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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권정당하려면…” 김종인 신중론에 스텝 꼬인 더민주

“수권정당하려면…” 김종인 신중론에 스텝 꼬인 더민주

초선 6인의 중국 방문에 “소영웅심에 도취한 정치쇼” 비난하는 새누리당… 더민주를 ‘외교 아마추어’ 취급


“북경대 세미나가 있다는 국회의원 카톡방 공지를 보고 단순한 생각으로 신청했다가 졸지에 독수리 6남매가 되었다”

사드 관련해 중국을 방문하는 손혜원 더민주 의원이 8일 출국 전 자신의 SNS에 남긴 글이다. 당초 더민주 의원들의 방중은 예민한 사안이 아니었다. 지도부도 아닌 개별 의원들의 방중이었고,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만나는 것도 아니고 학계 교수들과 연구원들을 만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이 방중을 ‘사대외교’ ‘매국행위’로 비난하면서 일이 커졌다. 정부여당의 공세는 투트랙이다. 첫 번째는 이념공세다. 박근혜 대통령은 8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근 정치권 일부에서 ‘사드 배치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는 이런 북한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황당한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한다”며 “국내 정치적으로 정부에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내부 분열을 가중시키지 않고,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국민을 대신해서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의 기본적인 책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포럼’ 의원 일동은 8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방문하는 의원들은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지, 누구를 대표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북한과 중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매국 행위를 하고 있다는 논리다.

정부여당의 두 번째 공세는 더민주 의원 6인의 방중을 ‘초선들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지상욱 새누리당 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정부가 하는 일에는 무조건 반대하고 보자는 청개구리식 인식만 가지고 있는 아마추어들이 가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비난했다. 

김명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도 8일 브리핑에서 “국익을 내팽개치고 중국행을 강행한 더민주 의원들의 치기어린 행보가 결국 중국의 이러한 술수에 이용당할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며 “초선의원들의 비상식적인 집단행동은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소영웅심에 도취한 정치쇼”라고 밝혔다.

이는 더민주의 ‘수권정당’ 전략과 맞닿아 있다. 더민주는 김종인 대표 체제 이후 ‘수권정당’을 강조해왔다. 수권정당이란 한 마디로 정부정책에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놔야한다는 것이다. 더민주 지도부가 사드 배치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은 신중론의 입장을 취한 이유는 수권정당으로서 함부로 반대를 표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권정당을 강조하던 김종인 대표가 초선 의원들의 방중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지난 5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무슨 외교를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면 듣는 얘기는 뻔할 것”이라며 “혹시나 중국에 동조하는 발언이라도 하면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이런 약점을 파고 들고 있다. 더민주 입장에서도 정부여당의 이념공세에 대해서는 “정부여당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반박할 수 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통령께서 정쟁을 유발하는 일을 다시 또 시작하셨다. 야당 의원들을 매국노, 사대주의, 북한동조 세력으로 만드는 이런 식의 발언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수권정당의 모습을 못 갖췄다’는 비판은 더 대응하기 어렵다. 

초선 의원 6명의 방중은 결국 초선 의원들도 더민주도 원치 않았지만, 더민주의 외교 역량을 보여주는 시험대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언론들이 더민주 의원들의 방문을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이용하거나 일부 발언을 편집해서 보도할 경우 더민주는 ‘외교역량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8일 혁신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이분들(더민주 의원)의 활동은 앞으로 국민과 역사가 엄중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김영우 의원도 같은 자리에서 “그냥 주한미군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 측의 입장만 듣고 돌아온다면 그것은 정말 후안무치한 일이고 우리 국익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일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방중 결과에 따라 공세를 이어갈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더민주 의원들도 이를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일 베이징에 도착한 더민주 의원 6명은 베이징대에서 중국 전문가들을 만나고 한중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으나 중국 언론과의 접촉은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들의 행보가 중국 언론에 이용되고, 이것이 다시 정부여당의 공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 이 경우 사드 청문회를 주장하며 정부여당을 압박하던 더민주가 수세에 몰릴 수도 있다.

이번 방중을 주도한 김영호 의원은 지난 4일 당내 사드 특위 회의에서 “최근에 저도 중국 언론과 몇 번 인터뷰를 했는데 중국 언론이 방송 편집을 교묘하게 하더라. 우리 정치인들의 발언이 신중해야 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8일 베이징 서우두 공항 입국을 마치기 전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혹시 중국 기자들도 공항에 나와 있느냐. 중국 언론과는 인터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더민주가 정부여당이 놓은 덫에 말려들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8일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제1야당도 야3당이 합의한 특위 성사에 당력을 집중해주기 바란다. 논점을 흐리고 비본질적 문제로 정쟁에 말려드는 일을 경계하면서 진짜안보와 국익을 위한 사드 배치 재검토를 위해 사명감을 갖고 임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반면 더민주 의원들의 방중이 한중관계가 회복되는 지렛대로 작용한다면 오히려 외교역량을 인정받을 기회가 될 수 있다. 더민주 당대표 후보인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은 8일 “청와대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중국방문을 외교 레버리지로 활용하라”며 “우리당 의원단의 의원외교가 한반도 주변의 상황이 극단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완충작용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