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 /기타 칼럼 기고

<FEMINISM in Front Line>

페미니즘? 여성주의?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접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페미니즘에는 항상 ‘여성 가족부’, ‘꼴페(꼴통 페미니스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남성들과 싸우려고 억지 부리는 여자들이라는 이미지도 있다. 페미니즘을 설명할 때 따라다니는 이러한 수식어와 이미지는 온당한 것일까?

 

<대학문화>는 페미니즘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우리 자신은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었고, 이 목소리를 서울시립대 구성원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찾아온 많은 사람들과 함께 듣고 싶었다. 그래서 2012년 9월 12~13일 이틀 간 대중강연회 <FEMINISM in Front Line>를 준비했다. 그날 강연회에 오지 못했던 분들, 그리고 강연회에 왔지만 그 날의 강연과 토론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 싶은 분들을 위해 강연회 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성노동을 아시나요?

 

‘성노동?’ 많은 이들에게 낯선 단어다. 사회는 성노동을 성매매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매매여성에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달라고 주장한다. 성노동자 권리모임 GG의 사미숙 활동가를 페미니즘 강연회 첫째 날 연사로 초청했다. 성노동이란 무엇이며, 성매매 여성을 성노동자로 부를 때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성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

 

사미숙 활동가는 성노동이 노동이 아니라 비윤리적인 행위로 매도당하는 현실에 대해 비판한다. 성매매가 왜 불법인지에 대해 정부와 법원이 윤리적 잣대, ‘미풍약속’의 이유 밖에 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운동도 성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다. 성노동자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하려고 했지만, 민주노총은 가입을 거부했다. 사미숙은 노동운동이 노동을 ‘위계화’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그는 여성들의 보살핌 노동, 감정노동도 노동으로 인정받는 상황에서 성노동 만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현재 사회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태도라고 덧붙인다.

 

여성들조차 성노동을 노동이 아니라 비윤리적인 행위로 생각한다. 사미숙에 따르면, 여성들은 ‘나는 깨끗한 여자이고 순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성노동자들을 인정하지 못한다. 심지어 페미니스트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주로 유통되는 페미니즘은 성매매를 ‘여성의 상품화’라고 단정 짓는다. 여성단체들이 반 성매매 운동, 탈 성매매 운동에 앞장선다. 이런 이유 때문에 평택을 비롯한 성노동 단체들은 여성단체를 굉장히 싫어하고, ‘주류’ 페미니즘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사미숙도 탈 성매매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성매매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성단체가 주도하는 이 탈 성매매 정책은 모든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가 구원해줄게. 우리가 다른 살 길을 찾아줄게.” 하지만 성매매를 노동으로 선택한 이들까지도 억지로 ‘구원’해주려는 태도가 올바른 것일까?

 

성매매특별법과 성노동자들의 투쟁

 

성노동자들의 현실이 사회에 알려지고, 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세상에 드러난 계기가 2004년 노무현 정부의 성매매특별법 제정이다. 경찰은 성매매를 강력하게 단속했고 많은 성노동자들이 직업을 잃었다. 사미숙은 이 성매매특별법을 비판한다.

 

노무현 정부가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한 이유는 성매매를 강요받는 여성들의 실태가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감금당한 채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불이 나 성매매 여성들이 타죽는 사건이 발생하자 노무현 정부는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과정에서 성노동은 곧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사미숙은 성매매를 무조건 폭력이라고 정의하는 공식에 반대한다. 성매매가 폭력이라면 누가(성매매 여성이) 성매매를 하겠냐는 것이다. 성매매 고객과 성노동자 사이의 폭력은 발생할 수 있으나, 이는 젠더 위계화(남성과 여성 간의 위계)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지, 성매매 자체가 곧 폭력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성매매 특별법을 제정한 또 다른 이유는 미 국무부가 발표하는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의 내용이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이 안 좋은 성적을 기록하자, 정부는 인신매매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성매매 단속에 나섰다. 이로써 성매매가 곧 인신매매라는 도식이 등장했다. 그러나 길가는 여자를 납치하여 포주에게 팔아넘기는 인신매매는 성매매의 ‘일부’이다. 다른 형태의 다양한 성매매가 있는데, 이들 모두를 인신매매로 볼 수는 없다.

 

성매매 특별법이 그 목표인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보호’를 달성했을까? 성매매 단속과정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유린당했다. 경찰들이 성매매 여성들을 하대하고, 범죄자 취급한다. 고객들이 돈을 안 주거나 폭행을 일삼지만 불법이라 신고도 하지 못한다. 콘돔이 증거로 쓰인다는 이유로 고객이 콘돔 사용을 거부하고, 여성도 콘돔을 꺼리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들이 질병에 노출될 위험도 늘어났다. 집창촌이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 모텔, 남성의 집에서 작업을 하는 성매매 여성들도 위험에 노출된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여성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다. 불법이라 위험에 처해도 신고도 하지 못한다.

 

성노동자와 성노동에 대한 편견과 오해

 

사미숙은 성노동자와 성노동에 대한 다양한 편견과 오해를 소개하고, 이를 하나씩 반박했다.

 

1) 시위에 나온 성매매 여성들은 포주가 동원한 것이다?

업주는 성매매 여성들 입장에서 동료이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성매매 여성들이 포주의 동원 때문에 시위에 참가하는 게 아니라 서로 공생하기 때문에 참가하는 것이다.

 

2) 성매매 말고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성매매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와서 “그 일 말고 다른 일도 할 수 있지 않나요?”라고 물으면 어떤 기분일까? 성매매 여성들도 고민 끝에 직업을 선택한 것인데 너무 쉽게 여성들에게 다른 직업을 권유한다. 또한 성 행위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몸은 물론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 고객과 타협하는 기술 등 전문성이 필요하다. 직업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성매매 말고 다른 일을 하라는 말을 한다.

 

3) 그렇게 떳떳하면 왜 시위 할 때 얼굴을 가리나?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한 게 아니라 사회의 낙인이 가족들에게 피해를 끼칠까봐 얼굴을 가린다.

 

4) 범죄자들이 무슨 할 말이 있어?

이것이 왜 범죄인가에 대한 합당한 근거가 없다. 단지 법이 그렇게 정해놓았을 뿐이다.

 

5) 성은 사고팔 수 없는 것 아닌가? 장기매매와 혈액 매매가 불법인 것처럼?

성을 파는 것과 몸을 파는 것은 다르다. 성매매는 성적 서비스를 거래하는 것이지, 몸을 파는 게 아니다.

 

6) 노동이란 무엇인가를 생산한다는 뜻인데 성노동을 무엇을 생산하는가?

쾌락을 생산한다. 물질만 상품이 아니며, 물질만 사고 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감정노동, 보살핌 노동도 존재하지 않는가?

 

성노동자들의 요구

 

성노동자들의 요구는 성매매의 합법화와 비범죄화다. 집창촌 성노동자 조직인 한터여종사자연맹은 합법화를 주장한다. 반면에 사미숙이 활동하는 성노동자 권리모임 ‘지지’는 비범죄화를 주장한다. 합법화는 성노동자들이 국가에 등록하고, 국가가 그들을 관리하는 정책이다. 합법화란 성매매가 가능한 영역을 설정하는 것인데, 이는 그 영역 밖의 성매매를 불법으로 만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사미숙은 비범죄화를 지지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여성만 아니라 트랜스젠더, 남성을 포함한 다양한 성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미숙은 성매매가 성 상품화이며, 따라서 성매매를 인정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타협하는 행동이라는 반자본주의 단체들의 주장도 비판한다. 자본주의 하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상품을 소비하면서 노동자로 살아간다. 이 모두 자본주의와의 타협인데, 성노동자들한테만 그런 낙인을 찍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성 노동자들이 왜 ‘노동’이며 어떤 생산성을 창출하는지 알려고 파악하는 등 머리로 운동하지 말고, 성노동자들을 지지해야 한다고 느끼면서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중들의 질의응답

 

성노동이 워낙 논쟁이 많은 주제인 만큼 강연이 끝나고 질문이 이어졌다. 중요한 질문들을 추려내어 정리했다.

 

1) 국가가 관리하는 합법화가 아니라 비범죄화를 주장했는데, 성노동자와 고객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더 좋지 않나?

성매매 노동자들에 대한 낙인이 심한 우리나라의 경우, 성노동자들이 선뜻 국가의 건강검진을 받기 쉽지 않다. 국가가 보조를 해서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것은 좋지만, 이들을 등록하여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콘돔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또한 성노동자의 인권을 따로 생각하기보다, 사회 전체의 인권 의식이 높아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2) 성매매는 자유로운 성적 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성의 개방, 자유로운 성을 권장하기 위해 성매매가 궁극적으로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엇인가가 상품으로 거래되는 자본주의 사회 전체를 문제 삼아야 하는 것 아닌가. 성노동자들을 억압한다 해서 세상이 더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폐해가 사라질 때 성노동이 안고 있는 문제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3) 일반적으로 포주와 성매매 여성들의 관계는 대립 관계가 아닌가?

물론 여성들을 착취하는 업주가 있다. 하지만 공동의 이익을 위해 손을 잡을 수도 있다. 국가가 성매매라는 산업 자체를 탄압하기 때문에 공동의 이익이 발생한 것이다.

 

4) 성 산업이 발달한 일본의 성노동 운동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일본 정부는 성매매 단속을 심하게 하지지 않는다. 불법이긴 하지만 폭력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경찰이 개입할 뿐이지, 우리나라처럼 갑자기 단속 한다던가 함정수사를 하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일본 성노동 운동은 투쟁보다는 건강 문제에 집중을 한다.

 

5) 성노동을 노동이라고 파악하면 노동이라는 단어가 너무 넓어지는 것 아닌가? 용역깡패도 노동자고, CEO도 노동자이고, 거지도 노동자인가? 노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지 않나

성노동 이론을 개발해야할 필요가 있다. 같은 의미에서, 여성들이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무보수로 했던 노동들(예컨대 가사노동)의 가치를 따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언어를 만드는 작업이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언어를 찾는 것도 일이지만 너무 당연한 것을 이론의 틀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선입견, 편견, 도덕주의를 걷어내고 생각한다면 쉬운 일인데 이러한 움직임 없이 왜곡된 틀 안에서 설명을 요구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사미숙은 질의응답까지 마무리하고 난 뒤, 남성이 성노동 운동을 지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성매매를 하고 싶으니까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하자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을 깨자! 사미숙은 성 노동자들도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으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오늘 이 자리에 온 사람들이 ‘함께’ 만들자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성애중심주의의 틀에 갇힌 한국 사회

 

우리는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사회의 법과 제도도 이러한 이성애주의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상가족’이란 남성인 아버지, 여성인 어머니, 그리고 자식들이 구성하는 가족이다. 그러나 과연 고유하고 변하지 않는 성 정체성을 지닌 남성, 여성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하는 이성애만이 사랑인 걸까? 한국 사회에 퍼져 있는 이성애중심주의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진보신당 전(前) 성정치위원회 위원장 최현숙 활동가를 페미니즘 강연회 둘째 날 연사로 초청했다. 동성애, 트랜스젠더, 무성애자, 폴리아모리 등 다양한 성정체성이 이성애에 가려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신, 남자야 여자야?

 

최현숙 활동가는 한 사람을 ‘남자’ 혹은 ‘여자’로 정의하려는 이분법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우리는 남성스러운 여성, 여성스러운 남성을 보며 ‘너 남자야 여자야?’라고 묻는다. 하지만, 남자는 무엇이고 여자는 또 무엇인가? 최현숙은 남자에서 여자로(Male to Female), 여자에서 남자로(Female to male) 성별을 바꾼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강연을 듣는 청중들에게 이 사람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었다.

 

우리는 성기, 수염, 목젖, 가슴, 몸의 굴곡 등을 통해 어떤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판단한다. 위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남자 혹은 ‘완전한’ 여자가 아니다.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사람에게 우리 사회는 가혹하다. 자신을 남성이라 생각하지만 여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계집애가 왜 그러냐.”는 말을 계속 들으며 자란다. 여성이 시끄럽고 활발하고 적극적이면 항상 혼이 난다. 유치원에서는 파란색이 아니라 분홍색 옷을 입어야 하고, 남녀가 구분된 학교에서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 자신을 남성이라 생각하는 아이가 치마를 입고 여학교를 다니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교복을 피하기 위해 학교에 가서 체육복을 입고, 선생님들은 이들을 계속 혼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사정을 설명하기 힘들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비행청소년이나 저소득층이 된다. 따라서 성기 성형을 할 비용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40세나 50세가 되어서야 겨우 비용을 마련하여 수술을 받는다.

 

한국의 동성애자 인권 운동

 

동성애자 인권 운동은 1993년 처음 한국에 등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현실은 열악하다. KBS에서 성전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토크쇼를 준비했으나 종교단체나 학부모단체, 바른 성생활 단체 등의 반대로 중단되었다. 게이커플이 등장하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도 일부 장면들이 삭제되고 방영되지 못했다.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동성애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유럽의 몇몇 기독교 국가에는 동성애금지법이 있었기 때문에 이 법을 철폐하는 것이 동성애자 인권 운동의 목표였다. 이 법이 없어진 이후에는 동성애 차별 금지 법안 제정, 동성애 결혼 허가 법안 제정이 동성애자 인권 운동의 주된 목표로 등장했다.

 

반면에 한국은 동성애를 금하거나 허하는 법안은 없다. 그렇다고 동성애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일하게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민국 국민은 성별, 피부색, 성 정체성 등에 의해서 차별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이 규정에 강제성은 없다.

 

동성애자/성소수자 인권 운동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작년에 있었던 학생인권조례 운동이다. 서울에서 청소년들이 직접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학생인권조례를 발의했는데, 내용 중에 “임신, 성정체성, 성별정체성, 병력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 의회 일부 의원들이 이 조항에 대해 반발했고, 일부 학부모 단체와 종교단체들도 강하게 반대했다.

 

이에 저항하는 의미로 동성애자들이 일주일 동안 서울시 의회 점거 농성을 벌였다. 청소년들도 이에 동참하고, 동성애자들 외의 다른 성소수자들도 동참했다. 문화. 노동, 종교, 교육 단체도 연대했다. 동성애자들이 꾸준히 다른 사회운동과 연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동성애자들은 그동안 종교운동, 철거민 투쟁, 노동운동 등에 참여했다.) 이러한 연대의 결과로 학생인권조례는 서울시 의회를 통과했다.

 

최현숙은 서울시 의회를 점거하고 농성을 할 때, 부산 영도에서 크레인 농성을 벌이던 한진중공업의 김진숙 지도위원의 지지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김진숙은 여러분들의 운동이 역사에 남을 것이며, 후대에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최현숙은 연대의 힘만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 말했다.

 

질의응답

 

강연이 끝나고 청중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강연 시간보다 질의응답 시간이 더 길어질 정도로 많은 질문들이 있었다. 중요한 질문들을 몇 개 추려 정리했다.

 

1) 동성애자들이 계약 결혼을 많이 한다. 계약 결혼 이외의 다른 방법은 무엇이 있나?

프랑스의 경우 ‘팍스’ 법이 있다. 동거만 하고 싶은 연인들을 위한 법이다. 결혼제도와 동일한 혜택은 아니지만 일정한 혜택이 있다. 한국에서도 동성애자들은 동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동거가 아닌 계약결혼을 하는 이유는 가정, 직장 등 주변의 압박 등 때문이다. 안정된 직장(의사, 변호사 등등)을 지닌 사람들이 흔히 계약 결혼을 한다. 이에 대해 동성애자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다. 동성애자에게만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것은 분명한 차별이라는 의견과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이 있다. 결혼이 정말 사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제도이냐.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공동체이며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느냐. 동성애자들이 과연 결혼 제도를 성취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의 안정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일단 동성애자들의 목표는 가족의 해체가 아닌 가족과 가족 이외의 사람들 간의 차별을 없애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상가족은 전체 가족 형태의 40%밖에 안 된다. 이들 외의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하는데 국가는 세금, 복지, 연금 정책을 40%의 가족 형태를 기준으로 만든다.

 

2) 동성애자들이 요구하는 건 관심인가? 동성애를 당연하다 생각하면 무관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본인이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는데 구태여 친절을 베푸는 것은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은 좋은 방식의 무관심이다. 그러나 차별에 대한 무관심은 또 다른 차별이자, 차별에 대한 동조이다.

 

3) 자신의 성정체성을 스스로 알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속한 집단에서 외면 받지 않기 위해 이성애자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스스로를 동성애자라 판단하는가?

2009년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GV 시간에 생긴 일이다. 관객 중 46세의 한 여성이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 여성은 그동안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으나, 영화를 본 후 그동안 좋아했던 여성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경우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자기혐오로 빠지기도 한다.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극단적인 동성애자는 오히려 소수다. 극단적 이성애자도 소수다. 한국 사회가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회라면 극단적 동성애자는 5%, 극단적 이성애자는 10%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미국 킨제이 보고서 통계 결과도 그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성애가 흔한 우리 사회에선 동성애의 가능성이 고려되지 않는다.

 

4) 사람들은 소수자 운동(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을 이권운동이라 보기 때문에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과 연대해야 하는가?

우리 안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다. 트랜스젠더들을 인터뷰하며 연구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나의 성, 다른 사람의 성에 대해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성기, 수염을 보며 상대방을 규정한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의 성기로 나를 구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완벽한 남성, 완벽한 여성이란 또 뭔가. 정상, 비정상/ 중심, 주변은 또 뭔가. 이러한 자기 성찰이 자신을 성숙하게 만든다. 이러한 성찰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법, 주변과의 관계 맺음에 영향을 끼친다.

 

장애여성단체 ‘공감’과 연극을 준비한 적이 있다. 그 여성들이 하는 놀이마당을 보며 나는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우리의 사고방식. 색감, 율동, 노래는 교육에 영향을 받아 틀에 박혀있다. 그러나 그들의 표현은 틀에 얽매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소수자라 불리는 이유는 수가 적다기보다 권력이 약하고 피해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자들이 성찰과 삶의 경험이 더 풍부할 수 있다. 억압을 극복한 자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사회에서 끊임없는 소수자의 위치에 놓인다. 나의 소수자성을 인정하고 주변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사회를 나아가게 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이틀간의 강연회를 마치며, 강연을 주최한 <대학문화>는 우리가 페미니즘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높이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직도 이런 강연회를 마땅찮게 바라보며, ‘학생들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강연회나 열지’(취업설명회 같은) 라고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현숙 씨가 마지막에 말했듯이, 우리는 늘 소수자의 위치에 놓이기 마련이다. 소수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는 곧 나의 위치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아닐까? <대학문화>의 이번 강연회가 나와 다른 사람, 혹은 나 자신에 대한 공감과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학문화의 강연회는 앞으로도 쭉 이어질 예정이니 학우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 바람~!

 

<대학문화> 46호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