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이집트 여행 두 번째 날의 아침이 밝았다.
카이로에선 기상 알람이 따로 필요 없다. 귀를 울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자동으로 눈이 떠지기 때문이다. 카이로는 내가 다녀본 어떤 곳보다도 최악의 교통난을 자랑한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은 카이로에서 통하지 않는다. ‘자동차가 먼저다’
이 동네는 애초에 신호등과 횡단보도라는 게 없다고 봐야한다. 죽고 싶지 않다면 무단횡단을 잘해야 하고,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급정거를 잘해야 한다.
운전면허 딸 때 대체 무슨 교육을 받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사람이 도로를 건너가려고 해도 차들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눈치 보며 멈칫거리면 그걸 기가 막히게 알고 차들이 쌩쌩 지나가 버린다.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무단횡단 하라! 살인을 저지르고 싶지 않은 운전자가 알아서 멈출 것이다.
카이로에 처음 온 사람들이 매우 당황하는 포인트인데, 손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현지인들이 차도로 뛰어들 때 같이 뛰어드는 것이다. 현지인들에게 당신의 목숨을 맡겨라! 믿고 건너는 현지인 무단횡단 맛집 카이로!
무단횡단의 도시 카이로를 벗어나 오전 10시 반에 버스를 타고 알렉산드리아로 무사히 넘어가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8시에 조식을 먹으러 호텔 옥상으로 올라갔다. 지켜지는 게 하나도 없는 이 호텔은 역시 조식 시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조식은 나름 이집트식 식단이었다. 이집션들의 주식은 빵인데, 그 중에서도 에이쉬(Aysh, عيش مرحرح)를 자주 먹는다. 사진 속에서 식빵들 사이에 있는 납작한 빵이 바로 에이쉬다. 비유하자면 이집트의 공기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집트에서 에이쉬는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데, 보통 저 빵에다 각종 치즈, 야채, 고기를 넣어먹거나 버터를 발라먹거나 하는 식의 식재료로 쓰인다. 또 고기가 식지 않도록 말아놓는 용도나 음식을 먹다 손에 묻는 기름기를 닦는 용도로도 쓰이기도 한다.
식사를 마치고 이제 알렉산드리아로 가즈아!. 하지만 역시 이집트에선 호락호락한 게 하나도 없다. 인터넷 먹통 사태로 인한 강제 도보 여행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집트를 올 때 반드시 신경써야할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호텔 말고는 와이파이가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vodafone에서 유심칩을 구입했는데, 내 핸드폰의 유심칩 구멍이 (마침! 씨발 하필이면 때마침!!!) 망가져서 유심칩을 교체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도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5년 전에 왔을 땐 자동 로밍이 되어 조금 느리지만 인터넷 사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KT의 경우 이집트가 로밍 대상 국가가 아니었다. 해외로 나가면 KT에서 로밍 무제한 5G 사용 서비스를 하루 1만5천원 받고 파는데, 이집트에선 절대 살 필요가 없다. 그거 아무리 사도 로밍 자체가 안 된다.
이것을 깨달은 아주 ㅈ같은 순간부터 여행 계획을 강제로 도보 중심으로 변경해야만 했다. 우버를 부르고 싶어도 인터넷이 안 되니 부를 수가 없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행 버스 터미널 ‘Go Bus Tahrir’까지 걸어갔다. 참고로 카이로의 여름은 오전 10시가 지나면 35도에 육박한다. 카이로 박물관을 지나 10여분 넘게 땀을 뻘뻘 흘리고 걸어가니 버스들이 모여 있는 주차장이 보였다. 버스, 지하철 이집트 내에서의 이동할 교통편은 ‘bookaway’를 통해 예약가능하다. (3시간 버스비 7.83유로. 원화로 11,500원)
참고로 이집트에선 (나처럼) 인터넷 먹통을 겪을 수 있으니 웬만하면 티켓 혹은 e-티켓은 인쇄나 캡쳐를 해서 가지고 다니는 게 좋다.
목적지는 알렉산드리아의 버스 터미널 ‘Moharam Bek’. 15분 전까진 반드시 오라고 문자까지 보내놓았길래 넉넉잡고 20분 전에 도착했으나 정작 버스고 버스기사도 아무도 안 나타난다. 근처의 터미널 관리자들에게 물어보자 ‘1분만’을 외친다. 하지만 역시 개소리다.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고장난 축음기처럼 ‘1분만’을 외치는 놈들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버스는 출발 시간인 10시반 즈음 나타났다. 배낭을 버스 아래 짐칸에 넣으며 티켓을 체크한다. 그 때 짐을 옮겨주던 놈이 갑자기 나한테 손하트를 했다. 응??
답례로 나도 손하트를 해주었지만 놈의 의도는 박시시 달라는 것이었다. 놈은 나의 손하트로는 마음이 충족되지 않았는지 “팁!”이라고 외쳤다. 이놈들은 원래 직업적으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고도 당당히 박시시를 요구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알렉산드리아 가는 서양인 부부가 마지 못한 표정으로 5파운드를 놈에게 주었다. 그래서 나도 찢어지기 직전의 5파운드 지폐를 놈에게 건네고 버스에 탑승했다.
여기도 한국처럼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다. 1시간 반쯤 달리다 휴게소에 정차했다. 물은 미리 챙겨놨기에 화장실만 들렀는데 남자 화장실 표지판이 없다. 그래서 두리번거리자 거기 서 있던 한 소년이 여기라고 손가락으로 알려준다.
볼 일을 마치고 나오자 그 놈이 박시시를 바라는 얼굴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놈에게 원 달러를 줬다. 이 지랄하려고 일부러 화장실 표지판을 떼버린 모양이다. 창조경제가 따로 없다.
쌩쌩 달리던 버스는 오후 1시 반에 목적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아까 5파운드를 받은 짐 옮겨주던 그 놈이 짐을 내려주면서 다시 또 팁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 놈에게 두 번 박시시 하진 않을 것이다. 그 놈이 다른 손님과 이야기하는 사이 얼른 내 짐을 챙겨 반대편으로 도주했다.
문제는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꽤 멀다는 것이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절대 아니었다. 그 때 한 이집션이 다가왔다. 택시냐고 물어봤는데 택시는 아니지만 운전은 한다고 했다. 안 그래도 이 수단이 필요했기에 나는 이 택시기사 호소인의 차에 탔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탓에 목적지 주소를 설명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다행히 미리 저장해놓은 호텔 번호가 있어서 그곳으로 전화를 걸었고 이집션 드라이버가 호텔과 통화해서 길을 파악 한 뒤 숙소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5G는 안 되는데 구글 지도는 대충 떠서(자주 끊기긴 했지만) 맞는 방향임을 알 수 있었다.
카이로만큼은 아니었으나 알렉산드리아의 교통 상황도 만만치 않게 ‘헬’이었다. 나는 드라이버에게 “이집션 드라이버들은 모두 운전을 잘해야겠다”고 말했고 그는 웃으며 “강제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래야겠지... 그러면서 그는 그래도 알렉산드리아가 카이로보다는 낫다며 거긴 진짜 끔찍한 곳이라고 카이로를 디스했다.
약 30분 정도 걸려 미리 예약해둔 ‘파라다이스 인 윈저 팰리스 호텔’에 도착했다. 나는 지도도 없이 알렉산드리아 초행길을 잘 안내해준 이집션 드라이버에게 100파운드를 주었다. 그는 매우 만족한 표정이었다.
카이로의 개떡같은 숙소와 달리 이 호텔 직원들은 매우 친절했다. 3시부터 체크인인데 2시에 도착했음에도 체크인을 진행해주었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정중히 이야기하고 기다리는 동안 와이파이 비번과 레몬차를 건네주었다. 나는 호텔 직원에게 ‘안타 카림’(That's kind of you)이라고 화답했다.
자, 그럼 알렉산드리아에선 뭘 보면 될까? 첫째도 지중해, 둘째도 지중해다.
호텔 바로 앞에 이렇게 지중해가 펼쳐져 있다. 카이로가 이집트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라면 인구 600만 명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제1의 무역항이자 상업 금융의 중심지다.
고대의 정복왕이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와 전쟁 중 페르시아의 속국이던 이집트까지 정복했고, 그 때 대왕이 지중해 진출을 위해 나일강 하구 파로스섬 인근의 작은 어촌에 신도시를 건설했다. 기원전 331년, 그 때 세워진 신도시가 바로 지금의 알렉산드리아다. 이후 알렉산더대왕이 죽고 부하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의 파라오가 된 뒤 알렉산드리아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가 되었다.
알렉산드리아로 오는 길이 너무 지쳐서 오늘은 바다 구경으로 뇌를 힐링하기로 했다. 호텔 바로 맞은 편에 펼쳐진 지중해가 너무 아름다웠다.
바다 구경 좀 하다 허기가 져서 근처의 ‘Shaaban Seafood’라는 해산물 식당을 찾았다. 한국의 한우 고깃집 같았다. 여러 생선들이 늘어져 있고 그 중에서 생선을 골라 요리해달라면 요리해준다. 맛집인 지 현지인들이 엄청 많았는데 자리가 꽉 차서 발길을 돌렸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뷰가 작살나는 호텔 6층 식당에 자리 잡았다. 그곳에서 이집트 2대 맥주인 사카라와 스텔라를 한 병씩 시켰다. 식사는 안 하시냐고 묻길래 K-식으로 “일단 술부터 주세요”를 시전했다. 이집션들은 K-식 “술부터 주세요”가 낯설었던 지 “NOW? NOW?”라고 되물었지만 내 선택은 변하지 않았다.
그 다음 안주 겸 식사로 ‘Seafood gourtment’라는 해산물 요리를 시켰다. ‘프라이드’ 혹은 ‘그릴’ 중 프라이드로 주문했다. 맥주엔 역시 튀김이다. 아스완도 그렇고 후르가다도 그렇고 알렉산드리아도 그렇고 이집트에서도 바다나 강을 낀 도시들은 해산물 식당들이 많다. 익숙한 해산물 요리라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지중해 풍경을 안주 삼아 맥주를 추가 주문해 가며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첫째날을 마무리했다. 여행기 다음 편은 세계 최초의 공공도서관 알렉산드리아도서관 탐방 편이다.
▶다음편 : <알렉산드리아도서관과 이집트 3무(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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