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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보고가 찌라시로…기자들 괴롭히는 카톡 찌라시

정보보고가 찌라시로…기자들 괴롭히는 카톡 찌라시

찌라시 유포자이자 피해자인 기자들…유포자 색출이 대안 될 수 있을까

기자들은 사설정보지, 속칭 ‘찌라시’로부터 종종 도움을 받는다. 많은 기자들이 찌라시에 나온 내용을 보고 추가 취재를 해 기사를 쓴다. 하지만 어떤 찌라시는 기자들에게 독이다. 기자들을 괴롭히는 찌라시의 실태를 정리해봤다.

내가 올린 정보보고가 ‘찌라시’ 되어 다시 나에게…

한 언론사 기자 A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취재원과 식사자리에서 알게 된 정보를 정보보고 차원에서 회사 인트라넷에 올렸는데, 자신이 올린 글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하루 만에 ‘카카오톡 찌라시’로 자신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카카오톡 찌라시’란 ‘받은 글’ 혹은 ‘정보보고’ 등의 제목을 달고 카카오톡을 통해 퍼지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를 뜻한다.

A씨는 최근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그런 일을 겪었다. A씨는 “타사 기자들도 같이 밥 먹은 자리였는데 그런 찌라시가 돌아서 매우 곤란했다”며 “추가 취재했으면 기사로도 썼을 법한 내용이라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변에서 이런 일이 종종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SBS에서도 지난 7월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7월 말 SBS 사내 게시판에 <‘취재 정보 장사’ 한 번 생각해 봅시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인천지검을 취재하던 SBS의 한 법조팀 기자가 올린 글이었다.

이 기자는 글을 통해 SBS 보도국 구성원들과 정보공유 차원에서 올린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관련 수사정보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채 불과 2시간 만에 카카오톡 찌라시에 실려 자신에게 되돌아왔다고 밝혔다. 취재 정보 장사가 언론 윤리를 뒤흔들고 있다고 비판하는 취지의 글이었다.

이 글은 SBS 내부에서 파문을 일으켰고 SBS 고위 간부들이 취재 정보 유출자를 찾기 위해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당시 이형근 SBS 특임부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심각한 일이다. 취재정보가 그대로 외부로 유출됐다는 건 취재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로,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며 “자체적으로 경위 조사를 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경위를 밝혀내기 어려우면 수사를 의뢰해서라도 밝혀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SBS 보도국, 경찰에 자사 기자 수사 의뢰하나?>

이처럼 카카오톡 등 SNS가 발달하면서 기자들의 정보보고가 찌라시가 되어 SNS를 통해 확산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한 장면. 출처 : http://jjirasi.interest.me/@mobile/report_view.asp?idx=4

 

기자들도 찌라시 피해자 될 수 있다

이렇게 퍼지는 찌라시는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검찰이나 경찰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자들의 정보보고 중에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도 많고, 따라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카카오톡 찌라시 형태로 퍼지면 개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도 찌라시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언론사에서 발생한 성희롱이나 성추행 사건, 어떤 기자가 회사를 그만둔 사연 등은 카카오톡 찌라시의 단골 소재다. 해당 언론사의 이름은 물론 해당 기자의 이름까지 공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자들이 사망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국민일보의 최아무개기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자 ‘가정불화’ ‘카드빚’ 등을 원인으로 꼽은 찌라시가 돌았다. 하지만 이후 이 기자가 파업 참가 후 징계를 받고 승진에서 밀리며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찌라시 내용에 고인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소지가 있었다는 뜻이다.

지난 10월 조선비즈의 남아무개 기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근무태만, 부적응 등을 자살 원인으로 꼽은 찌라시가 돌았다. 하지만 이후 남 기자가 3개월 정직과 근무 스트레스, 취재가 아닌 업무에 배치되면서 느낀 박탈감 등으로 괴로워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찌라시를 본 한 기자는 “고인의 죽음을 개인 탓으로 몰아가는 찌라시를 보고 화가 났다. 명예훼손 아닌가”라고 분개했다.

수사 통해 찌라시 출처 잡아내면 근절될까

찌라시의 출처를 찾기 위해 검찰 수사가 벌어지고, 그 와중에 기자가 수사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한 종합일간지 기자 B씨는 약 한 달 전 검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 검사와 기자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적힌 찌라시를 유포했다는 이유였다.

B씨는 “SNS를 통해 연예인부터 정치인까지 많은 찌라시를 받는다. 그 중 검사와 기자 관련 찌라시도 있었던 모양”이라며 “누군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정보 공유 차원에서 누군가한테 전달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B씨는 “누군가 검찰이 출처를 묻자 나한테 이 찌라시를 받았다고 한 모양이다. 검찰에서는 내가 누구한테 받았는지 증명하지 못하면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며 “나는 누구한테 뿌렸는지도 잘 모르겠고 누구한테 받았는지도 기억이 안 나서 당황스러웠다. 연락이 계속 와서 결국 누가 보냈는지 찾아서 확인시켜줬다”고 말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당사자가 찌라시 유포자를 고소했고, 검찰이 수사를 벌이면서 출처를 밝히기 위해 ‘역추적’ 수사를 했다는 것이다.

B 기자는 “본인 입장에서 기분 나쁜 내용일 수 있고 이번 일을 겪으며 찌라시 남발이 정화해야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보고를 좀 더 은밀하게 하는 등 대안도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정보를 캐치하고 팩트를 확인하는 것이 기자의 일이고, 정보보고를 전달하는 것도 취재과정일 수 있는데 (수사가)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정보보고가 찌라시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검찰이나 경찰 수사가 최선일까. 의견은 엇갈린다. 언론사 내부 정보가 고스란히 외부로 유출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법적인 해결보다는 내부, 혹은 언론계 자정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내부 자정만으로 어렵기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SBS에서 찌라시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입장이 엇갈렸다.

<SBS, 기자 108명에 대한 경찰 수사 의뢰 엄포였나?>

정보 공유 체계를 바꾸는 방식은 어떨까. 예컨대 사내 인트라넷에 모두가 볼 수 있게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정보는 부서별로 따로 공유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정보 제한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수사기관의 정보가 그렇듯 정보의 독점은 권력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치부가 취합한 정보를 가지고 사회부가 추가취재를 할 수도 있는데, 정보를 제한할 경우 이런 통로가 닫힐 수도 있다. 또한 한 부서에서 작정하고 특종을 뭉개버리는 경우 감시가 어려울 수도 있다.

결국 미디어환경 변화로 인해 생겨난 현상이기에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만으로는 답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셜미디어 분석회사 트리움의 이종대 이사는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예전 여론의 흐름은 볼링 같았다. 헤드핀만 맞추면 모두 한 번에 넘어가는 식”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핀볼’ 시대다. 여러 루트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튀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종대 이사는 “이런 미디어환경에서는 변수가 많아져 통제가 쉽지 않다”며 “메시지가 건전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하는 정책, 홍보 등 좀 더 길게 내다보는 관점의 대안이 필요한 시대”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