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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관련된 남의 글/인터뷰/언론보도

우리는 왜 뉴스를 믿지 못하게 되었나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영화 '찌라시'에는 권력층의 부패를 숨기려고 일부러 찌라시에 여배우의 사생활을 흘리는 청와대의 모습이 등장한다. 대중이 소비하는 음모가 누군가의 의도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세상이 말세라 사람들이 음모론과 찌라시에 빠져 있다고 한탄할 생각은 없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음모론과 찌라시를 좋아하는 이들은 적어도 뉴스를 의심하는 독자들이기 때문이다."(p26~27)

저자 조윤호는 '미디어 오늘'기자로 이 책,'나쁜 뉴스의 나라'를 통해 언론계의 명암을 파헤친다.

그는 힘없고 백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삶을 다른 대중에게 비춰 줌으로써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밝히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 믿어 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발생한 사건과 사고를 통해 대중이 경험한 것은 반성도 사과도 없는 나쁜 나라와 이를 비호하는 나쁜 권력, 그리고 나쁜 뉴스뿐이었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나쁜 뉴스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의 고질적 병폐와 구조적 모순부터 신뢰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JTBC와 손석희 앵커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까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양 진영의 성역(聖域)을 넘나든다.

책의 핵심은 나쁜 뉴스를 가려보는 데 있다. 그렇다면 나쁜 뉴스는 어떤 뉴스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될까.

저자는 대중의 뇌리에 남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나쁜 뉴스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물타기’는 언론이 가장 빈번하게 쓰는 수법 중 하나다. 2014년 12월 한일 양국의 위안부 문제 합의 보도 당시 언론이 꺼내 든 ‘갈라치기’ 가 대표적이다.

나쁜 뉴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이 책에서는 나쁜 뉴스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①‘원인과 결과, 전제 조건을 따지지 않는 기사’ 유형이다.

저자는 이런 유형의 예로 작년 수능 논술고사 당일에 실시된 민중총궐기 집회 보도를 꼽았다. 당시 일부 언론은 논술고사 시간과 집회 시간이 겹치는지, 그래서 실제로 피해를 본 학생과 학부모가 있는지 등 당연히 밝혀야 할 전제 조건을 무시한 채 기사들을 내보내 사실을 호도했다.

이 밖에도 ②‘행간(콘텍스트)으로 본질을 흐리는 기사’를 통해 감추고 싶은 진실을 기사 이면에 숨긴다거나, ③‘자사의 이해관계에 따른 보도’로 팩트를 왜곡하는 유형이 있다. 물타기 수법에 쓰이는 팩트들은 사실 텍스트만 놓고 보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들 기사는 모두 특정한 콘텍스트를 통해 특정한 의미를 생산해 내고 있다는 데 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뉴스 소비자들은 누군가 A라고 말했고, 이에 또 다른 누군가가 B라고 반박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이어서 한 전문가는 이 사안을 C로 평가했고, 한 관계자는 D라고 해석했다는 내용이 더해진다. 바로 워딩의 나열이다. 사실 이 과정에서 기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자의 의견이 드러나지 않는 단순한 워딩의 나열일지라도 분명히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337쪽)

‘사실’을 말하는 것과 ‘진실’을 말하는 것은 다르다. 사실로 보이는 텍스트에 매몰되다 보면 ‘저런 나쁜 놈이 옳은 말을 할 리가 없다’거나 ‘여야 국회의원들의 싸움은 꼴도 보기 싫다’ ‘자기들끼리도 의견이 갈리는 걸 보니 무슨 문제가 있나’ 등의 편견에 갇히고 만다. 맥락 뒤에 감춰진 진실을 보지 못하고 흙탕물 속을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뉴스가치가 의심스러운 기사를 발견하면 그 기사의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그 고리가 억지스럽다면 더더욱 그 의도를 의심해야 한다. 인터넷 기사에서 연결고리를 금방 찾아내는 방법이 있다. ‘한편’이나 ‘가운데’라는 단어에 주목하는 것이다. ‘한편’과 ‘가운데’는 관계없는 두 가지를 억지로 연결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단어다. … 이런 연결고리들은 뉴스 소비자들로 하여금 사건의 본질이 아닌 곁가지를 기억하게 만들고, 사건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한다. “내 딸이 죽은 원인을 밝혀 달라”고 아버지가 단식 농성을 해도, 메시지 대신 아버지의 정치색을 부각시켜 논점을 흐리고 만다. 미디어는 이런 식으로 중요한 이슈를 숨기거나 사라지게 만든다."(91~92쪽)

저자는 "지금이야말로 뉴스의 정의를 다시 생각할 때"라며 "의심하는 대중만이 미디어에 속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독자들이 소비자의 권력으로 정당한 외압을 행사하고, 독자들이 기자에게 정치권력에 맞설 수 있는 핑계가 되는 순간, 나쁜 뉴스는 살아남기 위해 자정작용을 시작할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어떤 뉴스를 볼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344쪽, 한빛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