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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맞나?” ‘이념전쟁’ 택한 정부여당

“대한민국 국회의원 맞나?” ‘이념전쟁’ 택한 정부여당

더민주 의원들 중국 방문, ‘사대외교’ ‘매국행위’ 취급… “좌충우돌 넘어 이판사판외교”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갈수록 반대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선택한 돌파구는 결국 ‘이념’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명의 중국 방문을 ‘사대외교’ ‘매국 행위’ 취급하면서 여론몰이에 나선 것이다. 

김영호, 박정, 신동근, 소병훈, 김병욱, 손혜원 의원 등 더민주 초선 의원 6명이 8일 오전 중국으로 출국했다. 8일부터 10일로 예정된 사드 관련 방중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다. 방중을 주도한 김영호 의원은 출국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상당히 마음이 무겁고 사명감도 굉장히 생겼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여섯 의원의 방중을 매국 행위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8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우리가 임기 초 국회 본회의장에서 오른손 들어서 다짐했던 선서를 꼭 되돌아보길 바란다. 모든 의원들은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했다”며 “이 의원들이 방중을 통해 보여줄 일들이 국가 이익 최우선으로 하는 것인지 국민 앞에 늘 이 점을 생각하면서 임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서 김영우 새누리당 의원 역시 중국 언론보도 등을 예로 들며 “더불어민주당 방중이 철저하게 중국 정부와 언론에 의해서 이용되고 있음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방중이 이처럼 중국 의도하는 악용될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굳이 방문한다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한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중국 측 입장만 듣고 돌아온다면 후안무치한 일이고 국익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일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의 방중을 ‘국익에 어긋나는 일’로 취급한 것이다.

지상욱 새누리당 대변인은 8일 논평에서 “이제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294명”이라며 “기어코 가고야만 이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맞나? 이들이 중국에서 들고 올 것은 중국의 사드반대 윤허밖에 없을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청와대도 더민주 의원들의 방중을 직접 겨냥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7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중요한 시점에 더민주당 의원 6명이 사드배치 문제 관련 의견교환을 한다며 8월 8일부터 10일까지 중국을 방문하려는 계획은 다시 한 번 재검토를 해야 할 사안”이라며 “정치인들 입장에서 다른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위중한 안보 이슈와 관련해서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청와대가 발표한 입장문 전문에서 중국 측을 비판하는 내용보다 야당 의원들의 방중에 관한 내용이 2배 가까이 길었다. 청와대가 중국보다는 야당을 겨냥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당초 더민주 의원들의 방중은 정치적으로 예민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사안이다. 김영호 더민주 의원은 4일 사드 대책위원회에서 “8월8일 월요일 우리당 국회의원 6명과 베이징에 간다. 대책위 차원에서 가는 건 아니고 뜻이 맞는 의원들과 가는 것이고, 베이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들과 좌담회를 갖고 환구싱크탱크 연구소 연구원들과 좌담회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중국 입장을 충분히 듣기도 하겠지만 당의 입장, 중국에 대한 입장도 확실히 전달해서 국익에 걸맞은 외교를 잘하고 오겠다”고 설명했다. 

더민주 지도부가 아닌 의원들이 중국을 방문하는 데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학계 교수들과 연구원들을 만나는 자리인데 야당 차원의 ‘사대외교’로 확대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더민주 지도부의 방중이 알려진 4일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TK지역 의원들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성주군 내에서 위치를 변경하는 것을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제안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 성주가 최선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던 입장에서 한발 발 물러서면서 오히려 졸속으로 배치 장소를 결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더민주 의원들의 방중을 공격한 것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5일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굴욕적인 중국 방문계획을 즉각 철회하시길 바란다. 한미군사동맹을 훼손하고, 주변국에 기대는 사대외교”라고 공세를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출국 금지까지 주장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사드를 둘러싼 사안을 정쟁, 이념 논쟁으로 만들고 논란을 키웠다는 뜻이다. 김영호 더민주 의원은 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6명이 한중 외교 우호를 위해서 출국하려는데 마치 대통령이 그것을 가로막는 듯한 모양새가 나왔다”며 “새누리당이 사대외교 출국을 금지시켜야 한다, 청와대도 그렇게 입장을 표명하니 중국 매체에서 그대로 받아쓰는 거다. 오히려 정부가 중국 매체로부터 이용을 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또한 “원래는 중국매체에서는 전혀 관심대상도 아니었다. 중국 언론에 전혀 알리지 않고 오히려 비밀리에 좀 갈 생각이었는데 정말 이렇게 확대될 줄이야 정말 생각치도 못했다”며 “청와대에서 입장 표명을 안 했을 경우에는 조용한 의원 외교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더민주 의원의 방중을 비판하기 위해 중국까지 공격하고 나섰다. 청와대는 7일 입장문에서 “사드 배치 결정을 하게 된 근본 원인은 점증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인 만큼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사라지면 사드 배치도 필요 없을 것”이라며 “중국 측은 우리의 순수한 방어적인 조치를 문제 삼기 이전에 그간 네 차례의 핵실험과, 올해만도 10여 차례 이상 탄도미사일 발사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깨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 보다 강력한 문제 제기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반발이 한류 콘텐츠 제재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방송 관계자들은 다음 달에 열릴 G20 정상회의를 분위기 전환 계기로 보고 있다. 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 등 정부 고위층이 한중 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제스처를 보여주면 중단된 콘텐츠 사업들이 재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중국을 상대로 공세를 이어갈 경우 G20 정상회의에서 한중관계가 풀릴 가능성은 요원해보인다. 


정부여당이 국내정치를 위해 외교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동민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국정 운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외교마찰도 서슴지 않는 정부와 여당의 행태에 분노를 넘어 비애감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8일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을 상대로 종북이니, 괴담이니 하며 겁박하고 야당을 상대로는 사대매국 운운하며 정쟁으로 몰고 간다. 어느 것도 잘 먹혀들지 않자, 급기야 청와대는 외교적 관례를 깨고 중국을 상대로 원색적 비판을 쏟아냈다”며 “좌충우돌을 넘어 이판사판외교”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