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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내가 합의추대 이야기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김종인 “내가 합의추대 이야기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더민주판 ‘승자의 저주’ 김종인 추대론… 찬성 없고 반대만 넘쳐나, 제2의 비례대표 공천 파동 될 수도

더불어민주당이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

승자의 저주란 경쟁에서 이겼지만 승리를 위하여 많은 비용을 치름으로써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되거나 후유증을 겪는 상황이다. 4‧13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을 차지한 더민주가 처한 상황이 ‘승자의 저주’와 유사하다. 이는 ‘김종인 추대론’으로 집약되어 나타나고 있다.

더민주는 수도권 122석 중 87석을 차지했다. 반면 지지기반이던 호남에서는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총선 결과를 둘러싼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종인 대표의 전략이 먹혔다며 총선 승리의 공을 김 대표에게 돌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 대표의 ‘셀프공천’으로 촉발된 비례대표 공천이 호남 표를 잃게 만든 요인이라고 반박한다.

정청래 더민주 의원은 지난 1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역사에 IF라는 가정은 없지만 저는 그 분(김종인 대표)이 아니어도 (총선 승리가) 가능했을 거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김 종인 대표 추대론’은 이러한 총선 평가에 대한 연장선상에 있다. 총선을 승리로 이끈 김종인 대표가 안정감 있게 대선 때까지 당을 이끌 수 있도록 합의 추대를 하자는 주장이 ‘김종인 추대론’이다. 반면 이러한 추대론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민주주의 정당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세균, 김진표, 송영길 등 이미 당권 후보군이 추려지고 있는 상황에 추대는 부적절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얼핏 보기엔 ‘김종인 추대론’을 두고 당내에서 공방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더민주 안에서 ‘김종인 추대론’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21일 ‘SBS 한수진의 전망대’ 인터뷰에서 “합의 추대라는 것도 완전히 버릴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제외하면 공개적인 추대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반대 목소리는 거세다. “북한 노동당 전당대회에서나 가능한 일”(정청래 의원)이라거나 “민주적인 정당에서 가능한 일일지 상당히 의문”(정성호 당선자) “(경선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함부로 얘기할 때가 아니다”(김부겸 당선자) 등 추대론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작 추대론은 없는데 추대론 반대만 넘쳐나는 상황에는 여러 배경이 있다. 첫 번째는 김종인 대표 본인 때문이다. 김 대표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서 “당대표 추대 논란 자체가 불쾌하다”며 추대론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김 대표는 또한 20일 비대위 회의에서도 “내가 합의추대라는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왜 그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반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도 있다. 김 대표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 서 ‘문재인 전 대표가 삼고초려 할 때 비례대표 2번으로 모시고 싶다고 했고, 대선까지 당을 이끌어 달라고 했다는데’라는 질문에 “뭐 그건 실제로 나하고 그렇게 얘기했다”라고 답했다. 이 대목이 김 대표가 추대론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대표가 ‘비례대표 안 하겠다’고 말했다가 비례대표 2번에 자신을 공천하는 등 입장을 번복한 전례도 김종인 대표가 사실은 추대를 원하고 있다는 추론에 무게를 싣는다.

하지만 과도한 해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김영춘 더민주 비대위 위원은 19일 TBS ‘열린아침 김만흠입니다’ 인터뷰에 서 “김종인 대표님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으신 거 같은데 괜히 추대론 이야기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언주 더민주 조직본부장은 20일 비대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가 인터뷰에서 농담 비슷하게 얘길 한 걸 두고 김 대표 본인이 추대를 원하는 것처럼 전제가 깔려 추대를 하니, 안하니 하면서 서로 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더민주 내 당권 다툼이 ‘김종인 추대론’의 진짜 배경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종인 대표가 유력한 당 대표로 부각되면서 당 내 김 대표를 견제하려는 세력이 의도적으로 김종인 추대론을 부각시키고, 실체도 불분명한 추대론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는 것이다.

자칫 ‘김종인 추대론’이 계파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컷오프 됐다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이해찬 당선인의 복당 여부는 또 다른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벌써부터 당내 ‘친노’ 그룹 의원들은 이 당선인의 복당을 주장하고 있다.

김 대표의 성정을 고려할 때 지난 비례대표 파동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3월 김종인 대표는 ‘셀프공천’을 비롯한 비례대표 공천이 노욕으로 취급받았다며 당무 거부에 들어갔다. 김 대표가 사퇴 의사까지 밝히자 비대위원 전원이 김 대표의 집까지 찾아갔고 그 뒤에야 상황은 마무리됐다. 추대론이 부각되고 김 대표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지면 김 대표가 다시 당무거부와 비대위 대표직 사퇴를 주장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상황을 정리해야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당시 상황도 비슷하다. 비례대표 파동 당시 경남 양산에 칩거 중이던 문 전 대표가 김 대표를 찾아 상황을 정리했다. 문 전 대표는 21일 의원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직전 당대표였기 때문에 당내 현안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추대론에 대한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문 전 대표가 또 다시 개입해 상황을 정리할 경우 더민주가 ‘문재인 사당’이라는 당 안팎의 비판이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민주가 처한 승자의 저주란 결국 전당대회 전까지 김 대표와 각 계파 간 당권을 둘러싼 갈등이 반복되거나 김 대표가 다시 ‘나 안 하겠다’며 다시 당무거부에 나서는 상황을 뜻한다. 당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부산 사하갑의 최인호 당선자는 20일 당선자대회에서 “지금 전당대회를 우선하고 있는 듯한 말이 나오지만 총선 때 공약한대로 민생부터 챙기는 것으로 우리 당의 방향이 바로 잡혔으면 좋겠다”며 “계파스러운 발언 때문에 당의 단합을 해치는 모습을 보이면 금방 신뢰를 잃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