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은 김대중도 노무현도 아니다
[뉴스분석] 국민모임에서 국민의당으로 노선 갈아탄 정동영…더민주 아닌 국민의당 선택 명분 부족해
“국민모임을 반드시 제1야당을 대체하는 대안야당으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지난해 3월 30일 정동영 전 의원이 서울 관악을 재보선 출마를 선언하며 남긴 말이다. 그로부터 약 11개월 뒤인 2016년 2월 19일 정동영 전 의원은 국민의당 입당을 선언했다. 단 두 글자가 바뀌었다. ‘국민모임’에서 ‘국민의당’으로.
닮은 점은 또 있다. 제1야당을 교체해 기득권 양당구조를 깨고, 결과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정 전 의원은 관악을 재보선 출마선언문에서 “기득권 보수정당 체제를 깨는 데 제 몸을 던지겠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은 19일 전북 순창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의당 출현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살아남기 위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국민의당에 힘을 실어줘서 더불어민주당도 변화시키고, 국민의당에도 불평등 해소와 개성공단 부활 선봉에 서는 정치적 에너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1년 전 국민모임과 지금의 국민의당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정동영 전 의원은 2007년 대선에서 500만 표 차이로 패배한 이후 참여정부에 대한 반성문을 쓰고 ‘개혁적 진보’ 즉 왼쪽으로의 행보를 이어갔다. 민주당 안에서 당의 중도노선을 비판했다.
정 전 의원이 ‘진보적 대중정당’을 내세운 국민모임의 이름으로 관악을 재보선에 참여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 전 의원은 지난해 4월 1일 기자들과 오찬 자리에서 “지난 몇 년 간 당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고 목소리 내고 실천한 사람이 정동영 말고 누가 있나. 한진 중공업 사태 때 누가 내려갔고, 희망버스에 누가 결합했나. 희망버스 해결 위해 시국회의 조직하고 김진숙 청문회를 만든 사람이 정동영”이라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또한 “나보고 철새라고 하지만 나는 정확한 노선을 가지고 날아가는 새다. 야당은 ‘갈지’(之) 자로 나는 새다”며 “노선에 대해 비판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중도보수 노선인데 정동영이 한진 희망버스에 앞장서서 민주당에 좌클릭 이미지가 생겼다고 비판하라”고 밝혔다.
그러나 1년 뒤 정 전 의원은 중도정당을 표방하는 국민의당으로 향했다. 1년 전 부르짖던 대중적 진보정당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게다가 국민의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이상돈 교수는 수차례 정 전 의원 입당에 반대하는 목소리까지 내오던 상황이다.
정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전주 덕진의 현역의원인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8일 기자들과 백브리핑 자리에서 “정동영 전 장관의 노선이나 정체성으로 보나, 과거 경험으로 보나 당연히 더민주에 복귀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정 전 의원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쉽게 이야기하면 오른쪽으로 갔다는 불만을 가지고 진보정치를 한다고 빠져나갔다. 한 쪽에서는 (당이) 거꾸로 너무 왼쪽에 가 있다고 중도정당을 표방하면서 빠져 나간 안철수 세력이 있다”며 “그럼 정 전 장관이 돌아오는 게 맞다. 돌아오는 길 대신 안철수 신당의 품에 안겼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많은 국민 지지들도 예상을 뛰어넘는 행보로 판단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정 전 장관 입장에서는 이미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떠난 더불어민주당으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최근 불거진 개성공단 사태와 이에 대한 더민주의 대응은 통일부 장관 시절 개성공단의 탄생에 일조한 정동영 전 의원에게 더민주로 돌아갈 수 없는 명분을 줬다.
정 전 의원은 지난 15일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대한민국은 헌법 4조에 통일을 지향하고 평화적 통일 정책을 추진한다고 돼 있는데 궤멸론, 붕괴론은 헌법 위반적 요소가 있다”고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원회 대표를 비판했다.
정 전 의원은 1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 서도 “최근에 개성공단 사태와 관련해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을 더민주로 갈 수 없는 이유로 꼽았다. 정 전 의원은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연설하러 왔을 때 퇴실이라도 했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야당은 실력 행사를 통해서도 개성공단의 의지를 보였어야 한다. 그것이 김대중의 후계자로서 노무현의 후계자로서 야당이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국 민의당은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 새누리당은 물론 더민주와도 각을 세우며 정 전 의원이 입당할 수 있는 명분을 줬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18일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여당도 야당 일각에서조차 북한체제의 붕괴나 궤멸을 이야기한다. 이런 주장은 안보불안을 해소하는 데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도, 통일로 가는 길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 주선 국민의당 최고위원은 19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동영 전 장관의 입당으로 국민의당이 햇볕정책을 계승하는 유일한 정치세력인 것이 재차 확인됐다”며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룩할 정치세력은 북한궤멸론을 주창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당”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당은 정동영 전 의원의 입당을 계기로 제1야당에 대한 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성공단 문제는 정 전 의원이 더민주가 아닌 국민의당을 선택한 명분으로 삼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김종인 대표가
‘북한 궤멸’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문재인 전 대표는 “안전판을 걷어버렸다”며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을 강하게 비판했고, 이종걸
원내대표는 “개성공단 부흥법”을 만들겠다고 했다.
비록 안철수 대표는 개성공단 폐쇄에 있어 박근혜 정부에 각을
세우고 있지만, 국민의당 내에 꼭 이런 인사들만 모여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상돈 교수는 17일 영입 기자회견에서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은 모두 실패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와 안 대표의 말은 더민주가 아니라 국민의당을 선택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진보적 대중정당’인 국민모임에 함께 한 정 전 의원 처지에서는 더민주가 마음에 안 들면 정의당이라는 대안도 있다. 그런데 노선을 확 틀어서 국민의당을 선택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뒤집는 유일한 명분은 ‘정권교체’와 ‘기득권 양당구조 타파’ 뿐이다. 안 대표와 정 전 의원은 18일 오후 회동 이후
발표한 합의문에서 “우리 사회가 불평등 해소와 개성공단의 부활 및 한반도 평화 2017 여야 정권교체를 위해 조건없이
협력한다"며 ”양당 기득권 담합 체제를 깨지 못하면 한반도 평화도 경제 민주화도 복지국가도 어렵다는 뜻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당신이 김대중의 지지자였다면 김대중이 왜 김종필과 연대했는지 생각해달라. 당신이
노무현의 지지자였다면 노무현이 왜 정몽준과 연대했는지 생각해달라”라며 “사실 안철수와 가장 먼저 연대한 것은 2012년
문재인이었다. 내가 안철수와 연대하는 이유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 전 의원은 또한 “이 연대를 꼭 성공시켜서 내년 대선에서 남북을 가로막고 민생을 피폐시킨 보수정권으로부터 정권을 꼭 되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문
제는 정동영이 노무현과 김대중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무현과 정몽준의 연대, 김대중과 김종필의 연대는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
지지층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대표의 연대도 둘로 나눠져 있는 야권을 하나로 합쳐야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는 명분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정동영 전 의원은 야권이 갈라진 상황에서 노선을 바꾸면서 안철수 의원에 힘을 보태기로 결정했다. 정 전 의원의 연대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의 연대와는 다른 이유다.
김
성주 의원은 “정동영 전 의원이 김대중, 노무현과 같은 강력한 대선후보인가?”라며 “진보의 깃발 내리고 담대한 진보를 내던진
것인데 무슨 정동영 안철수 연대가 새로운 정권창출을 하나. 그 말을 믿을 국민들이 몇 분이나 될까”라고 반문했다. 정동영 전
의원의 선택이 정권교체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철새 행보’로 읽힐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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