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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실에 민원실 간판…2030 의원 ‘생활정치 요정’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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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실에 민원실 간판…2030 의원 ‘생활정치 요정’이 떴다!


정연우(30) 고양시의원은 지난달 8일 경기도 고양시 중산체육공원에서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테이블 하나를 놓았다. 옆에는 ‘찾아가는 민원 버스킹’ 입간판도 세웠다. 이곳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에 내빈으로 참석했다가 ‘내친김에’ 민원 접수 창구를 마련한 것이다. 1시간 반 가까이 10여개 민원을 들었다. 그 가운데 보도블록 개·보수 같은 몇 가지 사안은 곧바로 처리했다. 정 의원은 한달에 한번씩 이런 ‘민원 버스킹’을 한다. 그는 “나 역시 의원이 되기 전에는 불편한 게 있어도 막상 귀찮아서 구청에 잘 연락하지 않았다. 이제는 시민들이 산책하다가 나를 보고 ‘아 이런 불편이 있었지’ 하며 쉽게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 정치는 연결이다

6·13 지방선거가 치러지고 100일이 훌쩍 지났다. 국회엔 ‘올드보이’가 돌아왔지만, 여의도 바깥의 지방의회에선 ‘꽃보다 청춘’이 정치 변화의 기운을 일으키고 있다. ‘맨땅에 헤딩’으로 6·13 지방선거에서 도전해 당선된 20~30대 광역·기초의원은 총 238명. 전체 지방의원 3750명의 6.3%다. <한겨레>가 지방선거 100일(9월20일)을 즈음해 만난 2030 지방의원 5명은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거대 담론보다는 주차장 확대, 버스 승차대 설치 같은 주민들이 매일 겪는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바쁘게 뛰고 있다.

전국 최연소 구의장이 된 이관수(35) 서울 강남구의장은 의장실에 민원 처리 서류를 모은 책장을 마련했다. ‘목련아파트’ ‘분뇨 처리’ ‘영동경로당’ ‘대청중학교’… 간단한 민원 제목을 붙여놓은 서류가 어느덧 40여개다. 지난 7월 구의장이 된 뒤 접수해 처리한 것들이다. 지난달 14일부터는 의장실 앞에 ‘열린현장민원실’ 간판을 달아놓고 있다. 이 의장은 “기존 의장실은 문턱이 있어 주민이 쉽게 의장과 면담하기 어려웠다. 젊은 만큼 더 ‘일하는 의장’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국 최연소 기초의원인 이의찬(26) 부산 연제구의원은 지역에서 발생한 20대 청년의 고독사 사건을 계기로, 청년들의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청년기본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동현(27) 서울시의원은 아이들 하교·하원 길에 손주를 데리러 오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위한 정서적 지원 및 육아교육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조민경(26) 인천 연수구의원도 보육·교육 인프라 부족을 호소하는 지역민들의 요구에 부응해 교육청, 국회를 오가며 해결 방안을 찾고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정치는 ‘연결’이다. 시민과 정치의 가교가 되겠다는 것이다. 조민경 의원은 “주민들이 자신의 요구를 마음껏 펼치는 장을 만들고, 그것이 반영되도록 연결하고 싶다”고 했다.

청년 정치인들의 장점은 ‘친근함’이다. 기성세대에는 자식뻘이고 젊은 세대에는 형 또는 누나, 동생 같은 존재여서 주민들과 소통하기 더 쉽다고 한다. 이동현 서울시의원은 지난 7월 한 노인한테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다. 혼자 사는 70대 노인은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마땅히 연락할 곳이 없어 예전에 이 의원한테 받은 명함을 찾아내 전화했다. 이 노인은 “손자 같아서 전화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서울시와 해당 구청을 통해 노인에게 긴급지원서비스를 소개했다. 이 의원은 “(주민들이) 복지서비스를 몰라서 신청조차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내가 주민들의 ‘대리인’이자 정보 격차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 것에 뿌듯하다”고 했다.

2030 의원들은 의회에서 ‘어색하면서도 신선한’ 존재라고 한다. 동료 의원들은 죄다 50~60대이고 가끔 40대 의원이 몇명 있는 정도다. 시청·구청의 과장이나 실·국장급 공무원도 모두 이들의 부모 나이다. 자기소개를 하면 자식뻘 되는 ‘의원님’을 보고 눈이 동그래지기도 한다. 나이가 젊다고 무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잘하나 어디 한번 보자’ 하는 시선도 느껴진다. 이의찬 의원은 “내가 길을 잘 닦아야 젊은 친구들이 많이 당선된다. 다음 선거에선 2030 정치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길을 잘 내고 싶다”고 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을 ‘청년 정치인’ 프레임에만 가두지 않는다. 의정활동은 특정 세대나 집단만 대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조민경 의원은 “‘청년이라 괜찮다’는 건 청년과 기성 정치인이 동등하지 않다는 말이다. 청년이라고 실수해도 괜찮다거나 어설퍼도 괜찮다는 생각을 우리 스스로 하면 안 된다”고 했다.

■ “주민들도 변화 요구 강해”

이들은 각자 다양한 경로로 자신이 보고 겪은 삶의 크고 작은 부조리를 해결하고자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동현 서울시의원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생회장 출마가 좌절된 일을 계기로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당시 학교 쪽에서 “학생회장을 하면 부모님이 학교운영위원회 활동을 하셔야 하는데, 너는 편부 가정이라 부모님 참석이 어렵지 않겠느냐”며 양보를 원했다고 한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뜻을 접은 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최재천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사연을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그 인연으로 최 전 의원의 선거를 도우면서 정치 경험을 쌓았다.

이관수 의장과 정연우 의원은 기존 직업을 바꾸고 정치를 시작했다. 이 의장은 노무사로 일하다 노동자 권익을 위해서는 제도 변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해 정치에 도전했다. 물리치료사였던 정연우 의원은 돈이 없어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환자나 휠체어 탄 환자의 보행 불편을 보면서 제도를 바꿔야겠다 생각했다. 1992년생인 이의찬·조민경 의원은 대학 졸업 뒤 곧바로 정치에 도전했다. 주변에선 “공부 더 해라” “정치 말고 다른 거 해라” “정치는 성공한 뒤 나중에 해도 된다”며 만류했다. 이들은 “지금 당장 구의원부터 못할 이유가 없다”는 마음으로 선거에 나왔다고 했다.

이들은 선거 기간 유세를 다니면서 주민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조민경 의원은 투표권이 없는 학생들에게도 명함을 나눠줬는데 나중에 “우리 아이가 명함 받아 왔어요”라고 하는 주민을 만났다. 한 초등학생은 할머니 손을 이끌고 와서 “할머니, 나 투표권 없는데 이 언니한테 투표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젊은 친구가 열심히 해보겠다는데 도와줘야지” “어디 싹 바꿔봐라” 하는 격려도 많이 받았다.

■ 영입이 아니라 육성해야

지난 지방선거에서 많은 청년 정치 지망생들이 의회 문을 두드렸지만 이들처럼 벽을 뚫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어쩌면 좌절 경험이 더 많을 것이다. 이들도 청년 정치인을 대하는 기성 정치 관행의 불합리를 토로한다. “너는 기회가 많으니 이번엔 선배한테 양보해라”라는 압력을 받는다고 한다.

각 정당은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유도하려 하지만 정작 정치인 ‘육성’에는 소홀하다. 현실적으로는 예산 확보가 안 되는 탓이 크다. 정치자금법에는 정당에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의 10% 이상을 ‘여성 정치 발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일정 금액을 청년 정치 활성화에 쓰도록 명문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전당대회에서 국고보조금 5% 이상을 청년에 배당하겠다는 공약을 내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은 “청년한테 자력갱생하라는데 그렇게는 당내 경선을 뚫기 어렵다. 정치교육을 활성화하고 수료하면 당직 경험을 쌓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정치인 육성에 비교적 적극적인 곳은 정의당이다. 정의당은 지난해에 이어 2년째 ‘진보정치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론 수업은 물론이고 정당 연설회, 실태조사 등 정치 사업을 직접 수행한다. 수강생이 직접 논평을 써보고 채택되면 공식 브리핑 기회도 마련한다. 조윤호 정의당 조직위원회 차장은 “우리나라 정당은 외국과 달리 인재를 발굴하고 교육해 선거에 내보내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영입 후 공천이 아니라, 육성 후 공천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