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 /기사

일본 총리의 고백 “5천만 대피 시나리오도 있었다”

일본 총리의 고백 “5천만 대피 시나리오도 있었다”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 서울 강연회, “원전 신화를 버려라, 원전 절반 중단해도 잘 굴러간다”

원전 신화를 신봉했던 한 정치인이 원전 ‘탈핵 전도사’가 됐다. 일본의 간 나오토 전 총리 이야기다. 간 나오토는 후쿠시마 사태가 벌어진 2011년 3월 11일 일본 총리였다. 후쿠시마 사태를 겪은 이후 ‘원전제로’를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그는 17일부터 이웃나라 한국을 찾아 탈원전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간 나오토 전 총리는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강연에서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원전에 대한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 사고는 기술수준 낮은 소련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일본같이 기술력이 높은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원전에 대한 신화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라고 밝혔다.

간 전 총리는 “원전신화를 믿었기에 안전성에 주의하며 원전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터키와 베트남 수상을 만나서도 원전이 필요하면 일본 원전을 쓰라, 특별세일해주겠다고 말했다”며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를 만나서 그 생각이 다 틀렸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4년 전 느꼈던 공포감에 대해 설명했다. 간 전 총리는 “그 날 처음 보고를 받았을 땐 큰 지진이었으나 모든 원전이 무사히 정지됐다고 들었다. 그러나 한 시간 정도 지난 뒤 후쿠시마 원전이 통제력을 상실했고 냉각기능이 멈췄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그 때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감을 느꼈다. 원전이 멈춰도 냉각이 되지 않으면 열이 발생해 원전이 자기 붕괴에 이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총리는 사고 4시간 만인 오후 6시 50분 원전 반경 3km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저녁 9시가 넘어 그 범위는 5km로 늘어났고 다음 날은 10km, 20km로 대피 범위가 더 켜졌다. 간 전 총리는 “최악의 경우 반경 250km 주민들이 모두 대피해야 한다는 시나리오도 있었다. 도쿄도 포함됐다”며 “피난대상은 일본 전체 인구의 40%인 5천만명에 달한다. 국토 3분의 1이 기능을 상실하는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간 전 총리는 이어 “피난과정에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만약 250km 내 주민 대피령이 떨어졌다면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모른다”며 “5천만 명이 국토 3분의 1 지역에서 대피하는 사태는 전쟁 외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 간 전 총리는 “컨트롤이 어려운 원전이 10기에 달했다. 붕괴가 이어졌다면 체르노빌 사고의 몇 십배, 몇 백배에 달하는 방사능물질이 유출됐을 것이고 한국을 포함한 이웃나라에도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아슬아슬하게 물을 부어 원전을 냉각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간 전 총리는 사고가 발생한지 4년이 지났으나 피해는 여전하다고 말한다. 그는 “4년이 지난 오늘도 원전 1‧2‧3호기에 매일매일 300톤의 물을 주입하고 있다. 그 물을 정화시키겠다는 계획이지만 이 오염된 물은 외부로 계속 새어나오고 있다”며 “이 오염수는 빗물에 섞여 유출되기도 한다.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후쿠시마 사고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간 전 총리는 “이런 전쟁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사용할지, 아니면 원전을 사용하지 않고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인가”라며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역시 원전 사고가 더 이상 ‘남 일’이 아니다. 최근 원자력위원회는 수명이 다한 월성1호기 수명을 연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원전을 줄이자고 하면 당장 ‘원전 없으면 블랙아웃 닥친다’ ‘전기 안 쓰고 살래’는 반론이 되돌아온다.

간 전 총리는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는 “후쿠시마 사태 이전 52기 원전이 일본에 있었고 이후 상당수가 정지됐다. 그 후 25기가 운전되고 있다”며 “1년에 한 번 순차적으로 정기점검을 하고 이 결과에 따라 재가동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고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의 동의가 있어야 원전을 재가동할 수 있게 제도를 바꿨고, 그 결과 대부분의 원전이 재가동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간 전 총리는 이어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은 절전사용을 10% 정도 줄이고 고효율 방식으로 전력을 사용하고 있다. 석유나 천연가스, 재생에너지 비중을 급속도로 늘리고 있다”며 “그럼에도 전력이 부족하지 않다. 국민생활에 큰 지장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