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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 제스춰 포기하는 대신 보수층 결집 노리는 전략

협치 제스춰 포기하는 대신 보수층 결집 노리는 전략

[뉴스분석] "국론분열 생기지 않은 방안 찾아보라"더니 이념전쟁 촉발… 부담은 새누리당에


모처럼 찾아온 ‘협치’의 조짐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로 인해 물 건너갔다. 이념 이슈를 통해 정국을 돌파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 바뀌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 가보훈처는 16일 국론분열을 이유로 야권이 요구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식 제창 요구를 거부했다. 보훈처는 보도자료를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고 있는 상황”이라며 “참여자에게 의무적으로 부르게 하는 ‘제창’ 방식을 강요해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보훈·안보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더불 어민주당, 국민의당은 물론 새누리당까지 “보훈처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훈처가 단독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여야3당 대표 회동 자리에서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말했는데, 그 좋은 방안이 제창하지 않는 것이 된 셈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합창 결정과 관해 지침을 받은 바 없다는 보훈처 발표에 대해 “사실이 그렇다”고 말했다. 정 대변인은 “보훈처에서 결정해야할 사안”이라고도 했다. 박승훈 보훈처장이 ‘제창 불가’를 고수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청와대 가 사실상 보훈처의 합창 결정을 허용했다는 뜻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은 박근혜 정부의 정치 스타일이 총선 이후에도 변화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이후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는 수단으로 ‘이념 이슈’를 적극 활용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확산되자 국정원 발 NLL 대화록 공개 논란,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사건이 등장한 것이 대표 사례다.

지난해 말 등장한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박근혜 대통령이 시도한 이념전쟁이었다. 정부여당은 앞장서서 현행 검인정 교과서를 “북한을 미화하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교과서”라고 몰아붙였고 야권은 국정교과서를 친일독재미화 교과서로 규정하며 이념 전선이 그어졌다.

이념전쟁의 목표는 보수층 결집이다. 지난해 국정교과서 국면이 전개되면서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 친박계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간에 벌어진 공천 전쟁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또한 이념 전쟁이 벌어지면 야권 입장에서도 타협할 수 있는 여지가 적기에 점에서 보수-진보 간 대립각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정체성과 관련된 이슈이고, 핵심 지지층이 민감해하기 때문이다.

더민주든 국민의당이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포기할 경우 광주민주화운동을 홀대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정권에 협조할 수 없다”고 말했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박승훈 보훈처장 해임결의안까지 내겠다고 밝혔다. 타협의 여지가 적다보니 대립이 극심해지고 진보층과 보수층 모두 결집한다. 보훈처는 ‘국론분열’을 이유로 제창이 아닌 합창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거꾸로 보훈처의 제창 거부로 인해 국론분열이 심해질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이념 전쟁의 특징은 먼저 이념전쟁을 시작해놓고 ‘정치권은 민생을 챙기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교과서 강행을 반대하는 야권에 거듭 싸울 때가 아니라며 노동법안 등의 국회 처리를 요구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로 정국이 경색된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국가발전, 민생안전을 위해 여야청 간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총선 패배 이후에도 박 대통령이 ‘마이웨이’를 고집하면서 새누리당의 고민은 늘어나고 있다. 새누리당은 지지층마저 등을 돌린 공천 파동, 중도층을 외면하게 만든 국정교과서 강행 등 보수 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나 혁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입장인데, 박 대통령의 행보가 이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친박 계 의원들이 당의 비대위원 및 혁신위원장 인선에 공개 반발하고 나선 점도 의미심장하다. 김태흠·김진태·박대출·이장우 의원 등 친박 초·재선 당선인 20명은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비대위원 및 혁신위원장 인선은 원점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비박 계 김용태 의원을 향해 “우물 안 개구리식 인선은 우물 안 개구리식 혁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당 혁신 주도 작업을 비박에게 내주지 않겠다는 친박의 반격이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16일 발표한 ‘이주의 전망’에서 “반발이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임을위한행진곡 합창을) 밀어붙인 것은 청와대가 ‘보수 결집’ 쪽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급한 숙제들을 줄줄이 떠안게 되는 곳은 새누리당”이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