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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자본의 독재를 자율화라 부르지 마라!

나는 얼마 전 한겨레에서 기획한 ‘청춘상답 앱’이라는 코너에 참여하여 시골의사 박경철을 만났다. 박경철은 청년들이 과거에는 정치권력의 독재와 싸워야 했다면, 지금의 청년들은 ‘자본권력의 독재’와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정치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현재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자본권력이다. 자본권력은 다른 모든 지배집단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지닌 거대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동원하여 사회를 장악하고자 한다. 이들에게는 정치권력과 달리 제한된 임기도 없다. 그러나 모든 권력의 지배는 ‘힘’만으로 쟁취될 수 없다. ‘특정 권력의 행동이 우리 모두를 위해 좋다’는 ‘이데올로기’의 투쟁에서 승리해야만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자본권력 역시 자신의 독재와 지배를 은폐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독재라는 이름을 대체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경영효율 혹은 자율화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나는 자본의 독재가 자율화와 경영효율화로 불리는 경우를 자주 목도했다. 지난 4월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교내 청소미화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임금 투쟁과 등록금 투쟁을 실시했다. 학생들은 등록금을 결정하는 논의의 장에 학생들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학교 당국의 한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비자가 상품 가격을 정하는 법은 없다. 이런 방식은 공산주의다. 학교 등록금은 학교를 경영하는 총장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며 이것이 민주주의다.” 세상에, 등록금이 상품의 가격이니 ‘시장’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이렇게 말해도 충분히 절망적이지만), 총장 1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민주주의라니.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다. ‘경영자’라는 이름을 가진 전문인에 의해 실시되는 자본독재의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대학 등록금이 결정되는 구조이다.

또 다른 사례는 현재 대학의 기업화가 가장 극적으로 벌어지는 중앙대학교이다. 2008년 두산그룹은 중앙대를 인수했고, 기업에서나 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학교 당국은 취직 잘 안 되는 과를 통폐합하거나 없애기 시작했다.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와 46개 학과로 통폐합하는 '학문 단위 재조정안'이 도입되었으며, 그 대상은 주로 취업률이 낮은 인문. 사회대였다. 학교경영효율화라는 명목으로 총장 직선제 폐지, 교수 차등 연봉제 전환, 전교생 회계학 수강 의무화 조치 등의 '개혁'도 이루어졌다. 인문. 사회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학교 학생들 일부는 이 구조조정 조치에 저항했다. 학교 당국은 이들에게 '퇴학'이라는 카드로 맞대응했다.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가 두산그룹을 비판하는 풍자만화를 실었다가 전량 회수당하고, 교지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경영효율화와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진 '자본의 독재'였다.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학생 노영수는 30미터 높이의 타워크레인에 올라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지만, 경찰에 연행 당했다. 이후 그에게 날아온 것은 2469만원 가량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서와 퇴학처분이었다. 퇴학의 명분은 간단명료했다! "극소수의 학생들이 이번처럼 극단적인 돌출 행동으로 반대한다면 우리 대학은 큰 혼란에 빠져 필요한 개혁을 할 수가 없다. 재단의 투자 의욕과 도약의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현재 중앙대에서는 개혁이라는 명목 하에, 자본의 투자 동력과 대학의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 하에 자본의 독재가 서슬 퍼렇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또 다른 ‘자본 독재’의 사례는 ‘국립대 법인화’이다. 국공립대 법인화와 관련된 논란은 2007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3월 노무현 정부는 ‘국립대 법인화 추진을 위한 특별법’을 예고했으나 사회적 반발에 부딪쳐 추진하지 못했고, 대신 ‘선택적 법인화’ 전략을 시도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09년 서울대와 교과부가 서울대 법인화를 추진하고, 올해 초 한나라당이 법인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서울대 설립. 운영법률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서 다시 ‘법인화’라는 화두가 국공립대 학생들 사이에서 이슈로 떠올랐다. 당사자인 서울대 학생들은 반대시위를 벌이고, 법인화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총회를 개최했다. 법인화에 대한 저항은 국립 서울대 학생들에게서 그치지 않았다. 국립 서울대의 법인화는 지방 국립대와 공립대 법인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의 모교인 서울시립대학교 총학생회에서도 학생총회를 통해 ‘국공립대 법인화 반대’를 공식 입장으로 채택했다.

그렇다면 과연 법인화란 무엇인가? 법인화가 되면 국립대학에 어떤 변화가 오는가? 국립대법인화특별법에 따르면 내부적 변화와 외부적 변화가 병존한다. 대학 내부의 관리상, 운영상 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학운영의 책임자이자 ‘법인’의 대표는 총장이다. 또한 총장은 총장선출위원회가 후보를 내고, 이사회가 이 중 1명을 선임하는 방식으로 선출된다. 둘째, 국가 행정조직의 일부였던 국립대학은 교육부의 한 부서가 아니라 자체 이사회가 지배구조의 정점에서 각종 최고의사결정권을 가지는 체제로 전환된다. 이사회가 최종적 의사결정권을 가짐으로써 국가의 직접적인 통제에서 벗어난 자율적 운영이 가능해진다. 셋째, 대학 내에 교육연구위원회와 재무경영위원회가 구성되어 교육관련 중기 계획과 투자, 수익사업 계획을 스스로 결정한다. 넷째, 대학은 수익사업 등을 통하여 다양한 재원을 발굴할 수 있으며 그들의 성과에 따라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다. 다음으로 외부적 변화란 대학과 국가와의 관계의 변화이다. 법인화가 이루어지면 국립대는 국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계속 받지만 법인격을 부여받고 이사회가 설립되어 독립적 회계를 운영함으로써 자율성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법인화를 도대체 ‘왜’ 하려는 것인가? 많은 법인화찬성론자들이 대학 자율화라는 명목을 내세워 법인화를 주장한다. 국립대법인화특별법에 따르면 이 법의 입법 취지는 다음과 같다. “이 법은 국립대학법인의 교육과 연구능력의 향상을 도모하고 대학운영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제고하며, 국립대학법인의 교육연구 활동 및 사회봉사에 대한 국민과 사회의 요구에 부응함으로써 국립대학법인의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제 1조) 지금처럼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안주하는 이상 세계적 경쟁력을 도모할 수 없으므로 국립대에도 경쟁의 원리를 도입하고 자율성을 부여하는 법인화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국립대가 정부조직에서 분리되어 나오면 정부의 간섭을 받을 이유가 없어지는 동시에 정부의 재정적 지원은 ‘선별적으로’ 계속되므로 대학의 자율성은 유연성, 탄력성으로 이어져 대학의 경쟁력이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인화가 ‘정말로’ 대학의 자율성을 높여주는가? 법인화법을 조금만 살펴보면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헛소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대학운영권을 가진다는 이사회는 교육부에게 승인을 받아야한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 교육부는 매우 쉽게 이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 법인화를 통한 대학 자율화란 이사회와 총장의 권한의 확대와 대학교수회의 권한 축소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사회는 결국 교육부에 의해 통제되고 지휘, 감독받는다. 총장 직선제에서 이사회의 총장 선임제로의 변화 역시 국가로부터의 자율성이 아니라 국가 통제의 심화에 해당한다. 또한 재정지원의 측면에서도 대학의 자율성은 오히려 줄어들 것이다. 정부는 위원회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국립대법인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이를 바탕으로 재정지원을 한다. 각 대학이 높은 점수를 받아 재정지원을 받으려면 정부의 지침을 충실히 수행해야한다. 또한 이사회에 외부인사가 참여하게 만든 것도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 수익사업 추구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수익성이 높다는 것을 정부에게 입증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이사회의 외부인사는 친정부관료, 자치단체 인사나 기업 인사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각 대학에 대해 문외한인 인사들이 대학의 중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대학 자율성에 대한 심각한 침해에 해당한다.

위에서 살펴 본대로 법인화를 통해 대학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자율성이라는 미명하에 대학은 더욱 통제되고 의사결정의 민주성은 심각하게 침해당할 것이다. 대학 자율성이란 총장 직선제, 교수협의회 등의 대학구성원의 자치와 대학운영에 학내 구성원이 참여하는 대학평의원회나 운영위원회의 구성을 통한 민주성 증진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법인화는 오히려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 법인화는 대학의 자율성을 높이는 대신 자본의, 그리고 이를 방조하는 국가의 대학 통제력을 높이고, 경영효율화와 경쟁력 증진이라는 명목으로 대학 의사결정의 민주성을 짓밟는 조처이다. ‘자본의 독재’를 자율화라고 부르지 마라!

참고자료

선명수, "나는 대학에서 쫓겨났다, 아니 '두산대'서 해고됐다.", 프레시안, 2010.05.13(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00512235751&section=03)
이성로,「국립대 법인화에 대한 일 고찰」,『한국공공관리학보』제21권 제4호.
최갑수,「국립대 법인화특별법(안)의 문제점」,『문화과학』 제50호.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