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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양하겠다고 했나, 인양 검토하겠다고 했지”

“인양하겠다고 했나, 인양 검토하겠다고 했지”

세월호 인양, 여전히 “검토 중” “공론화 필요”… 여론수렴하자더니 “결정 안 나” 시간끌기 전략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정부가 실종자 수색을 중단한지 5개월이 지났으나 세월호 인양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결과까지 나왔으나 ‘공론화’를 내세우며 인양 결정을 미루는 모양새다. 

지지부진하던 세월호 인양 논의가 박근혜 대통령의 한 마디 이후 급물살을 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이 나면 실종자 가족과 전문가들의 의견 및 여론을 수렴해 선체 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언론들은 박 대통령이 사실상 인양을 결정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어진 해양수산부의 기술 검토 발표도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했다. 해양수산부 세월호 선체처리 기술검토 TF는 10일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세월호에 체인을 걸어 들어 올린 뒤 동거차도까지 옮기는 방안으로 기간은 1년, 비용은 1000억 원 정도 든다는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세월호 인양은 확정되지 않았다. 핵심은 ‘공론화’와 ‘여론수렴’이다. 박 대통령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이란 조건과 함께 ‘의견 및 여론 수렴’이라는 과정을 제시했다. ‘기술적 검토’가 끝나도 아직 공론화 과정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해수부와 함께 세월호 인양 결정의 양대 축인 국민안전처는 아직 인양이 결정된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지난 9일 언론 인터뷰에서 “기술 검토 결과가 해수부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로 넘어오면 공론화를 거쳐 인양 여부를 결정 하겠다”며 “인양에 따르는 위험과 비용 모두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해수부는 인양을 결정했는데 국민안전처는 인양에 신중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1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해수부는 기술적인 검토를 위주로 한다. 기술적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느냐, 언제부터 작업할 것인가 그런 검토 과정은 끝난 것이고, 중대본으로 이 문제가 넘어오면 인양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라며 “해수부 의견하고 우리 의견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세월호를 인양할지 말지 결정하려면 기술적인 검토만 해선 안 되고 유가족의 의견 등을 안 들을 수 없다. 물론 당연히 인양하자고 하지만, 이런 저런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의미의 공론화”라며 “기술적 전문가뿐만 아니라 재난 전문가 의견도 들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술적인 결론을 내린 해수부 역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한다는 입장이다. 9일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위) 전원위원회 회의에 출석한 해수부 관계자는 “인양 여부는 아직 결정 안 됐다. 인양 가능 여부가 결정됐다는 것”이라며 “공론화 방안은 공청회, 여론조사, 민간위원회 등이 있다”고 말했다. 

공론화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걸까. 일단 여론조사 방식은 배제됐다. 유기준 해수부 장관은 “인양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가 세월호 인양에 찬성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여론조사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해수부 항만국 관계자 역시 “여론조사 계획은 없다. 다만 여론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에스토니아호’ 인양 결정 방식도 대안 중 하나였다. 94년 스웨덴 에스토니아호가 침몰해 승선자 989명 중 852명이 사망 혹은 실종된 사고가 발생했는데 당시 스웨덴은 국가윤리위원회를 구성했고, 인양 여부에 대해 논의한 결과 인양을 포기했다. 윤리위원회는 ‘중립적인’ 각계 원로 인사들로 구성됐다.

해양수산부 항만국은 지난 2월 3일 미디어오늘에 “스웨덴의 경우 국가윤리위원회를 만들어 인양 여부를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 세계 여객선 침몰 인양 사례를 조사해 스웨덴의 에스토니아호 침몰 인양 국민공론화 과정이 있는 것을 알았고 한번 깊이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 <세월호 인양, 공론화 핑계로 시간 끌기 노리나>

그러나 ‘에스토니아’ 사례는 더 이상 검토 대상이 아니다. 해수부 관계자는 “에스토니아 사례를 보고 그런 방법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효성이 없지 않을까 싶다”며 “민간위원회를 구성하게 될 경우 누구를 어떻게 추천할지 그 사람의 성향은 어떨지 등을 두고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그 방안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공론화를 어떻게 할지도 여전히 ‘검토 중’인 셈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공론화에 대해 이렇다 할 결정을 한 것은 아니고 대통령이 언급한 ‘의견을 수렴해서 인양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참조해 절차를 진행하고 논의 중”이라며 “딱 이렇다 할 결정은 안 났다”고 설명했다.

공론화에 대한 국민안전처와 해수부의 견해도 달랐다. 해수부는 중대본 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하기 이전에 어떤 형태로든 의견을 수렴할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보통 정부회의는 다 그렇지 않나. 최종 결정 이전에 사실상 결론을 내고 그 입장을 중대본 회의에 올린다”며 “그 뒤 중대본 회의에서 이 안을 ‘오케이’할지 아니면 다른 의견이 있는지 논의하는 것이지 정부 회의에 1안 2안 3안을 올린 뒤 ‘결정해주세요’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안전처는 중대본 회의 과정이 곧 공론화 과정이라는 입장에 가깝다. 안전처 관계자는 “그런 것까지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 사안은 아닌 것 같다. 중대본 회의에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며 “(공론화란) 중대본 회의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결정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정부가 인양 결정에 시간을 끌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론조사에 결정을 떠넘기다 인양여론이 높자 이 방식을 철회하고, 인양을 포기한 에스토니아 사례를 검토했다가 이 방안조차 폐기했기 때문이다. ‘공론화’가 필요하다면서 아직 공론화 방법조차 정하지 못했다. 

문제는 인양 논의가 길어질 경우 진상규명이 요원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박종운 세월호 특위 상임위원은 “특위 활동기간을 고려할 때 인양된 세월호를 충분히 조사하려면 이른 시일 내 인양을 결정해야 한다”며 “세월호 선체야말로 참사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물이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면 증거물이 변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특위의 활동기간은 1년 6개월로 2016년 9월이면 활동이 종료된다. 

박 위원은 “인양을 한다고 바로 조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변색된 것을 다시 되돌린다거나 하는 처리과정이 필요하다”며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아무리 늦어도 내년 6월까지는 인양을 마무리해야한다. 1년이 걸린다고 보면 4월 중으로 인양을 결정해 5~6월 인양 업체를 선정하고, 적어도 6월 안에 인양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4월 중으로 인양이 결정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아 보인다. 해양수산부는 기술 검토 보고서를 4월 말에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보고서가 중대본으로 넘어가면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론화 방법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인양 결정에 더 많은 기일이 소요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박 위원은 “만약 인양이 늦어져 특위 활동기한을 넘길 경우 특위가 인양된 선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사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특별법을 개정해서라도 조사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