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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기타 칼럼 기고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지 못하고

 

“이 시대는 노동자를 노동자로 부르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홍길동의 시대다.”

 

통합진보당 심상정 의원이 지난 6월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 말이다. 노동자가 홍길동이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 그 날의 기자회견장은 심상정 의원이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강화하는 법안을 제출했음을 밝히는 자리였다.

 

우리는 어떤 개념이나 현상에 대해 고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우리가 ‘노동자’라는 단어를 들을 때 생각나는 노동자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공장에서 자동차 부품을 만들고, 용접을 하는 이미지가 흔히 떠오르지 않는가? 땀을 흘리며 노동하고 저녁에 모여 삼겹살을 구워먹는 남성들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경찰과 용역과 맞서며, 무기를 들고 싸우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다.

 

우리의 이러한 이미지는 잘못되거나 왜곡된 것이 아니다. 한국은 60-70년대 압축적인 산업화를 경험했다. 공장에 모여 합판을 제작하고 부품을 만들고, 용접을 하던 남성노동자들은 산업화의 역군이었다. 쥐꼬리 만 한 임금을 받으며 좁은 공장에서 일하던 여공들도 산업화의 역군이었다. 공장 중심의 1.2차 산업이 한국 경제를 이끌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자의 이미지를 형성했다.

 

하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1,2차 산업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서비스산업을 비롯한 새로운 산업이 발전하고, 새로운 직종들이 등장했다. 학습지교사, 기자, 영화 스태프, 파티시에, 소믈리에, 네일 아티스트, 출판편집자, IT 기술자, 디자이너 등등. 과거에 없던 직종들이 생겨났다. 또 다른 변화도 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자’라고 불리지 않게 된 것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처럼, 이들은 무언가를 생산하고, 가치를 만들어내며, 자본가(사용자)에 종속되어 일하는 ‘노동자’이면서도 자신들을 ‘노동자’라고 부를 수 없다.

 

노동자가 아니무니다! 사장도 아니무니다!

 

올해 여름, 국가의 물류를 책임지는 운수노동자들이 파업을 선언했다. 운수를 담당하는 두 거대 노조, 화물연대와 건설노조가 파업을 선언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들의 파업은 ‘파업’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도 이들의 행동을 파업이 아니라 ‘집단적 운송거부’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이들이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화물노동자와 덤프트럭, 굴삭기, 기중기, 레미콘기사들은 ‘특수고용직’이라 불린다.

 

특수고용이란 사용자가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등록하도록 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업자화 하여 근로계약 대신 위탁, 도급 등의 계약을 체결하고 일을 시키는 형식의 고용형태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특수고용직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님, 즉 개인 사업주이다. 기업들이 이 개인 사업주들을 노동자로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일대일로 계약을 맺는다. 사업주들이 기업에게 받는 돈은 월급이 아니라 수수료, 수당이다. 현재 화물노동자, 덤프트럭 기사, 레미콘 운송차주 뿐만 아니라 간병인, 학습지 교사, 택배기사, 애니메이터, A/S기사 등이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다.

 

특수고용이 새로운 노동형태로 등장한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는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받는다. 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라면 ‘정리해고’와 같은 잔혹한 방식이 아닌 이상 쉽게 해고를 할 수 없다.(물론 기업들은 이 잔혹한 방식을 빈번하게 사용한다.) 산업재해를 당하면 산재보험을 통해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노동자의 권리는 꿈같은 일이다.

 

기업은 특수고용직들을 ‘해고’할 필요가 없다.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 그만이다. 지난 2009년 대한통운은 택배료 인상을 요구한 택배 기사에게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 사건으로 화물연대 광주지부 박종태 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화물노동자들은 계약해지를 당할까 두려워 턱없이 낮은 수수료에도 반발하지 못한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는 하루 14~15시간 씩 도로를 달려야 한다. 무리해서 일을 하다 보니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내기도 한다. 사고로 인한 문제는 개인 사업주인 화물노동자들이 모두 책임져야 한다. 화물노동자나 택배기사 뿐만 아니라 간병인이나 A/S 기사 등의 특수고용직도 장시간 업무에 시달린다. 계약해지를 당하지 않으려면 몸 상하는 건 뒷전이다.

 

더욱이 특수고용직은 산재보험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지난해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 전면적용을 위한 준비회의’가 퀵서비스 기사, 간병인, 덤프트럭 기사 등 특수고용직 4개 직군 344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연간 업무상 사고율은 23.8%로 평균 산재율 0.7%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은 직업병과 업무상 사고에 대해 전혀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05년부터 특수고용직인 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레미콘기사에게 산재 보험을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해왔고, 올해 5월부터는 그 대상을 택배·퀵서비스 노동자에게 확대했다. 그러나 그 산재보험은 특수고용직 본인 부담이다.

 

이 문제는 특수고용직을 노동자로 인정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특수고용직 자신에게 돌아간다. 기업에게는 책임이 없다. 기업은 그를 고용한 게 아니라 일을 맡겼을 뿐이며, 그 일을 자유롭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난 것뿐이다. 일부 직종의 경우 산재보험이 적용되지만 현실적으로 특수고용직 본인이 부담하거나 기업이 종용해서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게 하거나 보험탈퇴를 강요한다. 다른 노동자들처럼 특수고용직도 산재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보험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노동부의 답은 매우 간단하다. 특수고용직을 “일반 노동자와 같게 대우해줄 수 없다”, “현행법상 다른 노동자와 같이 대우할 수 없다.” 노동부는 골프장 캐디 등의 노동권을 일부 보장하기 위해 '근로자에 준하는 자‘라는 개념을 신설했다. 여전히 그들은 노동자가 아니다.

현재 고용노동부(노동부)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근로자가 출퇴근 및 업무행위에서 직접적인 지시감독을 받는지, 원자재·작업도구를 사용자가 제공하는지, 보수의 기본급·고정급이 정해져 있고 근로소득세를 징수하는지 등의 여부를 노동자성의 주요한 판단 지표로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이 판단지표에 따르면 특수고용직은 노동자라 볼 수 없다. 하지만 법이 지나치게 노동자(근로자)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 특수고용직이 58만~200만에 달하는 시대에 법과 정부의 노동자성 개념이 너무 협소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윤애림 정책위원은 “노동부와 법원에서 근로자를 판단하는 법적 기준은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근무하는 전통적인 노동자에 한정돼있다”며 “이는 특수고용직과 같은 새롭게 등장한 노동과정이나 노동 형태와 동떨어진 낡은 잣대”라고 주장했다.

 

노동자성을 위한 투쟁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 1800일이 넘게 농성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이다. 이들은 왜 1800일이 넘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거리에서 보내게 된 것일까? 여기서도 ‘특수고용직과 노동자성’의 문제가 등장한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로 분류돼 있다. 90년대 초반까지 학습지 교사들은 학습지 회사에 고용된 정규직이었다. 하지만 학습지 교사들이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위탁사업 계약서를 쓰기 시작하면서, 학습지교사들은 개인사업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재능교육도 마찬가지였다. 재능교육은 회원 수를 늘릴수록 수당을 더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학습지교사들의 노동조건이 매우 불안정해졌다. 재능교육은 틈만 나면 수수료(사실상의 임금)를 낮추려 했다. 재능교육 교사들이 회원 수를 늘리기 위해 유령회원을 만들고, 자신의 돈으로 회비를 대납하는 일이 벌어졌다. 학업성취가 뛰어난 학생들에게 주는 스티커나 기타 학생관리비용도 모두 교사들이 부담해야 했다. 학습지교사가 사용자의 생산수단을 이용하여 일을 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자유롭게 사업을 벌이는 개인사업자였기 때문이다.

 

재능교육 교사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사측과 단체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재능교육은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99년 노동부가 재능교육 교사들이 설립한 노동조합에 노동설립필증을 교부했으나, 재능교육은 “학습지 교사는 근로자로 볼 수 없어 이들을 조합원으로 하는 노조는 노동조합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며 노조 인정을 거부했다.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2007년 이후였다. 2007년 5월 노조와 사측이 단체협상을 했는데, 재능교육은 교사들에게 돌아가는 수수료를 55%에서 43%로 줄이라고 말했다. 노조 집행부는 이에 동의했고, 집행부에 동의하지 않은 노조원들이 반발하고, 아직까지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해고된 교사들의 복직과 노조 인정 등을 요구로 내세우고 있다.

 

이 재능교육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학습지 교사들의 노동자성이다. 2005년 대법원은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렸고, 재능교육은 이 판결을 근거로 내세워 이미 체결한 단체협약조차 모조리 거부했다. 노조와의 협의 없이 수수료를 낮추고, 학습지를 그만두는 학생의 수만큼 급여에서 일정액을 공제했다. 교사들의 삶의 질은 바닥에 떨어졌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조 활동을 하는 교사들을 마음대로 해고했다. 해고자들이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2005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각하됐다.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유명자 재능교육 지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수고용직은 그야말로 자본가들에게는 꿈의 직종이다. 실상 노동자이지만 현행법상 노동자가 아닌 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어떠한 의무도 부담도 지지 않은 채 맘대로 부려먹을 수 있다. 필요 없어지면 언제라도 계약해지만 하면 되기 때문에 정리해고 문제로부터도 자유롭다. 최저임금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중략) 올 1월부터 강종숙 학습지노조 위원장의 급여가 100% 압류되고 있다. 100%다. 왜냐하면 학습지교사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급여의 50% 또는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부분에 대해서만 압류가 가능하다는 제한으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무노동 무임금’을 넘어 ‘유노동 무임금’이 지금 이 순간에도 버젓이 아무 일 없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즉 학습지 교사들의 투쟁의 목표는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더 나아가 노동권을 보장받는 것이다. 사측이 학습지교사들을 개인 사업주로 분류하고,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학습지 교사들은 회사에 노동조건이 종속되지 않는 개인 사업주일까? 조현주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습지 선생님들을 회사는 ‘사업자’로 분류하고 있지만 실제로 선생님들은 회사가 정해준 구역에서 회사가 배당해준 학생들을 가르치며, 1주일에 세 번 지역 사무국으로 출근하고, 회사에서 정한 매뉴얼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사업장에 종속된 노동자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특수고용직’ 문제가 ‘특수’한 문제인가? : 결국 연대가 필요하다.

 

사용자의 눈치를 보면서 사용자에게 종속되어 일하는 노동자이면서도, 자신을 노동자로 부르지 못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은 우리 사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불안정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있다.

 

프리랜서 에디터, 디자이너, 방송작가 등이 특수고용직과 다를 바 없이 불합리한 고용계약, 착취, 임금 체불 등에 시달리며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하청, 용역 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불안정노동자이다. 기업들은 자신이 직접 노동자들을 고용하지 않고, 하청이나 용역업체와 계약을 하고, 이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간접적으로 고용한다. 용역업체와 계약해지만 하면 손쉽게 해고를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을 결성한다고 하면 해고당하니 십상이니 노조 결성도 쉽지 않다. 현재 90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특수고용직을 비롯한 불안정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법적, 제도적 변화를 위해서는 당사자인 불안정노동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이들의 직접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오늘날 정규직 노동자들은 70-80년대 노동자 착취의 시대를 넘어 어떻게 노동권을 보장받았는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함께 싸우고, 사측과 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정리해고에 맞서 309일을 크레인에서 보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동조합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회사 가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고, 늘 눈치를 보던 회사 관리자들에게 거꾸로 '걸리기만 해 봐라' 할 만큼 자신감이 붙어 당당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노동조합은 인간의 자존감을 깨닫게 한 '선생'이었다.” 결국 답은 연대이다. 특수고용직이나 불안정노동이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 된 만큼, 우리 모두의 연대가 절실하다. 홍길동의 시대에서 벗어나자.

 


<대학문화> 46호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