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조본좌 조본좌 2018.07.11 14:42

 

이집트 최남단 아부심벨로 가는 길은 71일 아침, 아니 새벽에 시작됐다.

 

전날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10시반 경. 씻고 이것저것 다하니 12시가 넘었다. 2시간 밖에 못 잘 것 같아서 난 그냥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짝은 잠들었고, 난 침대에 누워서 그동안 찍은 사진들 좀 보고 한국 소식도 검색해보고 하다가 2시가 좀 넘어서 일어났다.

 

씻고 두 시 반에 숙소를 나가려는데 옆방에 있던 한 외국인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에게 아부심벨에 가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하자 자기도 아부심벨로 가는 차를 타야 한다며 5분만 기다리면 같이 배를 타고 나가자고 했다.


(이른 새벽, 배를 타러 나가는 길.)

 

그래서 그 외국인과 함께 아스완 KFC(픽업 장소)로 가는 배를 탔다. 정류장에는 웬 흑인 소년이 혼자 배를 띄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룩소르까지만 해도 아랍인들이 많았는데 아스완부터는 아프리카라는 느낌이 확 났다. 여기서부터는 아랍인보다 흑인이 훨씬 많다.)

 

아침이나 낮에 타는 배는 각 2파운드 밖에 안 했는데 새벽에 타는 배 값은 25파운드나 했다. 같이 온 외국인이 새벽은 원래 비싸다고 들었다고 했다. 따지자면 그 흑인 소년이 아부심벨에 가는 우리를 태우기 위해 새벽에 나온 셈이다. 야간노동에 대한 값이라 생각하고 아무 말 하지 않고 50파운드를 냈다.

 

KFC 앞에서 그 외국인과 함께 픽업 차가 오길 기다렸다. 그녀는 독일에서 왔으며, 시리아와 터키의 국경지대에서 난민 관련 활동을 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라고 했다. (삐끼들이 가득한) 이집트에 혼자 여행 온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이력을 듣자 수긍이 갔다.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을 텐데, 삐끼들 정도야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에도 난민들이 와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어디냐고 물어보길래 예멘이라고 했더니 바로 이해한 것 같았다. 제주도로 500여명의 예멘인들이 난민 신청을 하러 왔지만 한국은 단일민족국가이고 이런 일을 처음 겪어봐서 그런지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녀는 그런 우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그녀는 이집트에 와서 삐끼들한테 많이 시달렸다며 다음 행선지는 후르가다라고 했다. 우리는 후르가다는 쉬기 딱 좋은 휴양지이며, 독일인들이 매우 많다고도 전했다. (4편 참조) 픽업하러 온 차가 달라서 그녀와 우리는 서로 다른 차를 타고 헤어졌다. 그녀는 휴가를 마치고 다시 시라아 터키 국경지대로 간다고 했는데, 별 일 없이 자신의 임무를 다하길 기원한다.

 

여튼 우리는 아부심벨로 가는 봉고차를 탔다. 우리를 픽업하러 온 기사와 그 기사의 친구는 굉장히 시끄러운 놈들이었다. 그들은 아부심벨로 가는 3시간 내내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봉고차에는 우리 말고도 멕시코에서 온 남자 두 명과 (국적은 잊어버렸으나 직업이 교사라고 했던) 여성 한 명이 탑승했다. 멕시코 남자 두 놈도 굉장히 시끄러웠다.

 

아부심벨은 이집트 남부인 아스완에서도 3시간을 차타고 달려야 나온다. (아스완에서 280km 떨어져 있음) 수단과 국경지대로, 이집트 최남단이다. 3시간을 달려 6시 반 쯤 아부심벨에 도착했다. 우리를 맞이한 건 역시 삐끼들이었다. 그래도 아스완 삐끼들은 룩소르보다 낫다. 싫다고 하면 따라오진 않는다.


가이드가 우리들에게 한 명 붙었는데,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아부심벨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식으로 투어를 시작했다. 아부심벨에는 신전이 크게 두 개가 있다. 아부심젤 대신전이라 불리는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지은 신전으로, 입구에 4개의 좌상이 있다. 4명 모두 람세스다. 람세스 어렸을 때, 람세스 늙었을 때 등등 조금씩 다른 모습의 좌상들이라 한다. (람세스2세는 자기 과시가 굉장히 강했던 사람 같다.)


(아부심벨 대신전 앞에서. 저 뒤에 보이는 석상 네 개 모두가 람세스2세다;;)

 

신전 안은 매우 넓고 화려했다. 람세스2세의 자의식 과잉을 한껏 느낄 수 있다. 깜짝 놀란 건 신전 안에서 뭐가 시끄럽게 날아다니기에 새인 줄 알았는데 한 무리의 박쥐들이었다. 입구에 가면 웬 이집션이 굉장히 큰 열쇠 같은 걸 들고 관광객들한테 건네주는데, 이 열쇠 비슷하게 생긴 건 symbol of eternity라고 했다. 처음엔 삐끼인 줄 알았는데 삐끼는 아니고 그 열쇠를 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아부심벨 알바였다. (돈 안 줘도 됨)

 

(불멸의 상징은 요렇게 생겼다. 이집트 신전 안에서 이 문양을 많이 볼 수 있다.)

 

람세스2세가 지은 신전(룩소르신전, 카르나크신전, 아부심벨신전) 안에는 유독 저 “symbol of eternity”이 많았다.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거나 다른 사람이 왕에게 저 상징물을 바치는 장면이 벽화로 조각되어 있었다. 아마 모든 것을 손에 넣은 파라오가 유일하게 손에 넣지 못한 게 불멸이어서 거기에 집착한 게 아닐까 싶었다.


신전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돈 앞에 안 되는 게 어디 있으리. 돈을 더 내면(300파운드) 사진을 찍는 티켓을 준다. 안에서 사진 찍는 분들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 사진 찍으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는데 크게 들렸나보다. 그 분들이 한국어로 저희 돈 내고 샀어요~”라고 하셨다. 알고보니 한국에서 관광 온 비구니 스님들이었다.

 

아부심벨 대신전 옆에는 작은 신전이 하나 있다. 람세스2세의 부인이었던 네페르타리를 위해 람세스가 지은 신전이다. 람세스 2세 부인들이 많았는데, 그 중 람세스2세가 가장 아꼈던 부인이라고 한다. (소설 람세스에도 나온다. 투탕카멘의 의붓어머니인 네페르티티와는 다른 사람이다.)

 

(네페르타리 신전 앞에서.)


많이 사랑했으니 신전까지 만들었겠지 라고 생각하고 네페르타리 신전을 가보았는데, 신전 앞에 있는 6개의 입상 중에 2개만 네페르타리고 나머지 4개는 람세스2세였다. 기껏 부인한테 주는 신전을 만들어놓고 그 문 앞에 정작 자기 석상을 4개나(자기 부인보다 많이) 박아놓은 것이다. 참 자의식이 강한 파라오였구나 싶었다.

 

아부심벨 대신전 앞에는 바로 강이 펼쳐져 있다. 그 강 너머가 바로 수단이다. 아부심벨은 원래 이곳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있던 장소에서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가 함께 수단 국경지대인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것이다.

 

(저 강을 지나면 바로 수단이 보인다고 한다.)


아부심벨은 굉장히 유명한 유적지고 웅장하지만 정작 둘러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큰 신전 하나랑 작은 신전 하나에 주변 경치 정도다. 2시간 만에 다 둘러보고 8시 반에 다시 돌아오는 봉고차를 탔다. 앞의 두 놈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피곤해서 그런지 3시간 내내 잠들었다.

 

아스완에 다시 돌아올 때가 되자 버스 기사 옆에 앉아 있던 이집션이 우리한테 봉투를 건넸다. 팁을 넣으라는 거였다. 이놈들은 한 게 뭐가 있다고 대놓고 팁을 요구한다. (봉고차 기사야 운전이라도 했지 그 옆의 놈은 시끄럽게 떠든 거 말고 한 게 없었다.) 우리는 돈이 아까웠지만 억지로 5파운드를 넣었다.

 

봉고차는 멕시코인 두 명을 픽업했던 장소에 멈췄다. 아스완의 뜨거운 태양이 비추는 도로 한 복판이었다. 이집션들은 차 문을 열더니 여기서 내리면 5분 뒤에 너희 숙소에서 픽업을 하러 올 거라 했다. 멕시코인들은 여기 있다가 차가 오면 내리겠다. 밖이 뜨거워서 밖에 있고 싶지 않다고 하차를 거부했다. 이집션들은 “5분이면 온다고 했으나 멕시코인들은 너네가 하는 5분이란 말 안 믿는다.”고 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10분 넘게 지나서 차가 왔고 멕시코인들이 내렸다.

 

참고로 이집션들은 관광객들을 상대할 때 입버릇처럼 ‘5분만아니면 ‘1분만’(one minute)을 외치는데 절대 믿으면 안 된다. 그게 10분이 될지 30분이 될지 12일이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도 다른 외국인들과 작별하고 KFC 앞에서 내렸다. 배가 고파서 KFC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명색이 KFC인데 카드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카드기가 있었는데도. 가격은 매우 쌌다. 세트메뉴 2개를 시켰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만 원이 안 됐다. 하지만 싼 이유가 있다. 햄버거 내용물이 매우 부실했기 때문이다. 대신 감자튀김은 짜지 않고 맛있었다.


KFC 직원은 거스름돈이 1파운드 모자라자 "원 미닛"(1분만 기다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식사를 다 할 때까지 1파운드는 주지 않았다. 내가 다시 가서 1파운드 달라고 하자 그제야 거스름돈을 줬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배를 탔다. 근데 정류소에 있던 놈이 배 값이 1인당 10파운드라고 했다. 어제밤에 탔을 때 분명 2파운드였는데. 우리가 "어제 2파운드 내고 탔다. 우리는 가격을 알고 있다"라고 했더니 "리얼리?"라면서 그럼 2파운드만 내라고 한다. 이쪽 사람들은 가격을 물어보면 그냥 머리에 떠오른 숫자를 아무거나 이야기하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민망함도 없다. 

 

다음 투어 일정은 아스완 섬들을 보트로 돌아보는 보트투어였다. 하지만 오후가 되어도 여행사에서 어디로 나오라는 연락이 오질 않았다. 우리를 아부심벨에 데려다 준 일당들한테 물어봐도 아무것도 몰랐다. (우리는 분명 EYE OF HORUS라는 회사랑 계약했는데, 아부심벨 투어랑 보트투어가 각각 아스완의 다른 회사들에서 진행됐다. 아마 손님을 잡으면 커미션을 받고, 다른 여행사들에 팔아넘기는 시스템인 것 같다.)

 

여행사 사장한테 연락을 취해도 답이 없었다. 고민하던 순간에 우리 앞에 이집트의 현인, 엘 아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나타났다. (현인 이야기는 7편 참조) 우리는 현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고민을 듣고 있던 현인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잠시 뒤 우리를 안내해 줄 가이드에게 연락이 왔다. 숙소에서 쉬고 있으면 4시 반에 픽업하러 오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4시반에 가이드가 숙소 앞으로 보트를 끌고 우리를 픽업하러 왔다. 아아, 현인 엘-아민. 그저 빛...


(아...엘 아민. 그저 빛...)

 

숙소에서 뻗어서 자다가 일어났고, 네 시 반에 연락이 왔다. 나가보니 숙소 바로 앞에 보트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 보트를 타고 가이드와 함께 바로 보트 투어에 나섰다.


(보트 투어를 통해 둘러본 아스완 섬 일대.)

 

(아가사 크리스티가 틀어박혀서 소설을 쓴 아스완 호텔이라고 한다. 저런 데서 글 쓰면 진짜 잘 써질 것 같다.)


나일강 유역을 한 바퀴 도는 보트투어였다. 나일강은 물이 정말 깨끗했고 경치도 좋았다. 돈만 많으면 이런 데 집 하나 짓고 살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나일강에서 수영을 할 수 있냐고 물었고 가이드는 현지인들이랑 관광객들이 종종 수영하는 곳에 우리를 떨구어 주었다.

 

그래서 한 20분 동안 나일강에서 수영(이라기보다 몸 담구기)을 했다. 물이 너무 깨끗해서 안이 다 보일 정도였다. 물이 매우 시원해서 오래는 들어가 있지 못했다. 그래도 오들오들 떨리는 정도는 아니었고, 온 몸이 맑아지는 기분 좋은 시원함이었다.


(나일강 수역. 사람들의 안구 보호를 위해 몸은 자체 모자이크 처리했다.)

 

보트 투어 중에 한 섬에 도착했다. ‘엘레판티네(Elephantine)섬이었다. ’코끼리의 귀란 뜻으로, 섬이 코끼리 귀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그곳에는 이집트의 소수민족인 누비아 족이 사는 누비아 마을이 있다. 이 섬에서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누비아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열 전달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곳에 지어지는 건물은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고 했다. 건물도 형형색색 매우 예뻤다. 푸른색과 초록색을 좋아해서 독특한 색감의 그림 같은 건물들이 많았다. 여행 내내 엄마 선물로 뭘 살까 고민했는데, 여기서 수제 스카프를 득템했다. (5000원 밖에 안 함)


가이드가 한 집으로 들어가서(관광코스) 누비아 족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보여주었는데, 이 집에는 악어가 있었다. 원래 나일강에는 악어가 많아서, 고대인들은 악어 때문에 사투를 벌였다고 한다. 관광코스로 악어를 이렇게 집에 가둬놓는 것 같았는데, 악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해서 기르는 게 아니면 이런 악어는 그냥 풀어줬으면 좋겠다.


(건물이 진짜 예쁜 누비아 마을.)


(누비아 마을을 배경으로. 옆에 있는 흑인 아저씨는 가이드.)


(누비아에선 이렇게 낙타들이 개나 고양이처럼 흔하게 돌아다닌다.) 


누비아 마을에서 기억 남는 곳은 초등학교였다. 가이드가 방학 때문에 텅 비어 있는 누비아 마을 초등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외국인을 위해 관광 코스로 만들어놓았음) 교실에 들어가보고, 그곳에 있던 선생님이 아랍어와 누비아어 알파벳을 소개해주었다. 아랍어로 내 이름도 써보았다. 내 이름이 윤호라고 말하고, 알려주는 대로 썼는데 알고보니 내가 글자의 발음은 윤호가 아니라 유후에 가까웠다고 한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유후라고 알아들으신 모양이다.

 

(암기를 못해서 한국식 체벌 중....)


(아랍어 공부를 해보았다.)


(누비아 초등학교 교실의 안과 밖.)



해질녘의 아스완 섬 일대는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는 배 사공 두 명에게 30파운드를 팁으로 주었다. (가이드는 다음날 또 만날 거라서 다음날 주기로) 저녁은 보트 투어를 하다 마주친 누비안 레스토랑(nubian restaurant)에서 하기로 했다. 옆에 나일강이 보이는 매우 예쁜 레스토랑이었다.

 

(엘레판티네 섬의 선박장 모습,)


누비아 전통 빵과 누비아 전통 밥, 생선조림 등을 먹었는데 특히 생선 조림이 맛있었다. 토마토와 양파 소스에 절인 생선 조림이었는데, 입에 살살 녹는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특이한 맛이 났다. 혹시 아스완에 오면 한 번 먹어보길 추천한다. 엘레판티네 섬에서 배를 타고 5분만 가면 나오는 곳이다.

 

(누비안 레스토랑에서 마신 논알콜 맥주,)


(누비안 레스토랑의 전통 빵.)


(누비안 레스토랑에서 먹은 음식들. 오른쪽 빨간 물체가 토마토에 절인 생선조림이다.)


레스토랑에서 주문 받던 아저씨는 우리한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south or north?”라고 되물었다. 코리아라고 했을 때 이렇게 되물어본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웃으면서 남한이라고 하자, 그 아저씨는 북한의 젊은 지도자에 대해 알고 있냐고 물었다. “김정은?”이라고 다시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집트를 포함해 수많은 나라의 독재자/집권자들이 김정은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집트 정치인들도 매우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젊은 독재자가 (트럼프나 시진핑 같은) 세계의 주요 지도자들을 만나며 보여주는 모습, 그리고 앞으로 북한의 변화에 매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역만리에서 BTS 다음으로 대화 주제로 등장한 (노스)코리안이 김정은이었다...

(이 식당에도 고양이가 있었다.)

 

누비안 레스토랑에서는 아예 수상택시를 운영하고 있었다. 40파운드를 내니 엘 아민 게스트하우스 앞까지 데려다준다. 밥 먹고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왔다. 룩소르는 유적지들은 좋았지만 날씨도 덥고 삐끼들 때문에 정말 피곤해서 다시 오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스완은 또 오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기온 자체는 높았지만 강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시원했다.


(누비안 레스토랑의 야경.)

 

돌아가니 빛-아민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우릴 기다리고 계셨다. 옆방이 비었다며 옆방으로 옮겨서 머물러도 된다고 했다. 지금 머무는 방은 에어컨 조정하는 게 바깥에 있어서 조금 불편했는데 옆방은 에어컨을 방 안에서 조정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 자신의 편의가 아니라(대부분의 이집션들은 이랬다) 손님의 편의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는 빛-아민. 우리는 현인의 제안대로 방을 바꿨다.

 

그렇게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밤이 흘러갔다.

 


다음 편은 아스완 2일차,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날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