묵하면 논란이 커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병우 수석은 현직이기에 그가 현직을 유지하는 한 거취 논란은 계속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우병우 수석 이야기가 끊임없이 등장한 것이 대표 사례다. 19일 열린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가 음주운전을 하고도 신분을 숨겨 징계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야당 의원들은 우 수석의 인사검증이 또 다시 실패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기동민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20일 브리핑에서 “우병우가 버티니까 이철성도 버티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우병우 수석과 특별감찰관 이석수 두 분을 다 운영위원회에 출석시켜서 이 문제에 대한 현안을 점검해보자”고 밝혔다. 우 원내대표는 22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만약 사퇴하지 않는다면, 국회 차원의 운영위원회 소집을 정식 요구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여당이) 협상에 응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이 이를 수용하든, 버티든 우 수석에 관련된 의혹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점점 우 수석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보수언론과 새누리당도 정권과 발을 맞추지 않는 상황은 ‘레임덕’의 징표라 볼 수 있고, 레임덕이 다가올수록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우병우 수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우병우 수석과 운명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