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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쓰러졌던 그 곳, 경찰은 시민들 헌화도 막았다

백남기 쓰러졌던 그 곳, 경찰은 시민들 헌화도 막았다

[현장] “우리가 백남기다, 부검 대신 특검하라”… ‘주요도로’라는 이유로 당일 아침 행진불허 통보

경찰이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기 위해 헌화하려던 시민들을 막았다. 경찰은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종로 르미에르 빌딩 앞 사거리로의 행진을 금지하고 거리를 봉쇄했다. 시민들은 가로막힌 도로 위에 국화꽃을 놓으며 헌화했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및 살인정권 규탄투쟁본부(백남기투쟁본부)는 1일 오후 4시20분 경 서울 대학로에서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를 열었다. 지난 25일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이후 열린 첫 추모대회다. 백남기 농민은 지난달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쓰러졌고, 317일 간 사경을 헤매다 사망했다.

추모대회에 참석한 3만 여명의 시민들(주최 측 추산, 경찰추산 7000명)은 “우리가 백남기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부검 대신 특검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는 정부와 경찰을 비판했다.

317일 간 사과도 책임자 처벌도 하지 않던 경찰은 백씨가 사망하자 바쁘게 움직였다. 사인을 밝히겠다며 부검 영장을 청구했고, 세 번의 청구 끝에 법원은 ‘조건부’로 부검 영장을 발부했다. 백남기 투쟁본부와 시민들은 향후 예상되는 영장 강제 집행에 맞서 서울대병원을 지키고 있다.

추모대회에 참석한 백남기 농민의 딸 백민주화씨는 “물대포로 인한 사망이 분명하면 왜 부검에 동의하지 않느냐 묻는 사람들이 있다. 수술직후 뇌사상태와 거의 비슷하다고 했던 주치의는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표기하고 표기의 실수는 인정하나 수정할 수 없다고 한다”며 “사인의 증거가 넘쳐나는데 어느 자식이 아버지의 시신을 또 다시 수술대에 올려 정치적인 손에 훼손 시키고 싶겠나. 저희는 절대로 저희 아버지를 두번 세번 죽이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씨는 “강신명(전 경찰청장)이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준법. 법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분명 있다. 생명”이라며 “저희는 그 기본 정신도 갖추지 못한 개념없고 무자비한 경찰의 물대포에 아버지를 잃었다. 또 이같은 끔찍한 희생이 없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면 양심있는 경찰 여러분께서는 오늘 이 곳 집회 참가자들을 끝까지 잘 보호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투쟁본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회장은 추모대회에서 “물대포를 쏘아 죽인 것도 분에 풀리지 않았는지, 시신을 난도질할 수 있게 해달라고 판사에게 요구했다”며 “물대포를 막지 못하고 살려내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라도 이번에는 당신의 진실에 절대 칼을 대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가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대회의 맨 앞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자리했다.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이 슬픔의 눈물을 분노의 행동으로 연대의 행동으로 승화시켜야겠다. 바로 내가 세월호에서 죽을 수 있고 물대포에 죽을 수 있는 이 현실에서 그렇게 하나 둘 슬픔의 눈물만 흘리고 있다 쓰러져 가면 도대체 어느 누가 또 추모할 것이고 어느 누가 이 자리에 모일 수 있나”라며 “그래서 지금 당장 바꿔야한다. 더 이상 세월호에서 물대포에 의해 죽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이 세상을 지금 당장 바꿔야겠다”고 말했다.

백남기투쟁본부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추모촛불집회에 적극 참여해줄 것,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한 특검 서명운동에 동참해줄 것, 추모모금에 동참해줄 것 등을 요청했다.

추모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오후 5시 반부터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의 목적지는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집회 때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종로 르미에르 빌딩 앞 사거리였다. 그곳에 백남기 농민을 추모할 국화꽃을 헌화하고, 서대문구에 위치한 경찰청까지 행진할 계획이었다.

▲ 백남기 농민 영정사진을 들고 행진 중인 시위 참가자들. 사진=조윤호 기자

이런 이유로 투쟁본부는 행진을 신청했으나 경찰은 일부 구간의 행진에 대해 금지를 통보했다. 경찰은 종로1가 종로구청입구 사거리까지는 행진을 허용했으나 르미에르빌딩 앞 사거리와 세종대로 사거리를 거쳐 경찰청 앞까지의 가는 길에 대해서는 행진을 불허했다. ‘주요도로’라는 이유였다.

투쟁본부는 논평을 통해 “3개월 전, 똑같은 구간에 대한 행진 신청에 대해 조건을 붙여 신고를 받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행진에 대해 '주요도로'라는 이유를 들어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또, 행진이 예정된 당일 아침에 금지 통보를 한 것은 가처분신청 등 어떠한 행정적 대응도 불가능하게 하여 백남기 농민의 추모 행진을 막겠다는 처사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종로1가 사거리로 들어서자 폴리스라인을 치고 행진을 막아섰다. 그러자 투쟁본부는 종로1가 사거리에서 마무리집회를 하고 각자 르미에르 빌딩 앞 사거리로 행진하기로 했다. 경찰은 경고방송을 통해 “종로1가부터 경찰청까지는 행진을 금지 통보했다. 집시법 12조에 따라 서울시내 주요대로의 교통소통을 위해 금지 통보했다”며 “행진을 시도하는 건 명백한 불법이다. 신고한 내용대로 준법집회를 진행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 6시20분경 행진하는 시위대를 막아서고 폴리스라인을 친 경찰. 사진=조윤호 기자

이에 집회에 참가한 이재정, 박남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경찰을 설득했다. 이재정 의원은 “이렇게 하는 게 (시위대를) 자극하는 거다. 운용의 묘를 발휘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 측은 “여기까지만 신고된 것”이라며 입장을 고수했다.

▲ 경찰에 가로막혀 길거리 위에 헌화한 시민들. 조윤호 기자.
투쟁본부 관계자는 “300미터만 가면 백남기 농민이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곳이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 없다”며 “평화적으로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곳으로 가서 헌화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고 말했다.
▲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박남춘 의원 등이 행진을 가로막은 경찰 관계자들과 이야기 중이다. 사진=조윤호 기자
몇몇 시민들은 경찰이 막아선 길을 돌아 르미에르 빌딩 앞 사거리로 이동했다. 이에 경찰은 급하게 대기하고 있던 병력을 동원해 르미에르빌딩 앞 사거리를 봉쇄했다. 오후 7시 반 현재 경찰은 불법집회라며 해산을 시도하겠다고 경고방송을 이어가고 있고, 시위대가 이에 반발하며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