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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혐오’라 쓰고 ‘정치편향’이라 읽는다

‘정치혐오’라 쓰고 ‘정치편향’이라 읽는다

[정치기사 바로보기②] ‘여야 공방’ ‘둘 다 막말’ 언론의 정치스포츠 중계, 뒤에서 웃고 있는 이들 있다


총선과 대선이 연달아 이어지는 2016년과 2017년은 정치의 계절입니다. 정치뉴스가 가장 잘 팔리는 이 시기에 정치 기사는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가 됩니다. 미디어오늘이 정치혐오의 탈을 쓴 막장 드라마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사실 속의 소설’ 정치기사 안에서 사실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그놈이 그놈이다”
“세금 축내는 놈들 다 잘라버려야 한다”

정치 에 별로 관심 없는 친구나 어른들과 정치 이야기를 하면 항상 들을 수 있는 결론이다. ‘국회의원 한 번 하면 죽을 때까지 연금 받는다’는 사실과 다른 소문은 어느새 사실이 되어 그들의 머리에 박혀 있다. “그거 없어졌어”라고 하면 “그래?”라고 놀라면서도 다시 국회의원에 대한 욕을 이어간다.

대한민국에는 ‘정치혐오층’이라 불리는 정치집단이 있다. 20~40%에 해당하는 이들은 상황에 따라 ‘중도’ 혹은 ‘무당파층’이라 불리기도 하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정치혐오층의 상당수는 언론을 보며 정치혐오를 키운다. 직업적으로 정치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정치의 모습은 언론에 등장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중계마저 편파적인, 스포츠중계 같은 정치 기사

정 치혐오층이 정치를 싫어하는 이유는 “맨날 싸우기만 한다”는 것이다. 언론이 가장 주요하게 다루는 정치보도는 싸움과 갈등이다. 한국방송학회 산하 저널리즘연구회는 4월22일 방송 총선보도 2456건에 대한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3월2일부터 4월12일까지 지상파3사와 종합편성채널 4사의 메인뉴스를 전수 조사한 결과 지상파와 종편 모두 정당 공천과 계파갈등에 대한 보도에 올인하는 경향을 보였다. 정당에 대한 보도가 1552건으로 63.19%를 차지한 것이다. 선거판세에 대한 보도가 15.76%를 차지했고 후보자의 정책, 능력, 도덕성에 대한 보도는 6.23%에 그쳤다.



이 런 보도의 특징은 ‘왜’ 싸우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총선을 100일 가량 앞둔 지난 1월7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여야는 국가적 안보 비상사태(북한의 핵실험)를 맞고서도 싸움을 멈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가 제시한 싸움의 사례는 노동5법에 대한 여야의 이견 차가 좁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도 다음날인 8일 사설에서 “노동개혁 법안 등이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한 것에 이어 북한의 핵 실험까지 이어졌다”며 “그런데도 여야는 태연하다. 국가적 위기는 뒷전이고 4월 총선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고 밝혔다.

민 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가진 집단이 모여 있기에 필연적으로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는 이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며 언론은 갈등 해소를 돕는 공론장 역할을 한다. 정치권이 싸우고 있다면 언론은 ‘왜 싸우는지’를 알려줘야 한다는 뜻이다. 이유가 없다면 정치 보도는 스포츠 중계와 다를 게 없어진다.

앞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정치권을 비난한 이유 중 하나는 노동법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언론은 여야가 ‘왜’ 노동법 처리에 난항을 겪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예컨대 박근혜 대통령이 무리하게 국회에 법통과를 요구하면서 여당의 입지가 좁아져서 협상이 안 된다거나 이 법이 가져올 파장이 커서 야당이 찬성을 할 수 없다는 등의 여러 원인이 존재한다. 정치보도에는 누구와 누가 대결하는지, 누가 이겼는지 이상의 내용이 담겨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축구 경기에서 한국 편을 드는 한국인 해설자처럼, 정치 보도의 싸움 중계도 때로는 편파적이다. 3월8일 친박 중진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김무성 죽여버려”라는 막말을 한 사실이 알려져 큰 논란이 일었다. 여당 내부에서 친박과 김무성 대표 간의 공천 갈등이 극에 달해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다 음날인 9일 KBS뉴스9는 이 사건을 보도했다. 하지만 윤 의원의 막말 파문을 더민주의 1차 공천 발표와 국민의당 컷오프와 함께 묶어서 보도했다. 잘못한 것은 여당인데, 보도는 여야 할 것 없이 지금 다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 3월9일자 KBS 뉴스9 갈무리

MBC 뉴스데스크는 3월31일 리포트 ‘정치권 ‘고질병’, “늙은 하이에나” 등 폄하·막말 논란’에서 “과거 총선에서 노인폄하, 막말 논란 등이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이런 정치권의 고질병이 또 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 지만 내용을 보면 사례는 야당뿐이다. 더민주가 경제대변인으로 영입한 주진형씨가 강봉균 새누리당을 선대위원장을 향해 “집에서 아무도 안 찾아주는 노인 불러다가”라며 ‘막말’을 했고 임내현 국민의당 의원은 김종인 더민주 대표에게 “여우집에 굴러온 늙은 하이에나”라고 말했다는 것. 이 리포트는 “새누리당은 막말 주의령을 내리면서 돌발악재를 경계했다”고 끝난다. 이 리포트는 세 가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야당은 노인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구나” “근데 또 야당 지들끼리 싸우네?” “그런데 여당은 막말 주의령을 내렸구나”

일도 안 하는데 돈만 많이 받아간다?

“맨날 싸우기만 한다”는 정치혐의 말은 자연스럽게 “돈만 많이 받는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언론 보도도 이런 혐오를 부추긴다. 연합뉴스는 5월7일 기사 ‘20대 국회의원 1명당 연봉 1억3천800만원’ 에서 “개원일인 오는 30일 기준으로 국회의원 1명에게 지급되는 연봉은 상여금을 포함해 1억3천796만1천920원(월평균 1천149만6천820원)”이라며 “국회의원 본인 앞으로 지급되는 금액만 한해 2억3천48만610원에 달하는 셈”이라고 보도했다.

연 합뉴스는 또한 “여기에 가족수당, 자녀학비 보조수당 등 각종 수당을 포함하면 실수령액은 더 늘어난다”며 “의원 1명은 보좌직원으로 4급 상당 보좌관 2명, 5급 상당 비서관 2명, 6·7·9급 상당 비서 각 1명 등 총 7명을 채용할 수 있고, 국회 인턴은 1년에 22개월 이내로 2명씩 채용할 수 있다. 본인 수령액과 보좌진 보수를 모두 더하면 의원 1명당 연간 지급액은 최소 6억7천600여만 원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물론 연합뉴스가 정치혐오를 부추기려는 의도로 이런 기사를 쓰진 않았을 것이다. 해당 보도는 국회사무처가 발간한 '제20대 국회 종합안내서'를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해당 기사의 댓글에는 “하는 것도 없이 돈만 많이 받는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 기사를 본 한 보좌관은 “그래서 국회를 없애란 말인가”라며 “다른 매체에서 해마다 연합뉴스가 정부에서 돈 얼마 받는지 제목으로 달아서 내보내면 어떤 기분일까”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

지난 2012년 총선 투표당일인 4월11일 조선일보에는 최보식 선임기자가 쓴 ‘젊은 친구, 현실에는 메시아가 없네’ 라는 칼럼도 비슷하다.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이 글에서 최보식 기자는 “자네가 알아야할 현실은 투표하는 순간 자네 손으로 ‘고액 연봉자’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여야 구분 없이 6억짜리 의원들”이라며 “이들은 수족 같은 비서를 7명까지 부린다. 면세에다 자동차 유지비와 기름 값까지 나온다”고 말한다.

국회는 매년 수십 수백조 원을 굴리는 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1인당 6억 원으로 행정부가 잘못해 발생하는 수십억 원의 손실을 미리 잡아낸다면 득보다 실이 아닐까. 언론이 집중해야할 것은 ‘돈을 얼마나 받느냐’가 아니라 돈 받는 만큼 일을 다 하고 있는지 검증하는 일이다. 연합뉴스가 국가로부터 돈을 얼마나 받는지 보다 그 돈을 받으면서 국가기간통신사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혐오라는 이름의 편향

‘여당도 야당도 다 잘못했다’는 식의 언론보도는 겉으로 보기엔 둘 다 비판하기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야가 모두 욕먹는 사이 웃는 이가 있다. 바로 정부다.

MBC는 20대 총선거가 진행된 4월13일 정오뉴스에서 ‘19대 국회 결산, 무엇을 남겼나’라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4분34초 동안 19대 국회는 ‘역대최악’이었다고 평가했다.

근 거는 국회가 일을 안 했다는 것이다. MBC는 “대선 당시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으로 여야는 황금 같은 19대 국회 초반을 허송세월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국회를 다섯 달 동안 멈춰 150일 동안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했고, 이후 식물국회라는 역대 최악의 수식어가 내내 따라다녔다”고 밝혔다.

▲ 4월13일자 MBC 뉴스 갈무리.

국정원 대선개입과 세월호 참사는 모두 박근혜 정부의 잘못과 무능이 드러난 사안이다. 그럼에도 MBC는 정부의 책임을 묻겠다는 국회가 정쟁을 벌였다고 비난한 것이다.

더 노골적인 대목도 있다. MBC는 “경제활성화법안과 4대 개혁 입법을 통과시켜달라는 정부와 청와대의 요구에도 야당은 국회선진화법을 방패삼아 묵묵부답이었다”고 밝혔다. 경제활성화법안과 4대 노동법안 등은 찬반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이다. 사회적으로 찬반이 엇갈리는 사안을 국회가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통과시킨다면 국회는 왜 존재하는 걸까. 언론은 19대 국회 내내 법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회를 ‘식물국회’ ‘역대최악’이라고 평가했다.

2015년 7월26일 새정치민주연합이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을 검토하자는 내용의 혁신안을 발표하자 언론은 비난을 쏟아냈다. 비난의 논거는 “쌈질만 하고 일도 안 하는 국회의원들을 왜 늘려야 하나”는 것이었다.

“국 회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맹탕으로 만든 데 이어 국가 경제의 사활이 걸린 노동 개혁마저 흐지부지하려는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이런 국회가 아무런 변화나 반성 없이 의원 숫자만 늘리겠다고 나선다면 국민이 용납하겠나”(2015년 7월 27일 조선일보 사설)

“야 당은 국회선진화법에 기대어 무소불위의 ‘제왕적 야당’ 권한을 향유하고 있다. 상임위를 5개월 간 공전시키는가 하면 정부가 요청한 경제활성화 법안도 3년째 뭉개고 있으면서 국정을 건건히 발목잡고 있다”(2015년 7월 27일 문화일보 사설)

관련 기사 : 쌈질만 하는 국회의원들 왜 늘리냐고?

이 들 언론이 보기에 의회의 기능은 ‘행정부 도우미’다. 하지만 ‘삼권분립’ 원칙에 따르면 의회의 기능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 법안, 공무원연금개혁, 노동법안에 문제가 있는지 검증하고 통제하는 것이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정부가 내놓은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회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정부가 내놓은 법안을 심사하기 위해 대립하는 것을 두고 “싸움이나 한다”고 비난한다.

의회 기능의 약화는 행정부 감시의 약화, 행정부의 강화로 이어진다. 장하나 더민주 의원은 5월1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국정감사, 청문회를 포함한 의정활동의 무게감이나 파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나름 정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해도 정치인이 이야기하면 근거가 불분명한 ‘정치적 주장’이라고 생각한다”며 “예전에는 청문회나 국감을 하면 국민들도 관심을 갖고 피감기관인 정부도 긴장하고 그랬는데 요새는 의원의 의정활동이 우습게 됐다”고 토로했다.

장 의원은 또한 “국회가 잘못돼 있어도 고쳐 쓰는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종편 같은 곳은 삼권분립의 균형이 깨지든 말든 국회를 타겟으로 삼아 희화화하고 혐오하게 만든다”며 “이는 입법부의 권위와 역할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언론이 국회가 싸움만 한다며 그 근거로 행정부가 만든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제기할수록 ‘일하는 정부’ vs ‘일 안 하는 국회’의 구도가 심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정치권에서 국회의원 수를 늘리자는 주장이 나오면 언론은 ‘국민정서’를 이유로 반대한다. “국회의원 정수 줄이라는 게 국민 뜻이다”(2015년 7월 27일자 문화일보 사설) “유권자 사이에는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으니 대폭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2015년 7월 27일 동아일보 사설)

물 론 일 안 하는 정치인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버리거나 “확 다 잘라버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대기업, 재벌 등 의회 없이도 사법, 행정, 입법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만 웃는다. 일 안 하는 정치인 세비도 깎고 보좌진 급여도 깎으면, 이를 부담할 수 있는 이들만 국회에 들어올 수 있다.

‘퉤퉤’ 같이 침 뱉는 언론

지 난 2월 야당 의원들은 9일, 190시간동안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일 안 한다’고 욕하던 언론 입장에서는 필리버스터만큼 ‘일 안하는’ 행위도 없었을 것이다. 효율적으로 법안 통과시켜야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법안 통과를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은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보며 정치혐오 대신 “생각보다 괜찮은 정치인들이 많다” “정치인들이 저렇게 똑똑한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언론에 의해 편집되지 않은 정치인의 말을 접했기 때문이다. 날 것 그대로의 정치를 보면서 정치인이 싸우기만 하는 존재들이 아니란 걸 학습한 셈이다.

조선일보는 2월25일 사설에서 “야당은 아무리 걱정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정치 염증을 키우는 필리버스터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며 “아무리 합법의 테두리 내에 있더라도 마치 선거운동하듯 필리버스터를 악용하면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감을 키울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간 스포츠 중계식 정치보도로 정치혐오를 키운 것은 기성 언론이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겨레 칼럼 ‘정치혐오를 원하는 사람들‘에 서 “과거 국회에서의 몸싸움이라든가 지금도 심심하면 터지곤 하는 ‘막말 파동’을 수반한 정치인들 사이의 이전투구 등은 정치혐오를 키움으로써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준다. 과거 과자가 귀하던 시절 어린애들이 과자에 침을 퉤퉤 뱉어놓음으로써 자기 소유권임을 분명히 해놓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지적했다. 언론도 그 옆에서 같이 침을 뱉었다.

* 정치기사 바로보기 시리즈

(1) 오보도 특종도 모두 말에서 나오는 ‘사실속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