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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곽노현 사건에 대한 소고 : 진보에게 도덕성은 무엇인가

정치권이 ‘오세훈 사퇴’로 소용돌이에 휩싸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곽노현 쇼크’다. 검찰이 2010년 교육감선거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곽노현 교육감과 금품을 주고받은 혐의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를 소환, 조사했을 때만 해도 검찰이 표적수사를 한다는 의혹이 많았다. 그러나 곽노현 교육감이 지난 28일 박명기 교수에게 2억 원을 건넨 사실을 시인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그는 지난 8월 28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연 기자회견 자리에서 “박 교수의 어려운 처지를 외면할 수 없어 선의로 총 2억원을 지원했다”며 “박 교수가 서울시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후보 사퇴 전까지) 많은 빚을 졌고, 이때 생긴 부채 때문에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형편에 있다고 들어 모른 척할 수만은 없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선거에선 공정성을 위해 ‘대가성 뒷거래’를 불허해야 하지만, 선거 이후는 또 다른 생활의 시작인만큼 박 교수의 곤란한 처지를 외면하는 것은 몰인정한 법 집행”이라며 검찰이 의심하고 있는 대가성을 전면 부인했다.

곽노현이 대가성이 아닌 선의를 내세우는 것과는 별개로 검찰 수사는 진행 중이다. 곽노현의 부탁을 받고 박명기에게 2억 원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강모 교수가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곽노현의 부인 역시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 9월 5일 곽노현 본인 역시 검찰수사를 받았다. 검찰 수사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1) 곽노현이 건넨 2억 원에 대가성이 있느냐. 2) (대가성과 관련해서) 곽노현 측이 선거비용 보전을 요구한 박명기 측에게 돈을 주기로 '미리' 합의했느냐. 3) 이러한 양측의 합의를 곽노현이 미리 알고 있었느냐, 아니면 실무자들이 합의하고 난 뒤 나중에 알았느냐.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을 비롯한 보수 세력은 부패 비리교육감은 당장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목소리가 갈리는 것은 진보 세력들이다. 민주당과 진보정당,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곽노현 책임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곽노현이 교육감으로서의 책임의식을 느끼고 사퇴해야 한다고 말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박주선, 정세균, 조배숙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이러한 목소리를 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금태섭 변호사, 시사평론가 진중권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지금껏 진보세력이 부패한 보수 정치인과 관료에게 적용했던 잣대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곽노현 역시 같은 기준에 따라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곽노현을 방어하는 진보 세력도 있다. 천정배, 전병헌, 김진애 민주당 의원이 당 지도부와 다른 견해를 제시하며 민주당을 비판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심상정 진보신당 고문, 최재천 변호사, 조국 교수 역시 보수 세력과 일부 진보세력의 곽노현 때리기를 비판했다. 곽노현이 이미 스스로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법적인 책임(대가성이 있느냐 없느냐)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보수 세력의 주장에 휩쓸려 곽노현 때리기에 동참하는 행동은 섣부르다는 것이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도 ‘나는 꼼수다’라는 라디오 방송에서 “대가성 입증 전까지 입을 다물어야한다.”고 말했다.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은 박명기 교수의 변호를 법부법인 바른(보수적 성향의)이 맡았다는 언급을 하며 정권 차원의 표적 수사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나는 이 글에서 곽노현이 사퇴해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해 논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번 사건의 다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보세력에게 ‘도덕성’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판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도덕성이란 무엇인가?

한국에서 진보세력은 도덕성을 무기로 삼아왔다. 그리고 실제로 이는 훌륭한 무기로 작동했다. 진보는 기득권을 장악한 채 부패하는 보수에게 맞설 무기로 도덕성을 제시한다. 보수는 부패한 기득권이지만, 진보는 그들보다 깨끗하고 도덕적이라는 것이다. 2002년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은 어떻게 보수양당의 ‘대세’(이회창과 이인제)를 모두 꺾고 승리할 수 있었는가?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도덕성이었다. 그는 돼지저금통을 만들어 국민에게 직접 후원을 받은 다음, 그 사용내역을 매일매일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했다. 부패를 방지할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의 도덕적이고, 청렴한 이미지는 당시 국민들에게 굉장한 신뢰를 주었다.

도덕성이 진보의 중요한 무기라는 사실은 일부 진보세력이 내세우는 ‘곽노현 책임론’의 근거이기도 하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은 “도덕성·개혁성이 유일한 무기인 진보진영이 이를 내다버리고 싸울 수 없다”며 곽노현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한다고 말했다. 진보세력이 도덕성을 상실하면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을 수 있으므로, 이른바 ‘가지 쳐내기’를 통해 도덕성을 잃은 진보 정치인과 진보세력을 구별 짓기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덕성은 진보에게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그 무기는 양날의 검이다. 도덕성을 통해 보수와는 다른 좋은 이미지와 신뢰를 얻을 수 있지만, 반면에 도덕성에 타격을 입히는 사건이 터지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은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진보적인 정치인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도덕성을 무기로 내세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내내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도덕성 공세에 시달렸다. 2003년 10월 최도술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sk그룹에게 11억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을 때, 2004년 대선자금 수사 때가 그러했다. 노무현에게 도덕성은 너무 중요한 무기였기 때문에, 그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재신임’과 ‘대통령직 사퇴’까지 내걸면서 맞섰다. 그 이후에도 조중동 등의 보수언론은 썬앤문그룹 95억 원 제공 의혹, 유전 개발 의혹, 행담도 개발 의혹, JU 로비 의혹, 바다이야기 연루 의혹 등 수 많은 공세를 퍼부었고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특검제를 들이대며 노무현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재임 시절에는 대부분의 의혹들이 사안이 경미하거나 무혐의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퇴임 이후 박연차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노무현의 죽음 이후 상황이 완전히 뒤집히기는 했지만) 당시 노무현의 도덕성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보수 진보 양측으로부터 난타를 당해야 했다.

그렇다면 진보는 이 양날의 검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끊임없이 진보는 보수보다 도덕적이어야 한다며 비리를 저지른 진보적인 인사들의 도덕성 문제를 ‘진보 세력 전체’가 아닌 ‘개인적인’ 문제로 만들며, ‘가지 쳐내기’를 반복해야 할까? 아니면 정희준 교수가 이야기한 것처럼 도덕성은 보수에게나 던져버리고, 진보는 다른 무기를 찾아야 하는가?(정희준, "도덕성, 보수에게나 던져버려라.", 경향신문, 2011.09.0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042108105&code=990000)

아니면 계속 도덕성이라는 무기를 손에 쥔 채 “상대적으로!”라고 외쳐야 할까? ‘그래도 우리는 한나라당보다 낫다’면서, 한나라당이 뿌린 돈에 비하면 곽노현이나 노무현이 받거나 준 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외치며 인정에 호소해야 하는가? 곽노현이나 노무현을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진보세력들에겐 이 호소가 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진보나 보수나 정치인은 ‘그놈이 그놈이다.’ 깨끗하고 부패하지 않았다고 해서 뽑아줬는데 도덕성에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냉소주의에 빠질 뿐이다.

진보가 도덕성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은 도덕성이 작동하는 조건에 주목하는 것이 아닐까? 인권변호사에, 거대자본 삼성과 맞섰던 곽노현이다. 진보개혁세력의 상징이었던 그다. 그가 어쩌다가 도덕성 논란에 휘말리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 지점에서 ‘정치’에 대해 다시 되물어야 한다. 정치인의 엄청난 도덕성에 기대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바로 그 정치에 대해 다시 되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진보가 도덕성을 계속 무기로 삼아야 하는지, 아니면 버려야하는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두 주장 모두 본질을 놓치고 있다. 도덕성을 무기로 계속 삼으면서 진보 정치인의 비리를 '개인' 문제로 보는 것도,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도덕성은 보수에게나 줘 버리자는 주장 양자 모두, 곽노현 사건이 드러낸 도덕성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정치인의 엄청난 도덕성에 기대는 것 외에 별로 방법이 없는' 정치라는, 문제의 본질 말이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택하고 있는 정치적 제도에 문제가 없는지 되물어야 한다. 어마어마한 정치자금이 동원되는 선거에서, 후원제도도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은 한국의 현실에서 후보자들은 늘 돈의 유혹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박명기에게 정권의 편에 섰다느니 배은망덕하다느니 하는 '도덕적 비난'을 가하기 전에 개인 돈으로 선거에 출마하고 그 돈을 다 날리면서 단일화를 해야 했을 때 그의 입장이 어떠했을지 생각해야 한다. 이번 곽노현 사건을 통해 드러난 '정치자금'과 관련된 문제들이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후보자들은 늘 돈 거래의 유혹에 시달리고, 곽노현 사건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한국에서 작동하는 대의 민주주의가 정치인의 도덕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한다. 일단 한 번 선거에서 이겨 권력을 잡고 나면, 대표자는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자들은 도덕성을 버리고 싶은 유혹, 부패를 저지르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선거 이후 이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도덕성을 무기로 삼기 전에, 깨끗한, 굳은 신념을 가진 정치인들이 자신의 도덕성을 유지하게 할 수 있는 '정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소 우리는 '정치라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