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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전, 4년 동안 기자들 해외 시찰에 7억6천만원

[단독] 한전, 4년 동안 기자들 해외 시찰에 7억6천만원

김영란법 한 달 전에도 미국·멕시코 등 1억8천여만원…석유공사·가스공사 등 부실공기업들도 수억원대 지출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 석유공사, 원자력문화재단 등 에너지 관련 공기업과 공기관들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회당 수천만 원~수억 원의 경비를 부담하며 언론사 기자들에게 해외시찰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에너지 공기업 및 공공기관들은 기자들을 데리고 미국, 캐나다, 멕시코, UAE, 유럽 등 전 세계에 있는 발전시설 견학 취재를 명목으로 해외시찰을 진행했다. 7일~10일 가량의 해외출장 항공료, 숙박비, 보험료, 식비 전체를 공공기관들이 부담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에너지 공기업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전은 지난 2013년 이후 올해 8월까지 4년여 간 모두 7차례에 걸쳐 산업통상자원부 출입기자들을 데리고 해외 발전설비전력사업 취재 여행을 다녀왔다.

가장 최근인 2016년 8월 한전의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해외전력사업 현장 취재(6박9일)에는 일간지, 지역지, 경제지, 지상파 방송사, 인터넷 매체 등 출입기자 14명이 동행했다. 한전은 기자들의 항공료, 보험료, 숙박비, 식비, 통역비, 현지 차량교통비 등으로 모두 1억 8천여만 원의 예산을 썼다. 기자 1인당 비용으로 환산하면 약 770만 원에 달한다.

▲ 한국전력공사 해외시찰 현황. 자료=김병관 의원실

한전은 2015년 11월에는 2016년 3월에도 기자들 16명과 요르단, UAE, 필리핀 전략사업 시찰을 다녀오는 등 2013년 11월 이후 총 7차례 기자들과 ‘해외시찰’을 실시했다. 7차례 공짜 해외시찰을 하며 사용한 금액은 7억 6천 537만 5000원에 달한다.

한전은 취재기자들의 해외출장 비용 지급은 ‘총무규정 제5장 제150조’를 준용해 ‘한전 2직급 기준에 의거해 산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150조(직원이 아닌 자에 대한 여비)’에 따르면 “직원이 아닌 자가 공사와 관련된 용무 등을 수행하기 위해 국내외에 출장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 규정을 준용해 여비를 지급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하지만 기자들의 해외시찰은 각 언론사의 취재 및 기사 작성을 위한 것이기에 이를 ‘공사와 관련된 용무 등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자부 산하 또 다른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는 지난 2013년,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산자부 출입기자 10여명을 데리고 네덜란드, UAE, 카자흐스탄, 베트남 등에 대한 해외시찰을 진행했다. 이 해외출장에는 산자부 공무원도 동행했으며, 각각 6천여만 원과 7천여만 원의 출장비를(연 2회 총 1억3천여만 원)을 한국석유공사가 부담했다. 한국석유공사의 경우 여비 규정에 직원 외 출장여비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다.

▲ 한국석유공사 해외시찰 현황. 자료=김병관 의원실

한국가스공사도 지난 2014~2016년 3년간 산자부 출입기자들과 함께 4차례의 해외시찰을 추진했다. 호주, 인도네시아, 미국, 멕시코, 미얀마, 멕시코 등의 천연가스 시설방문 등을 명목으로 한 해외시찰에 기자 14~16명과 산자부 직원, 공사 직원 3~4명이 동행했다. 1회 출장비용으로 1억3천만~1억5천만 원(총 5억5천여만 원)을 한국가스공사가 전액 부담했다.

한국가스공사의 경우 여비규정에 직원 이외의 출장여비 규정이 있으나 ‘공사의 업무를 위촉받아 출장할 때’라고 명시되어 있다. ‘공사의 업무를 위촉받은’ 기자가 아닌 한 이들에게 출장비를 지급하는 것은 규정 위반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 한국가스공사 해외시찰 현황. 자료=김병관 의원실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는 수천억 원 대의 막대한 손실을 내거나 부채비율이 300% 이상인 상황에서도 기자들에게 공짜 해외시찰을 제공했다. 한국석유공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자원개발의 실패로 인해 지난 2011년 당기순익이 –1,528억 원, 2012년 –9,040억 원, 2013년 –7,158억 원, 2014년 –1조6,111억원 등을 기록하며 심각한 부실 공기업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한국가스공사는 2013년 2036억 원이라는 막대한 적자를 냈으며 최근 수년간 부채비율이 300%를 초과해 부채감축 의무 공기업으로 지정됐다.  
 
산자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원전 홍보를 주요 업무로 하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2015년 6월 14명의 산자부 출입기자와 산자부 직원과 함께 7일간 독일, 프랑스, 스위스, 체코 등 유럽지역의 원전 관련 설비를 시찰했다. 산자부 직원을 제외한 기자 및 재단직원의 항공료, 숙박료, 식비, 통역비 등을 포함한 총 8500여만 원을 원자력문화재단이 모두 부담했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지난 2015년 국정감사에서 전임 이사장의 출장비, 강의료 전횡 사실이 확인되어 사임조치 당한 뒤 부적절한 출장비 집행에 대해 시정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지난해 기자들에게 ‘공짜 해외시찰’을 추진한 것은 이런 대책을 마련하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은 100% 원자력기금으로 운영되며, 한해 예산이 50억 원 수준이다.

▲ 한국원자력문화재단 해외시찰 현황. 자료=김병관 의원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들이 기자들을 상대로 실시하는 공짜 해외시찰은 참여정부 당시 언론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유로 많이 사라지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생겨나기 시작하고, 박근혜 정부 들어 에너지 공기업들 사이에서 눈에 띠게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김병관 의원실의 설명이다.


지난 9월28일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을 적용하면 이처럼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기자 1인당 수백만 원~수천만 원까지 소요되는 비용을 지급하는 공짜 해외시찰은 모두 불법이다.

청탁금지법은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 숙박, 음식물 등의 금품’은 법 적용의 예외대상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기자들에게 제공한 교통비와 숙박비, 체류비 등 수백만 원에 달하는 금액까지 ‘통상적인 범위’로 인정되기는 어렵다. 또한 기자단 전체가 아닌 일부 기자들만 데리고 다니는 이런 해외시찰은 ‘일률적 제공’이라는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김병관 의원은 “정부가 운영하는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정책홍보를 명목으로 언론인들에게 수백만 원이 소요되는 해외여행을 추진하는 것은 규정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세금을 낭비하는 부적절한 정책홍보에 해당되는 것”이라며 “김영란법이 시행된 만큼 언론인들에 대한 접대성 공짜해외여행 관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