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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기타 칼럼 기고

학생회가 '복지'조직 이라굽쇼?

학생회가 '복지'조직 이라굽쇼?

 

1. 총학생회의 한대련 가입 논란

 

작년 말 조용하기로 유명한 우리 시립대를 들썩이게 한 최고의 이슈는 ‘한대련’이다. 정확히 말하면 ‘총학생회의 한대련 가입’이다. 시립대 총학은 작년에 있었던 등록금 투쟁에 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이라는 대학생단체에 속해 있는 대학교 총학들과 함께 참여했다. 총학은 한대련이 주도한 등록금 투쟁 덕분에 서울시립대가 반값 등록금을 실현할 수 있었다는 이유를 들어 한대련에 가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총학은 대학생 이슈에 다른 대학들과 연대하고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대학생 조직에 가입하는 것이 더 좋다 학생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이에 대해 온 오프라인 상에서 수많은 논란이 있었다. 학생들은 총학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지도 않고 임기 말에 무리한 일을 추진한다며 반발했고, 총학이 주최한 ‘한대련 가입 찬반 토론회’마저 보이콧했다. 결국 11월 29일에 열린 정기 대의원회의에서 정족수 미달로 ‘21세기 한국 대학생 연합 가입 여부에 관한 건’이 상정되지 않음으로써 총학의 한대련 가입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한대련 가입에 관한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 총학에는 한대련과 함께 등록금 투쟁에 참여했던 전 총학의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권 재창출’의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 총학의 정책을 현 총학이 다시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서울시립대 학생들은 학교의 주권자로서 자신들의 대의 기구인 총학의 정치조직 가입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나 역시 서울시립대의 평범한 학생 중 한 명으로, 이 문제에 대한 소견을 밝히기 위해 글을 쓰게 되었다.

 

2. 학생회가 '복지'조직 이라굽쇼?

 

총학이 주장한 대로 한대련 가입이 그렇게 학교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학생들은 왜 그렇게 반대한 걸까?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총학이 학생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일을 밀어붙였다는 절차적 문제다. 둘째, 총학생회가 가입하려는 한대련의 정체성 문제다.(한대련은 민주노동당과 연결된 종북 좌빨들이다!!) 셋째, 학생회의 임무는 학생들의 복지와 같은 ‘학내’ 문제지, 그런 정치조직에 가입해 정치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 세 가지 비판 중 세 번째 비판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세 번째 비판이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생의 대의 기구인 ‘총학생회의 성격이 어떠해야 하느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절차적 문제야 절차를 제대로 거치면 해결할 수 있다. 정치조직 가입 자체에 대한 반대는 아니다. 두 번째, 한대련의 정체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만약 한대련이 종북좌빨 조직이라는 이유로 한대련 가입에 반대한다면, 한대련이 아닌 건전한 보수 대학생조직이나 진보 대학생조직에 가입하는 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 역시 정치조직 가입 자체에 대한 반대는 아니다. 총학 입장에서 한대련 가입을 위해 설득하기 제일 어려운 학생들은 학생회가 ‘복지’ 제공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다.

 

그렇다면 이 가장 설득하기 어려운 논리, 학생회가 복지 제공자의 역할을 해야 하며, 정치조직에 가입하여 정치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과연 정당한가? 이는 사실 생각보다 거대한 문제다. 지금 현재 대학의 총학생회는 정치조직이 되느냐 복지 제공자의 역할을 하느냐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전자를 주장하며 정치활동을 하는 총학생회를 흔히 ‘운동권’이라 부른다. 운동권 총학은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며 시위 데모를 하고, 다른 운동권 총학들과 함께 반정부 투쟁에 앞장선다. 후자를 주장하며 정치활동을 하는 총학생회를 흔히 ‘비(운동)권’이라 부른다. 비권 총학은 학생회가 정치조직이 되어선 안 된다고 비판하며 학생들에게 학내 문제에 더 신경 쓰겠다는,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내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총학생회가 단지 ‘복지 제공자’의 역할만 담당한다면 학생회는 해체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학생복지위원회나 학생처가 총학생회의 역할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 ‘정치활동’을 배제한 학내 ‘고유’의 문제, 학생 ‘복지’라는 것이 있는가? 우리는 대학생이기 이전에 시민이다. 시민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법과 제도의 영향과 속박을 받는다. 이 법과 제도는 누군가의 권익을 침해할 수도, 신장시킬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침해받는 권익이 개선되길 바란다면 우리는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하며. 우리의 대표자들은 이를 위한 투쟁에 앞장서야 한다.

 

총학생회 역시 마찬가지다. 비싼 등록금과 비싼 전월세비는 대학생들의 허리띠를 졸라매는, 우리의 권익을 침해하는 문제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단지 학생들의 ‘복지’ 문제에 불과한가? 법과 제도가 바뀌지 않고 있는데 무슨 돈과 자원이 있어서, 무슨 힘이 있어서 학생들의 복지에 주력할 수 있다는 건가? ‘학내 고유의 문제’에 더 신경 쓰겠다고? 당신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는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로부터 자유로운 섬나라라도 되는가?

 

FTA에 비교해보자. 어떤 이들은 FTA가 양 국 간 상품, 서비스 교환을 자유롭게 하자는 협정이므로, 이는 경제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양 국 간 상품과 서비스 교환을 활발히 하기 위해서는 양 국의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법과 제도가 바뀌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이익을 얻는다. 정치란 이 어긋난 이해관계들을 조율하고, 어떤 이해를 따를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다.

 

총학생회의 활동 역시 마찬가지다. 등록금 인하가 단순한 학내 문제인가? 단지 학생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문제인가? 학교와 쇼부 친다고 등록금이 내려가지는 않는다. 등록금과 관련된 국가의 정책, 법,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를 상대로 하는 ‘정치’투쟁이 필수적이다. 우리들의 권리를 대변해 줄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정치활동이 필수적이다. 정치로부터 독립된 학내 문제란, 학생들의 복지란 없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이 역할을 굳이 총학이 할 필요는 없다. 학복위나 학생처만 있으면 된다. 돈 들고 귀찮은 데 뭣 하러 학생회까지 뽑는단 말인가?

 

한번만 더 FTA에 비교해보자. 앞에서 밝혔듯이 FTA는 정치적인 이슈인데 왜 어떤 이들은 FTA가 마치 단순한 경제문제인 것처럼 주장할까? 이러한 주장은 굉장히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소비자한테 도움이 돼. 국익에 도움이 돼.) 사실은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파적인’ 역할을 한다. FTA로 이해를 보는 세력들은 FTA가 마치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냥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이익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의도와 무관하게 그런 효과로 기능한다.

 

총학생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권 총학은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이런 주장을 통해 사실 굉장히 정치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생의 권익을 침해하는 정책과 법과 제도를 그대로 내버려두겠다는 의미이니, 이는 사실상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정치활동’이다. 또한 수많은 비권 총학들은 자신들이 정치활동을 지양한다며 지지를 얻어놓고는, 임기를 마치고 나선 정치권에 줄을 대기 일쑤이다. 민주당 슈스케에 참여한 전남대 전 총학생회장 박은철은 운동권 총학을 비판해놓고 총학 경력을 이용해 정치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차라리 정치성향을 드러내고 이를 학생들에게 평가받는 것이 낫지, 정치활동 안 한다면서 총학생회장이 된 후 이를 스펙으로 삼아 정치활동을 하는 건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이처럼 총학생회의 역할을 복지 제공자에 국한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대학생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총학생회는 정치활동에 기꺼이 뛰어들고, 대정부 투쟁에 앞장서야 한다. 또한 정치활동을 ‘안 하는’ 총학 같은 건 없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활동을 ‘어차피’ 하고 있다.

 

3. 그렇다면 총학의 한대련 가입은?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은 아마 내가 총학의 한대련 가입에 찬성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찬성한다. 그러나 ‘서울시립대 총학’의 ‘한대련 가입’이라는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는 우려를 표명할 수밖에 없다. 나는 총학이 제시한 ‘한대련 가입의 이유’에 공감한다. 반값 등록금 같은 쟁점이 전국적으로 이슈화 되는 데는 한대련의 역할이 컸다. 그리고 앞에서 밝혔듯이 나는 ‘학생 복지를 위한 조직’인 학생회가 ‘정치조직’인 한대련에 가입하면 안 된다는 주장에는 일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한대련이 정치조직이라는 이유로 한대련 가입에 반대하는 학우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정치조직은 자신들만의 조직논리와 조직사업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만일 총학이 한대련에 가입한다면 필연적으로 한대련의 조직논리와 한대련에서 추진하는 조직사업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서 한대련이 벌이는 사업들에 동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사업들에 동원되다보면, 자연스럽게 학내 문제나 학내에서 해결해야 할 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등록금 투쟁을 예로 들어보자. 등록금 투쟁은 앞에서 말했듯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부를 상대로 하는 싸움이다. 하지만 미시적인 차원에서 보면 학교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한대련이 조직하는 거시적인 투쟁에 집중하느라 학교 측과의 싸움에 소홀해질 수 있다. 한대련을 기반으로 등록금 투쟁을 전개했던 고려대학교 총학의 사례를 살펴보자. 고려대 총학은 학교 내에서의 싸움, 재단을 상대로 한 등록금 투쟁을 위해 구체적인 싸움의 수단을 정해야 하는 시점에서 한대련의 조직사업인 ‘새내기콘서트’, ‘한대련 의장 출마’와 같은 쟁점들로 역량을 분산시켰고, 이로 인해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다. 새내기 콘서트나 한대련 의장 출마는 한대련이라는 조직의 재생산에는 시급한 문제였을지 몰라도 대다수 고려대 학우들이 생각하기에 총학이 주력해야 할 쟁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대 총학도 한대련에 가입하고 나서 이러한 상황에 처해질지 모른다.

 

정치조직인 한대련은 총선과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 많은 사업들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반값 등록금 의제를 총선, 대선과 한나라당, 이명박 심판과 연결하여 제시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말 그대로 지금은 정치조직이 조직사업을 벌이기 ‘제철’인 시기이다. 그런 와중에 한대련에 가입한다면 이 행사 저 행사 동원되기 바빠 학내 문제와 학내에서 해결해야 할 여러 사안들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학생회의 집행부 인원은 정해져 있고, 동원할 수 있는 자원 역시 한정적이다. 그런 와중에 한대련에 가입하는 것은 총학의 의도와는 별개로 학내 문제들에 소홀해지는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물론 앞에서 열심히 이야기했듯이 나는 학생회가 정치조직에 가입하여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른 학교 총학생회와의 연대,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분명히 장점이 있다. 하지만 만약 그로 인해 학교 내의 문제에 소홀해진다면, 그 결과는 큰 파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총학은 ‘운동권 총학이 정치투쟁 하느라 학교 내팽개쳤다’는 비판에서부터 결국 ‘한대련 탈퇴’를 내건 총학의 집권까지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총학이 그런 결과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한대련에 가입하고 싶다면 학내 문제와 한대련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지금 규모의 집행부 인원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정된 인원과 자원만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나, 한대련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만들어 그들에게 관련 업무를 일임하던지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발표하여 학생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가 있을 경우 나는 총학의 한대련 가입에 기꺼이 동의할 수 있다.

 

<대학문화> 45호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