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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원이 한국일보 논조에 영향력 행사할 가능성, 제로”

“서청원이 한국일보 논조에 영향력 행사할 가능성, 제로”
[인터뷰] 고재학 한국일보 신임 편집국장…“어뷰징, 낚시기사 없는 ‘클린닷컴’ 만들겠다”

작년 한국일보 사태는 언론에 편집권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줬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직장폐쇄까지 빚은 초유의 편집권 개입에 맞서 싸웠고, 사주 일가를 몰아내고 새로운 사주를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한국일보 과제는 산적해 있다. 아직 남아 있는 장재구 일가의 그림자를 지워야할 뿐더러, 새로운 사주인 삼화제분의 인수 작업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6월 9일 한국일보 창간 60주년을 앞두고 지난달 28일 선임된 고재학 편집국장은 작년 한국일보 사태 때 경제부장을 맡았고, 사측에게 보복 인사를 당하는 등 한국일보 사태의 중심에 있던 인물 중 하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그는 편집국장 인사청문회에서도 ‘편집권 독립’을 강조했다.

고재학 편집국장은 지난달 3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편집국이 경영 상황을 지원하는 것은 한국 언론이 처한 현실이고, 그런 부분까진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자본의 논리에 매몰돼 기자들의 자존심이나 공정언론이라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했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일보는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가 남아 있다. 가장 주요한 과제는 장재구 전 회장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이다. 고 국장은 “한국일보 내부의 인적청산은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 고 국장은 “장재구 편에 섰던 이들 대부분이 작년 여름부터 올해 초까지 회사를 떠났다. 주도적으로 비리사주에 붙어서 편집국 폐쇄를 주도한 이들은 다 나갔다고 보면 된다”며 “일부 거기에 가담했다 중간에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몇 명 있지만 이들은 포용해서 같이 한국일보의 회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일보가 한국아이닷컴과의 콘텐츠 계약을 끊고 독자적인 뉴스 창인 한국일보 닷컴을 만든 것도 장재구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과 관련이 있다. 원래 한국일보는 한국아이닷컴 지분을 65% 가지고 있었는데, 한국일보 사태 때 장재구가 이끌던 한국일보가 이 지분을 15%로 낮췄다. 한국일보는 대주주 관계가 끊어지면서 닷컴과의 유기적 협조가 잘 안 되었다는 점, 그리고 닷컴에 가득한 어뷰징 기사와 잡다한 광고들을 이번 기회에 떨어내자는 생각에 한국일보닷컴을 만들었다.

   
▲ 한국일보닷컴 갈무리
새로 만들어진 한국일보닷컴에 대해 광고랑 어뷰징 기사가 없으니 사이트가 시원시원하다는 반응과 아직 초창기라 그런지 기능이 미흡하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고 국장은 “최근 ‘닷컴’들은 모회사인 신문과 분리된 영업을 하면서 모기업의 콘텐츠를 이용해 낚시성 기사와 어뷰징으로 장사를 해왔다. 한국일보닷컴은 이를 하지 않는 클린닷컴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며 “포탈이나 광고주들, 그리고 독자들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광고나 어뷰징 기사가 없는데 수익에 영향은 없을까. 고 국장은 “원래 한국아이닷컴과 한국일보가 계약을 맺을 때 우리 컨텐츠를 1억 원에 가져가고 한국아이닷컴이 서버를 이용해 가공, 포털에 쏴주는 등등 기타 용역비로 6천만원을 책정했다. 즉 우리에게 4천만원을 줬다”며 “하지만 한국아이닷컴이 용역비를 1억원으로 올리면서 한국일보의 수입은 0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고 국장은 “이제는 온라인과 모바일 수익이 온전히 우리 수입이 된다”며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모범적인 닷컴을 만들 수도 있다. 한국언론에서 보기 힘들었던 깨끗하고 공정한 컨텐츠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보의 두 번째 과제는 새로운 사주 삼화제분의 인수작업을 마무리하는 일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5월 초 법정관리를 마무리한다는 예정이었지만 회생절차가 늦어지면서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고재학 국장은 이에 대해 “2월 24일 본계약을 체결할 때 ‘6개월 내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제 3개월이 지났을 뿐”이라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늦어지고 있지만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일정대로라면 7월 말에는 종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항간에는 박원석 삼화제분 대표와 이종승 뉴시스 회장 간의 지분 다툼으로 인한 자금 조달 문제로 회생절차가 늦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 국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삼화제분 내 경영권 분쟁이 문제”라고 밝혔다.

   
▲ 고재학 한국일보 신임 편집국장. 사진=조윤호 기자

삼화제분이 한국일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있었다. 삼화제분 박원석 대표가 ‘친박실세’인 서청원 의원의 사위라는 점 때문이다. 고재학 국장은 ‘장재구 쪽에서 흘리는 소문’이라고 주장했다. 고 국장은 “장재구는 한국일보에 갚아야할 돈이 있다. 장재구 입장에서는 새로운 주인이 오는 게 아니라 파산해 공중 분해되는 것이 더 유리하다”며 “장재구의 영향력이 강한 매체들에서 그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고 말했다.

고 국장은 “한국일보는 정파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기에 여든 야든 잘못한 점이 있으면 비판한다. 한국일보는 편집권 독립 장치가 잘 되어 있고, 서청원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해도 통할 수 없는 구조”라며 “서청원 의원이 한국일보 논조에 영향을 행사할 가능성은 제로”라고 장담했다.

편집국 폐쇄 사태와 이후 수습 등으로 늦춰진 ‘개혁’도 남은 과제다. 고재학 국장은 “지난 10년 간 회사 재정도 어려웠고, 비리 사주를 몰아냈음에도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한 투자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기도 많이 떨어지고 조직도 많이 느슨해진 상황”이라며 “지면 혁신작업, 사기진작 대책을 마련할 생각이다. 인수절차가 종결되면 다른 사옥으로 사무실로 이전하면서 새로운 기분으로 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국장은 “6월 9일 창간 60주년을 맞아 제2창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