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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기타 칼럼 기고

'시즌2' 성공의 열쇠는 디지털혁신

월간 <신문과 방송>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한국일보가 어떤 신문이었던가. 누가 뭐래도 사회면 기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조간신문의 대명사이던 시절이 있었다. 뜨끈뜨끈하고 생동감 넘치는 기사들로 젊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창업자인 장기영은 언론 사주이자 기자였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기자 공채를 시작했고 학력 제한을 두지 않고 수습기자를 뽑았다. 그리고 여기자가 가장 많았던 신문이기도 했다

20136,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이 쓴 칼럼 <한국일보는 없다’>의 일부다. 그의 말대로, 한국일보는 1980년대 초까지 1등 신문이었고, 조중동과 함께 4대 신문으로 불리기도 했다. 물론 과거형이다. 지금의 한국일보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비리 사주 몰아낸 한국일보 기자들

김선주 전 주간이 이 글을 썼던 20136월 한국일보는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구성원들은 장재구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지난 2006년 한국일보는 창간 이후 계속 머물렀던 터전 중학동 사옥 부지를 한일건설에 매각했다. 매각대금 900억에 더해 새로 들어설 건물의 2000평을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리, 즉 우선매수청구권 등을 확보했다.

건물은 2011년 완공됐으나 한국일보는 중학동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장재구 회장이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우선매수청구권을 팔아버린 것이다. 기자들의 항의에 장재구 회장은 돈을 갚겠다고 했으나 1년 반 동안 갚지 못했다. 노조는 검찰에 장 회장을 고발했다. 한국일보를 상징하는 곳이었던 중학동사옥은 그렇게 한국일보의 손을 떠났다.

노조와 기자들의 반발에 사측은 편집국장 교체로 대응했다. 하지만 대다수 한국일보 구성원들은 편집국장 교체에 반대표를 던지며 저항했다. 2개의 편집국이 존재하는 상황이 지속됐고 사측은 용역들을 동원해 편집국을 폐쇄했다. 언론사가 편집국을 폐쇄한 초유의 사태였다.

대다수 기자의 반대에도 사측은 한국일보 발행을 강행했다. 바이라인도 없는, 심지어 사설까지 연합뉴스를 베낀 짝퉁 한국일보였다. 한 때의 ‘1등 신문한국일보의 자존심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짝퉁 한국일보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일보 기자들의 이어진 싸움과 각계각층의 연대가 이어졌고, 법원이 사측의 편집국 폐쇄가 부당하다고 인정하면서 장재구 회장은 물러나야만 했다. 기자들이 비리도 모자라 편집국 폐쇄까지 강행한 사주를 몰아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58일 만인 2013812일 한국일보는 정상발행됐다.

장재구 회장은 물러났으나 한국일보의 과제는 산적해 있었다. 일단 장재구 일가가 경영하면서 산적한 빚이 과제였다. 장재구 회장이 경영하던 때 취재비, 원고료, 출장비는 2년째 감감 무소식이었고 퇴직금도 지급하지 못했다. 사업보고서 상 부채는 700억 원, 200억 원의 자본금은 잠식 상태였다. 중학동 사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고, ‘임시 사옥이던 남대문로 한진빌딩에 머물러야 하는 처지가 됐다.

장재구 일가의 재산에 가압류를 한다 해도, 지난한 소송과정이 남아 있었다. 좋은 사주를 찾아 새로운 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한국일보는 삼화제분과 지난해(2014) 225일 투자계약인수를 맺었다.

하지만 삼화제분은 결국 한국일보의 새 주인이 되지 못했다. 한국일보는 826일 삼화제분에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재매각 공지를 냈다. 삼화제분이 계약기간인 6개월 안에 계약금 잔액을 납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화제분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던 탓이다. 이로써 한국일보의 시계는 신문이 정상 발행된 2013812일로 되돌아오게 됐다.

한국일보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새 주인을 찾았다. 지난 113일 동화그룹과 본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도 삼화제분 때보다 올랐다. 채무를 청산하고도 남는 액수였다.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회생계획안 작성, 채권관계인 집회 등의 절차를 거쳐 1월 말 전에는 법정관리를 졸업할 수 있다.

시즌2, 과거 청산과 혁신

1월이면 이제 한국일보는 시즌2를 맞는다. 시즌2를 맞는 한국일보의 과제는 무엇보다도 장재구 일가가 남긴 것들을 청산하는 것이다. 삼화제분, 그리고 동화그룹과의 인수 작업을 거치면서 이 과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

한국일보는 계획했던 상암동 사옥 이전이 잘 되지 않을 경우 서울시에 100억 원 정도를 물어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20143월 이 과제를 해결했다. 우발채무, 즉 장부상 부채에는 없지만 드러나지 않은 부채에 대한 우려는 어느 정도 사라진 셈이다. 서울경제, 인터넷한국일보 등 장재구 일가로부터 받을 돈도 생기면서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 생겼다. 삼화제분과의 계약이 무산된 이후 동화그룹이 더 많은 돈을 주고 한국일보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이유다.

인적청산도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 장재구 회장 편에 섰던 이들이 2014년 초까지 대부분 회사를 떠났다. 고재학 편집국장은 20146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주도적으로 비리사주에 붙어서 편집국 폐쇄를 주도한 이들은 다 나갔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장재구 일가의 그림자를 지우고 나면 남는 것은 새로운 혁신이다. 이제 한국일보는 더 이상 과거의 1등 신문도, 4대 신문도 아니다. 신문시장의 파이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한국일보는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혁신을 택했다.

한국일보는 창간 60주년을 맞은 2014623디지털퍼스트를 선언했다. 60년 간 종이신문에 올인했던 한국일보가 종이신문의 종언을 이야기하며 디지털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60년 만에 처음으로 개발자를 뽑았다.

선언은 창간 60주년에 맞춰졌으나, 도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한국일보는 지난 519일 온라인 사이트인 한국일보닷컴을 개설했다. 한국일보 기사를 게재하던 한국아이닷컴과는 계약을 끊었다. 온갖 선정적 광고가 난무하던 한국아이닷컴과 달리 한국일보닷컴에는 광고가 없다. ‘클린홈페이지다. 콘텐츠도 다르다. 실시간 검색어로 도배된 낚시성 기사가 가득했던 한국아이닷컴과 달리, 한국일보닷컴에는 품을 들인 온라인 전용 기사들이 올라온다.

한국일보는 디지털뉴스팀을 중심으로 수천 개의 사진을 이어 붙인 타임랩스 영상 포토플레이’, SNS에서 화제가 된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인터뷰 (SNS)’, 복잡한 사회 이슈를 만화로 풀어주는 한이와꾹이등 다양한 콘텐츠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래는 디지털퍼스트에

클린 홈페이지 한국일보닷컴은 역설적이게도 장재구 덕(?)에 탄생 가능했다. 한국일보가 보유한 한국아이닷컴 지분은 65%였는데 한국일보 사태 때 장재구 회장의 한국일보가 이 지분을 15%로 낮췄다. 유기적 연결이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닷컴을 만들자는 논의가 나왔고 그 결과로 한국일보 닷컴을 만들었다.

잃을 것도 없었다. 원래 한국아이닷컴과 한국일보가 계약을 맺을 때 한국일보 콘텐츠를 1억 원에 가져가고 한국아이닷컴이 서버를 이용해 가공, 포털에 쏴주는 등등 기타 용역비로 6천 만 원을 책정했다. 즉 한국일보가 4천만 원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한국아이닷컴이 용역비를 1억 원으로 올리면서 한국일보의 수입은 0원이 됐다. 한국아이닷컴을 버리고 한국일보닷컴을 만들면 온라인과 모바일 수익이 온전히 한국일보 것이 된다. 광고나 어뷰징 기사 수입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한국일보의 미래는 디지털전환에 달렸다. 다른 언론에 비해 한국일보는 디지털퍼스트 분야에서는 앞서가는 편이다. 디지털퍼스트를 온라인 조회 늘리기혹은 본격적인 어뷰징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동시에 한국일보에도 디지털퍼스트를 선언한 다른 언론이 겪고 있는 고민이 있다.

한국일보의 한 관계자는 신문시장은 점점 쭈그러드는 데, 그래서 방향은 디지털로 가는 게 맞다얼마나 발을 담궈야 하는지가 고민이다. 100을 이루기 위해 30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40에서 시작해야하는지라고 말했다. 이러한 고민의 근간에는 아직 디지털퍼스트로 인한 수입은 많지 않다는 현실이 있다. 인풋 대비 아웃풋 효과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디지털 분야의 수입은 기껏해야 전체의 5-10%인데, 화끈하게 투자하다가 기존에 가진 것도 잃게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있다는 것이다.

기자들 일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기자들 일이 30-40% 늘어난다고 월급을 30-40% 늘려줄 수 있을까. 화끈한 투자가 가능하다면, 다른 돈벌이수단이 있다면 가능하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어렵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디지털퍼스트일만 늘어 난다고 인식하게 될 수도 있다. 기자들 업무가 늘어나는 속에서 업무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기자들을 독려할 것인가, 결국 조직개편과 리더십이 문제다.

한국언론의 미래

정리하자면 한국일보의 미래는 디지털퍼스트 전략을 정착시키는 데 달렸고, 디지털퍼스트는 한국일보닷컴이 어떻게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내부 구성원의 동의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에 달렸다.

이러한 과제는 한국일보만의 과제가 아니다. 신문을 읽는 사람도, 신문에 실리는 광고도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거의 대다수의 언론이 직면한 과제다. 우리가 한국일보의 미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