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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 [듣보좌, 운동을 말하다] 토론회 녹취록

6월 18일, 최근 철거투쟁에 승리한 홍대앞 '두리반'에서 '일만사회주의자 선언' 기획의 일환으로 '듣보좌, 운동을 말하다'라는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조직 안팍에서 개인활동가로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모아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정세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토론하고자 하는 취지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듣보좌'라는 것은 '듣보잡'이라는 유행어를 변용한, '듣도 보도 못한 좌파'의 줄임말로서, 다소 자조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중앙정치나 공적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소신껏 자신만의 '현장'에서 활약 하는 개인 활동가를 지칭합니다. 조촐한 자리를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셨고 상당히 즐겁고 열띤 분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과 대화내용을 공유하고자 토론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올립니다. 토론을 기록한 것에 대해 참석자들에게 양해를 사전에 구했으며, 몇몇 학교명을 이니셜 처리하였습니다.




<발제시간>

박가분 : (생략)
HS : (생략)

BH : 발제문을 별도로 작성하지 않아, 기조발언으로 대신하겠다. 조직운동에 엮이지 않고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과거에서부터 존재했다. 참고로 본인은 A대학에 입학 후 SHD이라는 고전적 맑스주의 운동을 했다가, 캠퍼스에서 당원자격으로 개인 활동을 했다. 행진을 알게 돼서 올해 초에 행진에 가입하게 되었다.

내 문제의식은 왜 운동단위들이 사라지는가, 라는 의문이었다. 06-07년도 이랜드 사태에서 사학동의 개별 멤버는 역량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개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응하지 못한 원인도 크다. 여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크게 구좌파적인 운동권 문화를 고수하는 것과 대중운동만 따라가는 것이 있는데, 전자의 경우 도태되기 쉽고 후자의 경우 기존의 운동성이 사라지는 것이 되어버린다. 08년에는 군소좌파 활동이 촛불시민 대중을 견인하지 못하고 계량으로 포섭되게 만든 것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08-09년도 때 진보신당의 대중역량이 잠깐 증가했으나, 이념적으로 서로 통일되지 않았고 구민노당계 PD, 사민주의자(나름 인터넷을 통한 활동 기획이 있었으나 중앙당의 지원 부족, PD의 견제. 공동체의식이 결여된 행동이 많았다. 1차 모임은 붕괴했고, 2차모임이 재결성되어 좀 더 좌경화되었으나 운동성은 더 많지는 않다), 페이퍼당원 등으로 분할되었다. 캠좌파들은 시대에 따르지 못했다는 것, 공동체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 지방대는 물적토대가 적어 운동 재생산이 힘들다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대안은 두 가지가 떠오름. 첫 번째, 공공노조 서경지부에서 연세대를 중심으로 청소노동자와의 노학연대를 트렌드화 시킨 조직(ex 살맛)이 있었다. 두 번째, 두리반에서 시작된 혁육동(=혁명적 육식주의자 동맹). 혁육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재미와 파토스를 접목시킨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혁육동의 단점은 파토스를 넘어서 조직운동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념적 통일성이 부족하다보니 좌파적 학습이 부족하고 자율주의에 경도되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생운동의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망을 말하자면 학생운동의 크게 두 루트가 있는데, 선도투 노선과 지식인 운동이 있었다. 여기서 혁육동의 장점은 재미있고, 발랄하고 기존의 조직의 관성에 배제될 수 있는 사람들을 결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선도투 역할에 적합하다. 조직운동이라기보다는 학습과 기본적인 경험을 주는 예비적 단계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학생운동이 파편화되고, 다원화되는 상황에서,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

△ 살맛은 연세대에서 비정규노동자와의 연대사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단체이며 2011년 하반기 이화여대-고려대-연세대에서 진행된 단체교섭 및 연대파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활약했다.

<질의응답>

- 지잡동(=진보적 지방잡대 동맹)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HS : 올해 상반기 겨울에 홍대 청소노동자 투쟁 때 서경지부 BH씨와 함께 가서 연대했다. 그러다가 다른 대학 학생들과 모종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좀 불편했고 변방에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명문대 출신의 활동가들이 견지하는 모종의 계몽주의적 태도도 불편했다. 그런 점들이 문제의식을 가진 계기가 되었다. 또 운동을 하는 판 안에서도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 수 없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을 이어나가는 것이 물질적으로 불가능한 사람들, 즉 흔히 말하는 지잡(지방잡대)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문제점들에 더 많이 노출되었다고 느꼈다. 일단은 모이지 않으면 우리들이 언제든지 사장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지방대에서 활동을 하는 군소적 활동가들이 있는데, 어떤 조직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학교 내 운동이 사장되는 것을 막고자 일단 모여보자.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모임 정도로 시작했다.

BH : HS 동지가 말한 대로 본인은 지잡동 초기멤버다. 홍대 미화노조 투쟁 때 많은 것을 느꼈다. 조직에 포함되지 않는 우리들로서는 잉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책감이나 문제의식을 느꼈다. 우리도 단위를 만들고 플랑도 붙여보면 멋있지 않는겠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조직이름을 만들어보려다 지잡동이란 말을 만들었다. 홍대 투쟁이 끝난 후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명문대 출신 동지들이 홍대투쟁에 관해 계몽주의적 입장을 취한 것 같다. 맞는 말이지만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느꼈고, 잘난 맛에 하는 것 같다는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 2011년 초에 많은 화제를 낳았던 홍대 미화노조 투쟁에 결합된 개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지잡동'. 운동단위가 조직되지 못한 (지방)대학의 개인활동가들을 포괄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단체이다. 주요 집회 때마다 볼 수 있는 저 휫날리는 깃발이 인상적이다.


- 혁육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단편선: 혁육동(=혁명적 육식주의자 동맹)은 그 기원이 불명확하다. 가이아헤드와 그의 친구들이 고기를 먹으러 갔다가 거기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단은 친목단체고, 정치적 이념을 지향하지는 않고 있으며 분열주의(?) 분파주의(!)를 지향한다는 노선이 있었다. 고기 먹는 모임으로 시작했다가 사회당에서 김모씨가 많이 제안하면서 받아들여 국민체육공단 비정규직 집회, 어린이날 집회를 기획했었고 SNS중심으로 홍보했다. 가입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혁육동이 찍어서 가입시킨다는 게 특징. 현재로서는 중장기 로드맵을 고민 중이다. 청년노조를 고민하고 있는 단계이며, 몇 가지 안이 있지만 아직 기획중이다.

가오리연: 혁육동이 뚜렷한 정치적 이념은 없지만 자립적인 개인들이 굉장히 많고, 조직활동을 했거나, 하고 있는 분들도 참여하고 있다. 이념보다는 정치적 파토스를 추구하고 있다는 병화씨의 지적에 많이 공감하는데, 활동을 하고 있는 것 자체보다는 즉흥적인 재미를 우선시 한다. 혁육동의 최소주장으로서 최저임금 만원이나 등록금 철폐 등을 중점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논의 중이다. 아마 지금과 같은 형태를 지향하는 활동을 할 것 같다. 결국 개인 활동가 더하기 청소년노조 형식의 결합으로 갈 것 같다. ‘아수나로’에 노동운동을 더한 형태?






△ 두리반을 중심으로 친목모임에서 시작된 혁명적 육식주의자 동맹은 곧 다양할 활동가와 개인이 모인 초정파적 모임으로 발전했으며, 현재 명동 재개발 투쟁 현장과 활발히 연대하고 있으며, (청)소년 운동, 비정규직 문제, 기본소득, 최저임금 만원, 등록금 철폐 등과 같은 도발적인 쟁점을 전면에 내세우며 활동하고 있다. 도발적이고 발랄한 감각이 인상적인 단체이다.


-혁육동은 처음이랑 다르게 정치적 지향이 있는 것 같다.


단편선: 그러한 정치적 지향이 단순히 몇몇 개인의 결합정도로만 나타나는 건 아닌 것 같다.
가오리연: 기본적으로 비슷한 정치적 이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단편선: 그러나 ‘좌파적’이라는 ‘의식적’ 지향은 없는 단체인 것 같다.

가오리연 : 혁육동이 조직으로서의 약점이 있다면, 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 지방대와 서울쪽 대학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가?

HS : K 대학의 예를 들자면,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다. 제가 아는 선배 둘 밖에 없었는데, 동아리방을 안 빼앗기기 위한 운동만 남아 있다. 2년제 운동의 맥락도 봐야 하는데, 거기서 운동이 일어나기 처음부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서울 2년제 대학이라 해도 거기서의 운동은 지방대에서의 운동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BH : 지방의 사정을 이야기하기 전에, 서울에서도 편차가 크다는 크게 동의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사정을 이야기하자면, 공동체 분화가 많이 이미 되어 있고, 학습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고, 활동이 재생산되지 않더라도 학습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부활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 운동이 아무리 망하더라도. 이에 반해 지방대에서는 정치적 다양성도 없고, 선배도 없고, 이데올로기적 재생산 수단도 없다. 혁사(혁명적 사회주의)에 경도되어서 소련 이념서적을 학습하다 공장에 쳐들어가서 싸우는 사람 위주로 있다가, 재생산 기반이 망하게 된 전례가 있다. 또 하나, 서울권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은 기본적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그것이 운동을 하는 데 우호적인 조건이 되는 것 같다.


시원한 형 : 개인활동가로서 활동을 하는데, 조직활동에 대해 묻고 싶다. 본인은 2008년 촛불시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대련 계열 단체에 가입하게 되었다. 열심히 안 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 NL의 권위주의, 두 번째 문화적 획일성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철학하는 예술가'라는 단체로 적을 옮겨 활동했었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음악단체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본인은 그 이유 때문에 거기서 모종의 숙청(?)을 당했다. 이런 조직의 경직된 문화를 공론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음악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무명): 열사람의 한 걸음으로, 라는 말대로 여럿이 함께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러한 구호가 실제로는 열사람이 함께 정한다기보다는 중앙에서 결정되어서 아래로 내려가는 식으로 현실화되곤 한다. 여기서 조직운동의 한계를 보지만, 한편으로 좋은 것을 취했으면 하는데, NL로부터 피해를 받는 것도 역설적으로 조직운동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단 기본적으로 조직운동을 잘하면 결과적으로 사람들도 많이 모인다.

시원한 형 : 한대련은 단위들을 많이 만들고 조직도 대규모인데, 이번에 등록금 문제를 의제화시킨 것도 그 장점이 발현된 거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이 최대한으로 능력을 발휘하도록 강제하는 측면이 많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실존을 착취하는 측면도 있다.

밀사 : 나 같은 경우에는 정치적 감수성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은 얼마 안됐다. 본인이 다닌 S여대의 경우에는 운동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을 하게 되는 와중에, 운동조직들에 대한 회의감을 벌써부터 너무 많이 접하게 되어 뭐가 뭔지 모르겠다.

가오리연 : 조직의 비민주성에 대한 허구적인 두려움이 있다. 조직 내의 비민주성은 조직 자체가 존폐의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것이 조직 내의 문화적 획일성을 강요한다. 또한 조직에 가입하면 개인으로서는 일차적으로 조직의 논리와 경향성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조직에서 활동한다는 것의 전제이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폐해는 조직 내의 성원들이 바꿔야하기 때문에 이것을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다. 다만 조직은 태생적으로 쟁점에 유기적으로 신속하게 결합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조직에서 벗어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동성이 있는 사안별 연대. 즉각적인 대중 동원력 확보.


- 왜 개인들이 조직에 참여하지 못하는가?

가오리연 : 조직에 대한 허구적 공포가 있다.

BH : 자존심 문제도 있다.

비여우 : 조직이 대중 전체를 포괄하지 못한 건 사실인데, 여기서 활동가 우선이냐, 대중이 우선이냐, 이건 불모적인 이분법에서 파생되는 딜레마이고, 조직이 대중과의 접합지점을 상실하게 된 구체적인 사회적 배경을 이야기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가오리연 : 조직들이 투쟁을 지속시켜나갈 집행부를 대중적으로 모집할 필요가 있는데, 그 부분이 부족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고 : 본인은 활동 경험은 없다. 나는 NL-PD도 최근에 알았다. 본인은 대중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정치적 감수성을 재교육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활동이라는 것 자체가 진입장벽이 높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결정적인 진입장벽은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운동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활동보다는 1-2학년에 대한 교육을 준비한다. 급진적 개인이 합류하지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급진적 개인 자체가 생겨나지 않는 문제라는 것. 그런 점에서 쉬운 대중운동이라는 테제는 착각인데, 사실 이건 개인들이 급진적 테제에 공감하지 못하는 문제의 근본원인을 짚어내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저변의 활동은 오히려 이를테면 개인의 ‘영어우선주의’ ‘스펙 우선주의’를 문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비여우 : 나는 어차피 망할 운동이라면 좀 더 망가질 건 망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 활동가가 조직에서 배제되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조직이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본인은 사노위나 행진 등과 같은 조직에서 활동했었는데, 조직루트를 따라가지 않으면 어차피 미래가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을 어떻게 추동할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여기서 논의해야 할 것은 기존의 조직방식에 대한 문제제기 뿐만 아니라, 기존의 것을 파괴해야 한다는 인식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좌파들이 민노총을 따라가지 않으면 죽고 마는 그런 구조 자체가 패권주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구조를 따지고 극복방안을 모색하는 게 우선이다.

<조직운동에 대한 비판과 전망>

박가분 : 내 생각에는, 운동의 기본활동은 대중을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장악’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 수단이 얼마나 세련되었든 간에 기본은 바로 그런 ‘장악’에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기존 조직을 비판하는 운동/활동조차도 결국에는 그들보다 더 ‘잘’ 대중을 장악하는 데 요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조직의 패권주의나 권위주의를 단순히 그 모양새로만 비판하는 것은 무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여우가 말했듯이, 오히려 조직의 생존과 확장을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양태가 ‘패권주의’로 발현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먼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패권주의 비판은 단순히 문화적 비판에 그칠 것이다.

시원한 형 :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데, 나는 오히려 조직이 개인을 착취하는 양식이 근본적인 근대적 전제와 잇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거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여우 : 사실 스탈린이 없으면 스탈린주의도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직의 경직성을 비판할 때, 몇몇 개인이나 몇몇 조직(이를테면 NL)의 문제로 보면 곤란하다.

가오리연 : 사실 조직 자체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고민과 더불어, 조직 자체를 바꾸기 위한 ‘조직적’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 여기도 다시 한 번, ‘학습하라, 조직하라, 선동하라’라는 구호가 적실한 것 같다. 또한 여기서 SNS가 수행한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에도 주목해야 한다.

변화 : 학습하라, 조직하라, 선동하라, 는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가오리연 : 사실 80년대의 운동은 이미 ‘마감’되었다고 봐야 한다. 91년부터 이미 지금 나온 비판들은 이미 나왔다고 봐야 한다. 그때에도 이미 운동이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세를 보면, 서울 법인화 투쟁, 등록금 관련 비상총회가 연달아 성사되는 등 대중적 잠재력이 성장했는데, 여기서 개인의 활동 재생산 기반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푸고 : 예를 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오리연 : 간단하게 말해서, 학습 커리를 만들고, 다음과 같은 실용적 매뉴얼이 필요하다. “학생회 한 권으로 끝내기”, “운동가를 위한 매뉴얼” 등등.

병화 : 아무런 배경이 없는 상태에서 개인 활동가는 혼자서 이론적/실천적 요령을 터득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정말 큰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푸고 : 잠시 화제를 돌려보겠다. 본인은 조직 내에서의 권위와 억압의 문제에 공감한다. 그런데 학생운동에서 결국 중요한 건 조직 바깥의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이다. 그리고 우리가 개입해야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이를테면 비상총회를 하더라도 결국 박수소리의 크기로 의결을 받는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된다. '나이브함'으로 여겨지는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탓에 조직운동의 형태가 눈앞의 성과주의를 통한 모종의 정당성과 권위를 획득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우리들은 자꾸 ‘급진적 개인들’을 전제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급진적’이라는 수식에 괄호를 넣고서 전혀 급진적이지 않은 개인들의 교양과 의식을 끌어올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철학에 대한 세미나라든지 하는 학습 모임들이 더 많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꼬로네 : 그런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10대와 청소년과 연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조직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가분 : 나는 당장 학습을 통해 청년대중의 의식수준을 끌어올리자는 강진님의 말에는 회의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보다 실용적인 수준에서 재생산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말에는 동의한다. 다시 말해서 누구라도 학생회에 참여할 수 있고, 누구라도 조직을 만들 수 있고, 누구라도 학내자치단위에 참가할 수 있게, 그 동안의 역량과 노하우를 조직을 넘어서 전수받고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여우 : 구좌파들은 자신의 운동의 노하우가 단절되는 것을 방치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을 본인들 스스로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러한 축적된 노하우를 무시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와 더불어 여기서 힘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데, 대중을 움직이는 것은 교양적인 계기라기보다는 보다 구체적인 사회적 ‘힘’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대중을 움직이는 구체적인 ‘힘’에 주목해야 하는데, 정치철학보다는 다른·동기가 개인을 운동에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락방 : 나이브함을 경계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푸고 : 아직 우리 사회는 소위 '나이브함'이 선취되지 않은 사회이므로, '급진적 개인'에 대한 전제는 필연적으로 스스로를 소수화할 수밖에 없는 성급한 판단이다

<상반기 학생사회 정세평가>

가오리연 : 이번 등록금 집회 때처럼 공간에 사람이 다시 많이 보인 것은 긍정적인 신호이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런 대중집회가 반정치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문성근의 ‘백만민란’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박가분 : 서울대 법인화 투쟁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보면, 되게 양가적이었다. 한편으로 본부스탁을 보면서 새로운 방식의 발랄한 투쟁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면서, 또 한편으로 그 투쟁에 조직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거기에 대해서는 ‘물을 흐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이것은 모순적인 건데, 애초에 조직이 개입해 들어가지 않으면 어떤 ‘재미있는’ 투쟁도 지속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서도 대중들이 카페인 없는 커피, 알코올 없는 맥주, 조직 없는 투쟁이라는 모순적인 탈근대적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대중적 환상에 대해 보다 공세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 서울대 법인화 반대 투쟁 와중에 기금모금 및 대중선전 일환으로 기획된 '본부스탁'. 현재 점거 중인 본부 앞에서 열린 공연을 의미하며 '우드스탁'을 패러디한 용어이다.

비여우 : 활동가는 대중들에게 물화된 대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거기에 어떠한 방식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또 한편으로, 조직활동 자체가 나쁘지 않다고 대중들에게 강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서 박가분의 논지에 한편으로 동조하면서, 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지금과 같이 고립된 상황에서 ‘전위’라는 공세적 발상이 요청되는 측면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연세대 살맛과 같이 조직운동의 필요성을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식시키는 활동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나는 그러한 것들이 모범적인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푸고 : 결국 활동가들이 대중 사이에서의 fundamental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fundamental 없이도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운동권의 ‘근자감’ 곧 근거 없는 자신감 아니겠는가? 현실운동에 아직 몸담아보지 않은 제3자적 입장에서 보건대, 지금의 조직들은 지나치게 성급한 감이 없지 않다. 조직 바깥에서 정치의 가능성을 준비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비여우 : 자만하기 때문에 자만한 것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근자감 없이 운동을 애초에 시작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다들 자신의 확신을 갖고 나아가지 않으면 운동이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진보대통합>

조윤호 : 반MB 전선만으로 모든 것을 몰아가는 게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예컨대 등록금 문제에 관해서도 ‘반MB 구호’를 외치는 실정이다. MB가 도대체 등록금을 올리는 데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인가? 오히려 책임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게 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이쯤 되면 나는 MB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퇴행적 반MB 전선에 대한 전망과 개입 방안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비여우 : 여기서 나는 최장집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문제를 제기해보고 싶다. 교수들은 최장집의 등장을 자유주의의 성공적 재등장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자본과 정당의 싸움으로 이행하는 표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주의와의 싸움이 필요하다. 거리의 정치는 우리들의 승리와 연결된다. 대중집회는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자유주의적 공세가 아무리 격화되더라도, 잘만 기획한다면 대중들은 오히려 대중집회가 주는 매혹에 끌릴 것이다. 정치 자체는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조은혜 : 진보대통합은 나이브함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어느 지점까지 나이브함에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탈정치화 및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관련되는 것 같다. 이것을 단지 자본주의의 전방위적 압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대중들은 기독교 동아리의 포섭과 학생운동가들의 포섭도 그저 동일선 상에서 놓고 보고 있다. 이러한 나이브함의 지점에서 정치적 합의를 이루어 내기는 힘들 듯하다. 현재의 반MB 구호내지는 상황에서 대중들의 급진화가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러한 의제만으로는 대중 급진화는 어렵다.

푸고 : 촛불집회 당시 일부 플랜카드는 민주당 지지를 내세웠다. 자본주의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걸 모르니까 결국 처음에 제 아무리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반대를 내세운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보수적인 정당정치로 포섭된다. 이것은 현재의 반MB도 일맥상통하다고 본다. 촛불시위 당시의 저 냉소적인 대중들은 결국 야권연대에 대한 지지로 돌아서지 않았는가?

꼬로네 : 이런 대중들의 변화를 감안할 때, 진보신당의 기획은 실패했다고 본다. 현재로서는 독자파의 그럴듯한 기획도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정당정치 안에 머물러 있는 한 말이다.

비여우 : 반자본주의 정서는 잘 모르겠는데,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반사회주의에 대한 정서는 확실한 것 같다.

푸고 : 반자본주의가 나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상상적인 적대감 위주로 흐르는 것 같다.

시원한 형 :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반자본주의적이라기보다는 친자본주의적인 것 같다. 삼성에 취직하고 싶어하고, 나가수 등의 경젱체제를 체화한 것만 봐도 대중들이 반자본주의적이라 볼 수 없다.

폴스키 : 반자본주의에 대한 적대의 층위가 사안별로 다른 것 같다. 반자본주의 정서 같은 경우도 보통은 어떤 대안이나 이론보다는 먼저 감성적 접근이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진보대통합 논쟁도 점차 이념이 부재한 비정치적 접근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