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 /기타 칼럼 기고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위한 네 가지

청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은 반값 등록금, 주거정책, 청년 일자리 등 청년을 위한 공약들을 쏟아냈다. 공약을 쏟아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청년들이 ‘직접’ 바꾸어야 한다며 국회의원 자리를 청년들에게 내주겠다고 말하고, 실제로 몇 몇 청년들이 국회에 입성했다.


그렇다면 청년이 정치,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나는 가능한 한 많은 20대/청년들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주류 정치학에서는 정치를 ‘권위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만으로는 정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정치에 대해서 우리는 한 가지 정의를 추가해야 한다. 정치란 하나의 공동체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수행하는 모든 활동을 뜻한다.


정치를, 공동체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한다면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할 이유는 명백하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기득권 세력은 공동체를 썩게 만들고, 결국 공동체의 유지와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반면에 청년들은 사회적 약자인 자신들을 압박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권리를 사회에 내세움으로써 공동체를 유지 가능하게 만들며, 공동체의 재생산에 기여한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정치에 잘 참여하여 삶을 바꾸고 자신들의 요구를 사회에 반영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 걸까?


나는 여기서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의 견해를 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레닌은 봉건 왕조였던 러시아에서 혁명을 이뤄낸 혁명가이며, 자신의 세력이 별로 없었던 상황에서도 혁명에 성공했다. 그는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지속적인 경기 침체로 피지배계급(노동자계급, 일반 병사, 농민)이 혁명의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 둘째, 지배계급들이 분열하여 서로 다투는 상황이어야 한다. 셋째, 피지배계급의 대표인 노동자 계급이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노동자 계급이 연대하여 연대의 힘으로 지배계급을 물리쳐야 한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넷째, 노동자 계급의 투쟁을 하나의 단결된 힘으로 이끌어낼 정당이 필요하다.


레닌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지만, 우리는 이 네 가지 조건을 우리의 현실에 맞게 변용할 수 있다.


첫째, 지속적인 경기 침체다. 청년들은 경기 침체를 몸으로 겪고 있다. 486들은 국가와 자본을 향해 짱돌을 던지고 데모해도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었다. 1980년대가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고도로 성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은 데모나 짱돌 하나도 안 던지고 공부 열심히 하고 스펙 열심히 쌓아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다. 등록금과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물가는 오르는데 일자리를 구하기는 힘들고 최저임금도 너무 낮다. 물론 당연히 청년의 정치참여를 위해 경제를 안 좋게 만들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청년들은 정치에 참여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수밖에 없다.


둘째, 지배세력의 분열이다. 집권여당과 기득권 정치인들은 청년들의 요구(예컨대 반값등록금)가 지금의 경제 시스템을 해치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무책임한 요구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집권여당과 기득권 정치인들 중 일부는 청년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년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사회에 목소리를 높여, 이러한 기득권 세력과 집권세력의 분열을 유도해야 한다.


셋째, 연대의식이다. 청년들은 청년들 스스로가 하나로 뭉치고 연대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각해야 한다. 많은 이들은 20대가 보수화되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20대는 보수화된 것이 아니라 개인화, 원자화된 것이다. 청년들은 보수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공동의 문제나 다른 사람과 내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에 신경 쓸 여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정치라는 공동체의 문제가 나와 상관없는 문제로, 나의 문제(취업 등)가 해결된 뒤에야 주목할 수 있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요즘 놈들은 저 밖에 몰라서” 그런 게 아니다. 사회경제구조의 변화에 청년들이 적응한 것이다. 원자화로, 개인화로 말이다. 청년들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연대의 경험을 되살리고, 힘을 합치고,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야 각각의 문제를 돌파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넷째, 정당이다. 아니, 꼭 정당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단결된 힘으로 이끌어낼 조직이 필요하다. 아무리 연대의식이 필요하다고 해도, 청년들이 정치조직화, 정치세력화 되어 있다면 그 힘이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청년들의 정치 참여는 늘어날 수 있고, 또 이 늘어난 정치 참여가 실제로 청년들의 미래가 변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은 충분히 제기되었다. 단순히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늘리자는 당위적인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떻게’ 정치참여를 늘릴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 재단보>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