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M은 해마다 ‘영화부문 기획인턴’을 모집한다. 기획인턴으로 뽑힐 경우 ‘CJ 그룹공채 지원 시 서류전형 가산점 부여’라는 혜택이 있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이 과정을 거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 사례는 5명 밖에 안 된다. 

1년 넘게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고 있는 L씨는 “언론사 취업 스터디를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언론사 공모전이나 서포터즈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는데 나중에 방송에서 자기가 기획했던 프로그램과 비슷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는 걸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L씨는 언론사 취업준비생들이 서포터즈나 기획인턴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며 “면접관들이 방송이나 언론 관련된 일 중에 해본 게 뭐가 있냐고 물어본다. 그 때 대답할 만한 스펙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기획안이나 아이디어 덕분에 인턴이나 서포터즈에 뽑힐 수 있었다고 말하면 내 능력이 증명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서포터즈나 인턴이 되면 기업의 홍보활동에 참여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채용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소정의 활동비와 ‘활동 우수자에 한한’ 인센티브가 있을 뿐이다. 요즘 필수 취업 스펙으로 꼽히는 ‘서포터즈’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서포터즈에게는 다양한 기업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기업을 홍보하는 역할을 맡고, 공모전을 통해 기업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한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은 경력을 쌓기 위해 서포터즈 활동에 지원한다. 

  
 
 
일반 기업 뿐 아니라 언론사와 방송사, 제작프로덕션 등도 서포터즈와 인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채널A>는 대학생과 주부를 대상으로 ‘서포터즈’를 모집했다. 서포터즈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채널A프로그램, 브랜드 이미지 등을 어떻게 홍보할지 홍보방안을 기획해서 제출해야 한다. <김종학 프로덕션>도 대학생 서포터즈를 모집했다. 대학생 서포터즈는 영상 및 각종 콘센츠를 기획하고 개발한다. 서포터즈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드라마 기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드라마 제작사 <에스피스>도 ‘콘텐츠 기획 인턴’을 모집했다. 기획인턴으로 뽑히면 드라마 아이템을 발굴하고, 드라마 기획에도 참여한다. 이러한 기획인턴과 서포터즈 활동의 대가는 ‘정식 인턴십 기회 제공’, ‘채용시 가산점’, 소정의 활동비와 수료증이다.
 
최근 한양대학교가 13학번부터 기업의 인턴십 과정을 의무적으로 수강하도록 제도를 개편해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대학이 인턴십 의무제를 지정할 정도로 인턴은 취업을 위한 필수과정이 됐다. “취직보다 인턴이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기업의 신규 채용은 줄어드는 데 인턴 모집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인턴제도가 경험과 실무능력을 쌓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인턴제도가 기업이 무급 혹은 저임금으로 청년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일각에서는 기획인턴이나 서포터즈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을 내걸어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빼앗으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언론사 취업준비생들의 커뮤니티 <아랑>에는 이러한 기획인턴과 서포터즈의 문제점을 토로하는 글들이 종종 올라온다. “아이디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지적재산인데 그걸 일주일에 하나씩 빼먹으려 하다니. 겨우 '소정의 활동비'와 '수료증'따위로 열정을 싹 뽑아 먹으려하네요.” “이건 거의 빨대수준이군요. 전에 프로덕션이 아니라 언론 분야의 한 곳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팀장까지 올라가면 빨대만 들고 다니면 된다고, 그래서 참신한 인턴 애들끼리 서로 피 튀기게 경쟁 붙이다가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등 뒤에 꽂고 빨아먹으면 되는 자리라고' 그 말 듣고 속으로 경악했었죠.” “그냥 여러분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 할 테니 단물만 빨아 먹어 볼께요 대놓고 광고하는 느낌”
 
취업 준비생 O씨는 “인턴이나 서포터즈를 통해 인력을 싸게 굴리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이용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 커리어, 이력, 스펙으로 남기기 위해 뭐든지 다 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생들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빼앗길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인턴이나 서포터즈 등에 지원하는 이유가 그들이 철저하게 ‘을’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채용 등에 관한 좋은 정보를 얻기 위해 어떻게든 현장에 있는 선배들을 만나야 하고, 이력서에 한 줄 쓸 수 있는 경력과 스펙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턴이나 서포터즈에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1년 <채널A>가 신입사원 모집에서 탈락한 지원자들의 클립을 모아 ‘개국특집 100초 열정’이라는 영상다큐를 방영했던 적이 있다. 채널A에 지원했던 한 언론사 취업준비생은 “시험에서 탈락했는데 전화가와서 내 영상을 써도 되냐고 물어보니 기분이 나빴다”면서 “그래도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써도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다른 언론사 면접을 볼 때 내 영상을 채널A 측이 홍보영상으로 쓸 정도로 내가 영상을 잘 만든다고 자신을 홍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을’의 위치에 있는 취업 준비생들은 경력서 한 줄, 면접에서 이야기할 한 마디가 절실히 필요하다. 
 
언론사 취업준비생 P씨는 “일반 기업도 그렇고, PD나 방송제작자라는 직업은 아이디어 하나가 되게 중요하지 않냐”면서 “인턴이나 서포터즈에 지원할 때, 혹은 인턴이나 서포터즈에서 활동할 때 그런 소중한 아이디어들을 개발해 내는 데도 딱히 공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디어 빨리는 느낌이고 딱히 나한테 유리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불안한 마음 때문에 지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은 “청년들에게 과도한 스펙을 요구하는 현상이 사라져야만 기업이 인턴 등의 방식으로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가져가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현상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