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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기타 칼럼 기고

난 이 드라마 헤피엔딩 반댈세.

나는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말드라마는 챙겨보는 편이다. 내가 요새 보는 주말드라마 중 그야말로 ‘대박’을 친 드라마가 있는데, 바로 하지원(길라임 역), 현빈(김주원 역) 주연의 ‘시크릿 가든’이다. 하루 종일 인터넷을 하는 나로썬 이 드라마의 인기를 인터넷을 통해 체험한다. 포털사이트에 시크릿 가든에 관한 기사가 달리면 ‘주원 앓이’를 한다는 여성들의 댓글이 무더기로 달리는 가하면, 다음 회의 내용을 추측하는 기사와 댓글들이 갑론을박을 벌이며 인터넷에 넘쳐난다.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수놓은 현빈의 트레이닝복과 현빈이 하지원을 구하기 위해 빗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탔던 차는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며, 드라마의 대사들은 유행어가 되어 드넓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을 떠돌며 쉼 없이 패러디된다. 일명 ‘시가폐인’들은 종영을 앞두고 끊임없이 연장과 시즌 2를 요구하며 울부짖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드라마는 그 구성과 내용에 있어서 진부하리만큼 뻔한 ‘재벌가 스토리’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백만장자 재벌 3세 김주원과 가난한 스턴트우먼 길라임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김주원은 왠지 모르게(?) 길라임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던 백만장자는 자신이 가진 능력(즉 재력)을 최대한 동원하지만 도도하고 당당한 길라임은 ‘미친 놈. 숨 쉬는 게 귀찮냐? 5번 척추 6번 척추 바꿔줄까?’라며 그를 빵빵 걷어차고, 그가 보낸 값 비싼 선물들을 죄다 돌려보낸다. 그러나 그럴수록 김주원은 길라임에게 더욱 빠져든다. 물론 이 와중에도 당연히 들어가야 할 요소, ‘집안의 반대’도 포함되어 있다. 김주원의 어머니 문분홍 여사는 길라임을 찾아가 돈을 건네거나 물을 뿌리며 그들의 사랑을 방해한다. 그러나 결국 길라임은 김주원을 사랑하게 되고, 이 모든 역경을 헤쳐 나가기로 굳게 결심한다! ‘가짜 재벌’과 ‘진짜 재벌’이라는 갈등 요인도 빠지지 않는다. 재벌 드라마에선 흔히 재벌의 명맥을 이을 자격이 없는 서자(<제빵왕 김탁구>의 구마준)나 굴러온 돌일 수밖에 없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역전의 여왕>의 하유미)이 등장하는 데, 그들은 언제나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 ‘진짜 재벌’을 위협하는 천박한 가짜 재벌의 역할을 담당한다.1) 시크릿 가든에서는 로엘 기업의 오너인 주원의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4번째 부인의 동생, 박 상무가 이 천박한 ‘가짜 재벌’의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결국 박 상무는 김주원을 몰아내려다 실패하여 자신이 몰락하고, 김주원은 사표를 낸 박 상무를 다시 고용하며 박 상무의 충정을 받아내는, ‘진짜 재벌’다운 아량을 발휘한다.(사실 이 부분은 아직 방영되지 않았고 내 추측이다.) 이처럼 시크릿 가든은 기승전결에 있어서 등장하는 갈등 구조와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식 모두 전형적인 재벌가 스토리를 따르고 있다.



그렇기에 시크릿 가든이 다른 재벌 드라마들에 비해 조금 더 ‘사회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면, 그건 이 드라마의 큰 틀, 전반적인 구성 때문이 아니라 정해진 구성을 조금씩 어긋나며 전개를 예측 불가능하게 하는 반전에 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은 시크릿 가든의 인기 요인에 대해 “신분차가 큰 커플이 부모의 반대 등 역경을 극복하며 아픈 사랑을 이어가는 구태의연한 멜로물의 구도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그것을 포장하는 대사가 감각적이며 거침이 없어 네티즌 세대의 구미에 잘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원의 과도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눈빛과 슬픔이 체화되어 있는 크고 동그란 길라임의 눈은 일상적인 윗몸 일으키기를 매우 ‘야하게’ 만드는 가하면, 김주원의 어머니 문분홍 여사가 길라임에게 물을 뿌릴 때 스턴트우먼의 운동신경을 발휘하여 물을 피한 다음, ‘죄송합니다, 다시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물 맞은 준비를 하는 장면은 눈물을 준비하고 있는 시청자에게 뜻밖의 웃음을 선사한다.



그러나 시크릿 가든의 상대적인 특별함은 이런 스토리텔링 상의 소소한 반전보다는 인물의 캐릭터에 의존하고 있다. 바로 김주원의 캐릭터이다. 김주원의 캐릭터야말로 이 드라마 최대의 반전이다. 그는 재벌이지만 서민성을 위장하지 않는다. 서민성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섣불리 서민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부유함과 그에 따른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기며 지배 계급에 ‘의식적으로’ 완전히 동화된 존재다. 아무것도 없던 서민에서 재벌로 레벨 업 하는 재벌 1세(<자이언트>의 이강모), 부를 물려받긴 했으나 이 부를 유지해야할 운명에 놓인 재벌 2세를 넘어 ‘부의 완성’에 도달한 재벌3세가 김주원이다. 재벌 2세 김탁구의 출생의 비밀을 담은 <제빵왕 김탁구>에서 서민성은 매우 중요하다. 유전자의 우월함(?)(내가 레알 제빵왕이다!)을 입증해야 하는 가짜 재벌(구마준)과의 경쟁에서, 평범하게 자라며 획득한 ‘서민성’은 승리의 비결이다. ‘왕자의 난’을 벌이고 있는 <욕망의 불꽃>의 왕자들에게도 지역주민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요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권력다툼에서 중요한 요건이다. 이 서민성은 창업주 김태진(이순재 역) 회장이 어릴 적 친구와의 약속을 지켜 자기 자식을 서민과 결혼시킬 때 작동한 논리이기도 하다.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을 통해 행복이 물질적 부 너머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재벌2세 드라마의 윤리였다.2) 하지만 김주원에게 필요한 건 지배계급으로써 서민을 이해하는 태도가 아니라, 철저히 지배계급의 윤리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김주원은 다친 길라임을 병원에 데려다주며 “사회지도층의 윤리란 이런 거야.”라고 말한다. 길라임이 자신을 좋아하냐고 묻자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라고 대답한다. “나 공부 못한다고 사람 무시하고 그런 사람 아니야”라는 말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러한 김주원의 캐릭터가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김주원과 길라임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인은 사실 어머니 문분홍 여사의 반대가 아니라, 김주원 자신의 확고한 ‘지배계급으로서의 계급의식’이다.3) 그는 계속 자신이 왜 길라임 같이 아무것도 아닌 여자를 좋아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중얼거린다. 김주원의 형 오스카(윤상현 역)가 김주원에게 말했듯이, 그에게 길라임은 “파리의 연인 패러디 그만두고 상처 받기 전에 그만 놔줘야 할” 여자에 불과하며, 어차피 그는 “선봐서 정략결혼 할” 운명이다. 이 사실을 주변 사람보다 김주원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는 여타 재벌2세들처럼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부여잡고 엉엉 울(<발리에서 생긴 일>의 정재민) 캐릭터가 아니다. 이런 이유로 김주원은 “내가 백설 공주냐.”는 길라임의 물음에, “아니, 인어공주. 그렇게 없는 사람처럼 있다가 거품처럼 없어져 달란 애기야. 이게 나란 남자의 상식이야.”라고 대답한다. 길라임은 왕자 만나서 성공하는 백설 공주가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으면 거품으로 사라질 인어공주이다. 길라임을 불러 아들을 만나지 말라고 호통 치는 문분홍 여사 앞에서는 “왜 괜히 드라마 속 비극의 여주인공을 만드세요. 저 잠깐이에요, 잠깐. 잠깐도 못 참으세요?”라고 말하며 길라임에게 상처를 준다.


즉 시크릿 가든은 어려운 현실을 뛰어넘고 사랑으로 계급 격차를 극복하는 여타의 ‘판타지적’ 재벌 스토리에 비해 좀 더 솔직하다. 그러나 드라마는 꿈과 희망 그리고 판타지를 부여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을 지니고 있는데, ‘신분 차이 때문에 결국 그들의 사랑은 실패했다.’는 결말은 너무 암울하지 않은가? 그래서 시크릿 가든의 작가 김은숙은 ‘판타지’를 도입하여 판타지를 현실로 전환한다. 바로 영혼 체인지이다. 영혼 체인지는 재벌 2세가 서민 체험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낱 서민 체험으로는 김주원이 길라임을 이해할 수도 없을뿐더러, 김주원은 애초에 길라임을 이해할 생각 자체가 없다. 그래서 작가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김주원으로 하여금 서민 체험이 아니라 그냥 서민이 되도록 만들며, 서민을 이해할 생각 자체가 없는 김주원이 강제로 서민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영혼 체인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가 길라임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고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은 영혼 체인지 이후부터이다. “인어공주, 너 말고 내가 하겠다.”며 사랑을 고백하고, 빚을 갚으라는 전화와 아버지가 없는 그녀의 슬픔에 눈빛이 떨리며 “그럴 줄 알았으면 세금 더 낼 걸 그랬다.”고 말하는 건 영혼 체인지 이후의 일이다. 사실 재벌2세들의 서민 체험은 그 이해의 방식이 매우 폭력적인데, 재벌은 서민을 체험할 수 있으나 서민은 재벌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크릿 가든의 영혼 체인지는 매우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을 통해 거꾸로 매우 평등한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김주원이 서민 체험을 하는 것처럼, 길라임 역시 새로운 결제 싸인을 만들어내며, 김주원이 쌀쌀맞게 대하던 박 상무에게 “목소리가 멋지십니다.”라고 칭찬하며, 90도로 인사하는 백화점 노동자들 한 명 한 명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직원을 성추행 한 변태를 두들겨 패면서 재벌 체험을 한다.



이런 ‘진정한 상호 이해’를 거쳐 김주원과 길라임은 서로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이들의 ‘혁명적’ 사랑은 ‘계급적 간극’을 사랑이라는 개인적 감정을 통해 봉합하는, 그래서 서민 여자가 남편 잘 만나 출세하는 스토리를 따르지 않는다. 길라임이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졌을 때, 김주원은 울먹이며 길라임을 태운 채 스스로 영혼 체인지를 선택한다. (드라마 상에서 비가 오면 이들의 영혼이 바뀐다.) 자신을 죽임으로써 사랑하는 상대를 살리는 김주원의 사랑이 다른 재벌들의 어설픈 봉합과 달리 ‘계급’을 극복하는 위대한 사건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길라임과 결혼하여 길라임을 지배계급으로 만들어주는 방식이 아니라 여태까지 누린 모든 것들, 그리고 앞으로 누릴 모든 ‘지배계급으로서의 특권’을 완전히 버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는 ‘영혼 체인지’라는 판타지로서만 가능하다.


난 사실 드라마가 여기서 끝나길, 즉 완전히 ‘새드앤딩’으로 끝나길 바랐다. 그러나 영혼은 다시 바뀌고, 길라임도 깨어났다. 나는 이 드라마의 결말이, 다시 길라임이 김주원의 부의 체계로 들어가는 식의 해피엔딩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주에 문제의 결말이 공개된다.) ‘혁명적 결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컨대, 남들은 모두 충격적이고 허탈하다고 했으나 내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 결말은 김은숙 작가의 <파리의 연인>과 김기호 작가의 <발리에서 생긴 일>이다. <파리의 연인>은 재벌2세와 서민 여성의 사랑이 모두 꾸며낸 판타지였음을 폭로하며 끝났기에 오히려 ‘현실적’일 수 있었다. 그 딴 거 전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드라마 속 드라마라는 형식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정재민(조인성 역)은 아버지의 반대로 결국 이수정(하지원 역)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총으로 발리에 있는 이수정을 살해하고 자살한다. 매우 충격적이겠지만, 이러한 결말은 계급 화해의 불가능성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영혼 체인지’를 통해 재벌과 서민의 현실적인 사랑을 보여준 시크릿 가든은 이들과는 다른 어떤 결말을 보여 줄것인가? 나는 주말이 매우 기다려진다. 특정한 결말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주인공이 그냥 결국 사랑을 이루어 부자로 행복하게 사는 ‘해피엔딩’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각주

1) 김연화, “아주 심금을 웃길 시크린 가든의 로맨틱 코드”, 오마이뉴스, 2011.01.06.(http://m.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05302)
2) 구둘래, “역전 불가능, 재벌3세는 알고 있다.”, 한겨레21, 2010.11.26. 제 873호.
3) 김주원은 심지어 극중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회, 경제 체제에서 노동 조직에서의 부의 분배방식과 수량의 다툼에 따라 생기는 인간집단이 뭔지 알아? 바로 계급이야. 그들이 1년에 1억씩 쓰면서 원하는 건 딱 두 가지야. 불평등과 차별. 군림하고 지배할 수 없다면 철저히 차별받기를 원한다고. 그게 그들의 순리고 상식이야.”

 

<오마이뉴스>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