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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당한 경찰도 많아, 시위 책임자들 사과했나”

“부상 당한 경찰도 많아, 시위 책임자들 사과했나”

[뉴스분석] 강신명과 새누리당 의원들의 짜고치는 청문회…“공권력 사망하면 어떤 일 일어날지” 묵언 퍼포먼스까지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지 304일 만에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하지만 경찰의 태도는 304일 간 달라진 게 없었다. 책임자들은 사과를 거부하고 잘못한 게 없다는 입장을 취했으며, 가장 기본적인 자료조차 제출을 거부했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이 청문회를 공방으로 만들었다.

백남기씨가 쓰러진 이후부터 야당과 백씨의 가족들은 경찰과 정부의 사과를 요구했다. 12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도 사과 요구가 빗발쳤다. 하지만 책임자들은 “수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과를 거부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무조건 사과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원인과 법률적 책임을 명확히 연 후에 할 수 있다.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건 대단히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도의적인 사과’를 하라는 요구에도 “구체적 사실관계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을 전제로 말씀드리는 건 적절치 않다. 사실관계가 확정된 다음 답변 드리는 게 맞다”며 입장을 고수했다.

강신명 전 청장은 백씨에 대한 위로 방문도 거부했다. 강 전 청장은 “(사고 원인을 두고) 아주 첨예한 대립이 있다. (경찰은) 불법폭력시위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로 보는 반면 일부 시위 주최측에서는 경찰을 살인미수로 고발하고 민사소송했다”며 “그 상황에서 제가 사과 방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객관적 조사, 법원 판결에 따라 사과 및 방문을 포함해 모든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 적, 공식적, 도의적 사과를 모두 거부하던 강 전 청장은 “인간적 사과는 여러 차례 했다”며 “경찰 총수로서 대단히 안타깝고 가족들께도 위로의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백남기씨의 부인 박경숙씨는 “얼굴 보고 (사과)하세요”라고 외쳤으나 강 전 청장은 계속 정면을 응시했다.

청문회장에서 경찰이 과잉대응했다는 증거가 공개됐음에도 강 전 청장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민중총궐기 당일 백남기씨에게 살수를 한충남 9호차에 부착된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충남 9호차는 처음부터 7차례에 걸쳐 직사살수를 했다. 이는 5차례 경고살수, 곡사살수, 직사살수를 했다고 기재한 충남9호의 살수차 사용보고서와 다른 내용이다.

박남춘 의원은 “화면만 보면 살기를 가지고 7차례 직사살수한 잘못이 있다”며 “이래도 경찰이 과오가 없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강 전 청장은 “경미한 숫자나 선택방법은 보는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그런 사안을 가지고 전체적으로 잘못됐다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직접 살수차를 운영한 한석진 경장과 최윤석 경장도 증인 자격으로 참석했지만,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 경장은 “무전망으로 살수 지시가 있어서 살수를 했다. 최대한 안전히 살수하기 위해 좌우, 위아래로 살수했다”고 말했다.

이들 두 증인은 신변 보호를 이유로 가림막을 설치를 한 상태로 증언했다. 김영호 더민주 의원이 “백남기 농민에 대해 사과 한 마디 안하면서 가림막 설치를 요청한 이유가 뭐냐”고 따졌으나 한 경장은 “저희도 심적·정신적으로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물대포 직사 살수가 위험하다는 증언은 쏟아졌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전산유체역학전문가 노현석씨는 “백남기 농민 머리에 241kgf 정도의 위력이 가해졌는데 쿵푸 유단자가 펀치를 가했을 때 220kgf 정도다. 이 펀치보다 더 큰 위력으로 물대포가 발사된 것”이라며 “제일 큰 상용차 엔진을 돌릴 수 있는 힘보다 더 큰 위력으로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고 설명했다.

최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 역시 “물대포 사용은 위험하다고 세계 의사회에서 정확하게 권고하고 있다. (물대포 사용은) 세계 의사회 권고사항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경 찰의 과잉진압 여부를 밝힐 수 있는 핵심 증거 중 하나는 초기 경찰 관계자들의 진술이 담긴 경찰 내부 조사보고서다. 한석진 경장은 “당일날 새벽 시위 끝나고 대여섯시간 동안 서울청 감찰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최윤석 경장도 “정확히 기억 나진 않지만 한 경장과 동일한 시간 정도를 (조사) 받았다”고 밝혔다. 집회 당시 4기동단장이었던 신윤균 영등포 경찰서장 역시 “당일 20분 간 전화로 조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야당 의원들은 청문회 시작부터 이 보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더민주 안행위 간사를 맡고 있는 박남춘 의원은 “경찰청 자체가 사고 나고 바로 조사를 들어갔고, 청문감찰보고서가 있다. 상임위 회의 때는 검찰 수사 중이기에 제출하기 어렵고 재판 계류 중이라 어렵다는 점을 양해하고 넘어갔지만 이번엔 청문회”라며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외교, 군사 등 국가기밀 사항 외에는 반드시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고 말했다.

백재현 더민주 의원은 “이런 걸 안 내놓기에 진상조사가 안 되는 거다. 청문보고서는  최초의 질문 답변으로 가장 사실과 가깝게 나와 있는 것”이라며 “정치적 논리로 숨기고 미루고 갈 일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하 지만 경찰은 자료제출을 끝내 거부했다. 강신명 전 청장은 “현재 수사와 민사소송이 제기 중인 사안이라 혼선이 초래될 것으로 예상해 제출 안 하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국민TV 취재진 카메라에는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승철 경찰청 경비국장이 청문회 관련 경찰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 “이 자리에서 청문보고서 제출로 형사재판에서 영향 미치는 증인 다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 국장은 이어 “간사께 전달바람”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 국장이 말한 ‘간사’가 새누리당 간사였던 걸까. 새누리당 의원들도 경찰의 자료제출 거부에 힘을 실었다. 새누리당 안행위 간사인 윤재옥 의원은 “사건이 발생한지 4일 만에 고소고발이 이루어졌고 그래서 진상조사가 중단됐다. 최종보고서가 없고 중간 기초조사 정도 한 걸 가지고, 진술 몇 개 받은 걸 가지고 자료를 잘못 제공하면 청문과정에서 왜곡되어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백남기 사태의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자리에서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시위대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부각시켰다. 강석호 새누리당 의원은 “집회시위가 갈수록 집단화, 조직화, 폭력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법폭력 시위 중 우발적 사고로 중상을 입은 백씨에 대해 청문회까지 열어가며 정당한 공권력을 폄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성중 새누리당 의원은 “당시 시위대 일부는 차벽에 밧줄을 묶어 당기거나 쇠파이프, 각목, 망치 등으로 경찰버스를 파손하고 경찰을 폭행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시위대가 전경버스를 가격하거나 밧줄로 버스를 당기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반복적으로 틀었고, 전ㆍ의경 부모 모임 회장 등을 참고인으로 내세워 폭력시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묵 언’ 퍼포먼스도 있었다. 홍철호 새누리당 의원은 “권력이 사망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을 한 번 해보자는 의미에서 무언으로 2분간 발언하겠다”며 2분 간 발언을 하지 않았다. 홍 의원은 “불법시위로 부상당한 경찰도 상당한데, 시위 책임자들은 사과했나”라고 물었고 강신명 전 청장은 “아무도 (사과) 안 했다”고 답했다.

이런 태도는 예상됐던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백남기 청문회가 열리는 것 자체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상임위에서 그간 몇 번의 현안질의 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통해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한 정부 측 답변이 있었다. 사건 조사와 이후 재판 통해서 사실규명 될 것이고 그렇기에 더 이상 청문회와 관련된 깊이 있는 논의가 없었다”며 “그런데 추경처리 합의 과정에서 지도부 차원에서 청문회가 결정됐다. 이런 식으로 국회가 운영 되도 되나”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