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튕기고, 밀어내고, 상임위 배정 어쩌다 이리 꼬였나

튕기고, 밀어내고, 상임위 배정 어쩌다 이리 꼬였나

‘경제통’이 외통위로, 재정 전문가가 안행위로… 전문성보다 ‘선수’가 상임위 배정 변수


20대 국회 시작부터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하는 의원이 있다. ‘언론개혁’ 몫으로 정의당 비례대표가 된 추혜선 의원이 외교통일위원회에 배정되면서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추 의원은 “축구선수가 농구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전문성과 무관한 상임위에 배치된 의원은 추 의원뿐만이 아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10번을 받아 당선된 김종석 의원은 여의도연구원장은 당내 ‘경제통’으로 불린다. 언론에서 조선해운 구조조정이나 가계부채 등 언론에서 새누리당의 경제정책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을 때 연락하는 의원이다. 당연히 김 의원이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등 경제관련 상임위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고 김 의원 본인도 해당 상임위를 희망했으나 외교통일위원회를 배정받았다.

식약처장을 지낸 김승희 새누리당 의원(비례 11번)도 전문성을 살려 보건복지위원회를 희망했고 의료 관련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안행위에 배정됐다. 코레일 사장을 지낸 최연혜 새누리당 의원(비례 5번)은 국토해양위가 아닌 산업위로 배정됐다.

지역구 초선 중에도 전문성을 살리는 방향과는 거리가 먼 상임위로 배정된 의원들이 있다. 국토교통부 출신으로 국토위를 희망한 새누리당의 송석준 의원(경기 이천)과 권석창 의원(충북제천단양)은 보건복지위와 환경노동위원회로 배정됐다.

야당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김정우 의원(경기 군포갑)은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더불어민주당이 “국가재정 전문가”라는 이유로 영입했다. 김 의원은 기재위, 국토위, 산업위 등 경제 관련 상임위를 희망했으나 안전행정위원회에 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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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에서 4년 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한 박홍근 의원은 미방위에 배정됐다. 박 의원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난 초선 4년간 교육 분야 중심으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정말 열심히 뛰어왔다고 자부한다. 교문위원들의 자체 활동평가에서 1위를 한 바도 있다”며 “그래서 국회 밖 교육 전문가나 단체들도 저의 20대 교문위 배정을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어제 오후 난데없이 한 번도 생각 못한 미방위로 강제 차출돼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재선 의원 중 이 미방위 신청자가 한 명도 없으니 저더러 헌신해달라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미방위의 더민주 간사를 맡았다.

심 지어 상임위 위원장 중에도 해당 상임위에서 활동해 본 적 없는 의원들이 즐비하다. 조경태 기재위원장, 유재중 안행위원장, 장병완 산자위원장, 김영춘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을 비롯해 내년에 미방위원장을 맡을 조원진 의원, 정보위원장을 맡을 강석호 의원, 국방위원장을 맡을 김학용 의원 등이 해당 상임위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다.

각 정당이 선거 때마다 ‘정책정당’을 내세우며 각 분야 전문가 영입에 앞장서면서도 정작 상임위 배정에서는 전문성이 뒤로 밀리는 모습이다. 이유는 상임위 배정에 있어 의원의 전문성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 반적으로 의원들은 국토위, 기재위, 산업위 등 지역구에 예산을 배정하고 시설도 유치하면서 지역구 관리를 할 수 있는 상임위를 선호한다. 예산 줄 것도 없고 지역구민들에게 어필하기 어려운 미방위, 환노위 등의 상임위가 인기가 없는 이유다. 국토위, 산업위 정수가 각각 31명, 30명인데 미방위 정수는 24명, 환노위 정수는 16명밖에 되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관련 기사 : 미방위는 의원의 무덤? 지원자가 없네

의 원이 특정 상임위로 몰리는 상황에서 기준은 자연스럽게 ‘선수’(選數)가 된다. 이로 인해 인기 상임위는 다선, 비인기 상임위에는 초선들이 넘쳐나는 상황이 발생한다. 상임위 위원장도 3선 이상이 할 수 있다. ‘경제통’ 김종석 의원이 외통위로 배정된 이유로도 기재위에 다선 의원이 많았다는 점이 꼽힌다.

초선 의원에게 간사를 맡길 수는 없으니 재선 의원이 강제로 원치 않은 상임위에 배치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박홍근 의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의 원들이 인기 상임위 정수는 늘리거나 유지하려고 하고 비인기상임위 정수는 줄이거나 묶어두면서 이런 정수 조정 과정에 끼지 못하는 비교섭단체 의원들은 피해를 본다. 지원자 수가 미달이던 미방위에 지원한 추 의원이 갑자기 외통위로 가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비 교섭단체 중 노동운동가 출신의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윤종오 무소속 의원이 환노위를 희망했지만 환노위는 총 정원이 16명, 비교섭단체 몫은 1명으로 묶여 있었다. 비교섭단체 몫으로 이정미 의원이 환노위에 배정받으면서 환노위를 희망한 윤종오 의원이 미방위로 배정됐고, 이어 미방위를 희망한 추 의원이 외통위로 밀려나게 됐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14일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과 더민주 의원들이 왜 환노위 지망하지 않았냐고 탓하지 않는다. 지망한 사람이 16명 밖에 없는 비인기상임위에 비교섭단체 의원이 한 명 더 지망한다고 해서 못 받아줄 이유 무엇인가”라며 “지역구사업에 선심성 예산을 끌어당길 가능성이 높아서 34명씩 몰려드는 상임위는, 그래서 한 명당 3~4분밖에 발언할 수 없는 그런 상임위는 그대로 두고 지망자가 적은 상임위에 한 명 더 지망하는 걸 막는 이유는 뭔가”라고 지적했다.

상임위 구성의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3선 이상이 상임위원장을 맡는 한국 의회와 달리 미국 의회에서는 선수가 아니라 해당 상임위 근속기간을 기준으로 상임위원장을 뽑는다.

한 국회 관계자는 “우선 상임위를 2년마다 교체하지 말고 4년 간 한 상임위에서 일하도록 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지금처럼 인기상임위, 그렇지 않은 상임위가 있어 선수별로 골라 가는 것이 아니라 의원의 커리어나 전문성에 맞춰서 배정을 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며 “교섭단체 중심의 배정으로 인해 비교섭단체나 무소속 의원이 남은 자리에 강제로 배정되는 점도 해결돼야 한다. 오래 지적된 문제지만 상임위 배정 자체가 (각 정당의) 정치가 작동하는 과정이 되면서 잘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