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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아는 기자, 언론을 아는 기술자가 필요하다”

“기술을 아는 기자, 언론을 아는 기술자가 필요하다”

[인터뷰] 국정원 사건 총정리 ‘응답하라 7452’ 기획한 김동인·안희태 시사인 기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처음 세상에 드러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로 시작된 사건은 ‘오늘의유머’에 달린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이 드러나고 ‘원세훈 원장 지시 강조 말씀’이 폭로되며 ‘조직적 선거개입’으로 사건이 확장되었고, 수천 만 건의 트위터 글의 실체도 밝혀지고 있다. 또한 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대선개입의 다른 주체들이 나타나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식 논란과 윤석렬 검사 찍어내기 사태로 이어지며 사건은 더욱 확장됐다. 사안이 커지고 복잡해진 만큼 국정원 사건을 계속 따라 잡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이 복잡한 국정원 사건을 알기 쉽게 정리해주는 웹 사이트가 등장했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응답하라 7452-시사IN 크라우드(Crowd) 저널리즘’이라는 마이크로사이트를 오픈해 국정원 사건과 관계된 공판과 주요 등장인물, 이슈에 대한 각종 데이터와 관련 기사를 보기 좋게 정리했다. 마이크로사이트란 기존 웹 사이트의 일부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사이트를 말한다.

‘응답하라 7452’는 국정원 사건 타임라인을 구성해 2012년 8월부터 최근까지 있었던 관련 사건들을 시간대별로 정리했다. 또한 정보를 단순 시간대별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검찰-국정원-경찰 등 국정원 사건의 주요 인물들을 조직도 형식으로 배치하고, 이들을 현재 진행되는 공판과 연결시켜 등장인물과 스토리가 있는 일종의 ‘법정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 시사인 ‘응답하라 7452’ 사이트 갈무리
‘응답하라 7452’는 국정원 사건 관련 정보들을 공개해 독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크라우드 저널리즘’을 시도했다. 국정원 사건 공소장은 물론 트윗 55,600개 전문, 402개 트위터 계정, 오늘의 유머 추천/반대 클릭 모음 등의 방대한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했다. 이러한 정보를 기반으로 독자의 ‘참여’와 ‘뉴스생산’을 도모하는 것이 크라우드 저널리즘이다.

‘응답하라 7452’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김동인 기자는 6일 <시사인> 근처 카페에서 진행한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공판 중계라는 일종의 법정 드라마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응답하라 7452’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그런 기획이 정보를 함께 공유함으로써 참여를 유도하는 형태의 사이트 제작으로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국정원 사건에 대한 총정리 사이트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왜 하필 국정원 사건 ‘법정 중계’를 중심으로 삼았을까. 김동인 기자는 “국정원 사건을 둘러싼 법정 공방은 사건의 등장인물이 있고, 이들 사이의 관계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용판 전 경찰청장이 누구한테 전화를 했는지, 원세훈 전 원장이 누구를 만났는지 등 인물 사이의 ‘관계망’이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에, 등장인물들을 조직도 형태로 보여주기 수월했다는 것이다. 김 기자는 또한 “많은 기사들이 검찰의 수사과정에만 주목하고, 재판과정에는 잘 주목하지 않지만 재판과정에서 추가적으로 드러나는 증거가 매우 많다. 법정을 날 것으로 중계함으로써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팩트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김동인 기자는 ‘응답하라 7452’가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아카이빙’, 즉 국정원 사건이라는 특정 이슈에 대한 모든 자료를 모아두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람들에게 원천적인 정보를 제공하며 참여를 유도하는 ‘크라우드 저널리즘’이다. 세 번째는 형식적인 차원의 의미다. 김 기자는 “뉴스를 지면으로만 전달하다 영상이나 시각적인 요소를 가미해 온라인에서 이를 구현한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김동인 기자의 기획은 언론인 ‘기술자’를 만나 실현됐다. 김 기자는 기획을 떠올린 후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와 이성규 보다스트리트 대표 등 전문가의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시사인 홈페이지 관리를 맡고 있는 안희태 시사인 기자를 찾아갔다. 안희태 기자는 워드프레스를 통해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고, 4대강 관련 컨텐츠를 모아 시사인 페이지 내에 ‘마이크로사이트’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다. 지난달 11일 첫 회의가 열렸고 이후 열흘 동안 ‘응답하라 7452’ 사이트 오픈을 위한 작업이 이루어졌다. 틀은 안희태 기자가 만들었고 내용은 김동인 기자와 사회부 기자들이 채웠다. 김 기자는 작업이 진행되는 열흘동안 다른 취재는 하지 않고 사이트 오픈에만 몰두할 수 있는 배려를 받았다. 컨텐츠의 사실관계 확인 등의 작업을 위해 사회팀 다른 기자들이 투입되기도 했다. 첫 회의를 한 지 열흘 이후인 21일 ‘응답하라 7452’가 오픈됐다.

어떻게 이런 방대한 작업을 열흘 만에 완성할 수 있었을까. 안희태 기자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한 게 아니라 기존의 소스와 갖고 있는 기술을 조합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 기자는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 등은 컨텐츠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으나 우리는 그럴 여력이 되지 않아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는 못했다”며 “가지고 있던 컨텐츠와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기술(워드프레스)을 결합했고, 앞으로 업데이트를 하며 사이트를 보완해 가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동인 기자 역시 “시사인이 국정원 사건을 탐사보도하며 가지고 있던 자료가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시의적절하게 사이트에 활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희태 기자는 '이제 기자들이 기사 쓰는 것뿐만 아니라 기사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기자는 “기술을 아는 기자도 필요하고 언론을 아는 기술자도 필요하다”며 “기자들이 자기 취재를 하느라 바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좋은 기사를 취재하는데 들이는 노력이 있다면 거기에 더해 내 기사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이냐는 부분에도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동인 기자는 취재기자이지만 홈페이지 운영 경험과, ‘웹 접근성’에 관한 많은 고민을 가진 기자다. 이런 고민이 있었기에 ‘응답하라 7542’ 기획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안희태 기자는 “내가 취재한 기사를 어디에 넣느냐, 기사에 어떤 사진을 넣는 게 좋을지 등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취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기사만 잘 쓴다고 독자들한테 잘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 기자는 또한 “내가 쓴 기사가 지면에 어떻게 나왔는지 신경 쓰는 기자가 있는 반면, 마감 후 결과물에 관심이 없는 기자도 있다. 사진을 잘 찍는 취재기자가 있고 사진에 관심없는 취재기자가 있다. 기자가 기술에 관심 있느냐 없느냐도 비슷한 차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6일 아침,  국정원의 트윗 2200만 건의 존재가 추가적으로 밝혀졌다. 김동인 기자는 헛웃음을 지으며 “121만 건이 처음 나왔을 때도 이걸 다 엑셀파일에 입력할 생각에 한숨이 나왔는데 이제 2200만 건이 나왔다. 평범한 내용도 아니고 악질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보니 이걸 입력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