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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애정과 거리두기

 


당 건설을 향하여(레닌 1893~1914)

저자
토니 클리프 지음
출판사
북막스 | 2004-01-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 레닌의 생애와 사상을 다루는 세 권짜리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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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읽은 것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실천한 혁명가들에 관한 일대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 눈길은 단연 최초이며 최고였던 러시아 혁명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그 혁명의 한가운데 있던 블라디미르 울랴노프 레닌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느낀 주변인들의 반응은 “마르크스라면 몰라도 레닌은…...”이었다.

어쩌면 한국에서 좌파라는 사람들의 대다수도 그랬을 지 모르겠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1년의 소비에트 연방해체 이후 한국의 좌파들은 세 갈래로 갈라졌다. 첫 번째가 자신들의 믿음을 버리고 우파로 전향하는 것이다. “아는 놈”이 돌아서면 더 무섭다고 했던가, 김문수, 신지호 같은 학생운동좌파들은 지금 한국 좌파진영을 괴롭히는 거물들이 되어 있다. 두 번째 경우가 여전히 공산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그들은 현존하는 유일한 공산주의적 체제를 바라보기로 결정한다. 동독과 소비에트가 해체된 이후, 북베트남과 중화민국이 시장경제의 개혁을 밟기 시작할 시기에 공산주의의 모양새를 그대로 유지하는 단 하나의 왕국은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종북주의와 주체사상파가 그들이다. 세 번째의 경우가 그나마 가장 합리적으로 생존하는 좌파의 길이었는데, 자본주의 내에서 사회주의적 가치를 주창하며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는 것이다. 현재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정이 그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과연 누가 레닌을 수용해줄 수 있을까? 극단적으로 변한 우파들이 레닌을 수용하길 기대한다는 것은 특히 한국같이 레드 콤플렉스가 강한 나라에선 불가능하다. 레닌 책만 꺼내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에게 무얼 더 기대하겠나. 종북주의자들에게? 물론 그들은 당연히 레닌을 수용한다. 그러나 그들의 레닌은 스탈린주의에 의해 해석된 레닌일 위험성이 크다. 김일성 주체사상의 뿌리는 스탈린주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쳐 공산주의로 가자는 레닌의 주장 중 뒷부분을 삭제해버린 스탈린, 소련의 혁명 이후 전개되어야 할 전세계의 혁명을 강조한 트로츠키주의를 무시한 채 일국 사회주의를 주창한 스탈린. 이 두 가지를 가장 잘 실행하고 있는 것이 북한의 김씨 왕가이기 때문이다. 그럼 북한정권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혁명이 아닌 자본주의의 수정을 요구하는 좌파정당들은? 그들은 스탈린주의의 교조적 성격을 비판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비판적인 그들의 칼날은 레닌을 향하고 있다.

그렇기에 레닌 수용은 개인적 차원에서 기대할 수밖에 없다. 레닌의 가치를 깊이 있게 연구하려는 학자(지젝이나 박노자)들 아니면 러시아 혁명의 가치를 끌어내려는 일부 급진좌파들(트로츠키주의자 최일붕 같은 경우) 아니면 그냥 레닌에 관심 있는 일반인 정도에서 이루어진다. 자, 책 하나 소개하려고 먼 길을 돌아왔다. 이렇게 레닌 담론이 극히 제한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어려운 레닌 연구에 있어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을 찾아보자는 것(없으면 내가 나중에 써보자는 것이) 레닌에 대해 알아보려던 당시의 나의 목적이었다.

여러 가지 조건이 따라 붙어야 했다. 우선 50, 60년대의 레닌 연구는 참고하기가 어려웠다. 소련과 동유럽권의 연구는 스탈린주의에 의해 각색되었기에 레닌의 참모습을 알기 어렵다. 스탈린은 독재와 일국 사회주의의 정당화를 위해 레닌의 사상과 스탈린주의를 동일시하는 혐오스러운 짓을 저질렀다. 같은 이유로 냉전 시대 미국과 서유럽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레닌을 뿔 달린 괴물, 독재주의자로 묘사하고 있기에 역시 곤란하다. 그렇기에 냉전 이전에 이루어졌기에 상대적으로 객관적이며, 정치적 입장에 의해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러시아 사람이 아닌 경우를 찾았다. 그래서 찾은 레닌과 러시아혁명 입문서가 바로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과 토니 클리프의 <당 건설을 향하여>였다. 존 리드의 책의 경우 러시아혁명 전후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고, 팔레스타인의 트로츠키주의자 클리프의 책의 경우 인간 레닌에 대해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클리프는 레닌이 나로디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통해, 그리고 짜르의 숭배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레닌이 원래부터 혁명가였다는 사실을 통해 이런 직업혁명가의 독재를 강조하는 스탈린주의의 해석을 배격하고자 한다. 그리고 1903년 볼셰비키당 대회 무렵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강조로 전위정당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통해 레닌의 엘리트주의를 강조하는 서구 자유주의 진영의 해석과 스탈린주의의 해석을 배격하고 러시아혁명 무렵의 대중 정당론자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클리프가 실시한 또 다른 작업은 레닌에 대한 영웅적 해석의 부정이다. 존 리드의 경우와 마찬가지지만, 러시아혁명은 결코 모든 상황과 조건이 맞아떨어지던 러시아에서 “와 하자”라고 해서 단번에 일어난 손쉬운 혁명이 아니었다. 당 내에서도 배척당하면서 진보진영이 겪는 온갖 분열을 통합하고 노동자와 농민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어떻게 혁명이 성공할지에 관한 수많은 대안과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실제 혁명에서 어떻게 보완할지를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넘게 고민한 그에게 교조적이라던가 아니면 건설적 이념이 부족하다는 비판은(토머스 솔슨) 지나치게 가혹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레닌에 대한 적당한 애정과 적당한 거리 두기가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클리프가 레닌과 함께 혁명을 이끌며 그에게 동지애를 느낀 동시에 끊임없이 그를 비판한 트로츠키의 사상을 이어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난 레닌에 관한 책 중 이 책을 가장 추천한다. 애정과 거리 두기를 동시에 느끼며 인간 레닌에 대해 알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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