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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기타 칼럼 기고

안철수의 생각, 우리들의 행동

안철수 열풍이 불고 있다. 그의 대선공약집(?) <안철수의 생각>은 책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더 나아가 안철수는 공식 출마선언도 없이 박근혜 대세론을 누르며 새로운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다.

 


 

안철수는 20대에게 공정함의 상징이다. 이제 갓 노동시장에 들어서는 20대들은 시장의 공정함과 공정한 경쟁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있다.

 

안철수가 상징하는 공정함은 여야가 제시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화두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안철수의 생각』(이하 『생각』)에서 ‘정의로운 복지국가’‘공정한 복지국가’를 대한민국의 국가 모델로 내세우며, 재벌 및 대기업의 반칙 엄벌, 시장 질서 확립에 동의했다.

 

나는 『생각』을 읽는 내내 안철수가 당연한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서, “당신은 보수냐 아니면 진보냐”라는 질문에 안철수는 “나는 상식파다”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안철수의 생각은 상식이다. 그는 시장 질서가 그 자체로는 공정한데, 대기업 및 재벌이 반칙을 저지르고, 정부가 이런 특권세력을 감시하지 않고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를 신봉함에 따라 시장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시장 경제의 기본 원칙들을 기업들이잘 지킬 수 있도록 유도하고, 정부가 이를 철저히 감시하여,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자고 주장한다. 안철수에 따르면, 실패를 용납하고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실리콘밸리와 달리 한국 사회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즉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지 않는 사회이다. 이 지점이 안철수와 (자유주의) 좌파들의 차이이다. 좌파들은 국가가 소득 분배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결과의 평등’을 내세우는 반면에, 안철수는 기회의 평등을 강조한다.

 

안철수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키워드는 ‘책임’이다.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사회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 데서 생겨난다. 사람들이 안철수는 좋아하는 이유도 안철수가 성공한 기업인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대기업과 부유층은사회적 의무(고용 창출, 기부 등)를 다하지 않으며,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즉 안철수는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파악한다. 하지만 과연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안철수가 바라는 ‘공정한 시장경제’가 가능한 것일까? 즉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 심각한 불평등으로 치달은 이유는 누군가가 책임을 방기해서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따른 결과가 아니냐는 것이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늘리고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이유는, 미국과 FTA를 맺으려 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쟁자들을 누르고 ‘장기적으로’ 이윤을 확보하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현실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재벌들에게 싸구려 동정을 베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안철수의 생각이 현실로 거듭나려면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기업과 정부의 ‘책임’이라는 관점으로 파악하려는 태도를 넘어서야 한다. 그들은 ‘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일까? 문제는 자본주의의 구조다.

 

어떤 이들은 안철수 현상이 굉장히 새로운 현상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새로운 인물, 기존 정치를 바꿔줄 위대한 위인에 대한 열망은 반복되었다. 노무현은 기존의 썩은 정치인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이명박은 여의도 정치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선택받았다. 초선의원 비율도 60~70퍼센트에 달하는, 매번 새로운 물로 정치인 물갈이를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제 수조를 갈아야 할 때가 아닐까?

 

그리고 만일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착한 정치인이 등장해 기업들을 바르게 유도하고 감시하는 것만으로 경제민주화가 불가능다면, 경제민주화의 주체는 5년 임기의 대통령과 행정부가 아니다. 바로 자본의 횡포와 고용 불안정, 착취에 신음하는 우리들이다. ‘안철수의 생각’은 주어졌다. 이제, ‘우리들의 행동’은 무엇인가?

 


 

물론

안철수 역시

국가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역시

국가가 제도를

바꾸어

기업의

선택을

좀 더 약자를

배려하는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발상에

기초한다.


 

+ 본 칼럼 내용은 대학내일의 전체 의견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획 편집 정문정 기자 moon@naeil.com


조윤호 대학생

 

서울시립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다. 화제의 도서 <개념찬 청춘>을 냈다. 사회 변화를 꿈꾸지만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향하는 원리주의적인 좌파이다. 가수 아이유를 열렬히 좋아한다.

 


 

<대학내일>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