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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조선일보의 무한도전 (3)

정부가 조선, 중앙, 동아, 매경을 종합편성채널의 사업자로 선정한지 거의 3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야당과 시민단체, 진보언론들에서는 종편 선정이 친정부적인 보수언론들에 대한 정부의 특혜임을 주장하며 선정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해왔으며 선정된 채널들 간의 과다한 경쟁으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넘쳐나 방송의 전체적인 질이 하락할 것을 우려해왔다. 종편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종편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종편에 대한 반대운동은 진보세력의 (조중동과 한나라당, 이명박 정부로 대표되는) 보수 세력에 대한 총공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종편과 정부의 종편 정책에 대한 투쟁은 진보세력만의 투쟁이 아니다. 진보세력 뿐만 아니라 시장주의를 사수한다는 보수우파들 역시 이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 나는 지난 번 글에서 종편 선정의 의미를 “입으로만 시장주의를 떠들던 조선, 중앙, 동아일보와 같은 보수 기득권 세력이 ‘진짜 시장경쟁’에 직면하게 된 사건”으로 규정했다.(http://hook.hani.co.kr/archives/19369) 동시에 나는 이들이 ‘시장경쟁’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정부한테 먹여 살려달라고 생떼를 부릴 수 있으며,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종편에게 각종 특혜와 지원을 몰아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러한 나의 우려는 안타깝게도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2기 방통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종합편성채널의 안정적인 시장 안착’임을 밝혔다. 이 달 말 출범하는 2기 방통위가 종편의 안정적인 시장 안착을 위해 검토하고 있는 정책들에는 황금채널 배정, KBS 수신료 인상, 종편의 미디어렙 제외 등이 있다.

종편 사업자들 입장에서 종편의 안정적인 시장 안착을 위한 최상의 시나리오는 홈쇼핑이 사용하고 있는 황금채널(지상파방송 사이의 6,8,10,12번)을 배정받는 일이다. 실제로 조선일보는 종편 선정 직후 사설을 통해 “종편이 시장에 안착하려면 2~3년간 케이블TV의 낮은 채널 번호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시중 위원장 역시 지난 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종편을 안착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적절한 채널을 갖도록 해주는 게 대표적이다. 2기 임기 가운데 첫째로 부딪힐 일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방통위는 케이블TV의 채널 배정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 홈쇼핑들은 황금채널을 사용하는 대가로 이미 연간 5000억 원을 케이블TV 사업자(SO)에게 지불하고 있다. 케이블TV의 채널 편성권이 SO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채널 편성에 대한 ‘승인’권은 방통위에게 있다는 점이다. 방통위는 종편에 ‘좋은 채널’을 할당하지 않은 편성표는 승인하지 않는 방식으로 특혜를 제공할 수 있다. 자신들이 황금채널을 배정받지 못할 경우 홈쇼핑 업체들은 SO에게 막대한 돈을 납부할 이유가 없고, SO는 결국 수천억 원의 손해를 감내해야한다. 종편의 안정적인 시장 안착을 위해서!

채널 배정에 특혜를 주는 일 외에 방통위가 종편의 ‘안정적인 시장 안착’을 위해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은 종편의 먹을거리인 ‘광고수입’을 보장해주는 일이다. 최시중 위원장은 종편의 시장 안착을 위해 광고시장 파이를 키우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광고시장의 규모 자체를 키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방법은 두 가지인데, 그 중 한 가지는 지상파 방송에게 갈 광고를 종편에게 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이러한 맥락에서 KBS의 수신료 인상이 정부의 종편으로의 광고 몰아주기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KBS 수신료 인상이 명분상으로는 KBS의 수입원 중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임으로써 공영방송으로 도약하게 만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KBS에게로 갈 광고를 종편에게 가도록 하려는 목적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의도가 어떤 것이든 중요한 것은 KBS의 수신료 인상을 통한 광고 축소분은 ‘실제로’ 종편이 흡수할 수 있는 광고 수입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편의 광고 확보를 위해 방통위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지상파와 종편 사이의 광고 규제에 차별성을 두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미디어렙 제도에서 종편은 제외하는 것이다. 이 미디어렙 제도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과 방송사 간의 광고판매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기업은 방송에 광고를 내보내기 위해 방송사로부터 ‘광고시간’을 구매하는데, 이 때 기업과 방송사는 직접 거래하지 않고 중개인을 통해 거래한다. 이 중개인은 광고주와 방송사 사이에서 거래를 중개하고 수수료를 챙기는데, 이 광고 대행사를 ‘미디어렙’이라 한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기업과 방송사들이 민간이 운영하는 미디어렙을 통하지 않고 국가가 운영하는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를 통해서만 광고 시간을 사고 팔 수 있었다. 그런데 2008년 헌법재판소가 코바코의 광고 독점판매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렸고, 이제 민간 ‘미디어렙’ 회사들이 광고 중개 판매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조중동은 종편에게는 이 미디어렙이라는 중개인을 거치지 않은 광고 직거래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시중 위원장 역시 종편을 미디어렙 제도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광고영업을 직접 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편은 주어진 자기 시장과 영역이 있는데 새로운 규제를 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종편이 미디어렙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가 있다면 몰라도 정부가 그렇게 하도록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광고주들은 수수료 없이 상대적으로 싸게 광고를 줄 수 있는, 그리고 직거래라는 간단한 절차를 통해 방송시간을 살 수 있는 종편에 눈길을 돌리게 될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이에 반발하며 자신들도 직거래를 하겠다고(아직 미디어렙 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은, 법의 공백 상태이기 때문에) 나서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방통위가 검토하고 있는 종편에 대한 특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지상파 방송에는 방송 중간에 광고가 나오는 중간광고가 금지되어 있으나 종편에는 45~60분미만 프로그램 1회, 180분 이상 프로그램 6회 이내로 중간광고가 허용된다. 지상파는 월간 전체 방송시간의 0.2% 이상을 비상업적 공익광고로 채워야하지만, 종편은 월간 전체 방송시간의 0.05% 이상만 채우면 된다. 또한 지상파 방송은 광고매출액의 100분의 6 범위 안에서 방송발전기금을 납부해야 하지만(KBS, EBS는 3.17%, MBC, SBS는 4.75%, 지역방송은 3.37%) 종합편성채널은 납부 의무가 없다. 의료기관 및 전문의약품 등 광고 금지품목 규제를 종편에 대해서만 해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처럼 방통위는 어떻게 하면 시장에서의 약자인 종편을 먹여살려줄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웃기는 것은 조중동이 이렇게 자신들에 대한 특혜를 주장하고, 방통위가 이를 적극 정책에 반영하는 데 근간하는 논리이다. “이제 갓 시장에 진입한 신규 사업자가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배려가 필요하다!” 애초에 공정하지 못한 독점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조건 하에서 신규 진입자들이 시장에 안착하고 공정한 경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중동은 그동안 바로 이러한 이유로 진행된 정부의 각종 시장 개입을 ‘반시장적 행위’라고 규탄해왔으며, 정부의 시장 개입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역설해왔다. 그런데 자신들이 막상 약자가 되자 제도적 지원을 요구한다. 역겨운 이중성이다.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조중동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데 사용하는 논리를 다른 시장에도 적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대기업들이 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사업자나 중소기업들이 시장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 위해 제도적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말이다. 초과이익공유제 같은 아무것도 아닌 제도에 대해 사회주의니 급진좌파니 떠들어대는 모습과 비교해 보았을 때 종편에 대한 정부의 배려는 지나치게 파격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조중동과 이 정부는 진정한 ‘실용주의’자들인 것처럼 보인다. 시장주의나 개입주의 둘 중 어느 것 하나를 따르지 않고, 본인들에게 유리하면 시장주의, 불리하면 개입주의를 주창하니 말이다.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진정으로 본인들의 ‘실용’을 추구하는 진정한 실용주의자들이 그들이다.

따라서 자신들에게 특혜를 요구하는 조중동과 이들에게 특혜를 부여하려는 정부를 비판해야하는 이들은 보수 기득권 조중동의 해체와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진보세력 뿐만이 아니다.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 효율적이라고 믿는 시장주의 보수우파들도 시장의 질서를 교란하면서 사회주의 코스프레를 일삼는 조중동과 정부를 비판해야 한다. 시장주의자들이여, 진보세력과 함께 조선일보의 ‘무한도전’에 훼방을 놓자. 만일 이에 반대하고 조중동이라는 약자를 위해 정부의 특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시장주의 우파가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견해를 중소기업과 같은, 다른 시장에서의 약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시장주의 우파가 아니라 조중동과 다를 바 없는, 그냥 본인들의 실용만을 추구하는 실용주의자일 뿐이다.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