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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기타 칼럼 기고

한미FTA, 찬성해야 돼 반대해야 돼? : 한미FTA에 반대하는 이유

이명박 정부는 올해 3월 15일부터 한미FTA를 발효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미 FTA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것 같다.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이 한미FTA 재재협상 및 폐기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투자자 국가 소송제를 중심으로 청와대와 여당, 야당 사이에서 그리고 찬반 입장에 선 전문가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정보를 수용하는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찬성 입장과 반대 입장 중 어느 것이 맞는 이야기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미 FTA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논리 모두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나름대로 정교하기 때문이다. 일단 한미 FTA라는 사안 자체가 찬성 혹은 반대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다. 한미 FTA의 핵심은 한국과 미국 간의 무역장벽을 낮추고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다. 개방되는 시장에는 상품시장은 물론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 등 광범위한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FTA 자체에 대한 찬성, 반대 논쟁을 넘어서 무엇을 개방하고 무엇까지 개방하지 않는 것이 한국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예컨대 자동차는 이렇게 해야 이익이고 섬유는 이렇게, 쇠고기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한국에게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이런 주장은 FTA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협상을 잘하면’ 찬성한다는 주장이다.

 

어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FTA를 맺기에는 ‘아직’ 경쟁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어떤 전문가들은 협상이 너무 졸속으로,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국민에게 통보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 역시 FTA 자체에 대한 반대라고는 볼 수 없다.

 

이런 와중에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도 없는 각종 수치와 통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기 어려운 요인 중 하나이다. 여러 민간연구소나 정부기관들은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니 FTA의 경제효과가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FTA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신뢰할 수 없고 잘못된 계산법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첨예한 논쟁에서 여러 논리가 팽팽하게 맞부딪히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모든 논리가 ‘국익’을 내세우고 있었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소비자 혜택, 일자리 증진, 경제선진화 등을 내세우며 한미 FTA가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시민단체와 진보 언론들은 한미 FTA로 인해 한국 경제의 잠재적 성장기반 모조리 잠식될 것이며 공공영역이 파괴되어 노동자, 농민, 서민 등 국민 대다수가 불행한 미래를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한미 FTA를 지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반대해야 하는가? 너무 혼란스럽다. FTA에 관한 모든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얻거나 여러 통계 수치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방법은 구체적인 조항 하나하나에 대해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더라도, 복잡한 통계수치를 잘 이해하지 못해도, 한미 FTA를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 길이란 한미 FTA를 추진하는 정부의 ‘근본 철학’에 대해 동의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고민하는 것이다. 정부가 한미 FTA를 체결하면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들을 ‘진짜로’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정부가 FTA를 추진하면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것들을 과연 내가, 더 나아가 우리가 원하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미FTA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는 데 있어 소비자에게 얼마나 혜택이 돌아갈 것인가 혹은 일자리가 얼마나 늘어날 것인가 같은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우리 대부분은 누구의 주장이 맞는 말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없다. 차라리 정부가 FTA를 추진하는 근본 철학에 주목하여 그것의 당위성을 따져 보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 가지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한미FTA를 처음 추진한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왕 그렇게 될 것이라면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더 좋은’ 국가운영에 있어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기자퇴임한 노무현을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한미 FTA를 해서 우리 경제가 좋아질 것이냐, 또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그것을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느냐, 그런 점에 대해서는 대통령께서 확신을 가지실 수 있었던가요?” 오연호 기자가 이렇게 묻자 노무현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것은 아무리 열심히 연구하고 분석하고, 흔히 말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도 여전히 불확실성은 남아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뛰어드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남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 경제가 이렇게 운동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FTA를 회피해 버려도 함께 갈 수 있느냐? 낙오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불확실하지만 뛰어들어야 적어도 낙오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또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일찍 뛰어들면 남들보다 앞서 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지요.”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인식하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이런 인식을 가지게 된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세 가지란 경제선진화론, 개방론, 미국시장 선점론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일단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의 논리를 따라가 보자.

 

현재 한국은 고학력 실업이 점점 확산되고 있고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로 성장률과 성장잠재력이 모두 둔화되고 있다. 게다가 양극화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이를 통한 도약이 필요하다. 또한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세계시장에서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입장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경제 시스템을 선진화해서 한국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주장을 ‘경제 선진화론’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경제선진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개방’이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 즉 대외무역을 통 경제 발전을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잘 먹고 잘 살려면 수출을 늘리는 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이를 위해 무역 장벽을 낮추고 시장을 개방하는 FTA로 가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다.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미 FTA를 통한 시장 개방에 주력하고 있다. FTA 열등생인 우리는 이제라도 FTA라는 세계적 조류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개방을 통해 경쟁력 있는 외국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한국 기업들도 이들과의 경쟁을 위해 기업 체질을 변화시킬 것이고, 우리의 경제 시스템 역시 선진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이것을 ‘개방을 통한, 즉 외부 쇼크에 의한 내부개혁’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와 FTA를 맺어야 하는가? 시장 개방 효과를 높이려면 동시다발적인 FTA 추진이 가장 좋지만, 일단 미국과의 FTA가 급선무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므로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경쟁국 기업들이 미국과 먼저 FTA를 맺어 미국시장을 선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미국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또한 미국은 가장 ‘선진화된 경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시장이다. 미국은 지식기반의 3차 산업인 금융, 서비스 시장이 가장 발달한 나라다. 그리고 현재 세계시장에서 가장 큰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금융과 서비스업이다. 한국이 미국과의 FTA를 통해 금융, 서비스 시장을 개방하고, 그 효과로 선진적인 경제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면 침체에 빠져 있는 한국경제를 살릴 수 있으며, 제조업 분야 등 1,2차 산업에서 한국을 따라잡고 있는 신흥 성장국과도 격차를 벌리면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개방은 시장을 넓히는 전략입니다. FTA와 적극적인 해외 투자, 이런 것인데 개방도 이제는 단순히 소극적으로, 수동적으로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능동적으로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교류하지 않은 문명은 전부 쇠약하고 소멸했습니다. 세계의 역사, 이른바 물질적 측면의 세계 역사는 통상 국가가 주도해왔습니다. 물질문명을 주도하는 국가가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이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지배받지 않으려면, 지배력에 대항하려면 적어도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통상국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선진적 통상국가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방하고, FTA도 해야 합니다.”

 

“당선자께서 강조하시는, 대한민국을 동북아 중심 국가로 만드는 전략으로서 FTA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FTA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국가의 경쟁력 강화에 중요한 전략으로 삼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 중심 국가의 일원이 되려면, ‘개방형 통상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주변 국가들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개방형 통상국가가 되려면 WTO 차원의 다자 체제 무역협상은 물론이고, FTA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다자 체제에만 의존해 온 일본과 중국도 벌써 FTA를 체결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논리에 따라 한미FTA가 한국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수언론과 FTA를 찬성하는 지식인/전문가들도 역시 같은 논리로 한미 FTA에 찬성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미 FTA 추진과정이 민주주의적 절차에 위배된다거나,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추진한다는 비판은 정부 관료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들은 “그럴 시간이 어딨어?”라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모든 국민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하고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손익관계를 계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하루라도 빨리 미국시장을 선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개방과 선진 시스템 구축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고, 국가를 위한 필수과제였다.

 

이런 믿음 아래에 노무현과 경제 관료들은 모든 반대를 외면하고 2007년 4월 2일 한미 FTA 협상을 최종 타결했다. FTA 협상 전반을 기획하고 추진했던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종은 협상이 결렬될 위기에 처하거나 국내로부터의 격렬한 정치적 반대에 직면 때마다 대통령의 위대한 결단이 빛을 발했다고 했다. 노무현의 결단력을 무모하고 위험한 치기라고 비난<조선일보>와 한나라당마저 한미 FTA가 최종 타결되던 날만큼은 대통령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위대한 결단을 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의 이러한 결단은 매우 위험한 신념’에 기초하고 있다.

 

노무현이 한미FTA를 추진한 이유는 한 마디로 한미FTA를 경제도약의 기회로 삼아 양극화를 비롯한 여러 경제 문제를 혁신적으로 극복해 보자는 것이었다. 노무현이 한미 FTA를 처음 공론화한 신년 연설의 주제가 다름 아닌 ‘양극화 해소’였다는 점은 이래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에 동의할 수 있을까?

 

과연 한미 FTA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FTA가 추구하는 대규모 시장 개방, 그리고 모든 영역의 시장화를 경험한 적이 있다. 바로 1997년의 IMF 이후의 경제개혁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사회에서 양극화가 심하게 진행되기 시작한 때는 바로 IMF 이후였다. IMF 이후 한국 노동자들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기업의 비정규직 채용은 일상화 되었다.

 

IMF 이후 우리 사회에 나타난 양극화의 심화는 시장개방과 상시적 구조조정 같은 신자유주의정책의 ‘결과’다. 그리고 한미 FTA는 IMF 경제개혁에 절대 뒤지지 않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정판이다. 한미 FTA로 인해 서비스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공공 영역이 모두 개방되면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서비스 분야도 시장 원리에 의해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한번 시작된 후에는 정부가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방법이 없다.

 

한미 FTA가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은 경제성장의 결과가 언젠가는 분배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기초다. 일단 파이를 키우고 나면 그 커진 파이를 다 같이 나누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이 분배로 이어진다는 경제학에서의 낙수 효과(Trickle down)가 과연 현실에서도 작동할까? 실제 현실에서 경제성장의 결과는 국가권력의 개입이 없이는 집중되기만 할 뿐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미 FTA 협정문은 정부의 시장 개입을 강력하게 저지하는 조항들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한미FTA로 인한 경제성장의 결과가 노동자, 농민, 서민들에게 ‘자발적으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또한 한미FTA를 통해 우리 경제 시스템을 선진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도 동의할 수 없다. 과연 무엇이 ‘선진적’인 것일까? 미국식 경제 시스템은 두 가지 의미에서 선진적이지 않다. 첫 째, 한미 FTA를 통해 커질 것이라 기대하는 경제성장의 파이는 그렇게 실속 있는 파이가 아니다. 미국식 선진 경제 시스템을 대표하는 금융 산업은 사실 실물 경제에 기초하지 않은 채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산업이다. 이런 ‘돈 놓고 돈 먹기’는 언젠가 반드시 경제공황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2008년에 미국에서 발생해 전 세계로 확산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둘째, 공공영역마저 시장에게 맡길 경우 돈 없는 사람들은 점점 살기 힘들어진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국은 돈이 없어서 아파도 병원에 못가는 사람들이 즐비한 나라다. 과연 이런 모습을 ‘선진화된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경제성장률이 몇 % 올랐고 주가지수가 얼마라는 것만으로 그 체제를 ‘선진적’이라 말한다면, 그 ‘선진화’는 너무 비인간적이다. 그런 선진화라면 안하는 것이 낫다.

 

이것이 바로 한미FTA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한미 FTA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도 반대할 수 있다. 한미 FTA를 하면 한국과 우리가 얻을 수 있다는 바로 그것들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것들을 얻고 싶지 않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대학문화> 45호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