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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기타 칼럼 기고

[대학내일] 1년차 기자, 나에게 외압이 필요해

1년차 기자, 나에게 외압이 필요해

 
1년 전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일을 시작했다.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4학년 때부터였다. 나는 글 쓰는 연습을 했고, 다량의 뉴스를 보았으며 국어공부를 했다. 그리고 나는 기자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기자 경험을 하며 내린 결론에 따르면 기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말에 상처받지 않는 담대함 그리고 회유와 협박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무심함 이었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만난 한 후배가 나에게 물었다. “선배 일하면서 ‘외압’ 같은 거 없어요?” “외압이 뭔데?” “기사 썼는데 항의한다거나 기사 내리라고 한다거나.”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순간 고민했다. 고민을 하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 ‘외압’이라기 보다는… 그 사람들은 외압이라고 할 텐데 나는 너무 일상적이라 외압이라고 안 느끼니 이건 외압도 아니고 외압이 아닌 것도 아니고…모르겠다.”
 
기자들에게 기사에 대한 항의와 기사를 내리라는 요구는 ‘외압’ 축에도 못 끼는 일상적인 일이다. 내가 워낙 전투적인 매체에서 일하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알기론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외압’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무조건 삭제’ 형. 모 기업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해서 파업 소식을 알리는 기사를 썼다. 그리고 잘 마무리되어 파업이 철회됐다. 그랬는데 기업 홍보팀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파업이 끝났으니 기사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그게 예의”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 임기 끝났으니 이 전 대통령 관련 기사는 다 삭제할까요?”라고 되물었다. 하루는 모 언론사의 내부 문건을 반영한 기사를 썼다. 그러자 언론사의 한 간부가 전화를 해서 기사를 내리라고 했다. 내부 문건을 자기네가 검토해봤는데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검증을 거친 문건이었기에 사실이 아니라는 근거를 대라고 했지만 “우리가 검토해봤다” 이상의 이유는 없었다. 반론을 기사에 넣어주겠다고 해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싫다”고 대답했다.

두 번째는 ‘만나서 이야기하자’ 유형이다. 모 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의혹 관련 기사를 썼다. 그러자 그 기업 홍보팀에서 “만나서 이야기하자. 소주나 한 잔 하자”고 했다. 소주가 당기던 날이었지만 바쁘다고 뻐겼다. 또 어느 날은 모 기업의 인턴제도에 대해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그러자 기업 담당자가 회사로 찾아왔다. 기사 내용 중 틀린 건 없는데, 우리 회사가 이렇게 좋은 일도 많이 했다며 자료를 보내주고 갔다. “언제 소주 한 잔 하자”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알고 보니 그 기업 담당자는 나의 ‘선배’였다.

셋째, ‘내가 시키는 대로 고쳐라’ 유형이다. 한 대학의 시간강사와 인터뷰했는데, 그 시간강사가 학교에 대해 비판하는 말을 했다. 인터뷰에 넣었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어떻게 수정해줘야 하느냐고 묻자 자기네가 아예 기사를 써서 이메일을 보냈다.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니 사실과 달랐다. 결국 기사는 내가 쓴 대로 나갔다. 대학에서는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고 소송까지 검토하겠다고 방방 뛰었지만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이런 사례들만 소개하다보니 나를 외압에 맞서는 정의로운 기자로 착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정정 보도를 한 적도 있고, 기사를 수정한 적도 있다. 다만 사실이 다르지 않은 기사를 내리거나 수정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언론계에는 기사로 ‘조지고’ 그 대가로 광고를 받아먹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내가 언제까지 이런 거래로부터 자유롭게 원칙을 지킬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난 이런 외압 말고 좋은 외압을 받고 싶다. 독자들이 “더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 “이런 점은 왜 보도 안하냐”라고 따져 묻는 외압이라면, “이 기사는 다른 관점을 더 강조했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외압이라면, 아무리 시달려도 좋겠다. ‘기레기’라고 욕하지 말고, 아직은 원칙과 소신을 가진 기자들에게 좋은 외압을 행사하는 독자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조기자 qdbu2@hanmail.net
마음이 잘생긴 기자. 재빨리 대학을 졸업해 20대 중반의 나이에 1년 차 기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