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6.10.23 15:20

“할머니는 왜 천천히 읽어?” 못 배운 게 한이 된 87명의 시인들

[서평] 보고시픈 당신에게 / 강광자 외 86명 지음 / 한빛비즈 펴냄

대학진학율이 80%에 달하는 시대, 갓난 아이에게 한글은 물론 영어까지 가르치는 나라다. 이 런 시대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이들에게 ‘글자를 모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글을 몰라서 발생하는 불편함은 겪어보지 못한 ‘보릿고개’ 같은 존재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2014년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0명 중 6명은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를 하지 못한다. 이런 비문해자들은 264만 명에 달하고 60~70대 여성 성인 10명 중 5~6명이 문해교육을 필요로 한다. 글을 배우지 못한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여러 사정으로 공부의 때를 놓쳤고, 나이 들어서는 자식 뒷바라지하다보니 60~70세를 훌쩍 넘겼다.

신간 ‘보고시픈 당신에게’는 각양각색의 이유로 한글을 모르고 살다가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어르신들이 쓴 시와 산문 89편을 엮은 책이다. 저자는 늦깎이 한글학교 학생 87명이다. 고령이라 책이 출간되는 동안 세상을 떠난 저자도 있다.

인문학자 김경집은 “글자를 읽어내지 못한다는 건 삶의 커다란 귀퉁이를 하나 허물고 사는 것과 같다”고 했다. 비문해자들은 한글을 읽고 쓰는 게 익숙한 일반인들이 상상하지도 경험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 간단한 메모나 은행 업무는 물론 아이들 공부 한 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안타까움과 설움, 글을 몰라 깜깜했던 평생의 이야기가 시와 산문에 담겼다.

▲ 보고시픈 당신에게 / 강광자 외 86명 지음 / 한빛비즈 펴냄

“나는 회사에서 한글을 몰랐을 때 누가 전화가 와서 사장님이 박옥남씨 이거 메모 좀 해줘 하면 가슴이 두근두근 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아이 낳고 출생신고를 하러 간 날 나는 죄도 짓지 않았는데 손도 떨리고 얼굴은 빨개지고 말도 못했다”

“아이들 어릴 적 성적표를 받아와도 볼 줄도 어디에 도장을 찍을 줄도 몰라 남편 도장을 성적표와 함께 들려 보냈다. 만약 그 때가 지금이었다면 잘했다 머리 쓰다듬어주고 도장도 진하게 찍어 보냈을텐데. 이젠 나도 내 이름이 박힌 도장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이 은행에 가서 십억 보증서를 써달라 해서 은행에 갔는데, 이름을 못 써서 은행 직원이 내 손을 잡고 글을 썼다. 그 때는 너무 당황해서 땀을 팥죽 같이 흘렸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야 눈에 뭐가 들어가서 글씨가 안 보여. 노래 좀 찾아달라고 했다. 지금은 공부를 하고 나니 자신이 있어 두렵지가 않다”

“할머니 책 읽어줘. 세 살 먹은 손녀딸이 나에게 책을 읽어달랜다. 가슴이 벌컥 내려앉는다. 더듬더듬, 글자는 왜 이리 구불구불. 할머니는 왜 천천히 읽어? 할머니는 할 말이 없다”

글은 자신의 삶과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다. 늦깍이 학생들이 먼저 떠난 배우자와 자식, 며느리에게 전하지 못한 메모는 뒤늦게 시와 산문이 됐다.

“여보, 미안해요. 내가 빨리 글을 알았더라면 당신 이해하고 좋은 안내,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었을 것을”

“우리 아저씨가 조금만 더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만 가셨다. 살았으면 내가 편지라도 했잖아”

“달력도 못 보는 시어머니, 한글도 모르는 며느리. 미워서 원망했던 시어머니도 답답하고 깜깜한 세월 참 힘들었겠구나 싶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 적어 편지 한 장 보내고 싶다.”

비문해자들에게 문해 교육은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쓴다는 것의 의미를 넘어선다. 시를 쓰고 산문을 쓸 수 있게 된 비문해자들은 모임을 만들고 사회에 참여한다. 문해교육은 세상을 연결해주는 창이자, ‘나를 위해’ 살 수 있게 만드는 첫 번째 작업이다.

“6연 전부터 몸이 아파요. 백병원에서 파키스병이라 함이다. 땀이 비오더시 헐러내림니다. 옷 두 벌 새 벌식 배림니다. 온 몸이 떨림니다. 그래서 글이 삐뚤삐둘함니다. 부끄럽지 안아요. 잘몬한 기 업서요.”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오래 머물지 못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헤어져 우물쭈물하지 말고. 그랬다. 내 무식이 알려질까봐 속으로 벌벌 떨었다. 요즘은 세상이 환하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겁이 안 난다.”

“어렸을 때 나는 학교를 다니지 못해 그 흔한 동창생이 없다.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듯 허전하다. 오십이 훌쩍 넘어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남들에게는 흔한 동창생, 나에게는 특별한 동창생 내일은 옆집 언니한테 가서 말해야지. 언니 나도 동창 모임에 가요!”

모두가 ‘디지털 3.0’을 이야기하며 모든 업무를 인터넷으로 처리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참 편해 보이는 디지털 시대, 이 수많은 비문해자들은 어디 가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업무를 처리해야할까? 국가 지원이 필요한 문해교육 기관 중 실제 지원을 받는 곳은 1/3에도 미치지 못하고, 예산이 부족해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운영되는 곳이 다반사다. 문해교육이란 평생 남을 위해 사느라 글을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국가가 제공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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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6.09.27 16:47

밀정, ‘너에게 독립운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리뷰] 암살과는 달랐던 밀정의 결말…흔들림과 망설임 속에 도달한 독립운동이라는 목적지


(영화 ‘밀정’과 ‘암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흥행하지 못한다” 이 법칙은 한동안 한국영화의 징크스였다. 이 징크스는 지난해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암살’(최동훈 감독)로 인해 깨졌다. 이후 ‘귀향’, ‘동주’, ‘덕혜옹주’ 등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영화가 이어졌다. 내편인지 네 편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파이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밀정’도 일제강점기의 경성이 배경이다.  

‘암살’의 메시지는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는 주인공 안옥윤(전지현 역)의 말에 압축돼 있다. 따라서 ‘암살’은 안옥윤이 해방 이후 친일파이자 독립군의 밀정이었던 염석진(이정재 역)을 처단하는 것으로 끝난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친일파 처단을 영화를 통해 이루는 일종의 판타지다.

▲ 영화 ‘암살’ 스틸컷

‘암살’에서 독립운동이라는 대의는 각기 서로 다른 배경과 개성을 지닌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황덕삼(최덕문 역)은 임무를 수행하다 사망하고, 목숨을 잃을 뻔한 속사포(조진웅 역)는 다시 총을 들고 현장에 나타나 친일파를 향해 총을 쏜다. 대장 안윤옥은 끝내 친일파 강인국을 암살하고, 밀정 염석진마저 처단하는데 성공한다. 영화 암살 속의 독립군은 하나같이 포기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한다.

반면 ‘밀정’의 메시지는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 역)이 주인공 이정출(송강호 역)에게 건넨 말에 담겨 있다.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실패가 쌓이고 우리는 그 실패를 디딛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정출은 젊었을 적 독립운동에 몸을 담았지만 이후 일본경찰로 길을 바꾼다. 경부 자리까지 올라가며 출세가도를 걷는다. 민족반역자, 친일파라 불릴 만하다.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넌 독립이 될 것 같나?’라고 묻는 회의주의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정출은 일본 경찰의 명령으로 의열단의 밀정이 되기까지, 그리고 의열단원들을 돕는 모든 과정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관련기사 : 친일파? 독립운동가? 송강호는 어느 쪽 밀정이었을까

이정출은 의열단원들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채 기차에 탑승한 의열단원들에게 위험을 알린다. 하지만 늘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러면서도 의열단과 자신을 위협하던 일본경찰 하시모토를 쏴버린다. 잡혀온 의열단원 연계순(한지민 역)을 고문하라는 명령에 망설이지만 결국 고문을 집행한다. 의열단원 김장옥(박휘순 역)을 생포하려는 첫 장면부터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정출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 영화 ‘밀정’의 주인공 이정출(송강호 역).

그가 흔들리는 이유는 ‘밀정’ 속 등장인물들에게 독립운동이란 주어진 대의가 아니라 ‘질문’이기 때문이다. ‘밀정’의 등장인물들은 내내 ‘너에게 독립운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시달린다. 누군가에게 독립운동은 대의지만, 누군가에게는 대의가 아니다. 영화 속 의열단이 누가 밀정인지 누가 밀정이 아닌지 가려내기 위해 수많은 감정과 시간을 소모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밀정’ 속 의열단원들은 한없이 나약하다. 독립운동이란 대의로 똘똘 뭉친 것 같았던 김우진(공유 역)도 잡혀가는 연계순의 모습 앞에서 이성을 잃는다. 영화의 홍일점이라 할 수 있는 연계순은 ‘암살’의 주인공 안윤옥과 같은 강인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본 경찰에 잡혀 고문당하고, 괴로워하다 사망한다.

이정출의 선택도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가 왜 의열단원이라는 고생길을 택한 것일까. 하지만 영화 속 그의 선택은 어느 순간 내려진 결단이 아니라 수많은 흔들림과 망설임 속에서 어느 새 도달해버린 목적지에 가깝다. 친구 김장옥의 죽음을 보며 느낀 복잡한 감정들 사이에서, 정채산을 잡겠다는 일념과 정채산이 보여준 신뢰 사이에서, 자신의 출세를 가로막는 하시모토의 등장과 자신에게 손을 내민 의열단 사이에서, 흔들리던 그는 어느새 폭탄을 들고 김우진이 다하지 못한 독립운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밀정’은 이정출이 어느 사건을 계기로 친일파에서 독립군이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정출의 흔들리는 눈빛과 대사를 통해 그 선택의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이정출은 정채산이 말한 ‘앞으로 나아가는 실패’를 상징한다. 독립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큰 대의를 품지도 못했지만 어느새 독립운동으로 나아간 이정출. 이 영화는 대한민국의 독립은 어쩌면 수없이 흔들렸던 독립운동가들의 수없이 많은 실패를 딛고 탄생했을지 모른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 영화 ‘밀정’ 스틸컷.
‘밀정’은 암살이 보여준 통쾌한 복수극 대신 의열단원이 된 한 밀정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낸다. 그 시점에서 이정출도 정채산도 그 누구도 자신들의 행동이 그냥 실패로 끝날지 ‘앞으로 나아가는 실패’였을지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의 실패가 있었기에 더 나아갈 수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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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6.09.03 17:13

http://slownews.kr/57507

“나는 ㅇㅇㅇ하려고 이런 짓까지 해본 적 있다”

몇 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이 출연해 자신의 독특한 경험을 공유하는 ‘있다/없다’라는 게임을 선보였다. 예컨대 A라는 연예인이 “나는 화가 난 애인의 화를 달래기 위해 이런 짓까지 해본 적 있다”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는데 나머지 사람들 중에 비슷한 경험이 있으면 A가 벌칙을 받는 게임이다.

대한민국 언론도 ‘있다/없다’ 게임 중이다. ㅇㅇㅇ의 빈칸에는 ‘먹고 살려고’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 포털에 쏟아지는 수많은 어뷰징 기사와 기사로 둔갑한 광고와 협찬, 그리고 수많은 혁신의 시도들. 언론은 살아남기 위해 별짓을 다 하고 있다.

뉴스가 말하지 않는 것들 미디어오늘 기자들이 펴낸 신간 [뉴스가 말하지 않는 것들] (이 정환 , 정철운 , 금준경 , 차현아 , 강성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에는 위기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언론과 기자들의 몸부림이 담겨 있다. 언론은 독자들에게 저널리즘과 알 권리를 이야기하며 고상한 척하지만, 사실은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수십, 수백 명 딸린(많게는 수천 명) 기업이다. 이런 몸부림은 뉴스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뉴스에 이런 몸부림은 잘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이 ‘뉴스가 말하지 않는 것들’인 이유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위기를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시기”라고 정의한다. 언론이 처한 위기야말로 이 정의에 딱 들어맞는다. 모두가 지금의 수익구조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은 알지만,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쉽사리 혁신을 시도하지 못한다.

종이신문과 TV 뉴스의 권력은 예전 같지 않다. 조간신문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유물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TV 앞에 앉아 9시 뉴스를 보지 않는다. 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 열독률은 1996년 85.2%에서 2014년 20.2%로 뚝 떨어졌다. 20대는 온종일 종이신문으로 4.2분 동안 뉴스를 보지만 인터넷으로는 227분 동안 뉴스를 본다. 신문 편집이나 1면 기사는 더는 과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신문 열독률 추이

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2015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하지만 ‘새로운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뉴미디어는 말 그대로 ‘NEW’(새로운) 미디어일 뿐이다. 카드뉴스가 유행하면 카드뉴스를 만들어보고, SNS로 기사를 많이 본다니까 SNS 맞춤형으로 기사를 만들기 바쁘다. 포털에 대한 종속은 새로운 엘도라도, 페이스북에 대한 종속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이걸로 돈 버는 언론은 드물다. 기사에 대한 소비가 구독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뉴미디어에 신경 쓴다”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 정도가 성과다. MCN이 뜬다지만 제대로 수익 내는 사업자는 아직 없다.

혁신과 안전 사이 

언론은 위험한 혁신 대신 안전한 방법을 택한다. ‘낡은 것’으로 돈을 벌 수 없다면 포장만 바꿔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아무도 보지 않는 광고 대신 기사를 가장한 광고를 만들어낸다. 광고가 모자라면 컨퍼런스나 포럼을 열어 기업 돈을 끌어당긴다. ‘뉴스가 말하지 않는 것들’은 뉴스가 말하지 않는, 뉴스가 말할 리 없는 언론기업의 장사방법을 속속들이 소개한다.

돈벌이 수단은 뉴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향신문은 칼국수를 팔고, 조선일보는 마라톤 대회를 연다. 헤럴드미디어는 내추럴푸드 기업을 설립하고 한겨레는 카페를 열었다. 중앙일보는 자회사를 통해 인력파견, 용역업무 등 비정규직 관리업을, 또 다른 자회사를 통해 여행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업 다각화가 늘 수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쟁력이 뛰어난 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 사업의 다각화는 뉴스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에 투자한 언론이 부동산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도할 수 있을까?

경향신문의 칼국수집 '졍동국시' (출처: 네이버 지도 거리뷰 캡처)

경향신문의 칼국수집 ‘졍동국시’ (출처: 네이버 지도 거리뷰 캡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결국 언론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역설적인 상황. 그래서 언론이 위기일수록 언론에는 ‘선(善)’이 필요하다. ‘있다/ 없다’ 게임과 유사하다. ‘화가 난 애인을 달래기 위해’ 시도한 독특한 경험을 제시해야 하지만, 애인의 화를 달래기 위해 “자살시도를 했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게임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에게서 없는 독특함’을 개척하면서도 ‘다 같이 웃으며 공유할 수 있는 선’을 지켜야 게임이 유지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혁신을 시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서도 동시에 ‘언론의 선’을 지켜야 하는, 아슬아슬한 고공 곡예를 펼쳐야 한다. 이 책은 이 선을 ‘저널리즘의 복원’이라 부른다. 어떻게 하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 부합하는 좋은 뉴스를 계속 생산하고, 뉴스 소비자들에게 이를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스브스뉴스가 인기라지만 스브스뉴스가 SBS를 구원할 수는 없다. VR이 아무리 대세라도 VR이 뉴스를 구원할 수는 없다.

스브스뉴스

‘믿고 보는’ 브랜드 가치 

이 책이 소개하는 몇 가지 성공 사례에도 ‘언론의 선’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경향신문과 노컷뉴스, YTN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경향신문 페이스북 계정 ‘향이네’는 언론사 사이트 중 빠르게 ‘좋아요’ 수를 채워나갔다. 노컷뉴스는 1년 만에 페이스북 좋아요 수를 45배 가까이 늘렸다. YTN은 페이스북 구독자수를 1년 6개월 만에 100배 가까이 늘렸다.

이들에게는 ‘좋아요’와 ‘구독자’라는 외연에 가려진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이 있다. 경향신문 향이네는 암컷을 ‘소유’하지 못한 수컷 물개는 황제펭귄을 강간한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올렸다. 조회 수는 대박이 났지만 향이네는 앞으로 이런 기사는 올리지 않기로 했다. ‘선’을 지키기 위해서다.

노컷뉴스에게는 동영상이라는 콘텐츠가 있었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영상은 다른 언론사보다 빨리 업로드됐고, 도달 수만 800만에 달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추운 날씨에 외투도 없이 떨고 있는 영상은 700만에 가까운 도달률을 기록했다. 노컷뉴스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 했던 뉴스를 전달하며 ‘대박’을 쳤다.

YTN에게는 ‘제보 영상’이 있었다. 급박한 지하철 심폐소생부터 아찔했던 교통사고 순간까지, 시민이 제보한 날 것 그대로의 영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를 담았다.

결국, ‘좋은 이야기는 널리 퍼진다’는 믿음으로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믿고 보는’이라는 수식어가 달린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언론 혁신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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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6.08.23 10:19

남자는 울면 안 돼? 남성을 억압하는 강요된 남성다움

[서평] 맨박스 / 토니 포터 지음 /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펴냄


“코르셋을 벗자”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 유저 등이 사용하며 유행한 말이다. 코르셋은 체형을 보정하거나 교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속옷을 뜻하지만, ‘코르셋을 벗자’는 말에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억압에서 벗어나자는 의미가 더해진다.

여성에게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코르셋’의 억압이 있다면 남성에게는 ‘맨박스’(MAN BOX)가 있다. 신간 ‘맨박스’에는 남성들이 맨박스에서 벗어나야 인류가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저자인 미국의 사회운동가 토니 포터는 이 책의 단초가 된 TED 강연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남자다움을 의심하라고 말한다.

토니 포터의 동생 헨리는 열 살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토니 포터의 아버지는 아들을 묻고 오는 길, 딸과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아버지는 토니 포터에게 눈물을 보여서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울음을 참은 토니 포터를 칭찬한다. “남자는 울면 안돼!” 4~5살 밖에 안 된 남자 어린아이에게도 익숙한 ‘남성다움’의 규정이다. 우리에게도 이 말은 익숙하다. “남자 새끼가 뭘 그런 걸 가지고 질질 짜냐?”

“남자는 울지 않는다” 말고도 남성을 억압하는 남성다움은 꽤나 많다. “남성은 분노 이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남자는 쫄지 않는다” “남자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남자는 약한 것들을 보호한다”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 “남자는 여자처럼 굴지 않는다” “남자는 게이처럼 굴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를 소유한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등등. 강요된 남성다움의 십계명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 맨박스 / 토니 포터 지음 /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펴냄
한 남자아이가 여섯 명의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왔다. 그 친구들은 모두 여자였다. 아이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 아들 능력 있네” 아니면 “혹시 우리 아이가 게이일까?” 아버지가 묻는다. “그 여섯 명 중 누가 좋아?” 여섯 명 중 한 두 명의 이름을 언급하면 아버지는 안심한다. 

하지만 아들은 말한다. “아녜요. 다 친구에요.” 당장 반문이 돌아온다. “너희는 대체 뭘 하고 노니? 무슨 애깃거리가 있는데?” 남성은 ‘게이가 아니라면’ 여성을 진짜 친구로 둘 수 없다는 ‘맨박스’다. 맨박스는 진짜 남자라면 성적인 호감이 없는 한 여자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강요된 남성다움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으로 이어지고, 여성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고착시킨다. 이런 메시지를 사회화한 남자 아이는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된다. ‘남자는 울면 안 돼’를 학습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남성들은 감정표현은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며 연약함의 증거라고 배운다. 여성은 자주 울고 감정 표현이 과다하므로 남성보다 불완전하며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토니 포터는 63세 남성 ‘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짐과 친구는 35년 전 대학시절 바에서 여성 두 명을 만났고 저녁 내내 넷이서 술을 마셨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했다. 짐의 친구와 한 여성은 바로 침실로 향했다. 하지만 짐은 여성과 섹스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대신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20분 정도 지나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에게 가자고 말했다. 일을 서둘러 마치게 된 친구는 신경질을 냈다. 친구는 35년이 지난 지금도 짐을 만나면 “우리 대학 때 기억나? 네가 섹스하고 싶지 않아서 나까지 그만두고 나오라고 했던 일 말이야”

강요된 남성다움을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다. 여성과 관계를 형성하는 주목적은 성관계이며, 그 외의 관계는 관심이 없다는 맨박스의 가르침은 “남자라면 섹스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으로 이어진다. 섹스 할 기회를 거부하는 남성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토니 포터는 이런 발상이 “강간이나 성폭력 같은 폭력 상황을 일으키는 정신적 기반이 된다”고 말한다.  

박선영 한국일보 기자는 <‘여혐 팽배 사회’ 아들을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방법>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아들을 페미니스트로 키우려는 엄마는 드물다”며 딸은 페미니스트로, 아들은 ‘남자답게’ 키우려는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대신 “여성혐오 이슈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지금이야말로 딸과 아들 모두를 성 평등 의식 갖춘 아이들로 키우려는 노력을 고민해봐야 할 적기”라고 지적한다. 이는 딸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가부장제는 소년과 남자들에게도 힘들고 괴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토니 포터에 따르면 아들을 성 평등 의식을 갖춘 아이로 키우는 첫 걸음이 ‘맨박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아들에게 울거나 이성 친구와 거리낌 없이 지낸다고 남자가 아닌 게 아니라고 가르쳐야 한다. 언제나 공격적이지 않아도 된다고, 남자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고 알려줘야 한다. 

남성들이 경직된 성 역할에서 벗어나야 여성들을 둘러싼 사회적 억압도 해체될 수 있다. 토니 포터가 “평범한 남성의 작은 변화가 모든 것을 바꾼다”고 말하는 이유다. 남성이 배워야할 것은 강요된 남성다움, ‘맨박스’가 아니라 남녀 구분 없이 모든 구성원이 힘을 모을 때 세상이 가치 있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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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6.08.23 10:18

‘터널’에는 있었지만 ‘세월호’에 없었던 한 가지

[리뷰] 구조요청에 ‘응답’하며 생명을 살려낸 영화 터널, 우리 앞에 놓인 세월호는 어떤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독일의 사상가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말했다. 한 공동체의 역사적 경험은 예술가들에게도 고민을 던지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그런 사건 중 하나다. 세월호 이후 탄생한 수많은 재난영화는 세월호를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터널’은 대놓고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영화다. 자동차를 타고 집에 가다 터널이 무너지면서 터널 밑에 깔리는 주인공 이정수(하정우 역)는 우연히 세월호에 탔다가 바다에 빠져버린 304명의 희생자들을 연상시킨다. 

많은 장면에서 터널은 세월호를 소환한다. 구조차량이 주차할 장소까지 들어와 버린 방송국 차량과 피해자 가족과 정치인을 향해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는 사진기자들, 사고 현장에 나타나 사진을 찍는 정치인들의 모습까지 이 영화는 데자뷰처럼 세월호를 보여준다.  

▲ 영화 터널 속 이정수(하정우 역). 터널 스틸컷.
‘터널’의 붕괴사고도 기본적 수칙을 지키지 않은 데서 발생했다. 영화 속 건설사 관계자는 “대한민국에서 FM대로 지어지는 건물이 어딨나”라고 말한다. 세월호에도 그대로 적용된 법칙이다. 안전수칙은 무시됐고 그 자리를 ‘관행’이 차지했다. 

구조에 반드시 필요한 제설차는 도시의 눈을 치우느라 도착하지 못하고, 열악한 구조환경 속에서 한 구조대원이 사망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현장과 사망한 민간인 잠수사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다. 구조대원이 사망하자 터널에 갇힌 피해자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 역)이 “너 때문에 죽었다”고 비난받는 모습도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세월호 참사 때 언론이 그랬던 것처럼, 이정수의 가족들에게도 ‘이제 그만하자’ ‘지겹다’는 여론의 무관심이 가해자로 작동한다. 구조작업 중단을 결정한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처럼 세현도 “국민들이 이제 그만하자고 한다”는 말에 구조작업을 중단하는 데 동의한다. 언론은 진실을 파헤치는 대신 패널들을 불러다놓고 ‘이정수가 살아있을지’ 잡담에 가까운 토론을 벌인다.

이 영화에서 가장 리얼한 인물은 김영자 국민안전처 장관(김해숙 역)이다. 노란색 작업복을 입고 나타난 김 장관은 피해자 정수의 가족과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찍고 다 죽어가던 정수가 구출되어 나올 때도 사진을 찍어야한다며 호송을 늦춘다. 구조작업으로 인해 다른 터널 공사가 늦춰지고 갈등이 발생하자 “잘 협의해라”는 막연한 지시만 내린다. 참사 발생 7시간 만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입었다는 데 발견하기 힘드냐”는 질문을 던지던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 영화 터널 속 김영자 장관(김해숙 역). 예고편 갈무리.
세월호와 터널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말이다. 세월호와 터널에는 기레기(기자+쓰레기), 사진만 찍으려는 정치인, 무책임한 장관, 가해자 취급을 받는 피해자 가족들이 등장하지만 세월호 희생자들과 달리 터널의 주인공 이정수는 35일 만에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결말의 차이는 세월호엔 없었던 인물, ‘터널’의 119구조대장 김대경(오달수 역)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김대경은 무책임한 이들이 넘쳐나던 터널에서 거의 유일하게 책임지는 사람이다. 김대경 대장은 구조가 늦어질 때마다 책임을 미루는 대신 “정말 죄송하다”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한다. “물이 떨어지면 오줌을 마셔라”고 말하고 난 뒤 미안한 마음에 자신도 오줌을 마신다. “나도 안 해본 걸 남에게 시킬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의 공감능력은 인간성을 끝까지 유지시켜주는 원동력이다.

김대경이 상징하는 것은 ‘응답’이다. 이 응답이 세월호와 터널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모두가 구조를 그만하라는 상황에서 김대경은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냥 가버리면 미안하잖아”라며 홀로 터널 안으로 들어갔고 마침내 이정수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계속 누르고 있던 자동차 크락션 소리를 잡아냈다.

▲ 영화 터널 속 구조대장 김대경(오달수 역). 터널 스틸컷.
영화 터널에서 ‘응답’을 상징하는 또 다른 요소는 고립된 이정수가 유일하게 라디오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클래식 방송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구조현장에 나타난 수많은 카메라 대신 이 클래식 방송이 정수와 그 가족들에게는 진짜 언론이었다. 클래식 방송은 구조현장에 나타나 카메라를 들이대고 자극적 장면을 쫓아다닌 기자들과 달리 매일 조용히 정수를 위로하기 위한 음악을 틀었고 정수의 아내 세현을 출연시켜 그의 목소리를 방송했다. 이 클래식 방송은 고립된 이정수에게 ‘잊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터널의 해피엔딩 이후 다시 세월호를 생각한다. 진상규명을 위해 만든 특별조사위원회는 세월호 선체인양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사를 끝마쳐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유가족 유경근씨는 18일 특조위 조사 기간 보장을 요구하며 무제한 단식에 돌입했다. 한국사회는 이들에게 응답하고 있을까? 김대경 구조대장은 경제도 어려우니 구조를 멈추고 터널 공사를 해야 한다는 한 전문가에게 이렇게 말한다. “깜빡하신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저 안에 사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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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6.05.29 19:37

박정희가 명문고를 강남으로 내려보낸 진짜 이유

[서평] ‘강남의 탄생’, 강남을 만든 네 가지 굴곡… 학생들이 두려웠던 군사정권, 투기적 욕망과 화학 반응

대한민국에서 강남은 욕망의 이름이다.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특권을 형성한다는 이유로 강남 밖의 사람들은 강남을 미워한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강남에 속하고 싶어 한다. 강남은 부정하면서도 선망하는 욕망의 이중성을 갖고 있다.

도 시연구자 한종수, 계용준, 강희용의 신간 <강남의 탄생>은 강남이 대한민국 사람들의 욕망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추적한다. 지금 우리가 ‘강남’이라 부르는 지역은 1963년 이전까지 소달구지가 지나다니는 논밭이었다. 그런 강남에 대단지 아파트, 대법원과 경찰청 등 정부기관, 대형교회가 들어섰고 ‘8학군’이 형성됐다.

강남 개발사에는 현대사의 굴곡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첫 번째 굴곡은 ‘남북분단’이다. 1960년대 인구의 급증으로 서울(지금의 강북지역)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정부는 도심 기능을 분산시키고자 한다. 그 대안이 강남이었다. 저자들은 한국이 만약 분단국가가 아니었다면 국토의 전통적인 중심축인 서울-개성-평양 축에 있는 은평, 고양, 파주 쪽이 강남보다 먼저 개발되었을 것이라 말한다.

남북분단은 지금의 강남을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나아가 1960년대 후반 푸에블로 호 납치사건,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사건 등으로 한반도가 극도의 긴장 상태에 놓이면서 박정희 정권은 서울 인구를 분산시키고 유사시 피난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강남 개발을 선택한다.

강남에 최초로 들어선 아파트는 1971년 완공된 논현동 22번지의 공무원아파트였다. 이후 강남에 대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강남구가 형성됐다. 이 시기 강남이주를 촉진한 요인은 1975년 4월 남베트남의 붕괴였다.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인들에게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은 “유사시 한강을 어떻게 건너지?”라는 고민을 던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굴곡은 민주화다. 1970년대 초 시작된 명문고의 강남 이전 정책의 배후에는 4.19혁명과 6.3학생운동에 대한 두려운 기억이 있다. 학생들의 힘을 알고 있는 권력집단에게 청와대와 중앙부처 가까이에 있는 서울대학교와 고등학교들은 매우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이는 사립대의 지방 캠퍼스 이전 정책과 맞물린다. 정권은 학생운동권의 약화를 노리고 지방으로 사립대를 흩어놓으려 했다. 운동권이 약했던 여대는 지방캠퍼스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 정부의 의도를 반증한다.

▲ 강남의 탄생 / 한종수, 계용준, 강희용 저 / 미지북스 펴냄

세 번째 굴곡은 97년 외환위기다. 강남 밖의 사람들과 강남이라는 욕망을 이어주는 기제는 사교육이다. 강남 밖의 사람들은 강남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식을 강남의 학원에 보낸다. 저자들은 대한민국 사교육의 성지 대치동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평생 직장의 개념은 무너지고 이를 목도한 세대는 믿을 것은 자기 자신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대치동 학원들은 이들에게 ‘명문대 진학’이라는 현실적 목표를 손에 쥐어줬고 2000년대 들어 공교육을 흔드는 괴물이 됐다.

강남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반영인 동시에 대한민국 현대사에 몇 가지 신화를 남겼다. 그 신화 중 하나는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강남 개발은 온갖 특혜로 얼룩졌다. 유신의 실력자인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은 부동산 투기의 원조 격이다. 업자들에게 정보를 흘려주고 이들에게 받은 돈을 정권 유지를 위한 자금으로 썼다.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은 수서, 일원 일대 개발을 위해 노태우 대통령에게 100억 원을 줬다.

또 다른 신화는 ‘강남불패’다. 강남 부동산 소유자들이 정부 정책을 결정하고, 강남의 집값은 떨어질 줄을 모른다. 강남은 부동산과 교육의 힘으로 금수저를 재생산한다. 강남 밖의 사람들은 강남 밖에서도 잘 살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강남에 들어가고자 한다.

강 남에 들어갈 수 없다면 또 다른 강남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불었던 뉴타운 열풍이 대표 사례다. 강북 시민들은 강남을 만들어주겠다는 뉴타운에 집권여당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현상의 이면에는 ‘강남의 기적’의 주역이던 현대 경영자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이 있었다.

이 책은 강남이 개발되면서 사라져버린 옛 기억의 장소를 차근차근 돌아본다. 강남은 지대가 낮아 물에 자주 잠겼고, 대대적인 수방 사업이 강남 개발에 필수적이었다. 수방 사업의 하나로 한강변에 제방을 쌓고 강변도로를 만들며 한강변은 사라졌다. 1970년대 초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에 있던 저자도는 아파트 대단지 건설을 위해 골재로 채취되어 사라졌다.

지금도 기억의 장소들이 사라지고 있다. 강남의 개발 방식이 성공사례로 부각되면서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광역시는 물론 인구 10만 명도 안 되는 소도시도 강남을 따라 도시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신도심을 개발해 시청, 법원, 방송국, 터미널 등 알짜 시설을 옮겨놓는다. 구도심에는 기차역과 전통시장만 남는다. 대부분의 지방 도시는 특징도 없는 붕어빵 도시가 되고 구도심은 죽어버린다. 강남이 남긴 욕망의 그늘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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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6.02.10 15:19

박헌영의 아내도, 맑스걸도 아닌 혁명가 주세죽

[서평] 코레예바의 눈물 / 손석춘 지음 / 동하 펴냄


1901년 함흥에서 태어나 1953년 사망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여성 혁명가 주세죽을 일컫는 말이다. 그 외에도 주세죽에게는 ‘미모의 독립운동가’ ‘박헌영의 부인’ ‘맑스걸’ ‘레이디 레닌’과 같은 호칭이 붙는다.

손 석춘의 장편소설 ‘코레예바의 눈물’을 읽기 전 내 머릿속에 있던 주세죽의 이미지도 주세죽에게 붙던 호칭과 같았다. 역사 수업 시간에 워낙 미모가 뛰어나 인기가 많았다, 박헌영의 베프(베스트프랜드) 김단야와 3각 관계여서 박헌영이 죽은 줄 알고 김단야와 결혼했다는 이야기 등 그에 대한 기억은 야사에 가까운 ‘썰’이었다.

‘코레예바의 눈물’은 카자흐스탄에서 우연히 주세죽의 기록을 발견한 문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설 속 화자로 등장하는 이 문인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주세죽의 기록을 보며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떠앉는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아마 그 문인과 같은 심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주 세죽에게 어울리는 호칭은 ‘박헌영의 아내’도 ‘맑스걸’도 ‘레이디 레닌’도 아니다. 1919년 3.1운동으로 감옥에 갇힌 이후 줄곧 일본 제국주의와 맞섰다.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며 항일투쟁에 앞장섰으나 믿었던 소련 공산당에 의해 체포당한다. ‘사회적 위험분자’로 찍혀 1938년 5월 22일 카자흐스탄의 사막 도시 크즐오르다에 유배된다.

주세죽은 ‘절대음감’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음악에 천재성을 보이고 상하이로 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만난 박헌영으로 인해 그녀의 인생이 뒤바뀐다. 박헌영은 “사회주의 조국에도 예술가가 필요하다”고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세죽은 단지 박헌영이라는 남성을 만나 사회주의자로 변모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박헌영을 만나기 전부터 31.운동을 기획하다 일제에 잡혀 고문을 당한다. 고문을 당하면서도 수갑을 찬 손으로 경찰을 두들겨 팰 정도로 패기가 넘치던 여성이다. 그녀는 박헌영 같은 당대의 남성 혁명가들에게 가르침을 요구하지 않았다. 동등한 입장에서 정세토론을 벌였다.

▲ 코레예바의 눈물 / 손석춘 지음 / 동하 펴냄

주 세죽은 당대의 남성 혁명가들이 지닌 봉건의식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여성 혁명가였다. 박헌영은 주세죽과의 결혼을 앞두고 “주세죽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미인이다. 조선이 식민지이지만 고래등 집에게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며 “나는 주세죽 동지에게 편안한 삶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

주세죽은 분노해서 그에게 따진다. 박헌영마저 “여자 팔자는 뒤웅박 따위처럼 결혼한 여성의 운명이 남편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케케묵은 양반계급 사고”에 빠져 있냐고 말이다.

남 성 혁명가들은 레닌이 부인 크루프스카야가 있는데도 애인 아르망과의 관계를 끊지 않고 셋이 동거한 사실을 높게 평가한다. 레닌에게 배울 것은 혁명뿐이며, 그만큼 레닌에게 인간적인 매력이 있기에 두 여자가 같이 산 것 아니냐고 말이다. 주세죽은 “만약 크루프스카야가 젊고 잘생긴 남성 혁명가와 사랑에 몰입해도 뜨거운 열정이 숨어 있다고 평가할 자신이 있나”라고 되묻는다. 오늘날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미러링’의 원조인 셈이다.

여성 혁명가가 맞선 것은 일본 제국주의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여성을 남성의 종처럼 취급하는 봉건적 악습은 물론 타락한 소련 공산당과도 맞서야 했다. 주세죽를 ‘맑스걸’ ‘레이디 레닌’ ‘박헌영의 아내’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그녀가 살아온 삶과 맞지 않는다. 그녀는 조선의 혁명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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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5.11.30 12:49
헬조선의 시간강사가 말하는 각자도생의 청춘
[서평]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 309동1201호 지음 / 은행나무 펴냄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라와 많은 인기를 끌었던 연재 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지방시)를 읽는 내내 알고 지내던 조교 형 A를 떠올렸다. 공부가 좋아 대학원에 갔다는 A는 학부생들에게 아주 간단한 부탁을 할 때도 미안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착한 심성을 지닌 형이었다. 그런 A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서 사라졌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A가 조교 일을 그만둔 이유를 알게 됐다. A는 조교 일을 버티지 못했다고 했다. 말이 조교였지 그냥 교수 시다바리였기 때문이다. 지방시에도 ‘잡일 도와주는 아이’라는 비슷한 표현이 등장한다.

보고 싶은 DVD를 구해오라는 등 교수의 사적인 심부름은 다반사였고, 컴퓨터가 고장 나거나 기기가 잘 작동하지 않을 때마다 기기 대신 사과해야했다. 어느 날처럼 교수가 차 키를 주며 주차를 시키던 날 A는 조교 일을 때려 치고 학교를 떠났다. “이런 일 하려고 대학원 온 게 아니다”고 분통해 했다는 말은 다른 이를 통해 전해 들었다. 

A는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을 견디지 못했다. 이 헬조선에는 버텨내지 못하는 자들과 끝까지 버텨내려 바둥 치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설사 버텨낸다고 해도 달콤한 선물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묵묵히 버틴다. 미생의 작가 윤태호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버텨내는 것이 능력”이라고 말했다. 헬조선에서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며 버텨내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지방시의 주인공, 서른세 살의 인문학 전공자인 시간강사 ‘309동 1201호’는 내가 대학생 때 만났던 그 형과 달리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는 사람이다. ‘오늘의 유머’에 연재되고 슬로우뉴스, 직썰에 연재돼 누적 조회 수 200만을 넘겼던 309동 1201호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309동 1201호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자신의 고된 생활을 미화하지도 않고, ‘짱돌을 들어라’고 함부로 훈계하지도 않는다. 다만 담담하게 자신이 겪어온 길을 설명할 뿐이다. 

‘309동 1201호’가 학업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지도 교수의 전공 강의를 듣고 지적 자극을 받았고, 교수의 권유로 대학원에 갔다. 공부가 좋아서 대학원에 갔지만, 헬조선에서는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건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 309동1201호 지음 / 은행나무 펴냄
 

한 학기 등록금이 450만원인데, 조교 활동으로 보전되는 비용은 300만원뿐이다. 300만원은 수업이 있는 주 9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5시까지 사무실에서 조교 근무를 한 대가로 받는 돈이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 치고는 잃는 것이 꽤 크다. ‘5분 대기조’처럼 비상사태를 대비한 교수의 호출을 기다려야 하는, 대기시간이 무제한인 노동자다. 

비상사태라는 것은 시답잖은 일이다. 교수가 대량의 복사를 맡기며 “10분 후에 찾으러 올게”라고 하거나 어느 교수가 연구실 책상 배치를 좀 바꾸고 싶은데 남자 조교들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다. ‘309동 1201호’는 비상사태를 대비해 늘 학교 근처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못했다.  

이렇게 조교로 일해도 한 학기에 150만 원, 1년에 300만 원이 더 필요하다. 물론 먹고 자고 입는 비용은 제외하고, 순수하게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돈이다. 이 돈을 메우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대가는 이처럼 가혹하다.

가난은 존엄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309동 1201호는 일을 하다 쌓여있던 책무더기가 쏟아져 뼈가 살을 비집고 나올 정도의 부상을 입는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군대에서 작업하다 이등병이 다쳐도, 일용직 노동자가 현장에서 다쳐도 이렇게 대접받지는 않는다. 

‘잡일하는 대학원생’을 보호해주는 곳은 대학이 아니라 맥도날드였다.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하던 309동 1201호는 팔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매니저는 병원으로 데려가 모든 비용을 부담했고, 산업재해 신청으로 임금의 70%를 받을 수 있다고 안내까지 해줬다. 건강보험을 포함한 4대 보험을 모두 등록해준 것도 대학이 아니라 맥도날드였다.

309동 1201호는 이런 상황을 모두 버텨냈다. 친구들로부터 “그만 좀 얻어먹어라” “공짜로 얻어먹는 법 가르치냐”라는 말을 듣고 결국 이들과 연락을 끊게 되면서도, 부모로부터 “할 일 없는 놈”이라는 취급을 받으면서도 좋아하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다.

지방시가 많은 공감을 얻은 이유는 이러한 고된 현실에 대한 묘사와 함께 자신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환경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일을 잘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다. 

309동 1201호는 우리에게 논문을 쓰기 위해 박물관을 방문해 어렵사리 자료를 찾아내고 좌절 끝에 논문을 완성해 이 논문을 부모에게 보여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글에는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의 비참한 삶과 함께 그가 학생들과 소통하며 가르치는 자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 이 책이 무거운 사회비판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다. 

지방시는 분노로 시작해 착취의 구조를 이해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원망은 주변인들과 선후배 연구자, 지도교수를 향했다. 이들에 대한 공격적인 감정이 글에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글이 이어질수록 분노는 거대한 괴물을 향하고 대학이 구축한 시스템을 향한다. 지방시가 세대의 기록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다. 

책을 덮으며 다시 대학원을 떠난 A를 떠올렸다. A가 계속 버텼다면, 좋은 시간강사가 될 수 있었을까. 분명한 건 309동 1201호의 말대로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다”는 것이다. 대학을 떠난 A, 그리고 떠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는 수많은 지방시들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아픈 것이 나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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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5.09.26 11:43

일본 안보법안, 아베 뒤의 ‘미국’을 보라

[서평] 일본 재무장의 새로운 단계 / 임필수 지음 / 사회운동 펴냄

지난 9월 19일 일본이 패전국이 된 지 70년 만에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공명 연립정당이 안보관련법안을 참의원 회의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안보법안의 핵심은 평화헌법이 금지한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안보법안의 통과로 일본은 미국 등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가 공격당할 경우 대신 반격을 할 수 있게 됐고,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사태’가 발생하면 전 세계 어느 곳에나 다른 나라 군대에 대한 후방 지원을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안보법안 통과를 ‘전쟁 포기, 교전권 불인정,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한 평화헌법 9조를 뜯어고치려는 아베의 야욕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군사문제와 평화운동에 대해 연구한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은 신간 <일본 재무장의 새로운 단계>에서 아베 뒤에 있는 미국에 대해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 실장은 일본재무장반대 시민평화행동, 반전평화연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다.

   
▲ 일본 재무장의 새로운 단계 / 임필수 지음 / 사회운동 펴냄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의 재무장과 집단자위권 행사에 반대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징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임필수 실장은 이런 논리가 ‘양날의 검’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에 대한 징벌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일본은 국제연합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집단안전보장 체제에 기여함으로써 세계평화에 공헌하겠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주목해야할 점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뒤에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재균형 전략’이 있다는 점이다. 2011년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미국의 태평양 세기’를 선언했다. 아시아 태평양을 지배하는 자가 21세기를 지배할 것이고, 그 지배자가 미국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실제 냉전이 종료된 1990년대 이후 미국 정부는 해외주둔 미군 규모를 점차 줄였는데, 유럽에서는 72% 감축이 이뤄진 반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29%만 감축했다.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제1의 장애물은 중국이다. 따라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재균형’이란 중국과 군사적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미이다. 이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은 ‘공해전’이다. 이는 유럽을 주전장으로 삼고 소련 지상군과 전투를 상정함으로써 공군과 육군에 초점을 맞추는 ‘공지전’이 아니라 서태평양에서 발발할 전투를 대비해 공군과 해군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이다. 

미국은 서태평양에서 공해전을 수행하기에 매우 불리한 처지다. 세계 최대 함대의 모항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서 하와이 제도 오하우 섬까지 거리는 2265해리에 달하고 하와이에서 미국령 괌까지 거리는 330리, 괌에서 말라카 해협까지는 2550해리다. 미군 기지와 시설은 매우 넓은 지역에 소수의 고립된 섬 위에 퍼져 있으며 한 장소에 대규모로 주둔하고 있으며, 중국 인민해방군의 사정거리 내에 있다. 

반면 중국군은 서태평양 전역에 섬으로 이어진 경계사슬을 지니고 있다. 대만을 범위에 둔 공군기지는 27개에 달하며 탄도미사일 전력도 중국 내에 배치하면 다 사정거리 안에 있다. 중국은 앞마당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반면 미국은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수천킬로 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원을 수송해야하고, 몇 개의 핵심 병참에 집중해야한다. 중국이 괌에 있는 해군 기지만 무력화하면 미국은 전력에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의 지원이 절실하다. 일본 북부와 동부는 중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활용도가 높고, 류쿠 제도는 지리적 특징상 대잠수함 전투 작전에 유리하다. 일본이 동맹국이라는 확실한 전제가 있어야 공해전 개념이 성립 가능하다. 임 실장은 일본 자위대가 집단자위권을 명목으로 미국의 대중국 공해전에서 필수불가결한 공군력과 해군력을 담당할 것이라 말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미일동맹은 계속 평화헌법을 흔들었다. 1951년 2차 대전을 마무리하는 센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되던 날 미일 안보조약이 조인됐다. 안보조약에 ‘미국은 일본이 방위를 위해 점점 더 큰 책임을 맡으리라 기대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일본의 군비 확충과 재무장의 근거가 됐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이후인 1978년 미일은 ‘미일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을 채택했다. 의회 비준도 받지 않은 행정 지침이었다. 극동에서 일본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자위대가 미군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1997년 미일방위협력지침은 난민과 미군 부상병을 위한 무력사용은 가능하다고 명시하면서 자위대가 교전에 참여할 가능성을 높였고, 급기야 2014년 아베 정부는 각의 결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일본의 안보법안과 재무장은 단순한 일본의 침략 야욕의 결과가 아니다. 미국의 이해관계 및 세계지배전략과 일본 보수 세력이 맞물려 움직인 결과다.   

저자는 일본 재무장의 역사와 함께 일본 평화운동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평화운동은 미일동맹 해체라는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으나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제약하고 핵무기 도입을 억제했으며 우익세력의 평화헌법 개정을 막아내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58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앞두고 벌어진 평화운동은 기시 내각의 퇴진으로 이어졌다.

안보법안 처리를 앞두고 8월 30일 오후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12만 명의 군중이 모여 ‘아베 퇴진’ ‘전쟁은 필요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1968년 이후 일본에서 10만 명 이상의 군중이 참여한 시위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는 어쩌면 ‘일본 재무장의 새로운 단계’와 함께 ‘일본 평화운동의 새로운 단계’를 목도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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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5.07.05 08:47

다수의견이 된 ‘소수의견’, 권력을 넘지 못한 ‘소수의견’

[리뷰] 영화 ‘소수의견’…“실화가 아니다”란 자막 뒤에서 빛나는 현실성

*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 영화는 특정한 사건, 사실과 관계가 없다”

영화 <소수의견>은 이러한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이 자막은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가 ‘현실’임을 말해주는 가장 강력한 기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픽션이다. 진짜 실화가 아니라면 굳이 “실화가 아니다”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소수의견>은 2009년 1월 벌어진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강제 철거에 저항하며 맞선 철거민들, 그리고 경찰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철거민과 경찰의 죽음. 참사를 덮으려 대대적으로 홍보한 살인사건. 용산 참사를 아는 이들은 누구나 <소수의견>을 보며 5년 전의 끔찍했던 참사를 떠올릴 것이다.

<소수의견>에는 한 가지 요소가 더 있다. 바로 ‘의견’이다. <소수의견>은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고,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자세히 조명한다. 이 영화의 제목에 ‘참사’라는 말도, ‘국가 폭력’이라는 말도 들어가지 않는 이유다.

   
▲ <소수의견>의 변호사, 윤진원.
 

영화의 초점은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철거민 박재호는 처음에 의경을 죽인 살인자에 불과했다. 국가는 용역깡패가 그의 아들을 죽였고, 박재호는 경찰을 죽였다고 주장한다. “경찰이 아들을 죽였다”는 박재호의 외침은 정신 나간 살인자의 읊조림에 불과했다.

박재호 혼자만의 주장은 곧 ‘소수’의 의견으로 거듭난다. 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윤진원. 그리고 철거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기자 공수경. 그리고 윤진원의 부탁으로 국가를 상대로 100원 짜리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 장대석.

여러 차례의 국민참여재판과 쏟아지는 증거들 속에서 이들의 ‘소수의견’은 다수의견이 된다. 국민참여재판의 재판관들은 박재호의 정당방위를 인정한다. 판사는 국민참여재판의 다수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3년’을 선고한다. 빗발치는 야유 속에 퇴장하는 판사, 국가권력의 주장은 어느새 ‘소수의견’이 된다.

‘천만영화’ <변호인>과 비교하면 <소수의견>의 차이점이 명확해진다. <변호인>은 <소수의견>에 비해 히어로물에 가깝다. 먹고 살기에 바빴던 한 변호인이 국밥집 아주머니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에 뛰어들고,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헌법 제1조의 의미를 몸으로 깨닫는다.  그는 어느 새 민주투사가 되어 재판을 받는 처지가 되지만, 부산 지역의 수많은 변호사들이 그의 ‘변호인’을 자처한다.

<소수의견>의 등장인물들은 ‘히어로’가 아니다. 윤진원 변호사는 철거민의 변호를 맡는 정의로운 인물이지만, 변호를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 범죄자의 변호를 맡기도 한다. 장대석 변호사는 정 때문에 변호인을 자처하지만, 증언을 듣기 위해 증인에게 천만 원을 건네는 인물이다. 기자 공수경은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지만, 특종에 목마른 여타의 기자들과 다를 것 없는 기자다. 재판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무시하고 단독기사를 쓰기도 한다. 철거민 박재호는 국가권력과 맞서는 투사가 아니라, 유혹에 넘어가는 나약한 인간이다.

한 명의 히어로가 아니라 몇몇 나약한 인간들의 알량한 양심들이 모여 소수의견을 다수의견으로 만들었다. 검사에게도 까다로운 판사의 깐깐함, 검사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변호사협회 징계위원장의 자존심, 그리고 몇몇 증인들의 솔직한 고백이 소수의견을 다수의견으로 만들어낸다. 이들은 모두 많은 단점을 가진 인간들이었으나 이들의 작은 장점들이 하나로 모여들었다.

   
▲ 영화 <소수의견> 포스터.
 

<소수의견>의 포스터는 한 명이 아니라 주요 등장인물들 얼굴이 모두 균등하게 담겨 있다. 이러한 구성은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영화가 현실적인 점은 결국 ‘다수의견’이 소수의견을 이기지 못했다는 점이다. 박재호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징역3년을 받았다. 사건을 조작하려 한 검사는 옷을 벗었지만 로펌의 변호사로 들어갔다.

검사가 마지막에 윤진원에게 묻는다. “국가는 누군가의 희생과 누군가의 봉사로 돌아가는 거야. 박재호는 희생을 했고 나는 봉사를 했어. 근데 넌 뭘 했냐?” 윤진원은 대답하지 않는다. 이 질문이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쁜 놈’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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