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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특조위 활동 방해, 이렇게 다양하고 꼼꼼할 줄 몰랐다”


“정부의 특조위 활동 방해, 이렇게 다양하고 꼼꼼할 줄 몰랐다”

[인터뷰] 김성훈 세월호특조위 조사관…“진상규명, 1년6개월 안에 절대 끝낼 수 없다. 수십 년이 걸리는 여정의 극히 일부”

“오셨는데 드릴 게 하나도 없네요. 정수기도 없어서…”

특조위 사무실에서 만난 김성훈 조사관이 기자에게 처음 건넨 말이었다. 정부는 지난 9월30일자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기간이 끝났다며 강제종료를 통보했고 사무실 집기를 정리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파견직 공무원들이 철수한 데 이어 특조위 사무실이 점점 텅 비어가고 있었다. 

프린터, 팩스, 스캐닝용 복합기는 지난 4일 모두 수거됐다. 이석태 위원장을 포함해 상임위원, 조사관과 직원들은 정부 전산망에 접속할 수 없다. 그럼에도 조사관들은 출근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예산도 조직도 없었던 2015년 1월을 기준으로 활동기간을 산정하고 강제종료를 통보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7일 미디어오늘이 만난 진상규명국 조사2과 소속 김성훈 조사관도 그런 조사관들 중 한 명이다. 

- 9월30일 이후 계속 출근하고 있나
“일단 이번 주에는 특조위 일정이 있어서 나왔다. 안산의 유가족 분들을 뵙고 현황을 말씀드렸고, 조사관들이 힘이 닿는 데까지 출근하겠다고 했다. 몇 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조사관들 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 출근해도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인데.
“주로 자료와 기록들을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조사과정에서 일부 비공개하거나 부분 공개했던 것들을 최대한 공개하기 위해 목록화 하고 있고, 국회 의원실이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관련된 다른 자료들을 확보해 함께 정리하는 작업이다. 공식조사는 못하지만 진상규명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면담조사를 할 수 있기에, 다양한 각도로 참고인 조사를 하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다.”

▲ 정부 전산망에 접근할 수 없는 특조위 조사관들. 사진=조윤호 기자

김 조사관은 민간연구소 연구원이었다. 연구소 차원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연구를 이어가자고 논의를 했고, 그 와중에 특조위의 별정직 공무원 채용에 응시해 조사관으로 일하게 됐다. 그가 속해 있는 조사2과는 참사 당시 정부의 구조구난 활동을 포함해 정부 대응의 적절성에 대해 조사했다. 해경, 해양수산부, 청와대, 국정원 등이 조사대상이다. 

- 특조위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정부가 특조위 활동을 방해할 거라 예상 했나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예상했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꼼꼼한 방식으로 방해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방해해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닥쳐보니 쉽지 않더라.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조사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 수사권도 없었으니 더 어려웠을 것 같다.
“강제수사권이 없는데 이런 상황을 보완할 수 있는 장치도 없었다. 예컨대 관계자들이 선의의 폭로를 했을 때 그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 개인의 양심에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사에 응하는 진술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당연히 있었어야 하는데 그런 장치가 미흡하다보니 진술을 이끌어내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예컨대 1950년대 발생한 양민학살을 조사한다고 하면 그 당시 사람들은 지금 다 사회에서 은퇴했을 가능성이 높기에 상대적으로 양심선언을 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관계자들은 다 현직에 있지 않나. 이 사람들의 양심선언이나 내부고발을 보호해줄 장치가 전혀 없다.”

- 실제 후환이 두려워 조사에 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나
“전직 선원들 중에 사고 직후 언론과 인터뷰를 한 분들이 몇 명 있다. 그런 분들 중에 인터뷰하고 난 뒤 사실상 관련 분야에서 일을 못하게 된 경우가 왕왕 있었다. 잠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쪽 업계가 워낙 좁다보니까. 참고인으로 부르는 교수,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죄송하다. 이것 밖에 말씀 못 드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 숨어 지내는 거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런 양심선언이나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를 강력히 피력했으면 달라졌을 텐데, 지금으로선 기대하기 힘들다.”

▲ 지난 9월22일 광화문 농성장에서 단식 농성 중인 김성훈 특조위 조사관. 사진=세월호특조위 페이스북

- 정부기관도 조사에 잘 응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참사 당시 해경의 TRS(무전) 기록을 가지러 해경 본청으로 실지조사를 갔는데 대놓고 조사를 거부했다. 들어가서 기록을 가져와야하는데 아예 문을 열어주지 않고, 조사관들이 서버를 못 건드리게 하려고 해경들이 조를 짜서 144시간 동안 당직을 섰다. 조사대상자인 자신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 있는 건지 아닌지를 판단하겠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특조위에 강제수사권이 없다는 것 잘 아니까 시간을 끄는 거다.”

- 해경은 그랬고, 해수부는 어땠나
“해수부가 제일 심했다. 공문을 보내면 아예 답을 안 하는 경우도 많았고, 개인정보 때문에 안 된다면서 자료를 안 주고 버티기로 일관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에 실린 철근 관련 조사다. 청해진해운의 자료를 통해 화주들이 공개되어 있었지만 실제와 다를 수 있어서 자료요청을 했다. 그런데 개인정보라고 안 준다. 화주들 이름과 연락처를 알아야 우리가 조사를 할 거 아닌가.”  

- 특조위에는 해수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조사에 협조적이었나
“진상규명국, 안전사회과, 피해자지원점검과 등에 파견직 공무원들이 있었다. 이들이 과장직을 맡고 있는데, 조사관들이 정부기관에 자료를 요청하려고 공문을 만들어도 공문에 결재를 안 한다. 결재 안 하고 반려해버린다. ‘공무원들 귀찮게 하면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과장은 물론 파견공무원들이 예산을 관리하는 운영지원과 요직에 앉아 결정권을 거의 다 행사했다. 그런 이유로 내부에서도 트러블이 많았다.”

- 파견 공무원들이 위원장 지시사항도 잘 안 따르는 경우가 있었다던데.
“정부가 활동기간 종료시점으로 통보한 6월30일 전까지는 그렇게 대놓고 거부하지는 않았다. 6월30일 이후에는 심해졌다. 제가 7월 중순에 필요에 의해 재직증명서를 발급받았는데, 나중에 담당 과장이 전화가 왔다. ‘어디다 제출했나’라고 하기에 ‘그걸 왜 묻나’라고 했더니 ‘제출하면 안 된다. 허위공문서라서 효력이 없다’고 하더라. 6월30일자로 우리 조사관들은 당연 퇴직처리됐으니 재직증명서도 잘못 나간 거라고 했다. 이런 사례부터 해서 위원장이 위법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대놓고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파견직 공무원들이 특조위의 요직을 차지하도록 했는데, 이런 시행령이 조사에 대한 방해로 이어진 것 아닌가.
“지나고 와서 보니 시행령을 정말 꼼꼼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진상규명국 국장을 끝까지 임명하지 않았다. 진상규명국 산하 조사1과 과장은 검찰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이 맡아서, 조사에 소극적이었다. 나중에는 2과 과장이 사실상 조사1과, 진상규명국 국장의 업무대리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업무과중이 장난이 아니었다.‘

관련기사 : “해수부·해경이 조사인력 상당수, 시행령 세월호 조사방해”

▲ 10월4일 특조위 사무실 내 복합기가 정리되고 있다. 사진=세월호특조위 페이스북

- 정부는 120명이던 정원을 90명으로 줄여버리고, 그나마 공무원도 정원보다 적게 파견했다. 자연스레 조사관들에게 업무가 몰렸을 것 같은데.
“과거에 이런 위원회가 만들어지면 파견직 공무원들은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조사관들이 조사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거다. 그런데 세월호특조위에서는 그런 게 전혀 안 됐다. 조사관들이 출장 한 번 다녀와도 영수증 처리 등 행정업무가 많은데, 다 조사관들이 했다. 외부 용역을 맡기더라도 계약서 작성부터 조달청 공문처리, 비용 지급까지 행정업무를 다 조사관들이 하는 거다. 조사관들이 잘 모르니까 법령 찾아보면서 다 하는 거다. 얼마나 소모적인가.”

- 참사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파견직 공무원들과 조사관들의 시각 차이도 있었나
“진상규명국에는 검찰이나 경찰, 해경 출신들이 많았다. 편차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정부의 조사결과가 잘못 됐다고 생각을 안 한다. 자신들이 조사하던 관례가 있으니 ‘이 정도면 조사 많이 했네 뭐’ 이런다. 유가족들이 신청한 사건들을 봐도 ‘이게 무슨 사건이야. 이런 게 사건으로 구성이 되나’라고 한다. 이런 시각이니 밖에 나가서 ‘(특조위가) 쓸데없는 짓 한다’고 이야기하는 거다. 애초에 조사대상이 되는 기관에서 파견 와서 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예 다른 것이다”

-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은 특조위를 ‘세금도둑’이라 비난했다. 어떤 생각이 들었나
“정치적 수사라고 본다. 애초에 특위의 필요성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검찰이 다 조사했는데, 감사원이 다 감사했는데 뭘 더 하냐는 거다. ‘정부가 조사했던 것 재검토하면 되지 뭘 새롭게 더 하냐’는 거다. 이런 사람들 입장에서는 특조위가 세금도둑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 요구는 그게 아니다. 정부가 조사한 결과가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고, 특조위가 더 조사해야한다는 거다”

- 같은 맥락에서 특조위가 그동안 밝혀낸 것이 없다는 말도 한다.
“영국 힐스버러 축구장 참사는 27년 만에 사고사에서 과실치사로 바뀌었다. 대형참사는 몇 개월 조사한다고 밝혀지는 게 아니다. 30년 걸려서 보고서가 나왔고 그 사이에도 계속 양심선언 이어지고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고 비공개 자료들이 공개되는 과정이 있었다. 나아가 특조위에서 조사는 했지만 공표하지 못하는 단계에 놓여 있는 사건들이 많다. 접수된 사건이 200개가 넘는데, 각각이 다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쇠사슬처럼 엮여있다. 일례로 세월호의 화물량 조사도 겉으로만 보면 화물량을 정확히 밝혀달라는 것이지만 과적된 화물이 배의 복원성에 미친 영향, 침몰에 미친 영향, 나아가 사고원인까지 다 엮여있다. 화물량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도 ‘이것만 발표하는 게 맞나’라는 내부의 고민이 있었다.”

- 몇 개월 조사한 걸 가지고 성과가 없다고 비난할 수 없다는 뜻인가
“참사의 진상규명은 절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긴 안목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보면 200개 넘는 사건 중에 최종 보고서를 공개하기로 한 건은 극히 일부다. 나머지는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검증도 하는 과정에 있는 거다. 숫자만 보고 접수된 사건 중 몇 개 밖에 처리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건 잘못됐다. 검찰은 책임자 처벌이 제1의 목표이기에 일단 1차적으로 기소를 하고, 법원에서 더 다투거나 추가 증거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한다. 하지만 진상규명이 목표인 특조위는 사건 전체를 보고 원인을 종합해서 최종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니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 불이 꺼진 채 텅 비어있는 특조위 사무실. 사진=조윤호 기자
- 그런 작업을 마치기도 전에 업무가 강제 종료되어 아쉬울 것 같다. 
“세월호 참사는 현대에 벌어진 사건이기에 증거가 다 디지털증거다. 대표적인 게 해경의 TRS 음성파일인데, 음성파일이 100만개가 넘는다. 일일이 검증하고 녹취록 만드는 과정만 몇 달이 걸린다. 다시를 내용을 분석해서 다른 기록과 대조하고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해야 한다. 그런데 기록을 발견하고 입수하는 단계에서 그만두라고 하니 아쉽다. 진상규명은 1년6개월 안에 절대 끝낼 수 없다. 수십 년이 걸리는 여정의 극히 일부라고 본다. 국가재난이나 국가폭력을 조사할 수 있는 상시적인 독립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특조위가 이런 상시기구의 모태가 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 6월30일부터 월급을 못 받았는데도 계속 일하고, 또 지금까지도 조사관들이 출근을 이어가는 이유는 뭔가.
“이 일을 정부가 시켜서 시작한 게 아니니까. 정부를 상대로 진상규명하는 사람들이 조사대상인 정부가 그만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할 순 없지 않나. 버티기 당연히 힘들다. 조사관들도 다 가정이 있고 책임져야할 식솔들이 있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3차 청문회 끝나고 떠난 사람들도 있다. 떠나는 사람들도 마음은 다 똑같다.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겠다고 말한다. 파견 공무원들은 ‘남아있는 사람들 어디서 뒷돈 받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을 거다. 돈 없이 못 사는 사회니까.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를 나오든 3~4일을 나오든, 어떻게든 남아 있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