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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사회주의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자는 반대한다

조지 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중 기억나는 구절들을 정리해올렸는데, 몇 가지 구절을 더 가져왔다. 예언에 가까운 이런 글을 읽으면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하나는 "100년 전도 문제였는데 아직도 문제구나”, 그리고 “100년 전 님들도 다 겪은 일이구나”라는 안도감.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애기를 꺼내보면 ‘사회주의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자는 반대한다’는 말이 안 되는 듯한 대답을 하곤 한다. 이 말은 논리적으로는 부실한 주장 같지만 상당한 무게를 지닌 말이다. 기독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의 홍보에 가장 해를 끼치는 것은 바로 그 신봉자들인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괴짜들이 불길할 정도로 많다. 사람들은 흔히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는 말 자체가 영국의 온갖 과일주스 애호가나 나체주의자, 샌들 이용자, 섹스광, 퀘이커교도, ‘자연 치유’ 사기꾼, 평화주의자, 여성주의자를 다 끌어들이는 자력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아마 그는 사회주의자란 어딘가 별난 데가 있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것 같다. 일례로 나는 지금 한 주가 한 학기인 어느 여름학교의 입학 요강을 듣고 있는데 이 요강은 나에게 ‘채식주의자인지 아닌지’를 묻고 있다. 그들은 그런 질문 자체가 멀쩡한 사람들을 상당수 멀어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들의 본능이 확실히 옳은 것은, 음식에 대해 별난 사람은 송장 같은 삶을 5년 더 연장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스스로를 인간사회로 단절시키려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보통의 인간과는 접촉하지 않겠다는 사람인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구사하는 기술적인 전문어에 대해 말하자면,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언어만큼이나 일상어와 동떨어진 것이다. 직업적인 연사인 한 공산주의자가 노동 계급인 청중 앞에서 한 연설을 기억한다. 그의 언어는 흔히 볼 수 있는 딱딱한 문어로, 긴 문장과 삽입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나 ‘설령 그럴지언정’ 같은 말이 가득할뿐더러, ‘이데올로기’니 ‘프롤레타리아의 연대’니 하는 예의 전문어투성이였다. 연설이 끝나자 한 노동자가 일어서더니 청중을 향해 그들만이 아는 걸쭉한 말로 설명을 했다. 둘 중에 누가 더 청중에 가까이 다가갔는지 꽤 분명하긴 한데, 그렇다고 그 노동자가 정통 공산주의자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평범한 노동자에게, 이를테면 토요일 밤 아무 선술집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유형에게, 사회주의는 더 많은 임금과 더 짧은 노동시간과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사람이 없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 혁명적인 유형에겐, 즉 기아 및 실업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석하고 고용주의 요주의 인물 명단에 오른 유형에겐, 사회주의란 압제에 저항하는 일종의 구호일 뿐이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본질을 희생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외관은 크게 희생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사회주의 운동에 아직도 붙어다니는 괴팍스러움의 기미를 떨쳐버릴 수 있다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샌들과 베이지색 셔츠를 쌓아놓고 태워버릴 수만 있다면, 채식주의자와 금주주의자와 위선자를 '웰윈 가든'(영국 전원도시)으로 돌려보내 조용히 요가나 하며 지내게 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단 가능한 것은 훨씬 더 지적인 사회주의자들이 지지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어리석고 다분히 엉뚱한 방식으로 멀어지게 하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융통성 없이 구는 일이 너무 많은데, 그런 것들은 너무나 쉽게 근절할 수 있다.”

“우리가 함께 목표로 삼고 단결할 수 있는 이상은 사회주의의 바탕이 되는 이상 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정의와 자유다. 허나 이런 이상은 거의 완전히 잊혀버려 ‘바탕’이란 말을 쓸 수도 없는 지경이다. 이 이상은 이론 일변도의 독선과 파벌 다툼과 설익은 진보주의에 층층이 묻혀버렸다. 똥더미 속에 감춰져버린 다이아몬드가 되버린 셈이다. 사회주의자가 할 일은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다. 정의와 자유 말이다! 이 두 마디야말로 온 세계에 울려퍼져야 하는 나팔소리이다. "

"우리는 사회주의라는 말 자체가 한편으로는 비행기와 트렉터와 거대하고 번쩍번쩍하는 공장을 떠올리게 하며 다른 한편으로 수염 늘어뜨린 채식주의자들과 볼셰비키 인민위원들(반은 폭력단원이고 반은 축음기인), 샌들 신은 열정적인 부인네들, 긴 단어를 즐겨 쓰는 더벅머리 마르크스주의자들, 이탈한 퀘이커교도들, 산아 제한 광신도들, 노동당 모사꾼들을 떠올리게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사회주의는 적어도 이 섬나라에서는(영국) 더 이상 혁명의 냄새를, 압제자 타도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그보다는 괴팍스러움과 기계 숭배, 미련한 러시아 숭배의 냄새를 풍긴다. 그런 냄새를 치우지 못한다면 파시즘이 승리할 지도 모른다.”

“지금 밖으로 보여지는 사회주의가 대체로 매력이 없는 것은, 밖에서 보기엔 괴짜들이나 공론가들이나 말뿐인 볼셰비키 같은 이들의 노리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 것은 괴짜나 공론가 같은 사람들이 먼저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더 생각할 줄 알고 상식 있는 사람들이 운동에 뛰어들면 반감을 살 만한 이들이 설쳐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이를 악물고 그런 이들을 무시할 필요가 있다. 보다 인간적인 사람들이 운동에 많이 동참하면 그런 이들이 눈에 덜 띌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운동과 별 상관이 없는 이들이다. 개별 사회주의자들 가운데 열등한 인간들이 너무 많다고 해서 사회주의에서 발걸음을 돌린다는 것은 차장이 꼴보기 싫다고 해서 기차를 안 타겠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