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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논문 및 레포트

주권과 헌법의 불편한 밀월

과제.

국가를 구성하는 3가지 요소를 흔히 국민, 영토, 주권이라고 한다. 그 중 주권은 국가가 제 역할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실질적인 힘’이다. 따라서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주권의 성격과 위치는 늘 논쟁의 대상이다. 이 문제가 국가의 성립과 민주주의 과정을 역사적으로 분석하는데 있어서, 특정한 형태의 정치체제의 구축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했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언가의 성격과 위치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비교대상을 설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주권의 비교대상으로 헌법을 설정하고자 한다. 국가의 3대 요소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헌법은 국가의 필수요소이다. 그 국가가 어떤 체제를 지향하고 있는지, 국가의 통치조직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밝히고 통치 작용의 기본원리를 규정하는 것이 그 국가의 헌법이기 때문이다. 즉 나는 이 글에서 주권과 헌법의 관계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참조한 텍스트는 크게 세 가지이다. 영국 헌정사에 대해 다룬 알버트 벤 다이시의 “의회주권의 본질”, 미국 헌정사에 대해 다룬 알렉산더 해밀턴 등의 “연방주의자 논설”, 프랑스 헌정사에 대해 다룬 엠마누엘 요제프 시에예스의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가 그것이다. 각각의 텍스트를 통해 주권의 성격과 헌법의 지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분석, 비교할 것이다.

1. 헌법은 내 손 안에 있소이다!

 

 


헌법학 입문

저자
알버트 다이시 지음
출판사
경세원 | 1993-09-0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헌법의 기본 특성부터 여러 조항의 효력을 자세히 기 술한 전공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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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시는 영국을 ‘의회주권이 지배하는 나라’로 단정한다. “의회주권은 우리 정치제도의 지배적인 특징이다.”(다이시, 2) 법적인 의미에서 영국에서 의회는 국왕, 귀족원, 평민원을 포함한다. 이렇게 정의될 수 있는 의회는 영국에서 말 그대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어떠한 법이든지 만들거나 만들지 않을 권리”(다이시, 2)를 가지고 있으며, 영국에 있는 그 누구도 “의회의 입법을 배제하거나 무시할 권리가 인정되지 아니한다.”(다이시, 2)

하지만 의회에게 ‘입법권’이 있다는 이유로 의회에게 ‘주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3권 분립에 익숙한 우리는 행정권과 사법권의 견제를 떠올릴 것이다. 의회의 입법권에 대해 논하기 전에 이 의문을 해결하고 넘어가자. 의회는 입법권을 지니고 있지만, 다이시가 서술하는 시대에 존재했던 영국의 정치구조는 의회에게 입법권을 넘어선 ‘주권’을 부여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이시가 아니라 매디슨의 논설을 참조하면 좋다. 매디슨은 몽테스키외의 서술을 참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국 헌법을 언뜻 보면 입법, 행정, 그리고 사법부가 전적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매디슨, 295)

먼저 행정권에 대해 살펴보면, ‘의회 내의 국왕(King in Parliament)’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행정부의 수반은 입법부의 필수적인 한 부분을 겸한다.”(매디슨, 295) (행정부의 수반이 입법부의 필수적인 한 부분을 겸한다는 말의 의미는 두 가지이다. 첫째, 행정부의 수반이 입법부의 한 부분을 ‘겸하면서' 생겨나는 효과인데, 행정부는 사실상 입법부에 종속되어 있다. 1215년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사건 이후 영국 국왕은 의회의 승인이 없으면(법률에 의거하지 않으면) 과세도 할 수 없으며, 자유인 신분을 가진 이를 함부로(국법에 의거하지 않거나 재판 없이) 체포, 감금할 수 없게 되었다. 둘째는 기능적인 측면이다. 행정부가 입법부의 역할을 일정 부분 담당한다. 대표적인 예가 조약의 체결이다. 행정부의 수반, 즉 국왕만이 외국과 조약을 맺을 수 있는데, “그 조약은 체결되었을 경우에 특정한 제한 하에서 입법 법령으로서의 효력을 갖는다.”(매디슨, 295)) 영국은 프랑스처럼 왕의 목을 치지 않으면서, 행정부에 해당하는 국왕을 의회 안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의회가 국왕으로부터 주권을 넘겨받는 식으로 혁명을 수행했다.

사법권은 또 어떠한가? 정치 구조적으로 영국에서 사법권은 입법권을 견제하기 힘들다. 미국의 건국자들이 연방주의자 논설에서 사법권의 독립을 강조하면서 영국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영국에서 “행정부의 수반은 사법부의 모든 구성원을 임명하고, 또한 의회 양원의 요청에 의거하여 해임할 수”(매디슨, 295) 있다. 또한 “입법부의 한 부서는 대헌법위원회를 구성하는데, 대헌법위원회는 탄핵의 경우 유일한 사법권의 위탁자가 되며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최고 항소재판권을 부여받는다.” (매디슨, 295) 게다가, “법관은 (의회 입법에서) 표결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입법심의에는 자주 참석함으로써 입법부와 결부되어 있다.”(매디슨, 295)

영국에서는 왜 행정권과 사법권이 의회를 견제할 수 없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으니, 이제 의회의 입법권이 얼마나 ‘절대적’인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다이시에 따르면, 의회는 무제한적인 입법권을 지닌다. 의회는 마음만 먹으면 ‘거의’ 무엇이든지 법으로 제정할 수 있다. 공권(public rights)의 측면에서 다이시는 두 가지 중요한 사례를 제시한다. 한 가지는 왕위계승법이다. 왕도 자기 마음대로 왕위를 물려주지 못하고, 의회가 정한 법률에 따라서 왕위를 물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7년 선거법이다. 1716년까지 영국 의회의 임기는 1694년 법률에 따라 3년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1716년 영국 의회는 의원의 임기를 7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는 의원들이 3년간 복무할 것이라 ‘기대’하고 표를 행사했는데, 의회는 이러한 ‘기대’와는 별개로 자신들의 임기를 연장해버린 것이다.

의회에 대항할 만한 입법권이 부재하다는 사실도 의회의 입법권을 절대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인이다. 다이시는 “국왕, 귀족원과 평민원, 유권자단, 법원 등이 각각 독립적인 입법권을 보유한다.”는 오스틴의 주장을 반박하며 사실상 의회가 입법권을 독점하고 있다고 말한다. 먼저 원래 영국 국왕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율령이나 포고령의 반포를 통해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나, 명예혁명 과정을 거치면서 이러한 권한이 사라졌다. 또한 평민원과 귀족원의 결의(resolution)는 법적 효력이 없다. 흔히 입법권을 행사한다고 여겨지는(입법권을 행사하는 의원들을 선출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권자들 역시 실제로는 입법권을 행사할 수 없다. “유권자들은 의회의 입법을 발안, 비준, 폐지할 어떠한 법적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아니한다. 어떠한 법원도 특정 법률이 유권자들의 의사에 반하여 무효라는 주장을 한 순간이라도 수용하지 아니할 것이다. 유권자들의 의사는 법적으로 오로지 의회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다이시, 18) 또한 마지막 남은 사법부, 왕립법원 역시 법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역할만 담당하는 측면에서 ‘입법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행정부가 의회보다 법안을 더 많이 발안하고, 국민에게도 법안 발안의 권한이 있고. 사법부가 ‘위헌법률심사’ 등을 통해 입법에 관여하는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다이시가 밝힌 대로 영국에서 의회는 입법권을 독점하고 있다.

의회가 입법권을 독점하고 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영국에 사실상 ‘헌법’이 없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한국에서 헌법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앞에서도 밝혔듯이 헌법이란 국가가 지향하는 체제, 통치조직과 통치원리를 규정한다. 즉 헌법은 한 사회/국가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이자 근본적인 원리이다. 따라서 한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은 헌법의 원칙을 따라야한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은 폐기되거나 수정될 수 있다.(위헌법률심사. 헌법소원)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러한 ‘헌(憲)’이 없는 것이다. 의회는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법률을 정하거나 폐기할 수 있다. 마음대로 자신들의 임기도 늘리고, 전임 의회가 설정한 법도 마음대로 바꾸어버릴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이들이 영국 의회의 의원들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실상 의회 독재가 아닌가? 일반 국민들의 인권이 짓밟히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사실 바로 ‘그 믿음’이 의회주권의 나라 영국을 유지시켜주는 힘이다. 영국 의회는 제멋대로 국민들의 기본권을 빼앗는 왕을 ‘법률’로 제한하면서 주권을 얻었다. 영국인들 입장에서 의회는 몇 백 년 동안 나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운 존재이다. 이 과정에서 쌓인 권위와 신뢰가 일반 국민들이 영국 의회를 지지하고, 영국 의회도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안들을 내놓지 않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법들이 ‘헌법적 작용을 하는 불문헌법’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다이시는 이와 관해 레슬리 스테판의 말을 인용한다. “만약 의회가 파란 눈을 가진 모든 어린이를 죽이도록 결정한다면 파란 눈의 아이를 보호하는 것은 불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의원들이 그와 같은 법을 통과시키기 전에 모두 미쳐 버리고 나머지 국민들은 그 법에 복종하기 전에 모두 바보가 되어버리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절대로 생기지 않을 것이다.”(다이시, 34)

2.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헌법이다.

 

 


페더랄리스트 페이퍼

저자
알렉산더 해밀턴 지음
출판사
한울아카데미 | 2009-04-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표지글] 「페더랄리스트 페이퍼」는 독립선언문 그리고 헌법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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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주권의 나라 영국과 극명하게 비교되는 사례는 바로 미국이다. 영국에서 주권은 왕에게서 의회로 이양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회는 일반 국민들의 기본권과 인권을 지키고자 했다. 미국을 구성한 이들의 과제는 영국 국민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영국에서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온 이들에게는 ‘건국’이라는 과제가, 그리고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영구히 보장받는 국가의 ‘건국’이라는 과제가 있었다.

각 국의 국민들 입장에서 접근해보자. 영국 국민들 입장에선 원래부터 ‘주권’이 있었다. 다만 그 주권이 의회로 이양된 것이다. 주권을 발휘하는 국가가 이미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완전히 달랐다. 1620년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은 아메리카로 가는 메이플라워호에서 협약을 맺는다. 홉스나 로크가 가상으로 설정한 사회계약이 ‘역사적’으로 실현되었던 곳이 미국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국가를 건설하면서 맺은 이 ‘계약’이야말로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헌법이 국가에 앞서, 주권에 앞서 존재한 것이다. 원래 있던 국가의 주권이 이양되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헌법의 역할을 하는 불문헌법이 탄생한 영국과 달리, 헌법이 국가와 주권을 형성한 것이다!

“헌법의 규정에 따라 설립된 여러 부문들 간의 권력분립을 실질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마지막으로 어떤 방법에 의존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즉 이러한 모든 표면상의 규정들만으로는 불충분하므로 정부를 구성하는 여러 부문이 그들의 상호관계에 의해 서로를 적절한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정부의 내적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그 결함을 보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중요한 착상을 감히 완벽하게 발전시키겠다고는 할 수 없고, 다만 헌법제정회의에서 계획된 정부의 원칙과 구조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더 정확하게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일반적인 의견을 검토하고자 한다.”(매디슨, 315)

위의 인용구에서 알 수 있듯이, 매디슨을 비롯한 미국의 건국자들은 미국 건국 과정에서 자유를 어떻게 하면 보존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입법/사법/행정 3권이 분립되어 있는 정치구조를 마련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정부의 원칙과 구조’가 헌법제정회의에서 논의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운영되고, 어떠한 권력 구조를 가질 것인지가 ‘헌법’에 포함된 것이다. 즉 미국에게선 영국과 같은 ‘의회주권’이 탄생할 여지가 없었다. 미국 의회는 헌법에 의해 규정되고, 헌법에 의해 그 기능을 부여받았으며 헌법에 의해 창출되었다! 주권은 ‘헌법’에 있다.

이처럼 미국은 ‘헌법주권’의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헌법은 불변의 원칙이다. 아무도(심지어 의회도) 고칠 수 없다. 어떠한 통치기구보다 우선한다. 시간이 흘러도, 미국 건국 당시 세워졌던 ‘헌법에 의한’ 원칙과 원리들은 변하지 않으며, ‘수정헌법’과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내용이 기존의 헌법에 덧붙여지는 형식으로 ‘수정’된다. 헌법제정회의로 대표되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자유와 권리의 보장이라는 불변의 원칙에 근거하여 불변의 헌법을 제정한 것이다. “정부의 안정은 시민사회의 최고의 축복 중 하나인 국민들의 마음속에 평화와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의 특성과 그 특성에 해당하는 이익들에 필수적이다. 변칙적이고 변화무쌍한 법제는 국민들에게 불쾌한 것을 넘어서 그 자체로 이미 악에 가깝다. 그리고 자연에 관한 한 계몽되고 선한 정부의 취지에 관심이 있는 이 나라의 국민들은 주정부들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변동과 불확실성에 대한 어떠한 치료가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확신 있게 주장할 수 있는 점이다.”(매디슨, 221)

따라서 헌법을 만든 이들이 의회가 아닌 것은 물론, 의회는 헌법을 바꿀 수 없으며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을 제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영국인들과 반대로 의회주권이 미국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크게 우려했다. 입법부가 권력 분립에 의해 규정된 권한 이상을 발동할 것을 염려했다. “입법부는 어디에서나 자기의 활동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으며 모든 권력을 자신의 격렬한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매디슨, 303). “헌법상 입법부의 권력은 우선 더 광범위하기도 하고 엄밀히 제한하기도 쉽지 않으므로 다른 동등한 부문에 대한 침해를 복잡하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아주 쉽게 은폐할 수도 있다.”(매디슨, 304) 심지어 매디슨은 버지니아 주, 펜실베니아 주의 예를 들며 “헌법은 입법부에 의해서 다양한 사례에서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매디슨, 305)고 까지 말한다.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고 의회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해밀턴은 사법부에게 최고재판권(위헌법률을 심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법부가 그러한 권한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성질상 사법부가 헌법의 정치적 권리에 가장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정부는 칼, 즉 수단을 지니고 있으며 입법부는 경비를 주관하는 것은 물론 모든 시민을 규제하는 법을 만드는 반면 “사법부는 칼도 돈도 갖고 있지 않으며 사회의 힘이나 부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어떤 것도 실질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사법부는 힘도 의지도 없으며, 단지 판단만을 내린다.”(해밀턴, 458) 둘째, 사법부를 구성하는 이들의 성격 때문이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선출된 권력이라서 당파에 휩쓸릴 여지가 많은 반면 사법부는 공정한 시험에 의해 선발된 이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정치적 변화에 적은 영향을 받는다. 이를 근거로 해밀턴은 최고재판권을 사법부에 부여할 것을 주장하고, 실제로 미국 연방대법원에 이러한 권한이 주어졌다. 의회주권을 제어하고, ‘헌법’에 주권을 부여하기 위해서 말이다.

3. 뛰는 헌법 위에 나는 국민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 33)

저자
E.J.시에예스 지음
출판사
책세상 | 2003-09-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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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주권’에 대해 들으면 길길이 분노할 인물이 있다. 바로 시에예스이다. 그는 아마 건국의 아버지들이 모여 만든 헌법에 왜 몇 백 년 간 미국 국민들이 종속되어야 하느냐고 분노했을 것이다. 주권이 헌법에 종속되어 있는 미국과는 달리, 프랑스 헌정사는 주권이 헌법을 지배한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헌법과 관련해 제기되는 여러 가지 의견 충돌을 종식시킬 방법이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명사 회의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전체 국민 자체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 국민만이 헌법을 제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시에예스, 89)

시에예스는 정치사회의 형성을 세 시기로 나누어 고찰한다. 제1시기인 기초 사회는 개인적 의사들의 결과이며 개인적 의사들이 모든 권력의 원천이다. 제2시기는 공통적 의사의 실행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제3시기는 공통적 의사를 직접 행사하기에 용이하지 않아서 “전체 국민의 의사, 결과적으로는 권력이라는 부분의 행사를 그들 중 몇몇 사람들에게 위임”(시에예스, 91)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공통적 의사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대의적 공통 의사만 존재한다. 그러나 시에예스는 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잊지 않는다. “대의적 공통 의사에는 두 가지 본질적 특성이 있는데 ① 이 의사는 대표자 단체에게 전적으로 그리고 무제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전체 국민의 커다란 공통적 의사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② 대표자들은 이를 고유한 권리로서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타인의 권리이며. 공통적 의사는 그 위임에 의해서만 존재한다.”(시에예스, 92)

시에예스는 정치사회의 형성을 살피고 나서 곧바로 헌법과 전체 국민과의 관계에 대해 논한다. 그에 따르면 헌법이란 “어떤 단체가 그 단체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의도된 작용을 완수하기 위해 부여된 적합한 법률, 형태, 제도”(시에예스, 92)이다. 앞에서 설명한 위임받은 대표자들은 이 헌법에 따라서만 작용하고 나아가고 명령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표자들 말고, 국민은 헌법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국민은 모든 것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국민은 모든 것의 기원이다. 국민의 의사는 항상 적법하며, 국민의 의사가 곧 법률이다.”(시에예스, 93-94)

시에예스에 따르면 국민은 실정법 이전에 존재한다. 헌법은 어떤 단체를(국가) 구성하는 구성원들이(국민들이) 결정한 실정법이다. 반면에 국민은 자연법에 의해서 형성된다. 따라서 국민은 헌법에 종속될 수 없다. 만약에 국민이 헌법에 종속된다면 국민에게 헌법에 종속되라고 강요하는 “사전적인 어떤 권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시에예스, 96) 시에예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헌법 간에 충돌이 발생하거나, 헌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는 국민들의 의사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 “헌법의 각 부분들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주된 의견 충돌에서, 논란이 되는 헌법에 따라서만 행위 할 수 있다고 길들여지고 지시받은 국민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민들이 자신들의 소송을 신속히 마무리 할 수 있는 힘을 능동적인 권력 쪽에서 찾아내는 것이 공민적 질서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에 주목하자.”(시에예스, 98) 헌법에 의해 구성된 기관들은 헌법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헌법을 심판하고 헌법들 사이의 모순을 해결할 능력이 없으며, 오로지 헌법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국민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헌법으로부터 국민이 독립적이어만 헌법은 헌법답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국민이 모든 헌법적 형식과 모든 규범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부분들 간에 아무리 조그마한 장애라도 발생할 경우 그 나라에는 더 이상 헌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시에예스, 98-99)

그렇다면 조금 더 현실적인 문제로 넘어가서, 말이야 국민 뜻대로 하면 된다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도대체 국민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국민의 의견을 구해야 하는가? 여기서 시에예스는 특별 대표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특별 대표란 일반 대표와 구별되는 것으로, ‘연방주의자 논설’에서의 ‘헌법제정회의’와 유사하다. 일반 대표란 의회라 할 수 있다.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프랑스의 각 행정구에 있다. 그리고 이 시민의 과반수에 의해 임명된 특별 대표들만이 헌법을 다루거나 국민들에게 헌법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헌법 제정 대표는 신분별 고려 없이 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특별 대표들은 어떻게 국민의 의견을 구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국민을 소집해야 한다. “통상적인 국민 의회 헌법 제정을 위해 특별히 위임된 특별 대표를 수도에 파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국민을 소집해야 할 것이다.”(시에예스, 107)

시에예스는 이처럼 국민에게 주권을 부여하고, 더 나아가 이 국민주권이 헌법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국민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헌법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마치 프랑스대혁명 이후 여러 차례의 헌법 개정을 거친 프랑스의 역사를 선험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