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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진보대연합? 퇴보대연합! (2)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제 121주년 노동절(메이데이)이다. 메이데이는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각국의 노동자들이 연대의식을 다지는 날이다. 1886년 5월 1일 8시간 노동제의 쟁취와 유혈탄압을 가한 경찰에 대항하여 투쟁한 미국 노동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1889년 7월에 세계 여러 나라 노동운동자들이 모여 결성한 제2 인터네셔널의 창립대회에서 매년 5월 1일을 메이데이로 기념하기로 결정되었고, 이러한 메이데이가 올해 121주년을 맞이했다.

나는 오늘 121주년 메이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노동자대회에 참여했다. 집회 중앙무대에는 투쟁 중인 노동자들이 나와 자본과 국가의 노동탄압의 실체에 대해 밝히고 노동기본권 사수와 해고자 복직을 위해 우리 모두 연대해야 한다고 외쳤다. 노동자들의 발언이 끝난 후에는 노동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함께 비정규직 철폐, 생활임금보장 및 최저임금 현실화, 노동조합법 전면 재개정 등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그들의 요구는 노동 문제에서 그치지 않았다. 물가폭등, 등록금 인하 등의 구호도 집회 내내 울려 퍼졌다. 노동자들과 노동자를 지지하는 학생, 운동가, 정당 활동가들이 한 데 어우러져 그들의 요구를 힘껏 외칠 수 있는 날은 매우 좋은 날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 좋은 날에 기운이 쭉 빠지는 씁쓸함을 경험했다.

그 이유는 이번 노동절이 ‘진보대연합’을 위한 장으로 활용되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전에 썼던 글(http://hook.hani.co.kr/archives/25763)에서 밝혔듯이 나는 지금 민주당, 참여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사이에서 논의되는 진보대연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사실, 이는 민주노총이 2012년 대선과 총선에서의 MB심판과 이를 위한 진보대연합의 대의에 동조하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노동절 행사에 참여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자며, 이를 위해 ‘진보대연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역설했다. 손학규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이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고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진보대연합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희 대표는 “4·27 재보선에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고 한나라당을 무너뜨리는데, 야권연대를 만들어 내는 데 힘써 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감사하다”며 “2012년을 새로운 통합 진보정당 건설로 통합과 화합의 해로 만들겠다.”고 말한 뒤 이어 “다음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반드시 패퇴시키겠다.”고 밝혔다. 조승수 대표는 2012년과 총선과 대선을 통해 진보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야 이명박 정권 하에서 탄압받았던 노동자의 고통이 사라질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진보진영이 머리를 맞대고 9월까지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메이데이가 진보대연합 혹은 야권연대 궐기대회의 양상을 띠었다는 사실은 진보대연합을 강조하는 각 정당대표들의 연대사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세 정당 대표의 발언 속에서 드러나기도 했지만, 메이데이 집회 내내 MB정부 심판이 화두였다. MB정부를 심판하자는 구호와 피켓이 여의도와 서울광장을 가득 채웠다. 서울광장 집회 개회사에서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내세운 극단적인 친재벌, 반노동 이명박 정권 하에서 반칙과 특권은 일상화되었고 진실과 정의는 실종됐다”며 “지난 3년간 부자감세와 4대강삽질로 국가부채는 1600조원에 달하고, 미친 물가, 미친 전세금, 미친 등록금으로 가계도 파탄 나 가계부채도 이미 900조원을 돌파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현장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조건 없는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로 반 노동 정권 심판하고 진보적인 정권교체와 노동존중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라며 최근 논의되고 있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통합진보정당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노총의 메이데이 집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 역시 “이명박 정권이 노조법 개악을 통해 조직화된 노동조합을 무력화 시켜 1천 6백만 개별노동자 모두의 근로조건을 정권과 자본의 입맛에 맞게 비정규직으로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며 현 정권을 비판하고, “노조법 개정과 타임오프 폐지, 강제적 교섭창구 단일화 등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지 않을 경우 공동투쟁을 전개할 것이며, 이는 현 정부를 향한 ‘최후통첩’”이라고 밝혔다.

내가 이들의 발언에 대해 불쾌했던 이유는 ‘노동자 권익과 지위 향상’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되는 ‘진보대연합’ 속에 담겨진 망각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이 자본가들의 노동 착취를 보조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진보대연합이라는 대의로 연결될 수 있는가?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책이 이명박 정부의 독창적 창조물인가? 노동자들이 탄압받은 게 고작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뿐인가? 비정규직이 800만으로 늘어난 게 언제이고,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나간 게 언제인가?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내세워 친 재벌 반 노동 정책을 펼친 게 이명박뿐인가?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한 사람은 누구였나? 개방형 통상국가와 경제선진화를 명목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된 건 또 언제인가? 지금 양 노총이 요구하는 노조법 개정안1) 중 하나인 손배가압류2)가 가장 활발하게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건 언제인가? 역시 노조법 개정안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필수유지 업무3) 조항’이 도입된 건 언제인가? 배달호를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신종 노동탄압 장치인 손배 가압류를 통해 죽어나갔고, 공공 부문 노동운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필수유지 업무조항은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되었다. 비정규직의 사용을 2년으로 한정하는 비정규직법 개정 때 간접고용의 문제도 함께 다루어야 한다는 진보정당과 노동계의 요구에 “노동계의 주장이 너무 강경하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거부한 이들은 ‘개혁정당’ 열린우리당 의원들이다.

혹시 민주당과 국민 참여당 같은 구 집권세력들이 이제 반성했으니 함께 연대해도 괜찮다는 안쓰러운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장이라도 집어치우는 게 좋다. 이 문제는 과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하는 직업 안정법4) 개악안을 상정하는데 있어 한나라당과 공조했다. 양 노총이 주장하는 노조법 개정의 주요 쟁점들에 대해 민주당과 국민 참여당은 당론으로 정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취했었고, 노무현 정부의 유산인 손배 가압류, 필수유지 업무를 비롯한 산별교섭 법제화를 제외한 5가지만을 발의하는데 동의했다. 비정규직과 같은 형태의 불안정노동을 대거 양산할 한미 FTA에 대해 고작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 안에 대해 반대한다.” 정도의 입장이나 취하고 있는 것이 그들이다. 전주버스노조 파업을 130일이 넘도록 수수방관한 자들이 민주당이다. 그러면서 말로는 복지를 이야기하고, 노동 있는 복지를 말한다. 지난 대선 때나 지방선거에서 가장 화끈한 복지 공약을 내세운 이들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이었으며, “비정규직 문제 다루지 않는 복지는 의미 없다.”는 말 정도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한다. 중요한 건 누가 좋은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 좋은 말을 실행할 수 있느냐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메이데이 집회는 매우 안타까운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민주노총은 메이데이를 계기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나서겠다고 밝혔으나 진보대연합 국면에서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건 고작 한나라당을 뽑느냐 야권연대 후보를 뽑느냐 둘 중 하나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4년에 한 번 있는 투표를 통해서,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심판하는 것으로 입증되지 않는다. 지난번 글(http://hook.hani.co.kr/archives/20540)에서도 강조했지만, 진보세력이 집권 했을 때 노동자들을 등쳐먹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의회정치를 초월하여 전 방위적으로 닥쳐올 기득권 보수 세력의 압박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이들에 맞서 자신들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표출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을 조직화/세력화하는 것이 바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이다. 이러한 고민 없이 정치공학만 넘쳐난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며 정당들이 하나로 뭉쳐서 정권교체를 이루어내면 뭐라도 일어날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하나 장관 몇 명 바뀌어서 세상 안 바뀐다. 민주화 이전, 민주화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하에서 노동자는 늘 착취당해왔으며, 그 다음의 정권(진보개혁세력이 집권하든 박근혜가 집권하든) 하에서도 역시 착취당할 것이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고작 ‘진보대연합’이라면 말이다.

각주

1) 민주노총이 제안한 노조법 개정 8대 핵심 쟁점은 1. 노동자성 및 사용자성 확대, 2. 노조설립 절차 개선 3. 손배 가압류 제한, 4. 타임오프 폐지 5.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 6. 산별교제 법제화 7. 단체협약 해지권 제한, 8. 필수업무유지이다.

2) 손배 가압류란 손해 배상 청구 소송 및 재산가압류의 줄임말로, 사용자가 노동자의 파업으로 인해 입은 손해를 배상해 달라고 제기하는 민사 소송이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이며, 그 소송 과정에서 재산가압류라는 행정 집행이 이뤄진다. 가압류된 재산은 재판 결과에 따라 노동자에게 귀속되거나 사용자에게 귀속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국가와 기업은 노동 운동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보다 손배가압류를 더 선호하기 시작했다.(한윤형, 『안티조선운동사』, 텍스트, 2010, 320p.)

3) 파업을 할 때 최소한 인원을 유지해 업무가 중단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 제도이다. 이 제도는 2006년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화한다는 명목으로 도입된 노사관계선진화 방안 중 하나였다.

4) 원래 노동자 공급과 직업 소개는 법으로 규제된다. 그 이유는 그 과정에서 중간착취, 강제근로, 인권침해, 부당수수료 등이 판치기 때문인데,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의하여 상정하려 했던(그러나 진보정당들과 노동계의 반발로) 직업안정법 개정안은 이러한 규제를 대폭 풀자는 것으로, 고용서비스 민간위탁을 확대하고 복합 고용서비스 산업을 허용하여 취업알선, 인력파견, 직업훈련을 모두 한 업체에서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참고자료

임성규, “들어라! 진보정당, 노동활동가들아 대중들은 조건 없는 진보통합 원해”, 레디앙, 2011.04.25

정상근, “양노총-야3당 연대, 진보신당만 왜? 손배가압류, 필수유지업무 등 빠져”, 레디앙, 2011.04.29.

정상근, “고용불안, 취업사기, 중간착취 조장법”, 레디앙, 2011.02.25.

김도연, “비정규직 철폐, ‘4.30 결의대회’ 열려 “투쟁하는 노동자가 승리한다””, 오마이뉴스, 201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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