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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이집트 여행기

2023 이집트 여행기 ⑤ 콰이트베이 요새와 샤와르마شَاوَرْمَا

84, 이집트 여행 4일차 아침에 가장 먼저 한 일은 호텔 프론트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전날의 laundry service 때문이다.

세탁물에 대해선 매우 만족했다. 맡긴 지 2시간 만에 이집트의 흔적이 싹 빠진 새 옷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옷을 가지러 온 직원 놈이었다. 저녁 8시쯤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흑인 직원이 영수증과 옷을 들고 문을 두드렸다. (사실 직원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이 직원이 내민 영수증에는 laundry service의 총 비용이 156파운드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 내야 되는지 아니면 호텔 체크아웃 할 때 내도 되는지 묻자 그 녀석은 우물쭈물 답을 못했다. 그러다가 지나가던 다른 호텔 직원과 잠시 대화를 하더니 자기가 영어를 잘못해서 나를 헷갈리게 했다며 지금 납부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200파운드를 주고 거스름돈 44파운드를 가져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겠다고 답하고 문 닫고 사라졌는데 거스름돈 가지러 간다던 놈이 저녁 늦게까지 소식이 없었다. 아마 다른 직원과의 한 대화는 언제 돈을 내야하는지 체크한 게 아니라 박시시 범죄 모의였던 것 같다.

( 야, 박시시 5 대 5 로 나눌까? 누가 5야?)

 

호텔 프론트에 가서 거스름돈 준다던 놈이 소식이 없다고 하자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집트에선 알아보겠다는 말을 믿어선 안 된다. 아마 "이놈 내일 가네?" "내일까지만 뻐기면 되겠네? "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시시 때문에 여행을 늦출 순 없었기에 일단 어제처럼 조식을 먹고 8시쯤 길을 나섰다. 이 때 관광경찰이 호텔에 와서 호텔 직원과 대화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관광경찰은 이 호텔에 지금 외국인이 몇 명 있는지, 또 어젯밤에 잘 들어왔는지 묻고 있었다. 마침 “South korea people”에 대해 이야기하길래 “I’m here”이라고 셀프 안전 진단을 해주고 나왔다.

이 호텔이 유독 관광객 안전을 챙기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집트는 치안으로 보면 관광객들에게 매우 안전한 나라에 속한다. 삐끼와 박시시의 괴롭힘 때문에 오해를 사곤 하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집트에서 관광업은 핵심 산업이다. 관광객이 사고가 나서 위험한 지역이 되는 순간 나라 경제가 휘청거릴 것이다.

이집트에 입국하면 이집트의 관광고고부에서 이런 문자를 보내준다.

 

셀프 안전 진단까지 마치고 향한 곳은 콰이트베이다. 전날 갔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반대 방향으로 30여분을 쭉 걸어가면 나온다. 알렉산드리아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동그라미 표시한 이곳이 바로 콰이트베이 요새다.

 

역시 항구도시답게 가는 길 곳곳에 고양이가 눈에 띠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를 영물로 취급한 문화가 남아 있는 것인지 이집트에선 매우 쉽게 고양이를 찾아볼 수 있다.

고양이는 고대 이집트인이 가장 사랑한 동물이었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태양신 라는 암흑을 지배하는 뱀인 아포피스를 죽여야 하늘로 떠오를 수 있었는데, 라는 아포피스와 싸울 때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가는 길에 알렉산드리아 해수욕장이 보였다. 가족, 친구 단위로 나온 이집션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해수욕 할 때도 부르카나 히잡을 쓰고 있는 이집션들이 보였다. 이집트 남부로 갈수록 종교적으로 엄격해진다고 알고 있는데 아마 해수욕을 즐기러 알렉산드리아로 찾아온 다른 지역 이집션들 같았다.

 

알렉산드리아 해수욕장

 

해수욕장에 들어가진 않았다. 참고로 이집트에서 해수욕장은 박시시 파티장이라고 봐야한다. (호텔에 딸린 수영장 제외). 한국에서도 사실 바가지 잘 뒤집어쓰는 곳이 해수욕장인데 박시시가 공기처럼 존재하는 이집트에서는...상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해수욕장을 지나 걷다보면 콰이트베이가 보인다.

 

구글에는 콰이트베이 오픈 시간이 오전 8~오후 5시라고 되어 있는데 틀린 정보였다. 가보니 매표소에 오전 9~오후 8시라고 적혀 있었다. 30분을 걸어오니 너무 목이 말라 근처 상인에게 7파운드짜리 물을 샀다. 원래 5파운드면 사는데 역시 관광지라 조금 비싼가보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집트 전역에서 안 잡히던 5G가 콰이트베이 근처에선 느리지만 조금씩 잡히는 마법이 벌어졌다. 여긴 이집트로 안치는 건가, KT? 아니면 지중해 넘어 있는 뭐가 잡히는 건가?

매표소에 제일 먼저 줄을 섰음에도 결재 시스템이 작동이 안 된다며 ‘1분만을 외쳤다. 물론 당연히 1분 만에 해결되지 않았고 10분 정도 기다려 입장료 100파운드를 내고 콰이트베이 티겟을 샀다. 여기도 현금은 안 되고 ‘ONLY VISA’였다. 추측해 보건데 이놈들 잔돈 바꿔주기 싫어서 카드로 일원화한 것 같았다. 그게 낫다. 현금 냈으면 잔돈을 박시시로 가져갔을 수도.

 

콰이트베이 입장 티켓.

 

콰이트베이는 사실 이집트 역사에서 오래된 성채는 아니다. 원래 이곳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파로스 등대가 있었다. 파로스 등대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처음 계획하여 세워진 등대다.

당시 지중해 쪽 이집트 해안은 해안선 근처의 수심이 매우 얕고 암초들이 많아 매우 위험했다고 한다. 육지에 가까이 와 암초들을 더 피할 수 없을 때에야 비로소 해안선을 볼 수 있었을 정도였다고. 이런 위험을 극복하고 북아프리카 해안으로 항해하기 위해 만든 게 파로스 등대였다. 자연스레 파로스 등대를 중심으로 방파제와 여러 항구들이 만들어졌고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로 나가는 이집트의 전 수출품의 집결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여러 세월을 거쳐 지진과 해일 등으로 파로스 등대는 파괴됐고, 15세기 술탄 카이트베가 등대의 잔해들로 지은 요새가 바로 이 콰이트베이 성채다. 이집트의 국력이 예전 같지 않았던 시기, 적의 침략을 막는 용도로 쓰였다. 19세기 영국의 공격으로 파괴됐다가 이집트가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콰이트베이 성채다.

 

성채라는 기능에 맞게 곳곳에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한 무기들이 보인다.

 

여기 오는 이유는 크게 성채 내부를 구경하는 것, 또 하나는 성채 바깥을 거닐며 지중해 해안을 구경하는 것이다. 근처를 구경하는데 한 이집션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서 이 시다텔(성채)에는 왜 왔는지 물었다. 나는 뷰 포인트때문이라고 답했다.

지중해가 한 눈에 보인다는 평가대로 , 뷰가 진짜 좋다.

 

땀에 개쩔은 상태에서의 성채와 셀카.

 

콰이트베이를 지키는 냥신의 등장

 

요새 내부에는 작은 창문들이 있다. 아마 적의 함선이 오는 지 살피고 이에 대응 사격을 하기 위한 장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지중해의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었다. 2시간 정도 성채 내부와 지중해 뷰를 감상한 뒤 콰이트베이를 빠져나왔다. 해변가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이집션 삐끼들이 슬슬 몸을 풀고 있다.

, 마이 프렌드~” 이딴 헛소리를 해대며 한 이집션이 보트를 타보라고 한다. 익숙한 풍경에 '올 게 왔구나' 싶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나는 라 슈크란’(No thanks)을 외쳤다. 따라오려 드는 거 같아서 경보 실력을 발휘해 사라졌다.

그 다음에 어디까지 가냐고 말 택시 삐끼가 쫓아왔으나 또 다시 라 슈크란’. 그러자 더는 따라오지 않았다. 여기 삐끼들은 룩소르나 카이로, 아스완과는 달리 한 번 거절하면 더 권유하지 않는 매너 있는 삐끼들인 모양이다.

이집트 어디에나 존재하는 말 택시. 사진 찍으면 타라고 할까봐 도촬.

 

삐끼들을 따돌리느라 좀 뛰었더니 목이 마르던 찰나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나 발견했다. 너무 더워서 15파운드 짜리 작은 사이즈의 아이스크림을 구매했다. 망고? 라고 물어서 좋다고 했더니 그 다음엔 바닐라? 라고 묻기에 섞어달라고 했다. 그러자 또 스트로베리?라고 묻는다. 그렇게 삼색 아이스크림을 하나 빨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아이스크림 가게 사진.

 

 

1시간을 걸었기에 조금 쉬어야했다. 35도 더위에 이집트에서 이렇게 걷다간 아마 카이로였으면 최소 일사병에 걸렸을 것이다. 숙소에서 씻고 잠시 쉬는데 호텔 직원들이 청소를 하러 왔다. 이들은 청소할 때도 ‘1분만을 외친다. 물론 1분 안에 안 되는 건 이집션도 알고 나도 안다.

아이스크림으로 허기를 때웠기에 점심시간이 지나자 배가 고파졌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이집트에 오면 꼭 먹어야할 샤와르마Shawarma가 생각났다. 샤와르마는 한 마디로 빵에 말아져서 나오는 케밥으로 아랍권 전역에서 먹는 주요 음식이다.

걸어서 또 30분 거리에 모모 샤와르마라는 유명한 샤와르마 전문점이 있었다. 사실 여기는 알렉산드리아도서관 쪽에 있어서 어제 먹었으면 딱이었을 텐데, 미리 체크를 못했다. 그렇지만 먹고 싶은 마음이 커서 걸어가기로 다짐했다. (밥 먹으러 1시간 걷는 돼지가 있다?)

어제 한 번 가봤던 익숙한 길이기에 손쉽게 모모 샤와르마에 도착했다. 검색해보니 이곳은 꽤나 유명한 체인점이었다. 별점도 높았다.

모모 샤와르마.
모모 샤와르마 메뉴판.

위 메뉴판처럼 굉장히 다양한 메뉴가 있는데 치킨과 고기를 기본 베이스로 하여 BUNS, ROLLS, SHAMY, SHAMY-BITES, VIENNA 등 다양한 종류의 빵에 넣은 샤와르마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나는 Shamy 오리지날 치킨, Rolls 오리지날 미트 두 개를 주문하고 콜라까지 한 잔 시켰다. 자신을 '알리'라고 소개한 주인장은 치즈 프라이드를 먹을 건지 물었고 나는 그것도 달라고 했다, 그렇게 총 209파운드. 210파운드를 줬으나 당연히 1파운드는 놈들이 꿀꺽~

아래의 긴 게 ROLLS고 저 작은 게 SHAMY다.

 

샤와르마 두 개는 양이 꽤 많았다. 거기에 감자튀김까지 먹으니 배가 꽉 찼다. 하지만 빵을 입에 넣자 절로 목이 막혀서 콜라 하나를 더 주문했다. 펩시콜라 하나에 15파운드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가게 주인 알리가 어디에서 왔냐고 말을 걸었다. 식사시간도 아닌 오후 4시에 동양인이 땀을 뻘뻘 흘린 채 와서 샤와르마 두 개에 콜라 2, 감자튀김까지 다 먹어치우자 놀란 듯했다. (다시는 한국의 돼지를 무시하지 마라.)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했고 그러자 남한인지 북한인지 물었다. 이집트는 사회주의 국가였던 적이 있어 꼭 한국에서 왔다면 남인지 북인지 되묻는다.

아, 일전에 인터넷에서 '샤와르마'라고 말하면 현지인들이 못 알아듣고 슈와마라고 말해야 알아듣는다는 블로그 글을 본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알리에게 물었다. 알리는 뭐라고 하던 우린 다 알아듣는다. 그래야 팔아먹으니까.라는 우문현답을 내놓았다.

배가 꽉 찬 상태에서 힘을 얻어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한참을 걷는데 자신을 '샤브리'라고 소개한 이집션이 날 보더니 말을 걸었다. 역시 손풍기가 또 어그로를 끌었다. 그는 이게 뭐냐고 신기해하며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얼마인지 등을 물었다. 충전식인지 건전지를 쓰는지 물으며 자기 쪽으로 바람 좀 쐬게 해달라고도 했다.

한국에서 산 거라고 하자 역시 한국이 기술력이 좋은 나라라고 따봉을 날린다. (사실 '메이드인 차이나'였어. 샤브리 미안.) 나는 느그 나라는 이거 없지를 시전했고 샤브리는 이집트 더워 뒤지겠는데 저런 거 만드는 사람이 없다고 푸념했다.

나는 그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자 지금 한국도 만만치 않게 더워지고 있다고 했고, 이집트랑 별 차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샤브리는 놀라면서 그렇게나 덥냐고 반문했고 나는 알렉산드리아는 한국보다 시원한 것 같고, 그치만 룩소르, 아스완, 카이로는 한국보다 더 덥다고 답했다.

그는 '이집트 어디까지 가봤냐', '어디가 좋았냐', '왜 또 왔냐' 등을 질문했고 우리는 걸으면서 20분 정도 대화했다. 이번 이집트 여행에서 가장 오래 대화한 이집션이었다. 그는 내 호텔이 어딘지 물었고 이제 방향이 갈라져서 자기는 간다고 하고 사라졌다. 순간 놀아줬으니 박시시 줘야하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오늘이 이집트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란 생각에 씻고 다시 간지뷰를 자랑하는 호텔 6층으로 향했다. 또 다시 일단 술부터 주세요시전. 사카라 맥주를 마시며 경치를 감상했다. 안주로 오렌지를 시켰는데 알고보니 오렌지주스여서 오렌지주스와 맥주를 함께 마셨다.

 

해가 저무는 지중해 바다를 보니 정말 집에 가기 싫었다. 고요한 지중해 바다는 하루하루 바쁘고 정신없이 살았던 내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아쉽지만 이제 남은 건 잘 돌아가는 일 뿐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언제나 이집트에선 긴장을 놓쳐선 안 된다. 다음 편은 끝까지 개고생으로 점철된 한국 귀국 길이다.

▶마지막 편 : <한국 못 올 뻔한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