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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힌 쌍용차, 박근혜 대통령의 ‘촛불’ 될라

짓밟힌 쌍용차, 박근혜 대통령의 ‘촛불’ 될라
[현장] 중구청의 쌍용차 분향소 철거에 맞서 모여든 시민들

조윤호 기자

4월 4일 새벽 5시 경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설치한 대한문 분향소가 철거당했다. 중구청의 기습 철거였다. 중구청과 경찰은 분향소에 눈 깜짝할 사이에 분향소를 철거하고 그곳에 화단을 설치했다. 

기습 철거에는 기습 집회로!?

중구청의 기습 철거에 쌍용차 노동자들은 기습 집회로 맞섰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SNS를 통해 집회공지를 띄웠다. 4일 저녁 7시, 대한문 앞으로 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취재하는 데 참조할 만한 큐시트를 달라”는 기자의 말에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관계자는 “갑자기 진행된 집회라 그런 게 없다”고 답했다. 

7시, 범대위 이도흠 공동대표의 발언과 함께 집회가 시작되었다. 급하게 공지된 집회지만 꽤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대한문 앞을 가득 채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 기습 철거를 감행한 중구청을 규탄했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조사를 약속하고, 쌍용차 문제 해결을 약속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시민들은 ‘국정조사 실시하라’, ‘박근혜가 책임져라’, ‘공장으로 돌아가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지난 4일 밤 대한문 앞에서 열린 분향소 철거 반대 집회에 참여한 200여명의 시민들이 노래를 듣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김득중 수석지부장은 “중구청 관계자를 만나 합의 중이었고, 범대위에도 그렇게 보고했으나 순식간에 철거해버렸다”며 합의 중에 기습 철거를 감행한 중구청을 비판했다. 범대위가 타협점을 찾기 위해 중구청에 면담을 요청하고, 설사 철거를 감행하더라도 절차를 제대로 거치라고 요구하면서 서로 합의점을 찾아가던 중에 갑자기 철거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경찰과 시민들 간에 몸싸움 이어져…

경찰은 시민과 노동자들의 요구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저녁 여덟시 경, 경찰이 다시 시민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경찰은 ‘불법집회’를 하고 있다고 경고방송을 시작했고, 범대위는 ‘신고된 집회’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경찰과 노동자 시민들이 몸싸움을 벌였고, 경찰은 “24명의 죽음을 철거한 중구청과 박근혜 정권 규탄한다”는 내용의 현수막과 남아 있던 천막 하나를 가져가고 나서야 뒤로 물러났다.
경찰이 현수막과 천막을 철거하며 강하게 대응했지만 시민과 노동자들은 물러서지 않고 집회를 이어나갔다. 범대위 관계자는 “분향소를 차린 게 작년 4월 5일이다. 딱 1년 만에 철거당했다”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이곳을 정리해고와 비정규 불안정노동에 맞서는 모든 노동자, 민중의 희망의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득중 수석지부장은 인터뷰에서 “천막이 안 된다면 노숙을 해서라도 이곳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 지난 4일 밤 대한문 앞 집회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발언을 듣고 있다. 

이명박에게 ‘촛불’이 있었다면 박근혜에겐 ‘쌍차’가 있다

집회에 참석한 향린교회 김경호 목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발생한 촛불집회가 이명박 정권을 위기에 빠뜨렸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발생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탄압이 박근혜 정권을 위기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목사는 “철거를 한다니까 연대하는 시민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모여들고 있다. 함께 막아내자”라고 덧붙였다.  

  
▲ 시민들이 대한문 앞 화단에 지금까지 죽어간 쌍용자동차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설치했다.

집회가 마무리 되어 갈 무렵, 시민과 노동자들은 경찰이 분향소를 철거하고 심은 화단에 쌍용차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꽂았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저 영정들을 잊지 말고 내일도 오늘도 이곳에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몇 몇 시민들은 경찰과의 충돌 우려해 

집회 내내 경찰과 시민들의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8시 40분경에는 경찰이 세워둔 철거용 차량을 움직이려고 하면서 그곳에 모여 있던 시민들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집회가 마무리 되고 난 뒤 경찰이 영정사진과 선전물 철거를 시도하면서 다시 한 번 큰 충돌이 있었다. 경찰은 결국 시민들이 화단에 꽂아놓은 영정사진들과 놓여 있던 선전물들을 모두 철거해갔다. 경찰과 시민들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총 7명의 시민이 연행되었다.

시민과 노동자들은 내일도, 모레도 이곳에 함께할 것을 약속하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집회는 끝났지만 몇몇 시민들은 경찰이 언제 몰려올지 모른다며 밤새 대한문 앞을 지켰다. 쌍용자동차 범대위는 5일 12시에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며, 앞으로 대한문 앞에서 계속 집회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구청의 철거와 이를 계기로 모여든 시민들의 연대로 인해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 등의 쌍용차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경찰이 현수막과 천막을 철거한 자리에 팻말 하나가 나뒹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