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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표심 움직이는데 새누리당엔 ‘친박’ 뿐

유권자 표심 움직이는데 새누리당엔 ‘친박’ 뿐

강남‧분당에서 야권 승리 이끈 ‘부동산 투표’, 새누리당은 텃밭이라며 기존 프레임, ‘배신의 정치 심판’ 반복


4.13 총선에서 야당은 의외의 지역에서 승리를 거뒀다. 대구, 부산, 영남은 물론 야권분열에 처해 있던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을 눌렀다. 수도권 승리를 두고 새누리당이 부동산, 주거형태 등의 변화에 따라 예민하게 움직인 유권자의 표심을 읽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반전’을 이뤄낸 지역은 서울 강남을이다. 더민주의 전현희 후보는 51.5%를 얻어 48.2%를 얻은 현역 김종훈 의원을 제쳤다. 24년 만에 야당이 강남에 깃발을 꽂았다.

강 남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집값 상승과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 도입을 거치며 집값을 유지시켜 줄 보수정당에 ‘계급투표’를 했다. 이 균열은 부동산 변화로 생겨났다.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강남 보금자리 주택으로 세곡동을 중심으로 공공임대주택촌이 형성됐고 지난해 말 기준 이 인구는 5만 명에 달할 정도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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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희 당선자는 선거기간 내내 세곡동 이슈를 파고들었다. 인구는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세곡동 일대에는 지하철 역 하나 없어 주민들은 매번 교통난에 시달렸다. 편의시설도 변변치 않았다. 주민들이 느낀 박탈감이 컸다는 뜻이다. 전현희 당선자는 현수막에 ‘지하철 더 빠르고 확실하게’라는 구호를 적었다.

실제 전현희 당선인은 세곡동에서 1만 1129표를 얻어 7100표를 얻은 김종훈 후보를 크게 제쳤다. 전 당선인의 세곡동 득표율은 59.1%로 강남을 전체 평균 득표율 51.5%을 훨씬 상회한다. 동별 투표현황을 보면, 전 당선인과 김 후보의 표 차이가 가장 큰 곳이 세곡동이다. 세곡동은 투표자 수가 강남을 8개 동 전체 투표자의 20.3%를 차지하고 19대 선거보다 유권자가 2만4천여명 증가할 정도로 중요한 변수였다. 4월 13일 개표 때 접전을 벌이던 전 당선인은 세곡동 개표가 시작되면서 김종훈 후보와 격차를 벌였고 결국 당선을 확정지었다.

김종훈 후보 측은 이 비중 있는 세곡동을 사로잡지 못했다. 김 후보 측은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야당보다 여당이 낫지 않나’고 유권자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미디어오늘이 만난 세곡동 주민들은 “여당이 힘이 센 건 맞지만 여태까지 뭐했나” “서울시는 야당 시장(박원순)이 있는데, 야당이 되야 야당 시장이랑 호흡이 잘 맞지 않겠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강남을처럼 주택단지 조성이 표심에 영향을 미친 지역들은 여러 곳이다. 신도시가 형성되면 20~30대층이 새로 유입되면서 야당 지지층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남인순 더민주 의원(44.9%)이 현역인 김을동 새누리당 의원(39.7%)을 꺾은 송파병 지역의 위례동도 지난해 입주가 시작된 위례신도시의 여파가 미친 지역이다. 남인순 의원은 위례동에서 3155표를 얻어 1778표를 얻은 김 의원을 크게 앞섰다. 남 의원은 이 지역에서 56.4%의 지지를 받았는데, 이는 남 의원이 얻은 전체 득표인 44.9%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역전승을 이뤄낸 분당갑 김병관 당선인의 경우도 비슷하다. 김 당선인은 여당 텃밭이라 불리는 분당에서 47.0%를 얻어 38.7%를 얻은 권혁세 새누리당 후보를 꺾었다. 김 당선인은 전체적으로 권 후보를 앞섰지만 특히 크게 앞선 지역은 판교동, 삼평동, 백현동, 운중동 등 판교신도시의 영향권 하에 있는 지역들이다. 특히 판교에는 테크노밸리 등 IT기업들이 들어서면서 젊은 층이 대거 유입됐다. NHN게임스 대표이사, 웹젠 대표이사 등의 이력을 지닌 김병관 당선인의 경쟁력이 높은 지역이었던 셈이다.

김 당선인은 판교동에서 5671표를 얻어 3888표를 얻은 권혁세 후보를 앞섰고, 삼평동에서는 6139표를 얻어 4018표를 얻은 권 후보를 제쳤다. 김 당선인은 백현동, 운중동에서 각각 6481표와 4798표를 얻어 4286표, 4043표를 얻은 권 후보를 앞섰다.

새로 유입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민심이 움직이는데 정작 새누리당은 움직이지 못했다. 송파병에 출마한 김을동 의원은 “여성이 너무 똑똑한 척을 하면 굉장히 밉상을 산다. 약간 좀 모자란 듯한 표정을 지으면 된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샀다. 젊은 층이 거부감을 가질 만한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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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갑에 출마한 권혁세 후보는 새누리당이 이종훈 의원을 컷오프 시키고 공천한 ‘친박’ 후보다. 권 후보는 지역 TV토론회에서 공약의 타당성을 묻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타당성 조사까지 하고 공약을 낼 순 없지 않나”라는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 지난 5일 중앙선관위 주관 토론회에 참석한 권혁세 새누리당 후보(왼쪽)와 김병관 더민주 후보.

김 병관 당선인 측 한 관계자는 “이 지역이 여당 강세지역이니까 새누리당이 진박 후보를 그냥 내려 보낸 거다. TV토론에서 단적으로 준비 없는 후보임이 드러나지 않았나”라며 “김병관 당선인이 이 지역에서 먹힐 만한 후보였고,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월세 가격이 수도권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향신문은 14일 기사 ‘수도권 승패 미친 전·월세가 갈랐다’ 에서 “송파구 의석 3석 중 2석이 더불어민주당에 돌아갔다. 이곳은 최근 5년간 월세 가구의 주거비가 크게 올랐다”고 지적했다. 한국토지연구소의 주택 실거래가 분석에 따르면 송파구의 가구당 월세전환가(보증금과 2년간의 월세를 환산해 합한 가격)는 2011년 1억6269만원에서 2015년 2억7703만원으로 70.3% 급등했다. 수도권 평균 상승률(61.1%)을 상회한다.

경 향신문에 따르면 19대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2석 모두 가져갔으나 이번에 야당이 1석을 확보한 서울 양천구는 월세전환가가 2011년 1억1438만원에서 2015년 2억788만원까지 올라 서울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81.8%)을 기록했고, 경기도에서 월세전환가 상승률이 가장 높은 성남시(87.2%)도 이번 선거에서 4개 지역구 중 3개를 야당이 차지했다. 경향은 “현 정부의 부동산 및 주거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표심을 갈랐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후보에 따라 표심이 움직이기도 했다. 컷오프에 반발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더민주에 입당한 진영 의원이 대표 사례다. 더민주는 진영 의원을 진 의원의 원래 지역구인 용산에 공천했다. 용산은 여당세가 강한 지역이지만 압도적이지 않다. 진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52.4%를 얻어 조순형 민주당 후보를 6.5%p 차이로 이겼다. 하지만 16대 총선에서는 진 의원이 0.12%p 차이로 새천년민주당 후보에게 석패했다. 2014년 6.4 지방선거 때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성장현 구청장이 5.1%p 차이로 새누리당 후보에 승리했다.

진 의원 측의 고민이 깊었던 이유다. 그간 진영 의원을 지지한 유권자들이 진영이라는 인물을 보고 지지한 것이라면 진 의원의 더민주 입당으로 지지층이 빠져 나가진 않겠지만,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의 진영’을 지지한 것이라면 진 의원의 더민주 입당이 악재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진 의원의 승리였다. 진 의원은 42.8%를 얻어 39.9%를 얻은 황춘자 새누리당 후보를 제쳤다. 황춘자 후보는 고층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승리했다. 서빙고동에서는 3298표를 얻어 2017표를 얻은 진 후보를 제쳤고, 이촌1‧2동과 한강로동, 이태원1동에서도 앞섰다.

하지만 진 의원이 후암동, 용산2가동, 남영동, 청파동, 원효로제1동에서 황 후보를 앞서면서 결국 당선됐다. 곽태원 국민의당 후보가 13.8%를 얻어 야권 표를 가져갔음에도 승리한 것을 보면 새누리당 출신의 진영 의원이 새누리당로 향했던 표까지 가져온 것이 승리의 요인이라 볼 수 있다. 진 의원이 10~15%에 달하는 중도층에 경쟁력을 보였다는 뜻이다.

중도층에 소구력을 지닌 진 의원이 출마한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용산에서 ‘배신의 정치 심판’ 프레임을 썼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황춘자 후보 지원유세에서 “박근혜 정권에 사사건건 발목 잡고 발전을 방해했던 운동권 정당인 더민주로 출마한 건 용산주민, 새누리당, 국민을 배신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춘자 후보는 ‘진박’을 연상케 하는 ‘진실한 사람’을 사무실 팻말에 새겨넣었고 황 후보 사무실에는 ‘더민주 입당한 진영 의원, 최소한의 정치 신의도 없나’라는 제목의 3월 21일자 조선일보 사설을 인쇄한 인쇄물이 쌓여 있었다.

▲ 황춘자 새누리당 후보 사무실에 놓여 있는 조선일보 사설. 사진=조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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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영 의원 측 관계자는 “예전에 야당 후보들이 새누리당에 졌던 지역들, 그 지역들에서 진영 의원이 덜 졌다. 그래서 이긴 것”이라며 “제3후보가 14%를 먹었는데도 이겼다는 것은 여당 후보의 경쟁력과 프레임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