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아픔’ 아닌 ‘국가폭력’ 문제돼야
형제복지원 사건 관련 ‘언론의 역할’ 묻는 토론회 열려…“‘피해자’ 아닌 ‘당사자’로 취급해야”
“언론에 비친 우리들은 ‘피해자’ ‘아픈 사람들’로만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진상규명을 위해서라도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룰 때 피해자들의 아픔만 부각되서는 안 된다.”
부산 형제복지원사건의 피해자이자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모임 공동대표인 한종선씨는 1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사건의 올바른 해결과 언론의 역할’ 토론회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를 환기하는 동시에 왜 피해자들이 이 아픔과
상처를 알리기로 마음먹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줘야 한다‘며 ”그러나 언론에서는 그러한 부분이 생략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부터 87년까지 부랑인과 노숙인을 단속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부산의 형제복지원에 불법 감금하고 강제 노역시킨 사건이다. 87년 원생 한 명이 탈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이후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구타와 학대, 암매장 등 끔찍한 인권유린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현재 알려진 사망자만 551명에
달한다.
잊혀져 있던 형제복지원 사건은 지난 3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보도 이후 여론의 관심을 받았고, 현재 여야 국회의원 40명에 의해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발의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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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진상규명대책위원회,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의 주최로 ‘형제복지원 사건의 올바른 해결과 언론의 역할’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윤호 기자 |
당시 전두환 정권은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앞두고 일선 행정관청과 경찰청에 부랑인들이 없는 깨끗한 거리를 만들라는 명령, 내무부 훈령 410호를 내린다. 전국의 공무원들은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에 나섰고 그들을 수용한 곳 중 하나가 형제복지원이었다. 경찰과 검찰, 공무원 등은 이들을 감시하거나 처벌하지 않았다. 즉 형제복지원 사건의 배후에는 군사정권의 비호가 있었던 것이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태길씨는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이 나간 뒤 증언대회를 할 때만 해도 기자들이 북적북적했는데 이제 언론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것 같다”며 “나와도 피해자들이라는 점만 부각될 뿐 나라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없다”고 말했다. 피해생존자모임 총무를 맡고 있는 임인자씨 역시 “형제복지원 사건 가해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질렀고, 어떤 공모를 했는지 언론에 나와야 한다”며 “총체적인 폭력과 구조적인 시스템의 문제라고만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체적인 폭로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이후 200명이 넘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피해생존자 모임에 연락을 취해오는 등 큰 반향이 있었다. 하지만 3월 22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형제복지원 편’도 국가권력의 문제점을 짚어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은 <그것이 알고싶다>가 피해자들의 처지와 형제복지원 박 원장을 ‘악마’로 묘사하는데 치중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왜 <그것이 알고싶다>는 국가의 문제를 프로그램 말미에서야 겨우 위에서 인용한 문장 한 두 줄로 마무리를 하는 것일까. 국가의 책임이 어젠다에서 밀려난 것은 아닌가”라고 밝혔다.
홍 위원은 “복지원장과 국가의 거래, 누구와 어떤 식으로 어떻게 공모하였으며 국가가 이러한 계약관계에서 적극적으로 수행했던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그것이 알고싶다>는 침묵하거나 말을 아낀다”며 “국가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국가라는 고리를 통해서 형제복지원은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의 문제로 소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사라질 때 이 일은 단지 개인의 양심과 시혜의 차원에 머물 뿐이며, 이것은 국가 폭력에 대한 용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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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2일자 SBS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여준민씨는 “방송을 보는데 방송이 급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며 “2편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고, 국가의 책임과 국가폭력에 대해 다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장경수 <그것이 알고싶다> PD는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 다루고 싶었지만 이 복잡하고 방대한 사안을
모두 담기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일단 실태에 대해 알려드리는 게 우선일 것 같아 그 부분에 집중했다”며 “하지만 국가권력에
대한 문제제기 등 내부에서도 형제복지원 사건을 끝까지 가져가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장 PD는 “어떻게
다룰지 고민 중”이라며 ‘형제복지원 2편’은 반드시 제작할 것이라 말했다.
안영춘 <나들> 편집장은 저널리즘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안 편집장은 “어제 발생한 세월호 사건과 천안함 사건을
비교하면 세월호 사건이 훨씬 빨리 잊혀질 것”이라며 “세월호 사건은 비정치적인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편집장은 “저널리즘의 생리상 비정치적인 이슈는 유통기간이 짧다. 저널리즘은 위기를 전시할 뿐 위기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흥미를 자극하고 위기를 전시하고, 그것이 전시되면 다른 위기로 옮아탄다”고 설명했다. 언론이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정치적인
이슈’로 다루면서 국가권력의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하나의 흥미로운 위기쯤으로 취급하고 있기에 지속적인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처럼 이슈가 되는 사안을 찔끔찔끔 다루고, 또 다른 이슈로 옮겨가는 저널리즘의 구조에서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지속적인
보도도, 본질적인 문제제기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안 편집장은 “언론은 개별적 사건 하나하나를 다 다룰 수도 끝까지 다룰 수
없다”며 “형제복지원 사건을 개별적 사건으로 접근하기보다 국가폭력이라는 구조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고, 파편적이고 분절적인
보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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