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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디즈니의 ‘보수주의’가 깨졌다”

겨울왕국, “디즈니의 ‘보수주의’가 깨졌다”

영화·OST·인형 등 돌풍 일으키는 겨울왕국…“픽사와의 합병 이후 디즈니에 혁신 있었다”

겨울왕국의 흥행 돌풍이 무섭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개봉 18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 애니메이션 흥행 1위를 차지했다. 외화 흥행 성적으로 보면 역대 9위다.

단순히 영화만 흥행돌풍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겨울왕국 OST인 ‘LET IT GO’는 주요 음원사이트 1위를 휩쓸고 있으며, 영화 원작인 책 ‘얼음왕국’을 비롯해 스티커, 인형 등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는 엘사와 안나, 크리스토퍼와 울라프 등 영화 등장인물들을 주제로 한 수많은 패러디물이 생산되고 있다.

이 영화의 흥행을 두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혁신’을 지적하는 분석이 많다. 혁신의 사례로 지적되는 것은 겨울왕국이 ‘자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이다. 겨울왕국의 두 주인공인 엘사와 안나는 백마 탄 왕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신이 처한 곤경을 해결한다.

관객들은 얼음을 녹이기 위해 ‘사랑’이 필요하다는 영화 속 설정을 발견하고, 남자주인공과의 키스를 연상한다. 하지만 안나는 남자주인공과의 키스를 거부하고 언니인 엘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얼음인간이 된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엘사와 안나는 남자주인공과의 키스가 아닌 ‘자매애’를 통해 얼음을 녹인다. 누리꾼들은 이성애가 아닌 자매애, 즉 ‘동성애코드’에 열광하며 수많은 패러디 물을 양산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뻔한 스토리 제조기 디즈니가 ‘겨울 왕국’에서 변했다>)

그렇다면 겨울왕국이라는, 디즈니애니메이션의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에 대해 겨울왕국의 흥행 성공을 분석할 때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한 이후 등장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그간 백마 탄 왕자가 공주를 구하는 식의 서사나 제3세계에 대한 제국주의적 시선 등을 이유로 ‘보수주의’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내용 뿐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보수적이다. 디즈니는 ‘1초에 24프레임 촬영 및 영사’ 방식을 사용해왔는데, 이는 실제 현실의 움직임과 가장 유사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기법을 사용할 뿐 변화나 혁신을 추구하지는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 겨울왕국 포스터
하지만 이러한 보수성은 디즈니의 ‘힘’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은 보통 어린 아이들이나 가족이 주 소비자이다. 부모가 어린 자녀들에게 권하기 쉬운 서사 구조와 어린 아이들이 보기에도 편한 형식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전세계 사람들을 빨아들인 힘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즈니를 위협하는 픽사와 드림웍스가 등장했다. 픽사와 드림웍스는 디즈니와는 다른 새로운 주제와 형식으로 디즈니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들의 존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고루하고 틀에 박힌 보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백마탄 왕자님과 공주님의 사랑을 비웃은 작품, ‘슈렉’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던 2006년 디즈니는 픽사를 인수 합병했다.

맹수진 영화평론가는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초기에 디즈니와 픽사가 합작해 만들었던 애니메이션은 재미가 없었다”며 “픽사와 디즈니가 겨울왕국에서 중간점을 찾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맹수진 평론가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원래 시나리오가 안데르센 동화와 비슷했는데, 엘사가 부르는 테마곡 ‘Let it to go’ 때문에 악역인 엘사가 지나치게 긍정적인 인물로 비춰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맹수진 평론가는 “디즈니는 노래를 바꾸지 않고 엘사의 캐릭터를 수정했다”며 “이러한 변화로 엘사가 고립을 깨치고 나오는 자립적인 여성상이 되면서 영화가 예전 디즈니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최한욱 시사평론가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 서 “<겨울왕국>에서 디즈니와 픽사는 화학적 융합의 공식을 찾아냈다”고 분석했다. 최한욱 평론가는 “<겨울왕국>에서 공주는 백마 탄 왕자의 구원을 기다리지 않으며 더 이상 키스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엘사와 안나는 디즈니왕국에서 볼 수 없었던 자립적인 여성들이며 그녀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또한 “디즈니의 고전적 캐릭터들은 픽사의 혁신적 기술로 활력을 되찾았다. <겨울왕국>의 눈과 얼음의 이미지들은 황홀한 시각적 체험을 선사 한다”며 “디즈니의 장기인 뮤지컬은 픽사의 화려한 무대의상과 장치로 날개를 달았다. 엘사가 자신이 창조한 얼음궁전에서 ‘Let it go’를 부르며 디즈니왕국의 순종적인 공주에서 치명적인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장면은 마치 디즈니-픽사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화려한 축하무대”라고 말했다.

맹수진 영화평론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변화하고 있다는 근거로 ‘자기 패러디’를 제시했다. 겨울왕국 곳곳에는 디즈니의 ‘자기 패러디’가 등장한다. 겨울왕국에는 <라푼젤>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가하면, 미키마우스가 나오기도 한다. 안나가 성에서 노래하며 뛰어다니는 장면에는 <라푼젤>에 등장하는 것과 똑같은 그림이 등장한다. 안나가 노래를 부르며 초콜릿을 먹는 장면에 등장하는 초콜릿은 <주먹왕 랄프>에 등장하는 초콜릿이다.

맹수진 평론가는 “자신의 역사를 패러디한다는 것은 거리를 두고 본다는 의미”라며 “그 거리두기가 비판적인 거리두기일 수 있다. 상업적인 면 때문에 이뤄진 혁신일 수 있지만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본다”며 “이런 변화들이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발현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