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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이집트 여행기

2023 이집트 여행기 ② 5년 만의 카이로 박물관과 코샤리كشرى

81일 여행 첫째 날의 주된 일정은 카이로 박물관이었다. 매연과 삐끼, 자동차 경적소리로 가득 찬 카이로에 굳이 한 번 더 온 이유를 찾자면 바로 이 박물관 때문이다.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은 전 세계에서 이집트 관련 유물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이집트에 이집트 유물이 많은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영국, 프랑스 등의 약탈 실력을 고려하면 당연한 건 아니다. (실제 대표적인 이집트 유물인 로제타석은 영국에, 덴데라 천궁도는 프랑스에 있다.)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은 이제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현재 이집트가 기자에 이집트 대박물관을 건립 중인데 카이로 박물관 유물을 여기다 이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박물관은 2021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아직 못 지었다고 한다. 만약 개관하면 세계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 될 예정이라 이집트 러버들과 고고학 덕후들이 큰 거 온다며 기다리는 중이다.

카이로 박물관 1층 전경. 유물들이 이전을 준비하고 있는 중임을 알 수 있다 .

 

5년 전에 왔을 때는 박물관 티겟과 박물관 안에 있는 미라관표를 따로 팔았다. 그런데 이번에 가니 그냥 300파운드 받고 '통합 티겟'을 팔고 있었다. 그 이유는 지금 람세스 2세의 미라 등이 있는 미라관이 박물관에 없기 때문이다. 대박물관으로 모두 옮겨놓았다.

미리 300파운드를 꺼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매표소에 가보니 ‘only visa’라고 적혀 있었다. 카드만 된다는 것이다. 그 때 내 뒤에서 어떤 이집션 가이드가 나타나서 물었다. “can you speak english?” 많은 경우 이 말을 직역하면 이제부터 내가 너한테 삐끼 짓을 할 거야라는 뜻이다.

이 가이드는 나한테 자기에게 남는 표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암표상인가 싶어서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라고 말하려는데 갑자기 이 가이드가 자기가 이 표를 줄 테니 나보고 300파운드 결재해서 새로 산 티켓을 자기한테 주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 내가 손해 보는 건 없다고 부탁했다.

왜 이렇게 하자고 한 건지 그 이유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다. 손해 보는 건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알겠다고 하고 받은 표를 들고 들어가는데 갑자기 직원이 나한테 가이드 어딨냐?”라고 물었다. 그래서 가이드라뇨?”라고 하자 내가 가진 표는 가이드가 있는 사람한테만 판매되는 거라고 했다.

가이드 있는 사람만 입장 가능한 카이로 박물관 티켓

그래서 사기당한 건가 싶어 이 씨xx는 어디 있지?’라는 심정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갑자기 그 가이드가 나타나서 외쳤다. “내가 바로 그 가이드입니다!”

 

저 남자가 내 가이드다, 왜 말을 못해 !

 

아마 단체로 좀 싸게 구입한 표가 좀 남아서 그렇게 거래를 제안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집션 가이드가 기왕 이렇게 된 거 너 내 동료가 될래?”를 시전 했지만 나는 더 얽히기 싫어서 그냥 표만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이로 박물관에 들어선 입장객들을 맞이하는 건 웅장한 두 개의 석상, 아멘호테프 3세와 왕비 티예의 석상이다. 아멘호테프 3세는 이집트 신왕국 시대 파라오인데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광개토대왕 같은 존재다. 시리아, 팔레스타인까지 지배하던 시절, 즉 고대 이집트의 역사에서 가장 번성했던 때 파라오 석상을 입구에 박아놓은 것이다.

1층 입구의 웅장한 석상

 

석상을 지나 유물들을 둘러보다보면 다음으로 아케나톤 석상이 눈에 띤다. 아까 그 두 석상의 주인공, 아멘호테프 3세와 티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아케나톤은 고대 이집트에서 다시는 없는 희한한 파라오였다. 다신교 사회인 이집트를 일신교로 바꾸려 했던 파라오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종교개혁을 시도한 셈이다.

아케나톤 석상

 

그는 오늘부터 니들이 믿는 신 다 가짜니까 앞으로 태양신 아톤만 숭배해라는 명령을 내렸다. 애초에 아케나톤이라는 이름도 아톤에게 이로운 자라는 뜻이다. 신도시를 건설해 천도까지 했으나 당연히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고 사망 후 사실상 파라오였다는 기록이 지워진다. 조선으로 치면 연산군 같은 존재가 된 것.

아케나톤 석상

 

위 사진처럼 아케나텐 석상의 체형은 남성과 여성을 섞어놓은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아케나텐이 나름의 종교개혁을 시도하며 신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파라오인 자신으로 설정했기에, ‘인간 대표로서 자신의 석상을 남성과 여성을 모두 섞어놓은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추론이 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5년 전에 비해 유물이 많이 없었다. 내가 놓친 걸 수도 있지만 카이로 박물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유물들이 없어진 것 같았다. 그 사이 도굴당한 건 아닐 테니 아마 대박물관에 옮겨놓은 게 아닐까 싶었다.

멘카우레 삼존상. 가운데 인물이 기자 3대 피라미드 중 하나인 멘카우레 피라미드의 주인공인 파라오 멘카우레다. 우측이 바로 바트 여신.

 

람세스3세에게 생명을 주는 호루스신과 세트신의 모습

 

'혼자 있고 싶어요 다 나가주세요' 아래를 저렇게 사각형으로 만든 이유는 여러가지 그림과 글자를 새길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이 녀석들..유물 주제에 꽤나 찐한데?

 

카이로 박물관을 처음 가보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유물이 너무 대충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에어컨 밑에 그냥 아무 보호 장치도 없이 세워져 있고, 중요해 보이는 유물을 구석에 쌓아놓거나 습도 유지 장치도 없이 달랑 선풍기 한 데 옆에 방치해놓은 것들도 있다. (누가 맘먹고 몇 개 뽀려 가도 티도 안 날 것 같다.)

특히 유물이 대박물관으로 이전 중이라 이런 난삽함은 극에 달했다. 이사를 앞두고 싸다 만 박스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집구석을 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사실 변명거리도 있다, 나라 전체가 박물관인 이집트는 발에 채이는 게 유물이라 세심하게 하나하나 관리할 여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이 박물관의 백미는 3층에 있는 투탕카멘 홀이다. ‘투탕카멘의 황금가면으로 잘 알려진 곳인데 늘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이다. 이곳은 철저하게 사진이 금지다. 사진 찍는 걸 감시하는 직원들이 따로 있고, 말 안 듣고 사진 찍다 걸리면 다 삭제해야 한다.

 

이렇게 생긴 사진을 직원들에게 보여주면 투탕카멘 홀로 안내해준다.

 

투탕카멘의 황금 옥좌.

 

5년 전에 못 보고 이번에 처음 본 유물은 동물 미라였다. 미라에 미친 나라였던 고대 이집트는 인간 뿐 아니라 동물들도 미라로 만들었다고 한다. (ㅈ간이 미안해...)

하지만 동물을 미라로 만드는 작업도 쉽지 않아서 안에 동물 뼈 조각 조금, 악어비늘 같은 거를 넣어놓은 채 이거 동물미라야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질소포장도 이집트가 원조였어?)

동물미라의 모습
댕댕이 미라와 다른 동물미라들의 모습

 

오전 내내 박물관을 둘러보고 박물관을 빠져 나와 배가 고파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밥 먹을 곳은 아부 타렉(Abu Tarek)이란 이름의 식당이다. 이집트 오면 꼭 먹어봐야할 전통음식인 코샤리(Koshary) 맛집이다.

마치 한국의 콩나물국밥집처럼 아부타렉에는 다른 메뉴가 없다. 그래서 메뉴판도 없다. 메뉴는 코샤리 하나 뿐이다. 스몰, , 스페셜 셋 중 하나만 고르면 그만이다.

이집트의 국민 음식 코샤리

 

이집트의 주식은 빵으로, 전형적인 탄수화물 다량 섭취국가다. 탄수화물로 가득찬 이집션들의 식단에 단백질을 첨가해주는 식재료가 바로 콩이다. 중동에서 자라는 병아리콩(이집트콩이라고도 부름)과 양파, 마카로니, 마늘 등을 튀긴 다음 토마토 소스를 끼얹은 음식이다.

조리법은 간단한데 먹어보면 생각 외로 맛있다. 아부타렉에선 빅 사이즈를 45파운드 받고 팔았다. 그런데 직원이 토마토 소스를 들고 오다 내 앞에서 엎어버리는 사고가 벌어졌다. 신발에 조금 튀겨서 물티슈를 달라고 했더니 연신 미안하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미안하면 콜라?”라고 했더니 콜라면 나를 용서해줄 건가?라고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래서 난 나는 5년 전에 여기도 왔고 그 때도 지금도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직원이 또 오라면서 펩시콜라를 갖다줬다. (여긴 코카콜라가 잘 안 보인다. 펩시만 있음.) 대화의 흐름과 모든 맥락을 고려했을 때 난 당연히 콜라는 서비스일 줄 알고 맛있게 먹고 계산대로 향했는데..

콜라는 15파운드입니다. 고객님.”

??

역시 얄짤 없는 이집션들.. 15파운드, 우리 돈 약 600원을 주고 나는 이집션이 만만치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깨우친 채 아부 타릭을 나왔다.

카이로의 태양빛에 지쳐 오후에 쉬러 숙소에 잠시 들렀는데 이 때 비행기 안에서 못 잔 잠이 몰려들었다. 거기다 이놈의 호텔이 갑자기 정전이 되며 자연스레 잠을 자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마련됐다.

낮잠 푹 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해질 무렵. 사실 카이로에서 더 볼 건 없었는데 야경은 한 번 봐야겠다 싶어서 카이로타워로 향했다. 타흐리흐광장 쪽에서 도보 20분이면 갈 수 있다.

가는 길에 길거리 노점상에서 슬리퍼를 하나 샀다. (집에도 가져갈 용으로) 사이즈를 물어봐서 275, 280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사이즈냐고 물어본다. 아마 여기는 피트나 다른 단위를 쓰나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작은 슬리퍼를 발에 신어본 다음 이거보다 큰 거 없냐고 물었고 노점상 알바생이 딱 맞는 사이즈 슬리퍼를 가져왔다.

슬리퍼는 180파운드. 차림새가 딱 관광객이니 높게 부른 것이다. 이 자식 표정이 딱 가격 듀얼을 기대하는 흥분된 표정이었다. 미안하다, 알바야. 난 돈이 많거든. 그냥 200파운드 주고 거스름돈 받아서 떠났다. 받은 거스름돈으로 물과 콜라도 샀다. (합쳐서 15파운드) 걸을 준비 완료!

이맘때쯤 카이로는 740~50분 사이에 해가 진다. 6시쯤 가면 카이로 타워에 줄이 길 게 늘어서 있다. 카이로 야경을 보러 온 관광객들과 또 보러 온 현지인들, 그리고 이들에게 뭘 팔아먹으려는 삐끼들로 꽤나 번잡하다. 날이 밝으면 피라미드까지 보이는, 나름 야경 명소다.

 

 

타워 안에는 사진 찍어주겠다며 박시시를 노리는 놈들로 가득하다. 이미 밝혔지만 돈 쓸 필요 하나도 없다. 파라오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코스프레 삐끼들도 있다. 안 물어봤지만 아마 돈 받을 거다.

그렇게 야경을 즐기는 사이 카이로에서의 첫째 밤이 깊어갔다. 하지만 방심한 사이 카이로의 또 다른 고난이 찾아왔다. 한낮 38도의 이집트 거리를 하루종일 걷게 만든 인터넷 먹통 사태는 다음 편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다음편 : <카이로를 떠나 '지중해의 진주' 알렉산드리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