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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민주당과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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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민주당과의 이별

180석 대 103석. 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에서 전례 없는 압승을, 미래통합당은 충격적 패배를 경험했다. 쏟아진 분석 중 “주류가 바뀌었다”는 대목에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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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석 대 103석. 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에서 전례 없는 압승을, 미래통합당은 충격적 패배를 경험했다. 쏟아진 분석 중 “주류가 바뀌었다”는 대목에 특히 공감이 갔다.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에서 지역구 의석수보다 힘의 구도를 더 정확히 보여주는 건 정당득표율이다. 보수라고 분류될 표심은 미래한국당과 국민의당을 합쳐 40.5%, 진보는 더불어시민당·정의당·열린민주당을 더해 48.3%였다. 진보쪽 수치는 2012년 대선 문재인 후보가 얻은 48.02%와 비슷한 반면, 보수쪽은 박근혜 후보의 득표율 51.55%에 한참 못 미친다. 통합당이 ‘소멸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든 이유는 8년 만에 빠진 11.05% 포인트가 상징하는 주류의 변화에 있다. 보수가 해체되며 뿜어낸 먼지구름 속에서 두둥, 신진 주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광경은 오래된 미래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 사회의 인구 구성은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청년기를 보낸 30~50대 세대를 중심으로 이미 교체됐다. 나를 포함해 이들 세대는 유년 시절에 반공·군사독재를, 청년기에 평화·민주화를 경험하면서 둘 사이의 도덕적 구분이 뼛속 깊이 각인됐다. 이런 이분법이 절대진리라는 게 아니다. 세대의식이 그렇다. 되돌아보면 1992년 대선 이래 20번의 선거에서 갖가지 이유로 수많은 선택을 했지만 바탕에는 늘 반공보수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보수층은 억울하겠지만 이념보수는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 군부독재와 붙어다닌다. 청년기 정치경험 때문이다.

포스트 청년기에 각인된 가장 강렬한 사건이라면 세월호다. 개인을 바꾸는 핵심적 생애경험은 부모가 되는 일이고, 부모의 입장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국가의 태도는 악몽이었다. 부모라는 정체성 위에서 위험 회피의 무의식이 가장 비극적인 형태로 만들어졌다. 맞다. 5·18과 세월호. 보수층이 지긋지긋해 하는 키워드가 이렇게 탄생했다. 두 단어가 기표소 안에서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는 힘으로 작용한 건 아니다. 절대 할 수 없는 선택의 하한선을 설정해줬다.

민주당에 흠이 없을 리 없다. 개정 선거법은 두 거대정당의 꼼수로 누더기가 됐고, 결과적으로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허무개그 같은 결과를 낳았다. 조국 사태 후유증도 있다. 처리되지 않은 내부투쟁은 열린민주당이라는 어정쩡한 존재로 민주당 언저리에 남았다. 이걸 처리하자면 또 얼마나 시끄러운 싸움판이 벌어질까.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그래도 그건 새로운 숙제다. 밀린 숙제는 끝났다. 개인적으로 21대 총선은 공론의 장에서 더 이상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지 않고, 할 필요 없는 과거의 논쟁을 되풀이하지 않을 권리를 위한 선거였다.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한 깨달음이 통합당 재건을 위한 그라운드 제로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21대를 마지막으로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한 투표와 작별하려 한다. 보수의 폐허 위에서 개인의 정치적 지향을 실현하는 진짜 21세기 투표를 해볼 계획이다.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는 1973년 한 인터뷰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독일 청년들이 배은망덕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오늘날 청년들은 오늘의 현실과 어제의 비참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들이 비교하는 것은 오늘의 현실과 내일의 가능성이다.”(‘공정하지 않다’ 재인용) 전 생애를 바쳐 독일 나치와 싸우고 전후 민주주의를 재건해온 정치적 거인은 그들 세대의 숙제를 끝내고 새 세대의 저항을 포용했다. 산업화 세대는 정치적 좀비의 시간을 이제야 끝냈고, 민주화 세대는 늦은 숙제를 마무리했다. 이제 청년세대의 시간을 두 팔 벌려 맞이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